<한국 영화계 아버지>
1.선정 대상과 선정 이유
나는 예전부터 영화 보는 것을 즐기고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한국 영화의 성공으로 한 획을 그은 봉준호를 롤 모델로 선정했다. 봉준호는 블랙 코미디 장르를 주로 국제 영화상, 최우수 감독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또, '살인의 추억' '설국열차' '괴물' '옥자' '기생충' 같이 많은 사람이 알고 명작이라고 말하는 영화들을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할 수 있게 한 그의 연출과 각본을 짜는 능력 그리고 영화를 완벽하게 만드는 완벽주의적 성향까지 본받고 싶다. 이 외에도 봉준호를 더 보며 그의 성공 요인들을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2.성공사례
봉준호는 어릴 때부터 만화를 즐겨 보며 자라왔고 영화, 디자인 관련 책을 읽는 등 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대학생이 되어 한겨레신문에서 개설한 영화 관련 수업을 다니며 영화 예술 문법을 배웠다. 그 후 영화 동아리를 만들어 1993년에 '백색인'이라는 영화를 연출했다. 이 것이 봉준호 영화의 첫 시작이었다. 그 시작으로 봉준호는 영화 아카데미에 입학, 졸업하고 1999년까지 조연출, 각본 활동으로 경력을 쌓았다.
'플란다스의 개'라는 첫 장편영화를 만들었는데 흥행은 안됐지만 영화 전문가들 사이에서 작품성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었다. 이 작품을 눈여겨본 차승재 대표가 봉준호에게 연출의 기회를 줬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살인의 추억'이다. 영화의 신선함으로 흥행하며 대중에게 알려지고 2006년 괴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여 스타 감독으로 올랐다. 이후 '설국열차'로 국내 한정 영화를 글로벌하게 확장시키고 2019년 '기생충'으로 한국 영화 최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또, '기생충'으로 천만 관객 돌파와 1억달러까지 돌파라는 대단한 기록도 세웠다. 그 외에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과 국제 영화상, 감독상, 작품상을 받게 된다.
봉준호는 한국 영화계를 전 세계로 알리는 것에 공을 세우고 다양한 상과 기록을 세우는 등의 성공을 했다.
3.자신의 의견
봉준호의 영화 연출 방법, 각본 쓰는 방법은 깔끔하고 때론 새롭고 분명 대중을 이끄는 능력 있다. 전에는 "저런 연출이 기본적인 감각에서 나오는 걸까, 배우면 다 가능 한 것일까.? 봉준호는 그냥 재능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연출, 각본 대중을 끄는 능력은 재능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 봉준호의 필모 그래픽을 보니까 생각이 바뀌었다. 봉준호의 필모 그래픽을 보면 세계 최고 감독이 되기까지 정말 오랜 세월 동안 영화 제작에 참여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보며 이렇게 높은 곳을 오르기까지의 시간들이 결코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시간을 보니 계속 무언가를 시도하는 꾸준함과 실행력의 중요함이 느껴졌다. 만약 봉준호가 저 노력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아닐 거다. 봉준호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 능력이 있다면 성공에 가까워지기는 시간문제라 본다. 나 또한 앞으로 저 실행력과 모든 꾸준히 하는 마음가짐으로 나의 일들을 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