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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60회>
씬 1 그 산성안(밤)
어두운 벌판으로 수 많은 고려군들이 몰려 오고 있다.
수달이 보고 있다가 소리친다.
수달 적병이 온다. 모두들 제 위치를 사수하라. 폐하의 땅을 내어줄 수 없느니라. 우리는 막을 수 있느니라. 모두 적병을 맞으라!!
공격이 시작되었다. 돌덩이와 불화살들이 날아온다.
피아간에 수 많은 화살들이 오고 간다.
성루가 부서져 가고, 공격은 집요하다.
씬 2 그 성 밖 어느 곳
유금필이 지시하고 있다.
유금필 한 떼는 성문을 공격하고, 술희는 좌측을 공략하라. 우측은 거짓 공격하는 체 하고, 전원 좌측으로 공략하라. 한 곳을 집중 공략해야 이길 수 있다. 반드시 성벽을 넘어라.
그 치열한 전투 속에서 박술희 등이 달려간다.
능산도 그 반대로 사라진다. 전투는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씬 3 다시 그 성 안
엄청난 공격이다.
돌덩이들이 무더기로 성안으로 날아오고 있다.
불화살도 날아들고, 성을 공격하는 포차는 계속해 성문을 두드리고 있다.
부장2 장군, 저들이 성문을 부수고 있사옵니다.
수달 쏟아부어라! 저자들에게 끓는 물과 기름을 모두 쏟아부어라!
부장2 군사가 없사옵니다. 끓는 물도 기름도 떨어져가옵니다.
수달 무슨 소리인가? 구해오너라. 아니면, 몸으로 막아라. 막아야 한다!
그때 다시 부장3이 달려 온다.
부장3 장군, 좌측 성벽으로 적군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사옵니다.
수달 뭣이라? 그렇다면, 좌측으로 가라. 군사를 그 쪽으로 이동시켜라!
부장3 장군, 이동시킬 군사가 없사옵니다. 이곳 막기도 급급하옵니다.
수달 막아라! 너희들이 직접 가서 막아라!
수달은 소리치고 있다. 그의 눈이 사방으로 돌아간다. 다급하다.
어쩔줄 모르는 것이다.
씬 4 다시 왕건의 진영
멀리서 치열한 전투소리들이 들려오고 있다.
전쟁의 양상들이 어둠 속에 어지럽게 보이고 있다. 이치, 종회를 비롯한 장군들이 좌우로 시립해있고, 도영과 왕건은 여전히 적지를 보고 있다.
도영 장군, 어떻사옵니까? 성이 함락될 것 같사옵니까?
왕건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오. 지난 전투에 우리도 희생이 컸지만, 수달의 군사도 이미 그 절반을 잃었소이다.
도영 ....(끄떡인다)
왕건 특히나, 이번에 공략에 나선 세 장수는 소장의 아우들이올시다. 그리고, 군사들 또한 송악의 정예병들이지요. 아마, 어떻게든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씬 5 다시 그 산성 밖
박술희와 능산의 군사들이 성벽을 오르고 있다.
화살과 돌덩이를 끓는 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수많은 고려군들이 무더기로 떨어지거나, 죽어나가고 있다.
운제와 더불어 갈고리가 성벽에 걸려지고, 이곳저곳에서 개미떼처럼 군사들이 오르기 시작한다.
치열하다.
치열한 접전이다. 카메라 팬하면, 성문쪽에서도 유금필의 군사들이 숱한 희생을 내며 포차가 성문을 부수고 있다.
성문이 열릴 듯 부서질 듯 삐걱거린다.
씬 6 동 성 안
치열한 접전이다.
군사들이 성밖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곳곳에서 쓰러지고 있다.
돌을 밑으로 굴리고, 끓는 물을 붓지만 이내 그것들도 떨어져서 밑으로 던질 것이 없다.
어쩔줄 모르는 군사들. 부장들이 소리치고 있다.
부장2 막아라! 끓는 물을 더 가져오너라. 돌덩이는 어디 갔느냐? 돌을 가져 오너라. 궁수부대는 화살을 쏘아라. 무엇들 하느냐? 이 놈들아!
군사 없사옵니다. 아무 것도 없사옵니다. 화살도 다 떨어졌사옵니다. 장군.
수달이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다.
다시 군사 하나가 달려오며 소리친다.
군사 장군, 좌측이 뚫리고 있사옵니다. 적군이 한꺼번에 좌측으로 오르고 있사옵니다.
수달 막으라고 하였다. 막으라고 하였어.....
군사1 (달려오며) 장군, 성문이 뚫리고 있사옵니다. 성문이 부서져 나가고 있사옵니다.
수달 .... 어디들 갔느냐? 군사들은 다 어디들 갔느냐?
씬 7 그 성 밖 좌측
박술희가 악을 쓰며 독전하고 있다.
박술희 이제 다 되었다. 놈들은 별것 없다. 성을 넘어라. 성을 넘어라!
군사들이 성으로 오르고 있다. 그리고, 이곳저곳 개미떼처럼 오르고 있다.
그 중 태반이 쓰러지면서도, 그들은 계속해 오른다. 성루 저만큼 수달이 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씬 8 그 곳
수달이 놀라서 보고 있다.
이곳저곳 넓은 범위로 군사들이 기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부장3이 소리친다.
부장3 장군, 중과부적이옵니다. 아니되겠사옵니다.
수달 ... 저들을 막아야 한다! 막아라!!
