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정치 사회에 활력을 부어넣을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많습니다. 선거의 선한 작용은 뭔가 발전에 저해가 되는 요소를 국민들의 여론에 따라 제거하고 새로운 힘을 키우는 것이라면 악한 작용은 그 선거기간동안 선거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감추고 숨김에 따라 선거가 끝난 뒤 복합적인 두려운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한국에서 치뤄진 4.10 총선은 후자의 의미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정치적 상황은 차치하고 경제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먼저 경제적인 상황입니다. 지난해 나라의 빚이 60조원 가까이 늘면서 1천1백조원대로 증가했습니다. 국가 채무 증가 속도가 국내총생산 증가율보다 더 높다보니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처음으로 50%를 넘어선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국민 한사람의 국가 채무는 2천178만원으로 집계됐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2천만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당에 총선 악재가 될 것을 우려해 발표를 선거일 다음날로 미뤘다는 지적을 받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건설업계의 4월 위기설도 강력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건설업계에서 4월 위기설이 나온 것은 이미 오래됐습니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에 PF 대출 부실여파로 건설사들이 연이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가운데 머지않아 줄도산할 것이라는 논리가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해 정부가 인위적으로 위기를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이런 4월 위기설을 근거없는 이야기이며 과장됐다라고 하지만 건설업계는 이미 초긴장 상태속에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미분양 주택이 늘어나고 법정관리에 몰린 건설사들이 속출하는 상황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습니다.
환율의 상황은 더욱 긴장감을 높히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의 통계를 보면 올 2월 이후 4월 8일까지 원화 가치는 1.6% 하락했습니다. 원 달러 환율은 같은 기간 1331원에서 1353원까지 상승했습니다. 시장에서는 6월 유럽중앙은행에서 기준금리 인하가 전격 이뤄질 경우 강달러 현상이 더욱 거세지고 그럴경우 1400원에 근접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이 우세합니다.한은 금통위가 미국 연준보다 먼저 금리를 낮추기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건설투자 위축과 내수 침체 장기화 등이 더욱 가시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여기에 물가고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압력을 가해 특정 식료품가격을 낮춰도 다른 식료품들이 반대로 올라가는 풍선효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총선이후 각종 요금들의 줄줄이 인상도 예상된다는 말도 들립니다. 총선이라는 이벤트로 막아두었던 저수지가 본격적으로 물을 방출할 경우 물가는 더욱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유가 인상도 우려되고 있습니다. 지금 중동지역의 긴장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중동에서 힘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중동 각국들의 갈등이 높아지면서 대규모 전쟁의 우려가 급증하는 상황입니다. 그럴 경우 유가는 더욱 뛸 것이며 이것이 한국의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개인부채와 기업부채의 짙은 그림자가 경제 전반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정말 쉬운 구석이 한군데도 없습니다.
사회적인 문제는 또 어떻습니까. 정부와 의사들과의 갈등은 이미 골든타임도 적정 해결시기도 모두 놓쳐버렸습니다. 의사들이 정권퇴진에 나서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총선에 영향을 미칠까봐 여당은 물론 야당도 그동안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아니 수많은 환자가 발생하고 치료가 시급한 상황인데 의사들이 없어 수술 날자는 지연되고 위급환자들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정부도 의사들도 자신들의 주장만을 계속 녹음기처럼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선거때만 되면 정치외에 모든 것이 스톱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라는 비아냥이 그래서 나옵니다.
이제 총선이 끝났습니다. 그렇게 이런 저런 것을 막고 있던 선거가 막을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숨겨진 우려들이 도처에서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인이 간여해 문제를 풀만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데 우려가 높은 것입니다. 그동안 총선때문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곪고 터진 상처 치료에 여야가 바로 나서야 합니다. 이건 특정 당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뭔가 협치를 통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한국은 그야말로 얼음판속에 갇혀 더욱 힘든 나날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야 모두 심각함을 가지고 대처해야 합니다. 나라가 닥친 거대한 시련에 여도 야도 없습니다. 일단 살려놓고 그 다음 논의를 이어가야 합니다. 그 서슬 퍼렇던 군사독재시절에도 나라의 어려움에 여야가 따로 없다는 말이 자주 등장했는데 요즘은 이런 말 듣기가 어렵습니다. 아니 아예 할 생각도 안합니다. 이제 시간이없습니다. 여도 야도 발벗고 나서야 합니다. 초가삼간이 불타고 있는데 네탓할 시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2024년 4월 12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