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사 / 안상학
쇠삿갓 쓴 사람을 들이지 말라는
연기설화가 있었다는데 그만,
비도 미친놈 억수같이 내리던 날
무쇠솥을 쓴 여인이
굶주려 우는 아이를 업고
용담사 처마 밑으로 기어들었네 그만,
삼백 리 떠나온 길
어디에 불 피운 흔적도 없이
밥 짓는 연기도 없이
손가락 물리며
무명저고리 옷고름 빨리며
승려들 쌀 씻은 물 따라 용담사로 올랐네 그만,
바람도 미친년 아귀같이 불던 날
쇠삿갓을 쓴 여인이 무쇠솥을 쓴 여인이
용담사 처마 밑에 짐을 풀었네
아이를 풀었네 아아 그만, 아이의
주검을 풀었네 허제비처럼
허수아비처럼 등짝에 매달려온 아이는
칠성판도 없이 행장도 없이 그만
돌무덤을 썼네
비가 와도 씻기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날리지 않는
돌삿갓을 썼네 그만, 여인은
쇠삿갓보다 더 큰
무쇠솥보다 더 무거운 맞배지붕을 썼네
기어코, 깎은 머리에 똬리도 없이 그만,
그래서 그런지 길안천에는
쌀뜨물이 뚝 끊겼다지 그만.
*******************************************
이 시는 설화를 소재로 해서 만든 작품입니다.
애초에 ‘용담사’ 절터를 잡을 때 어느 스님이 그랬던
모양입니다.
“이곳에 쇠삿갓 쓴 사람을 들여서는 안 된다”
도대체 쇠로 만든 삿갓이 무엇일까?
어쩌면 병사들이 머리에 쓴 투구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법도 합니다. 그러나 그 설화는 잊힌 채
수백 년 내려왔을 것입니다.
어느 흉년든 해입니다.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지금 세상에서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반세기 전만 해도
봄철 보릿고개 무렵이면 굶어 죽은 사람이
허다했습니다.
비바람이 억수로 쏟아지는 어느 날, 아기를 등에 업고
무쇠솥을 머리에 인 한 여인이 비를 흠뻑 맞으며
용담사 골짜기를 찾아 올라갑니다.
남편도 잃고 친척도 없는 외로운 여인인가 봅니다.
먹을거리가 없어 아이에게 빈 손가락만 빨릴 수 없어
절에 가면 혹 누룽지라도 얻어 먹일 수 있을까 해서
올라갔던 모양입니다.
여인은 그의 전 재산인 무쇠솥 하나를 이고 빗속을
뚫고 용담사에 이르렀습니다.
등에 업힌 아이를 풀어 놓았는데 그 아이는 이미 살아있는
목숨이 아닙니다. 여인은 아이의 주검을 돌로 눌러
무덤을 만들고 자신은 머리를 깎고 그 절의 비구니가
됩니다. 그리하여 그녀의 머리엔 무쇠솥보다 더 무거운
돌무덤과 절의 지붕을 이게 됩니다.
여인의 한이 너무 깊어서 그랬을까?
그 여인이 절에 든 뒤부터는 용담사가 쇠퇴해졌던가
봅니다. 화자는 길안천에 쌀뜨물이 끊겼다는 것으로
그것을 암시합니다.
길안천은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에 흐르는 강이며
용담사는 길안면 금곡리 황학산(黃鶴山) 소재의 절입니다.
그 절에 얽힌 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인데, 이 글의
사실여부를 떠나서 한 편의 단막극을 보는 듯 재미있습니다.
이처럼 설화를 소재로 했거나 서사적 요소를 담고 있는
시를 나는 說話詩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말하자면
소설적인 소요를 시에 끌어들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졸시집 『장닭설법』은 이러한 설화시들의 묶음입니다.
오늘의 현대시가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 따분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사적 기법은
그 따분함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임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