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바라보는 꿈과 믿음이 있는가?
(요한복음 6: 1-15)
지금 인생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않고 살아 갑니다. 가장 많이 물질의 문제가 많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로 일합니다. 그리고 자녀문제, 가정문제, 질병문제 그리고 사람들과 인간관계등 문제를 않고 살아갑니다. 내가 않고 있는 문제를 누가 우리를 도와 줄 수 있습니까?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갈릴리 근처 베세다 광야에 남녀 어린이까지 합쳐서 약 만여명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주님과 함께 있어 해 질 무렵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허기져서 기력을 잃어버리고 여기저기 풀밭에 주저앉거나 드러누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빌립을 향하여 <빌립아! 우리가 어디에서 떡을 구하여 이 사람들로 먹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질문하셨습니다. 그때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이미 그가 어떻게 하실 것을 알고 계셨으며 단지 빌립을 시험코자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시험해 보시려고 하셨을까요?
1.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빌립이 광야에서 굶주린 그 군중들 가운데 서 계신 예수님께서 저희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을 때 무엇을 보고 있는가를 시험해 보셨습니다.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빌립을 시험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문제를 있을때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빌립이 본 것은 무엇입니까? 빌립은 그 광야를 보았습니다. 인적이 없고 오직 사막같이 막막한 광야, 그 광야만 보았습니다. 그 다음 빌립이 본 것은 많은 수의 군중을 보았습니다. 도저히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수가 거기에 모인 것을 보고 그는 마음속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다음 빌립이 본 것은 자기 주머니에 돈이 없음을 보았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말씀하기를 "빌립이 대답하여 가로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먹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돈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저는 돈이 없습니다" 그 다음 빌립이 본 것은 떡 살 곳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똑같은 제자로서 똑같은 광야에 있었는데 안드레가 본 것은 빌립과는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광야지만 광야 중에 서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었습니다. 물론 광야다. 그러나 광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광야 가운데에 있는 예수님을 집중해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물론 많은 군중이 있다. 이 많은 입을 먹이려면 굉장한 돈이 필요하겠지만 그러나 군중 가운데에 서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빌립은 할 수 없는 것을 바라보았지만 안드레는 할 수 있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빌립은 없는 것을 바라보고 안드레는 있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빌립은 부족한 것을 바라보고 있고 안드레는 만족한 것을 바라보았었습니다. 빌립은 현실을 바라보았지만 안드레는 현실 가운데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2. 꿈이 있는가?
주님이 시험하는 것은 꿈이 있는가를 시험해 보십니다.
문제가 있을때 <꿈이 있는가?>입니다.
꿈은 하나님의 능력을 담는 그릇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은 결코 나타나지 않습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사막을 지나 가데스바네아에서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직전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때 12정탐꾼을 보내어서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와서 보고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열명의 정탐꾼은 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현실적인 장애물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우리가 가본 땅은 산은 높고 골을 깊어 하늘을 찌를듯한 성벽과 네피림의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고 자기들은 메뚜기같다고 비하했습니다. 우리가 들어가지 못한다. 그 땅을 우리가 점령 못한다. 우리의 자손들이 또한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그들은 광야에 가서 현실만 보았습니다. 그들의 보는 관점에는 하나님을 제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간 사람 중에 두 사람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꿈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현실보다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땅의 백성은 다 그들의 밥이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땅은 그들의 땅이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심으로 하나님과 그들이 함께 하기 때문에 그들은 현실을 이기고 현실을 뛰어 넘어 꿈을 꿀 수가 있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즉, 하나님이 같이 계심으로 이 곳에 있는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이 있지만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저들의 보호자들은 떠났고 저자들은 우리의 밥이다. 이 땅은 우리의 것이다. 그들은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이 없는 현실주의자 10인을 심판하시고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렸습니다. 꿈꾸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40년 동안 생존시켜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저버리는 것입니다. 열두 정탐꾼 중에 꿈이 없는 10명과 그들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다 광야로 몰아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그 후손을 데리고 그들이 꿈꾼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 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꿈을 오늘 하나님께 보여 드리세요.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내일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 우리현실의 환경은 심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현실만 바라보고 우리는 끝장났다. 