부장2 (달려오며) 성문이 부서져 나가고 있사옵니다. 피하시오소서.
수달 피하다니? 피할 곳이 어디있단 말이냐?
부장2 이미 저들이 성을 넘어오고 있사옵니다. 어서 피하시오소서.
고려군이 하나 둘 속속 넘어오기 시작한다.
성 안의 한쪽이 무너진 것이다.
함성소리와 함께 몰려오는 고려군들의 백병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어지럽다. 수달은 절망하고 있다.
수달 아아, 날이 새면 폐하가 오실 것인데, 그 동안을 버티지 못한단 말이냐? 그 동안을 버티지 못한단 말이냐?
군사들은 점점 더 몰려 든다. 곳곳에서 수달의 군사들이 죽어 나간다. 부장은 또 재촉한다. 저만큼 성문이 부서져 넘어가는 것이 보인다.
부장2 이 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어서요. 장군. 저길 보시오소서. 성문이 뚫렸사옵니다.
부장3 (달려오며) 장군, 사방으로 적이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어서 피하시오소서.
수달 아아, 이 일을 어이할꼬. 이 일을 어이해?
부장2 가셔야 하옵니다. 여길 벗어나셔야 하옵니다.
부장들은 떠밀 듯 수달을 밀고 간다. 수달은 할 수 없이 그들과 도망치며 말에 오른다. 두 부장과 수달이 도망친다.
씬 9 그 성문 안
유금필의 군사들이 물 밀 듯 밀려 들어오고 있다. 성이 함락된 것이다.
씬 10 그 성 안 어느 뒷길
수달과 부장들이 도망쳐오고 있다.
그때 함성소리들이 들려온다.
박술희 수달은 게 섰거라! 어딜 도망가느냐?
수달이 옆을 본다. 박술희와 능산이 군사들을 이끌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수달 길을 비켜라! 아니면, 죽음 뿐이다.
박술희 지난 번의 빚을 갚아야겠다. 어서 오너라!
다시 접전이 일어난다. 그때 능산이 술희와 함께 좌우로 공격을 한다. 수달은 두 장수를 받아내고 있다. 접전이다. 그러나, 이들은 수달을 당하지 못한다. 다시 유금필이 어둠 속에서 달려온다.
유금필 참으로 대단하구나. 허나, 우리 형제에겐 아니 될 것이다. 여보게들, 저 놈을 사로잡세.
수달 헛 수작하지 말거라.
접전이다. 세 사람이 달려들어도 수달은 안된다. 어느만큼 싸웠을까? 북소리가 뒤에서 들려오고 있다. 세 사람이 소리나는 쪽을 돌아본다.
능산 돌아오란 신호가 아니옵니까?
박술희 아니되옵니다. 수달이 놈을 잡아야 하옵니다.
접전은 그래도 계속되는데, 수달이 눈치를 보다가 몸을 뺀다. 세 가신이 다시 쫓으려 하는데 배현경이 소리치며 달려온다.
배현경 그만들 두시오. 총사령께서 돌아오라고 하시오. 그만들 하시오.
유금필 그만두라니? 뒤쫓으면 저 자를 잡을수 있소이다.
그때 왕건이 웃으며 다가온다.
왕건 그만들 두세. 그만하면 되었어.
유금필 다 잡은 범을 놓쳤사옵니다.
왕건 물론 그렇게 되었네. 그러나, 저만한 장수를 상하게 한다면,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모두들 ....?
왕건 이미 성을 우리에게 들어왔고, 수달은 패했네. 저 자를 죽이고 싶지 않네. 아무리 적이지만, 얼마나 대단한 장수인가? 견훤왕은 저 수달을 얻기위해 세 번이나 기회를 주었네. 우리도 다음을 기약해보세나. 가세.
세 가신과 배현경들이 왕건을 따른다. 그들의 모습에서 함성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면서... 디졸브.
씬 11 동 성 안(새벽)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다.
전투에 참여한 모든 장수들의 모습이 다 보이고 있다. 왕건이 군사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오다린과 종례들도 와있다. 도영이 감격에 벅차 보고 있다.
왕건 군사들은 들으라! 지엄하신 우리 대 고려국 황제 폐하의 영을 받들어 나 왕건은 장졸들을 이끌고 백제 땅이였던 이 금성을 함락하였노라.
모두들 ....(와- 함성)
왕건 이제부터 이 곳은 폐하의 땅이 되었느니라.
모두들 ... (다시 와- 함성)
왕건 이 금성을 얻기까지에는 많은 이들의 큰 도움이 있었느니라. 폐하께 상주하여 그들의 공을 기리고, 후한 상금을 받게 할 것이니라. 여기 장졸들 또한 큰 상금이 있을 것이니라. 모두들 대 미륵이신 폐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만세! 황제 폐하, 만세!
모두들 만세! 황제 폐하, 만세!
만세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그 소리들에서...
해설 드디어 왕건은 금성을 함락시켰다. 금성, 그 곳은 견훤이 기업을 일으킨 땅이고, 또한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 외교를 해 왔던 백제 최대의 관문이었다. 견훤은 이 금성을 잃음으로써 참으로 상상 이상의 엄청난 손실을 입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백제로써는 후방에 적을 두게 되었으므로 늘 불안하고 함부로 움직이기 어려운 전략상의 손실도 막대한 것이었다. 그랬다. 백제와 고려의 첫 대전투에서 백제는 철저하게 패배했던 것이다.
