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023 봄 / 장석남
유골함을 받아 안듯
오는, 봄
이 언짢은 온기
산 송장들을 만드느라
관청의 서류마다 죄가 난무하고
공원의 쇠 울타리 안에서 정원사들은 날 선 법복 차림으로
꽃나무 뿌리마다 납 물을 붓고 있네
화창한 사오월의 봄날에도
납빛 꽃들이 신문지의 비열한 제목처럼 만발해 오리라
용답역 모퉁이에서 검은 무쇠 칼을 움켜쥐고
더덕 껍질을 서걱서걱 긁어 까는 가난한 할머니만이
망명한 봄을 숨겨 간직하였구나
나는 잠시 더덕 내음의 면회객이 되어 저편의 봄을 엿본다
흙 껍질 속의 흰색! 장지壯紙 빛, 신비한 향기를 맡으며
백범白凡의 그 두루마기 빛깔까지 허망 걸어가 보네
유골함의 온기 같은
지금 2023년 봄볕을
기록하여 두네
ㅡ 계간 《문예바다》 202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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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석남 시인
1965년 인천 출생. 서울예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및 인하대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뺨에 서쪽을 빛내다』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등.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상화시인상, 지훈문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
현재 한양여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