이제 모든 것은 망했다. 이제는 손을 털어야 되겠다. 우리 살길이 없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든지 어디로 도망치다 이러한 사람들은 꿈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어디로 도망을 쳐도 그곳에서 말라 죽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같이 하는 사람은 꿈이 있는 사람입니다. 광야에 있어도 겁날 것 없습니다. 사막에 있어도 겁날 것 없습니다. 도시 가운데서도 겁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같이 계심으로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이 있는 백성은 절대로 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과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같이 계시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있기 때문에 꿈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이 없는 빌립을 제치고 꿈이 있는 안드레를 사용해서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3. 믿음이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은 문제가 있을때 <믿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시험해 보시고 난 다음 빌립은 낙제생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빌립은 환경만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은 자기의 위에 뛰어넘는 꿈을 못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꿈꾸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빌립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주님을 믿고 기적을 기대하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빌립과 한 팀이 되어서 일하기를 거부하시고 안드레와 한 팀이 되셔서 주님이 일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안드레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통해서 꿈을 가졌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통해서 기적이 일어나는 믿음을 가지고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안드레와 한 팀이 되어서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이 축복을 해주심으로 오병이어가 남자만 5천명 부녀자 기만명을 배불리 먹고 남을 조각을 거두니 12바구니에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예수님은 오늘날에도 광야에서 와서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꿈이 있어야 믿음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과 자신을 바라보고 낙심하여 절망하지 말아야 됩니다. 우리는 환경과 자신을 가지고서 우리가 살 바에야 교회에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환경과 자기를 믿을 바에야 교회에 왜 나옵니까? 교회는 환경과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 우리 운명을 변화시킬 하나님을 믿으러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것은 기적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왜 기적이 안 일어나요?
하나님을 안 믿으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교회에 나옵니까?
교회 나와서 우리가 주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운명과 환경에 간섭해서 변화시켜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딸이 죽었을 때도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가 믿음을 굳세게 가져야 됩니다. 우리는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 크고 비밀한 일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믿고 최선을 다해서 믿음의 씨앗을 심고 기적을 기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나의 힘이요 나의 기쁨이요 나의 생명이신 예수님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 계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꿈과 믿음과 희망을 가꿔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빈들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순종할 때 일어나고 감살할 때 일어납니다.그 때는 빈들이었고, 저물 때 이었습니다. 상황 쳐다보면 감사할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먹여야 할 사람은 5000명, 손에 있는 것은 1인분 식사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잡으시고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서울 동광교회에서 목회하고 이경열목사님이
복음서의 오병이어 기적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다가 주님께 질문하였답니다.
“주님은 저는 어떤 존재입니까?”
그러면서 물고기 두 마리를 생각하며 넓고 넓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 중에
자신은 어떤 물고기에 비교될 수 있을지 생각하였답니다.
자신이 고래나 상어 같은 존재일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답니다.
그래서 생각해 것이 고등어였습니다.
“주님, 저는 고등어 정도는 됩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아니라 하시는 것 같더랍니다.
그러면 “꽁치 정도는 됩니까?”
주님은 꽁치 정도도 아니라 하시는 것 같더랍니다.
너무 당황이 되어 고민하다가 물고기 중 가장 작은 멸치가 생각났답니다.
그래서 “주님, 멸치 정도는 됩니까?‘ 하고 물었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멸치 정도는 된다고 하시더랍니다.
그 후 ‘나는 큰 바다에 사는 멸치 정도 밖에 안되는 자다’ 명심하고 목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술가인 집사님에게 오병이어의 멸치 이 고백을 나누었더니 큰 감동을 받으시고 가셨는데, 그 쟁반에 멸치를 담은 작품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떡과 물고기로 일어난 기적이기에 너무나 감사하더랍니다.
‘떡 담는 쟁반에 멸치 하나 담긴 액자’ 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경열목사님은 그 액자를 동광교회 담임목사실 벽 한 가운데 걸어두었습니다.
액자 밑에 목사님의 고백을 담은 짧은 글 하나를 쓰셨습니다.
‘주의 은혜와 긍휼로 나를 덮으소서. 종이 작으니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정말 부족한 자이지만, 주님은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를 남기셨음을 항상 기억하며 목회하십니다.
디모데전서 4장4절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감사할 때 기적이 나에게 일어납니다. 내가 감사할 때 나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