씬 12 길(낮)
수달이 힘없는 모습으로 부장들과 패장병들을 이끌고 오고 있다. 그는 어느만큼 오다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오던 길을 되돌아 본다. 그리고 부장에게 말한다.
수달 폐하께서는 지금쯤 어디에 오고 계시는고?
부장2 아마도 보성을 지나 영암 가까이 이르셨을 줄 아옵니다.
수달 어떻게 폐하의 용안을 뵈올꼬? 무슨 낯으로....
부장들 ....
수달 우리의 일을 폐하께서 알고 계실까?
부장3 우리가 성을 빠져나올무렵 전령이 갔사옵니다. 지금쯤 아시지 않겠사옵니까?
수달 영암이라.. 지금쯤 그곳에도 고려군이 있을터인테.
부장2 그럴것이옵니다. 인근의 십여 군현이 모두 왕건이에게 투항했다 하옵니다.
부장3 투항이 아니라 반란이옵니다. 이미 오다린과 태수 종례가 저들을 사주하여 고려의 왕건을 도왔사옵니다.
수달 오오... 왕건이 이 놈. 이 분함을 어찌 갚아줄꼬? 폐하께서는 이 수달이를 얼마나 원망하실꼬? 아아, 군사 최승우의 말을 들었어야 하는 것인데. 내가 어쩌자고 이런 우를 범했단 말인고. 내가 어쩌자고...
부장2 어서 가시오서소. 아직도 이 곳은 위험하옵니다. 무주로 가시면, 폐하께서 그곳으로 오실것이옵니다.
수달 어떻게 폐하를 뵈올까? 어떻게...
그렇게 낙담하는 수달의 모습에서.
씬 13 또 다른 길
견훤이 대군을 이끌고 산길을 돌아오고 있다.
하늘을 보며 전전긍긍한다.
견훤 도대체... 도대체.. 왜 이리들 행군이 늦는 게야? 오늘이 닷새야. 닷새가 지나고 있어.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는 겐가?
최승우 영암으로 가고 있사옵니다.
견훤 영암이라.. 그럼 얼마 남지 않았구만. 금성이 얼마 안남았어.
능환 그렇사옵니다. 이제 다 와 가옵니다.
견훤 제발, 제발 수달이가 조금만 더 버텨주어야 하는데..
그러다가, 견훤이 하던 말을 멈추고 먼 앞으로 본다. 한 필의 말이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
모두들 보면, 이윽고 그 전령이 달려와 말에서 내려 고한다.
전령 폐하, 금성에서 왔사옵니다.
견훤 (다급하다) 오, 그래. 어찌되었느냐? 수달 장군은 어찌되었느냐? 아직도 금성에 있느냐?
전령 망극하옵니다. 폐하. 금성관아는 물론이고 지난 새벽 성마저 함락되었사옵니다.
견훤 함락? 함락이라니? 성이 함락되었어?
모두들 .....(침통하다)
견훤 수달이, 수달장군은 어찌되었느냐?
전령 끝까지 성을 사수하시다가, 그 후로는 어찌되었는지....
모르오옵니다.
추허조 그렇다면, 성안에 있던 군사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전령 모두들 전멸한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견훤 (비틀하며) 전멸이라? 모두 죽었단 말이냐?
전령 에, 폐하. 신이 성을 빠져나갈 때에는 이미 살아 있는 자가 거의 없었사옵니다.
견훤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망연자실이다. 최승우도 능환도 또 장수들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오랜 침묵이 무거운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그러다가 견훤이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친다.
견훤 이보게, 파진찬.
최승우 예, 폐하.
견훤 군사들을 정비하라. 이 길로 곧장 금성으로 들어갈 것이다.
전령 아니되옵니다. 폐하. 이미 금성 주변 십여 고을이 모두 고려군에 투항했사옵니다.
견훤 그래도 갈 것이니라. 전군은 전투를 준비하라.
능환 폐하, 고정하시오소서. 지금 금성으로 가심은 무리이옵니다.
견훤 무리라니? 수달이 어찌되었는지 우리는 모르고 있어. 짐의 군사들이 전멸을 했어. 무엇이 무리이란 말인가? 응당 금성을 되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최승우 폐하, 이미 아군은 전략상에 중요한 위치를 모두 잃었사옵니다. 금성 관내는 넓게 천혜의 산맥들이 성처럼 둘러싸여 있사옵니다. 이미 그곳을 잃었사옵니다. 고정하시오소서.
견훤 고정이라니?... 고정이라니? 금성이 어떤 곳인가? 그 중요한 곳을 고려군이 들어와있단 말이야. 오오.... 나는 믿어지지가 않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 어떻게 금성이 고려땅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박영규 폐하, 참으로 원통하고 분한 일이오나 어찌하겠사옵니까? 잠시 노여움을 거두시고, 다음을 기약하시오소서.
공직 그리하시오소서. 폐하. 전쟁에서는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사옵니다. 다음을 기약하시오소서.
추허조 다음이라니? 언제 다음을 또 기다린단 말이오? 금성에 고려군이 있어보았자 얼마나 있다고, 다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오? 가야하오리다. 폐하, 영을 내리소서. 신이 앞을 서오리다.
방장군 그것은 아니되옵니다. 이미 전략상에 요충지를 모두 잃었사옵니다. 무모하게 적진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니될 말이옵니다. 헤아려 살피시오소서. 폐하.
