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오늘 연중 마지막 제34주일은 온누리의 임금이신, 온세상의 임금이신, 온인류의 임금이신, 우리 모두의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요, 삶의 중심이자 의미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왕직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참으로 평생 배우고 공부하여 닮아가야할 유일한 분입니다.
그리스도왕 대축일은 1925년 12월11일 제정됐습니다. 당시 교황이었던 비오 11세는 당시 전쟁후 무신론과 허무주의, 세속주의가 만연된 세상을 바로잡고자 그리스도왕직이 온인류에 미치고 있음을 강조하는 뜻에서 이 축일을 제정하고 공포합니다. 비오 11세 교황은 교서 ‘첫째의 것(Quas Primas)’에서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요 인간으로서 그리고 구세주로서 지상의 모든 것에 대한 주권을 지닌 왕”이라고 천명하며 그리스도의 구세주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대축일이 제정된지 100년이 지났지만 반복되는 악순환의 현실에 대축일의 중요성은 날로 증대되는 추세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더욱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중심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게 합니다.
“용기란 흐름을 거스르는 굳센 힘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반드시 해내야 할 때 필요한 힘이다.”<다산>
“명命을 아는 자는 굳이 기울어진 돌담 아래에 서지 않는다. 도道를 다하고 죽은 자는 바른 명命이지만, 범죄로 죽은 자는 바른 명이 아니다.”
참된 용기는, 바른 명의 삶은 한결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을 따라 살 때 주어지는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읽은 위대한 정치지도자, 독일의 제8대 연방총리로 16년간 재직했던 메르켈 총리의 회고록에 나오는 일화가 감동적이라 소개합니다. 온 인류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을 많이 닮은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일화입니다. 매르켈 총리는 2017년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한 트럼프 당선인을 설득하기 위해 트럼프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조언을 청합니다.
“굽히고, 굽히고, 굽혀라. 그러나 부러질 정도로 굽히진 말아라.”
교황은 답합니다. 메르켈 총리는 교황의 조언대로 갈등을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메르켈 총리의 개인적 일화도 좋은 교훈이 됩니다. 역사책에서 어떤 평가를 받기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노력했다(She tried)”를 원했고, 또 자신의 묘비명으로 “겸손과 품위”를 선택합니다. 누구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을 닮으려 노력한, 참 멋지고 위대한 세계적 정치가 메르켈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오늘 저녁성무일도와 아침성무일도 때 ‘마리아의 노래’ 후렴과 ‘즈카르야 노래’ 후렴이 일치했고 이어 부른 내용들도 참 깊고 풍부했습니다. 온인류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임을 실감할 정도였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나는 받았노라.”
더불어 어제 나눈 깨달음과 대화를 소개합니다. “왕(王)은 ‘하늘-’과 ‘땅_’ 사이에 십자가(+)가 있는 형상이다. 새삼 십자가의 예수님이 온누리의 참왕이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왕(王)자 위에 점’을 하나 찍으면 주(主)님이자 왕이신 예수님이시네!” 그러니 한 형제는 “아래에 점을 하나 찍으면 구슬 옥(玉)가 된다.”고 했습니다. 우연의 일치라 볼 수 없는 한자에 이미 주어진 주옥(珠玉)처럼 귀한 우리의 왕(王)이자 주(主)님이신 예수님의 신원임을 깨닫습니다. 이미 묵시록 계통의 두 독서가 예수님의 신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으리라.”
세상 역사의 흐름이 서서히 이렇게 가고 있는 듯 합니다. 종파를 초월하여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만이 유일한 길이저 희망이자 구원의 대안임을 깨닫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하고 말씀하신다.”
바로 우리 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들립니다. 오늘 미사중 감사송은 얼마나 장엄하고 깊고 풍부하며 고무적이었는지요!
“아버지께서 외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기쁨의 기름을 바르시어 영원한 사제와 온 누리의 임금으로 세우셨으며,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십자가 제대 위에서,
티없는 평화의 제물로 당신을 봉헌하시어 인류구원을 이루시고,
만물을 당신 친히 다스리시어,
그 영원하고 보편된 나라를, 지극히 높으신 아버지께 바치셨나이다.
그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이옵니다.”
이런 참권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을 모시고 배우고 닮아가는 삶보다 고귀하고 보람있고 행복한 삶이 어디있겠는지요! 도대체 이런 주 예수 그리스도왕이 아니곤 어디서 구원이 행복이 올런지요! 구체적으로 넷의 실천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첫째, 진리입니다.
진리의 왕이신 예수님입니다. 주 예수님은 진리자체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천명하신 주님이십니다. 빌라도를 교육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감동적입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진리가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그러니 시종여일, 한결같이 진리이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진리의 연인으로, 진리의 협력자로 사는 것입니다. 저절로 고귀한 품위의 사람이, 진리의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둘째, 희망입니다.
희망의 왕이신 예수님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궁극의 희망을 두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희망이, 꿈이 있어야, 비전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살아있다해도 희망이 없으면 실상 죽어있는 것입니다. 사람만이 희망을, 꿈을, 비전을 지닐 수 있습니다. 무슨 꿈입니까? 꿈도 희망도 비전도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궁극으로 추구할바 꿈이자 희망은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이런 희망이 생생하면 늘 새로운 시작입니다. 늘 새 하늘과 새 땅의 현실을 삽니다.
성 베네딕도는 ‘자신의 희망을 하느님께 두라’(성규4,41) 말씀하시고, 시편 저자는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희망을 하느님께 두라’(시편131,3) 말씀하십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8,24-25).
하느님을 예수님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합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바 궁극의 희망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을 통해 만나는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주님의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평화입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입니다. 거짓 평화가 아닌 참 평화의 주님이십니다. 주님께 평화를 주십사 기도할뿐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평화가 되게 해달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듯 평화를 사랑할 때 우리 존재자체가 주님을 닮아 주님의 평화가 될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5,9)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만날 때 “평화가 너희와 함께!” 우선적으로 주신 선물이 평화였고 우리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참 좋은 선물도 평화입니다.
넷째, 섬김입니다.
섬김의 왕이신 예수님입니다.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분입니다. 섬김의 권위, 섬김의 직무, 섬김의 사랑, 섬김의 겸손입니다. 섬김을 영성의 핵심입니다. 섬김의 공동체 바로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섬김의 주님입니다. 참으로 섬김의 삶에 충실할 때 섬김의 주님을 만납니다. 참으로 주님을 닮아갈수록 섬김의 사람이 되어 갑니다. 섬김이야 말로 영성의 진위를 판가름 하는 시금석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진리가 되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되십시오. 주님의 희망이 되십시오. 주님의 섬김이 되십시오. 한결같이 이렇게 살때 참 고귀한 품위의 삶에 백전백승 영적승리의 삶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날로 삶의 중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왕을 사랑하여 닮아가는 것이 우리의 평생 거룩한 과제요,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아멘.
성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