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적 낭만파 시인들은 `4월의 소생을 예찬했다.`라고 하다보니 저는 지금도 `4월은 잔인한 달`이란 것에 의문을 갖습니다.
비록 꽃몽우리를 내밀지만 아직은 추워서 그럴까요?
아니면 쉬는 식물을 시샘한 봄이 `모두들 일어나라`고 기상나팔을 불어대서 잔인하다고 한 건지...?
근데 우리 게 `잔인한 4월의 기억 속에 있는 제주 4,3 사태나 4,19 혁명, 그리고 4,16 세월호 같은 사건 때문은 아니겠죠?
그리고 설마 솔로들에게 화창한 봄날씨가 잔인하게 느껴져서 그런 것 또한 아니겠지? 싶을 때는 제가 심오한 역사 앞에 `오지랖을 떠는구나`싶었지요.
그건 영국 극작가 “엘리엇”의 소설 “황무지”에 보면 “파괴적인 1차 세계대전 탓에 인간에겐 황폐가 왔지만 자연의 순리만은 지속되다 보니 역동적인 봄과 참혹한 전쟁과의 부조화를 상징적으로 빗대어 4월`너 참 잔인하다`라고 표현했겠구나!" 싶었기에 말예요.
또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했을 때처럼, 마치 포화 속에서 꽃이 피는 `분열과 혼란`같은 표현 말이에요.
어릴 적 6.25 영화에 철모 쓴 군인들이 진달래꽃으로 위장한 걸 본 적이 있는데, 어린 저의 시선이었지만 아마도 은폐와 엄폐를 떠나 의식적으로 "황무지"와 같은 정서로서 희망의 봄을 나타낸 것으로 여겨지는군요.
따라서 하느님은 좋은 것만 주시지만 인간의 "사욕편정" 탓에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한 것이? 러- 우 전쟁이 고조된 현재를 보더라도 4월의 희망은 `언감생심` 매일 수십 명의 사람이 죽어간다 하니 말이에요.
5월 역시 꽃의 계절로서 성모님이 떠오르며 꽃들이 절정을 이루면 구성원마다 축제나 행사로 이어지므로 노천명시인은 "계절의 여왕"으로 표현했데요.
“카네이션과 장미”도 생각납니다.
이처럼 신께서 한해 내내 꽃을 주시니 우리는 "하무십일홍"에 개의치 맙시다.
어린이를 배려하고 부모님, 성모님을 공경하다 보면 우리의 바람이 꽃처럼 필 거니까요.
자명한 건? 소생하는 4월은 설렘이 있기에 희망적이며, 오월 역시 성가정과 화목을 느낄 수 있겠죠.
또한 4월이 있기에 오월이 오듯! 사계는 네 개의 고리로 연결된 또 하나의 "야훼이레"일 것으로 사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