견훤 .....(깊은 한숨) 어떻게 하다가....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고? 강주성도 잃어버리고, 소득도 없이 우리 군사는 신라에게 망신을 당하고 금성도 잃어버렸어.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도대체, 왕건이 그 젊은 놈이 누구이길래, 이토록 겁이 없단 말인가?
견훤은 절규처럼 그렇게 내뱉고 있다.
아무도 대꾸를 못한다. 그런 견훤의 표정에서.
씬 14 금성 관아 외경
고려군들이 철통같이 경계를 서고 있다.
씬 15 동 관아 안
왕건과 세 가신, 도영, 오다린, 종례가 함께 해있다.
오다린 왕장군, 금성관내는 모든 치안과 방비가 철저하게 제 자리를 잡았소이다. 다행입니다.
종례 그렇사옵니다. 장군, 모두가 왕장군의 철저한 준비 덕분인 것 같습니다.
왕건 오늘날에 금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여기 계신 두 분의 공이 참으로 크십니다. 특히나 도영낭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아마도 우리 폐하께오서 특별한 상급이 계실 것이오이다.
도영 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옵니다. 장군께서도 그러하시고, 우리 또한 살 길을 찾아 한 일이옵니다.
왕건 그렇기는 하지만, 어쨌든 큰 은혜를 입었소이다.
도영 은혜랄 것이 하나도 없사옵니다. 앞으로 일이 더 걱정이 아니겠사옵니까? 이 금성은 오래도록 지킬수 있는 길 말이옵니다.
유금필 그러하옵니다. 두고 두고 그 문제는 커다란 숙제로 남아 있사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 곳은 적국의 한 가운데에 있사옵니다.
박술희 그건 그러하옵니다. 철저한 대비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옵니다.
능산 견훤왕이 영암근처까지 이르렀다 하옵니다. 불원간에 군사를 몰아 올지도 모를 일이옵니다. 그 방비를 세우시오소서.
왕건 견훤왕이 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었던 일일세. 그에 대한 방비도 세워 놓았네. 함부로 험준한 산을 넘어오지는 못할게야.
오다린 그렇소이다. 장군. 그야말로 금성으로 군사를 끌고 온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지요. 금성산성을 잃어버리면 누구든 쉽게 이 곳으로 들어오지 못할것이외다.
종례 그렇습니다. 그래서 수달이가 죽기를 작정하고, 그 성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제는 늦었사옵니다. 하하하하...
도영 자, 장군. 관아에서 이러고 게실것이 아니라 장군께서 점령하신 고려의 영토를 한 번 돌아보셔야 할 것 아닙니까?
왕건 물론 그럴 참이었소이다.
도영 소녀가 뫼시면 어떠하겠사옵니까?
왕건 낭자가 말씀이오?
유금필 좋은 말씀이시옵니다. 저희도 같이 가겠사옵니다.
그러자, 박술희가 눈을 찡긋하면 혀를 찬다.
박술희 아니, 형님. 이렇게 눈치도 없이 원. 아, 낭자께서 뫼시겠다는데 할 일 많은 형님이 뭣하러 가신다는 게요?
유금필 아아, 나는 그저...
능산 허허허... 우리는 지역의 군사 현황이나 점고하러 가십시다.
도영 그렇게들 하시지요. 왕장군님은 소녀가 안내해 올리겠사옵니다. 가시겠사옵니까?
왕건 그렇게 하시지요.
오다린 저녁에 술 상을 보아 놓겠습니다. 허허허. 잘 다녀 오십시오. 장군.
그들은 모두 일어선다.
의미있는 도영의 모습에서... 디졸브.
씬 16 그 금성 길
강변을 달려가는 두 필의 말이 보인다.
왕건과 도영이다.
얼만큼 달려가자, 이들 서서히 느린 속도로 움직인다. 카메라 이들에게 다가가면.
도영 장군, 어떠하옵니까? 이 영산강이 참으로 길지 않사옵니까? 옛날에는 이 강에 배들이 가득했사옵니다.
왕건 알고 있었소이다. 그 중 상당수가 낭자의 아버님께서 부리는 배들이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도영 아버님뿐만 아니옵니다. 종례태수께서도 적지않이 배들을 갖고 계시고, 도망친 수달장군 ?또한 이 일대에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왕건 이야기를 들었소이다.
도영 이 금성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고, 또 중요한 곳이옵니다. 지금쯤 견훤왕이 가슴을 치며 억울해 할 것이옵니다. (의미있게 보며) 장군을 원망하면서 말이옵니다.
왕건 허허허. 그렇겠지요. 머지않아 아마도 빼앗고 지키려는 서로간의 전투가 계속 될 것 같소이다. 백제가 이대로 얌전히 있을 리는 없고, 아니그렇소이까?
도영 그럴수도 있을 것이옵니다. 자, 한 번 달려 보시겠사옵니까?
왕건 좋소이다. 낭자, 가십시다. 이리야.
이들은 또 달리기 시작한다. 경쾌하게 그 강변을 휘돌아 사라지면.
씬 17 그 어느 산야
이들이 달려오고 있다.
단풍과 깊은 조화를 이루며, 그들 한쌍의 모습은 보기에 좋아 보인다.
어디쯤이었을까? 그들은 다가와 천천히 말고삐를 늦춘다. 그리고 숲 길 어디쯤에선가 내려 선다.
그리고 조금은 숨차하며 걷기 시작한다.
도영 주변 경관이 어떠하옵니까?
왕건 아름답소이다. 그동안 전쟁에만 매달려 한 세월을 보내다보니 이런 풍광을 즐겨 볼 여가가 없었소이다.
도영 호호호. 그러실 것이옵니다. 한참을 달려왔더니, 목이 마르옵니다. 장군, 물 좀 드시겠사옵니까?
왕건 (끄떡이며) 그렇소이다. 정말 목이 마르오리다. 허허허.
도영이 그 풀섶 샘가로 간다. 거기 옹달샘이 있었다. 그리고, 작은 표주박이 떠 있었다.
도영이 그 샘물을 뜬다. 그리고 옆에 버들잎 하나를 따 넣으며, 왕건에게 권한다.
도영 드시오소서.
왕건 고맙소이다. 낭자. 헌데 왠 버들잎을..?
도영 급히 드시면 얹히실까 두려워 그리했사옵니다. 천천히 드시오소서.
왕건 오, 그렇구료. (한 참 보다가 끄떡인다) 고맙소이다. 낭자.
왕건이 버들 잎을 후후 불며 물을 천천히 마신다.
그 모습을 도영이 강렬한 눈빛으로 보고 있다.
그 눈빛을 왕건이 받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다시 한 번 서로를 본다.
그러다가, 도영이 시선을 피하며 왕건이 주는 표주박을 받아 자신도 물을 한모금 먹고 넘긴다.
왕건 물 맛이 정말 기가 막히외다.
도영 그렇사옵니까? 참으로 다행이옵니다. 소녀는 자주 이곳에 오옵니다. 그리고 이 물을 마시곤 하옵니다.
왕건 오, 그렇소이까?
도영 매일처럼 혼자 오다가 오늘은 둘이 되었사옵니다.
왕건 .....?
도영 이곳에 올 때마다 소녀는 언제나 다정한 님을 모시고 이 아름다운 완사천을 올 수 있을까 생각했사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현실이 되었사옵니다.
왕건은 당황한다. 지금 도영은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도영 소녀는 장군을 처음 뵈올 때 생각했사옵니다. 비로소 이 몸의 주인께서 나타나셨다고 말이옵니다.
왕건 낭자.... 나는.... 나는 그럴 재목이 아니외다.
도영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그동안 수많은 명문가의 자제분들과 아버님은 혼담을 해오셨사옵니다. 허지만, 소녀가 거절을 했사옵니다.
왕건 .....
도영 그것은 소녀의 지아비는 소녀를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는 천하의 주인이 아니시고는, 아니되기 때문이옵니다.
왕건 낭자, 나는 그럴 재목이 아니라고 하였소이다. 잘 못 보셨소이다.
도영 지금까지 소녀는 중요한 일에 있어서 한 번도 판단이 잘 못 된 적이 없었사옵니다. 소녀가.... 마음에 아니 드시옵니까? 장군.
왕건 아아, 그런 것이 아니라 다만 나는.
도영 무엇이옵니까? 말씀하시옵소서.
왕건 좋소이다. 정 그렇다면 말을 해드리다. 내겐 정혼녀가 있소이다.
도영 정혼녀?
왕건 그렇소이다.
잠시 말이 끊겼다. 이들은 서로를 본다.
도영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시 묻는다.
도영 혹시 정주에 있는 유장장댁 따님이 아니옵니까? 부용아씨 말이옵니다. 그렇사옵니까?
왕건 그렇소이다. 낭자.
도영 (한 참을 생각하다가) 그 생각을 하고 있었사옵니다. 제가 정주에서 두 분이 함께 거처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명문가의 두 남녀가 그런 약속이 없이 어찌 함께 게실 수가 있겠사옵니까?
왕건 그렇소이다. 일이 그렇게 되었소이다.
도영 (미소를 짓는다) 소녀는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지금 말씀을 올렸사옵니다. 그런데도 장군을 뫼시고 왔사옵니다.
왕건 무슨 말씀을 하시는게요, 낭자?
도영 앞으로 천하를 꿈꾸시는 장군이시옵니다. 부인이 둘이 된 들 어떻겠사옵니까?
왕건 (놀라서) 낭자, 그 무슨 말씀을... ?
도영 대장부께서 그런 일로 뭘 그리 당황하시옵니까?
왕건 어찌 낭자를 그렇게 모실 수가 있겠소이까? 낭자같이 귀한 분을...
도영 소녀는 이미 모든 것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씀 올렸사옵니다. 소녀는 부용아씨 다음 자리가 되어도, 전혀 게의치 않사옵니다. 소녀의 마음을 아시겠사옵니까? 사모하오옵니다. 소녀는 장군을 사모하오옵니다.
왕건 낭자....낭자....
도영 금성을 지키셔야 하옵니다. 영원히 지키시려면 아마도 소녀가 필요할 것이옵니다. 그렇지 않겠사옵니까?
왕건 낭자....
도영 장군을 사모하오옵니다. 이미 장군께선 제 낭군이시옵니다.
왕건 .....
해설 완사천, 왕건과 훗날 장화황후가 되는 오씨는 이곳에서 만난 것으로 되어있다. 기록으로 보면, 왕건이 훗날 나주로 불리는 금성을 공략한 이후 지금의 영산포인 목포에 배를 정박시키고 먼곳을 보니 오색구름이 떠있어, 그 곳에 가서 보니 오씨가 있어 만났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오씨 또한 꿈에 포구에서 용이 날아와 배로 들어가는 꿈을 꾼 이후 그곳에서 왕건을 만났다고 한다. 물론, 후인들이 만든 사설일 것이다.
한편, 왕건이 금성을 함락시킨 이무렵에 신라는 모처럼의 승리에 상당히 고무되고 있었다.
씬 18 신라 황궁 외경
웃음소리들이 들려온다.
씬 19 동 황궁 안
효종이 제장들과 함께 크게 웃고 있다.
효종 기가막힌 일이오. 생각할수록 참으로 절묘했어. 고려의 왕건이란 젊은 장수가 금성을 얻었다는 것이오. 금성을 말이오.
노장1 놀라운 일이옵니다. 어떻게 송악에서 바다를 타고 내려와 단숨에 백제땅을 먹어치우다니요.
노장2 허허허. 장군, 백제땅이라니요? 그것이 신라땅이지 어떻게 백제땅이란 말이오?
노장1 허허. 이거 실언을 했소이다. 용소하시오소서. 각간 어른.
효종 용소라고 뭣이 있겠소? 현실이 그러 하거늘. 지금 신라땅이라고 해야, 서라벌 주변을 제외하고는 남아있는 것이 없소이다.
노장1 하지만, 우리는 강주를 다시 빼았아사옵니다.
효종 삼한 모두가 우리 신라였소이다. 강주성 하나를 가지고, 좋아할 일이 아니외다. 금성을 먹어치웠다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오.
모두들 .....
효종 저토록 무서운 장수가 고려에 있는 한 우리 신라는 갈수록 길이 험난할 뿐이외다. 대단한 일이오. 고려의 궁예는 참으로 놀라운 수하들을 가지고 있어요. 무서운 일이야.
씬 20 길
궁예가 오고 있다.
여전히 아지태와 은부들이 함께 오고 있다.
아지태 이제 송악으로 돌아가시는 길이옵니까?
궁예 그렇소이다. 다 정했으니, 돌아가야지요. 우리의 일은 실행에 옮기는 일만 남았소이다. 오면서 곰곰히 생각했는데, 아학사의 말이 백번 옳소이다.
은부 ....
궁예 그동안 신료들은 짐의 결정을 번번히 반대하고 있었소이다. 그런 사람들은 새 도읍지인 철원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외다.
아지태 그럴수록 어루만지시고, 달래시어 크게 쓰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궁예 그러야 그렇지만... 처음 자리를 잡을 때가 중요한 것이오. 일을 시작할때는 무섭게 해야 하오. 그렇지않으면 아무것도 안돼.
아지태 당연하신 말씀이옵니다.
은부 ....
궁예 아학사가 말한 그대로 추진을 하십시다. 터를 닦고, 궁궐을 짓고 새 도읍지를 이루는 데는 청주의 백성들을 시키도록 하십시다.
아지태 일을 시키는 정도이겠사옵니까? 아예 그들을 도읍의 백성들로 삼으시어 불필요한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새로운 기운을 조성하시는 것이옵니다.
궁예 옳은 말이오. 나도 그것을 생각하고 있소이다. 큰 제국을 이루려는 우리가 패서인을 따지고 송악을 따지고 그래서 좋을 게 무엇이 있단 말이오?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으십시다.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오.
아지태 마땅하고 옳으신 일이옵니다. 하옵고, 폐하.
궁예 말씀하시구료.
아지태 지난 번에도 한 차례 진언을 드렸사옵니다만은 왕장군이 금성에서 대 승리를 거두었사옵니다. 기회는 아주 좋사옵니다. 천하가 폐하를 우러러 보고 있는 이때에 새 나라를 선포하시는 것이옵니다.
궁예 그럴 생각이외다. 이미 짐은 결심을 굳혔소이다.
아지태 폐하께서는 대 미륵이시옵니다. 그 크신 미륵의 위엄으로 매사를 처리하시오소서. 미륵은 한 분 뿐이시옵니다. 누구든 미륵께서 하시는 일을 간섭하거나, 반대할 수 없는 일이옵니다. 강하게 하시오소서. 진정한 페하의 힘을 드러내시오소서.
궁예 그리하십시다. 지금 경과 짐이 하려고 하는 일은 결코 거스릴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올시다. 때에 따라서는 옳은 일을 위해 강한 힘도 필요한 것이오. 경은 지금 내게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 그렇소?
아지태 바로 그것이옵니다. 페하. 신의 마음을 알아주시니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폐하.
은부 ....(노려보듯 아지태를 보고 있다)
궁예 자, 서둘러 송악으로 돌아가십시다. 왕장군의 일도 궁금하고 사후도 준비도 해야 할 것이고.... 우리 어린 두 태자도 보고 싶고...허허허.
그들은 그렇게 가고 있다. 아지태와 은부의 시선이 잠시 부딪친다.
아지태는 미소를 짓고 있으나, 은부의 표정은 굳어 있다.
씬 21 송악 황궁 외경
씬 22 황후전
연화가 슬이에게 묻고 있다.
연화 도대체 박유라는 사람이 누구라 하더냐?
슬이 금강산에서 내려 온 학인이라 하옵니다. 허월대사께서 천거를 하셨다 들었사옵니다.
연화 학인이라면? 학문이나 할 것이지, 어찌하여 우리 태자들을 데려간다한단 말이냐?
슬이 두분마마의 공부때문이라 하지 않사옵니까?
연화 공부라, 아직 입도 떼지 못한 어린 것을 어떻게 공부를 시킨단 말인고? 말도 아니되는 소리. 이 또한 내원이 꾸민 일일게야.
슬이 ....
연화 죽은 북원부인의 일도 그 사람들이 다 꾸몄느니라. 말이 내가 황후이고, 내 아들들이 태자이지 모든 것은 저들이 하고 있느니라. 아니될 말이지. 그렇게는 아니될 말이지. 나는 북원부인같이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렇게는 아니 당할 것이야. 우리 태자들은 내주지 못한다. 절대로....
슬이 마마, 그렇게까지 불행한 일이 생기겠사옵니까?
연화 그러니깐 미리 막겠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씬 23 동 내원
종간이 염상을 보고 있다. 박유도 함께 해있다.
종간 드디어 금성산성도 함락이 되었다? 금성이 완전히 우리 수중으로 들어왔단 말이지?
염상 그렇다하옵니다. 내원어른.
박유 전대 미문의 일이 올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 같사옵니다. 왕건장군은 가히 장수 중에 장수 올습니다. 이야말로 기적이 아니옵니까?
종간 그렇겠지요.
박유 그 중요한 곳을 함락시켰다는 것은 고려의 힘을 천하에 드러 낸 것이옵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그곳을 유지할 것인가가 최대의 문제거리로 등장할 것이옵니다.
종간 그렇소이다. 허면 박학사의 생각은 어떻소이까?
박유 글세올습니다. 어려운 난세일수록 사람을 믿기가 어려워지옵니다. 배신과 배반이 다반사로 이루어지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옵니다.
종간 그렇지요.
박유 비록 금성의 호족들이 왕장군을 도와 그 곳을 도모하게 하였지만, 또 언제 변할지 모르는 것이 저들의 인심이옵니다. 그렇다면 길은 한가지 뿐이지요.
종간 그 길을 말씀해주시구료.
박유 서로간에 오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은 끈끈한 혈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옵니다. 피를 나누는 것이지요.
종간 아하...
박유 정치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서로간에 피를 나누게 되면, 어쩔 수 없는 밀접한 사이가 되어 버리옵니다. 같은 가족이라는 의미가 생기기 마련이지요.
종간 그렇소이다. 정말 그렇소이다. 과연 박학사시오. 참으로 쉽고 명쾌한 대안이올시다.
박유 허허허. 누구나 다 아는 일을 가지고 무얼 그러시옵니까?
종간 그렇소이다. 세간에서도 마찬가지지요. 필요한 사람끼리 서로 사돈을 맺는 것을 흔히 볼수 있었소이다. 그것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지키자는 것이지요. (끄떡이며) 좋은 생각이시오. 그 일을 한 번 연구해 보아야겠소이다. 으음....
씬 24 정주 유장자 집 외경
유장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씬 25 동 집 안채 방
유장자와 부용모녀가 앉아 있다.
모두들 밝은 표정이다.
유장자 내가 뭐라고 했소이까? 송악사람들도 왕장군의 거취를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었소이다. 내가 혼사 이야기를 꺼내니깐 글세,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더이다. 허허허.
부용모 다행이옵니다. 나으리. 이제 조금 안심이 되옵니다.
유장자 설마 하니 내가 애비로써 딸아이를 대책없이 구렁텅이로 몰아 넣겠소이까? 부용아!
부용 예, 아버님.
유장자 송악에서는 너를 아주 어여삐 보고 있더구나. 그동안 말은 없었지만, 너도 마음 한 구석 불안했을 것이다. 도대체, 앞 날이 어떻게 되는가 하고 말이다. 잘 되었다. 이젠 모든 것이 정말 잘 되었다.
부용 ....
유장자 왕장군이 돌아오기만 하면, 일사천리로 끝을 내버리자꾸나. 잔치도 그럴사하게 열것이야. 온 송악이 떠나가도록 대대적으로 할것이야. 아암, 그렇게 해야 하고 말고. 알겠느냐? 부용아.
부용 ....(부끄럽다) 예, 아버님.
유장자 허허허. 금성이 다 함락되었다니, 왕장군이 곧 돌아올 것이다. 그때가지만 잘 참고 있거라. 네 신랑이 돌아올 때가지만 말이다. 허허허. 왕건이가 내 사위가 되었어. 내 사위가..허허허.
유장자는 더욱 크게 웃는다. 기분이 매우 좋은 것이다.
씬 26 송악 왕건의 집 사랑
마당에는 장수장과 하인들이 오가고 있다.
툭 터진 사랑대청 쪽에서 왕평달이 왕식렴 형제와 두 사부와 웃으며 이야기 하고 있다.
왕평달 그것참 모를 일일세. 아니 생각들 해보게. 세상이란 참 모르는 것이라니깐. 발 밑이 어둡다하더니, 조카가 글세 유장자 댁 여식과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변사부 그 모든 것이 일찍부터 우리 주군을 점찍고 계시었던 유장자어른의 뜻이었을 것이옵니다.
마사부 허허허. 그렇사옵니다. 일찍부터 그 분은 우리 주군을 염두해두고 계셨사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주군께서 그 댁 따님을 만나신 것은 다 유장자어른께서 계획을 하셨을 것이옵니다.
왕식렴 저희들도 오래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사옵니다. 그러니까 형님께서 그 곳에 계시는 동안 그 댁 낭자가 수발을 들지 않았겠사옵니까?
왕평달 하하하. 그랬을게야. 그렇고 말고. 하긴 우리 조카가 어떤 사람인가? 딸을 가진 부모로써 어찌 탐이 나지 않았겠는가? 잘 된 일이야. 암, 그렇고 말고. 이제 장가를 가야지. 그래야 제대로 어른 대접을 받지. 정주의 유장자라면 사돈으로썬 더 이상 없어. 암...
변사부 금성 일도 잘 되고, 장가 또한 가시고 모든 일이 하나하나 잘 풀리는 것 같사옵니다.
왕평달 그런 것 같으이. 그 옛날 도선대사의 예언이 눈에 보이지 않게 하나 둘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네 그려. 조카가 장가를 간다. 허허허. 그리고, 백제의 견훤왕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금성을 함락했다. 꿈같은 일이야. 백제땅이 지금쯤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을 게야. 아주 볼만할게야. 허허허.
씬 27 완산주 백제 황궁
외경
박씨 (E)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린가?
씬 28 동 황후전
박씨가 놀란 눈으로 신검에게 묻고 있다.
고비가 그 옆에서 아기를 안고 보고 있다.
박씨 금성이 고려에 함락되었다고?
신검 그러하옵니다. 어마마마. 소자와 숙부님께서 지키던 강주성 또한 신라에 빼앗기고, 저희들만 돌아왔사옵니다.
박씨 세상에... 이런 세상에.... 그러면, 폐하께서는 어디 계시느냐?
신검 황공하옵게도 금성을 구하러 가셨으나, 그곳을 함락되었으니 다시 돌아오고 계실 것이옵니다.
고비 황후마마, 믿기지가 않사옵니다. 폐하께서 패하시다니요?
박씨 금성은 수달장군이 있는데... 천하의 수달장군도 고려에 패했단 말인가?
고비 수달장군이 패했사옵니까?
신검 그러하옵니다. (울먹이며) 강주도 빼앗기고, 금성도 빼앗기고 군사들도 태반이 죽었사옵니다.
박씨 어이할꼬? 세상에 이 일을 어이할꼬.
씬 29 황토길
견훤이 오고 있다.
무거운 표정으로 그렇게 오고 있다.
멀리 무주성곽이 보여온다. 성을 바라보는 견훤의 표정이 답답해 보인다.
최승우 폐하, 무진주이옵니다.
견훤 ....
최승우 참으로 먼 길을 오셨사옵니다. 저 곳에서 몇 일 푹 쉬시다가 황도의 완산주로 가시오소서.
견훤 가세.
그들 다시 움직인다.
얼마쯤 가다가 견훤이 한 곳을 본다.
모두들 견훤이 보는 쪽을 본다.
거기 길가에 누군가 엎드려 있다.
갑옷을 벗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맨발 차림의 수달이 거적 위에 부복해있다.
행렬은 점점 다가온다.
견훤의 표정이 굳어 버린다.
견훤 수달이 아닌가?
능환 그러하옵니다.
이들은 더욱 가까워진다. 그리고, 서로를 마주하는 사이가 되있다. 한동안 말이 없다가 견훤이 묻는다.
견훤 아우가 아닌가?
수달 ....
견훤 아우가 아닌가?
수달 ... 폐하, 죄인 수달이옵니다. 폐하의 영지와 성을 잃고 또한 군사를 잃었사옵니다. 대죄를 청하옵니다. 이 놈의 목을 베어 주시오소서.
견훤 ....(만감이 교차된다) 왜 머리를 풀었는고? 왜 신은 벗었어?
수달 죄인이옵니다. 죽여 주시오소서, 폐하.
모두들 ....
견훤 죽여 달라..?
수달 그러하옵니다. 자결을 명해주시오소서. 폐하를 욕보인 죄 너무나 크옵니다. 신을 어서 참해주시오소서.
견훤 ....(한 참을 그렇게 본다)...일어나거라.
수달 아니옵니다. 신을 어서 참해주시오소서.
견훤이 말에서 내린다.
그러자 다른 장수들도 일제히 말에서 내린다.
견훤이 천천히 다가간다. 그리고, 손을 내민다.
견훤 아우야, 일어나거라. 우리는 형제가 아니더냐? 그까짓 금성 고을 하나가 우리 형제의 우애보다도 더 중요하단 말이냐? 너는 내 아우 내 영원한 아우, 수달이니라.
수달 (통곡하며) 폐하, 죽여주시오소서.
견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으니라. 성과 영토는 얼마든지 잃었다가, 다시 찾을 수 있지만 인재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니라. 일어나거라. 자, 어서.
수달 (통곡 계속) 폐하....폐하....
견훤이 수달을 일으킨다. 그리고, 소리친다.
견훤 무엇들 하느냐? 대장군 수달에게 다시 갑옷과 신을 갖다 주어라.
수달 폐하..
견훤 아우의 죄를 묻기 전에, 이 형에게도 잘 못이 더 크니라. 서남해의중요성을 알면서도 대처를 소홀히 하였으니, 어찌 아우에게만 죄를 묻겠는가? 다음이 있느니라. 다음을 도모하자꾸나, 아우야.
수달 망극하옵니다. 참으로 머리 둘 곳이 없사옵니다, 폐하.
견훤 금성은 반드시 되찾을 것이니라. 경들도 이 일을 명심하라. 금성은 잠시 저들에게 맡겨 놓은 것이니라. 짐이 기필코 되찾을 것이니라. 금성을 되찾을 것이야.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아우는 명심하라. 오늘의 불명예를 기필코 잊지 말것이니라. 아우의 손으로 반드시 금성을 되찾아 보이거라. 반드시...
그런 결의에 찬 견훤의
굳은 표정에서....
<끝> (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