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보연선생님의 명예퇴직 기념연이 2월 23일 오후 6시부터 강남파이낸스센터 39층 Partner's Lounge에서 열렸다.
이야기는 들었어도 내가 이 건진센터에 온 것은 처음. 무려 3개층을 세들어 있는 근사한 시설과 장비들이다.
먼저 리셉션 장으로 들어간다. 선생님이 한복을 우아하게 차려입은 사모님과 같이 서서 축하객을 맞고 있다.
샴페인 한잔을 들고 홀에는 선생님의 취미생활인 사찰탐방과 사진 촬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첫번 째가 내소사 들어가는 길의 곧은 나무들이 늘어선 풍경이다.
두 번째가 순천 선암사의 승선교 아래에서 촬영한 작품으로 다리 사이로 보이는 것은 종루인가.
주변의 풍광과 등이 달린 것으로 보아 초파일 전후같은데.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한점씩 기념품으로 주신다하여 얼른 내가 찜하였다.
선암사는 태고종에 속하고, 조계종과의 재산권과 관리권에 따른 오랜 분쟁이 있었으나
최근 극적으로 화해와 조정이 되어 불자로 기쁘기 한량없다.
여기서 재를 넘어가면 송광사이다.
중간에 유명한 보리밥집이 있고, 아름다운 숲길로 쉬엄쉬엄 약 4시간이 걸린다.
나 역시 종교가 불교인지라 전시된 작품과 촬영지는 내가 대부분 가본 곳.
'어느 절이 마음에 들었어요?" 하고 물으니 부석사한다.
부석사는 무량수전의 사진이 나와 있고, 돌아가신 최 순우선생님의 책 제목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이었지요.
내가 달마산 미황사 대웅전에서 바라보이는 구강포도 풍광이 좋고,
비록 새로 지은 절이지만 적상산 안국사도 볼만 하더라.라고 말씀을 드렸다.
잘 찍은 서산 백제 마애삼존불, 다보탑과 석가탑이 같이 있는 사진은 석가탑이 해체 수리중이라
당분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신다.
리셉션장에서 모처럼 만난 여러 동문들과 인사하기에 바빴고,
내가 이번 부산에서 개최된 국제당뇨병학회의 결제 정산문제로 불평을 하니까
김 성연선생도 같은 이야기이다.
민 헌기선생님과 고 창순선생님이 오셔서 인사를 드리고
고 창순선생님이 나에게 옛날 포커에서 따간 돈을 돌려달라고 말씀을 하신다.
내가 얼마를 땄었지?
고선생님과 조선생님과 같이 사진 한장을 찍고 기념 만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내 자리는 헤드테이블로 민 헌기, 고 창순, 이 홍규선생님과 조 보연선생님 부부,
그리고 나와 김 성연, 동문회장으로 유 형준선생이 합석을 하였다.
사실 이 자리는 내가 손님으로가 아니라 주인으로 참석하여야 되는 자리이다.
언젠가 밝히겠지만 나는 아직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82년 내가 서울대의 부름을 받고 교수 임용 서류를 제출하였는데
논문 평가에서 나에게 한편의 논문 점수를 내과 누구의 부탁으로 기초의 누구가 C로 준 것을.
서울의대 교수 선발 시에 이런 일이 있었던가?
누군가는 이런 일로 나의 덕을 보았겠지.
간단한 약력 소개에이어 분과장 박 경수선생의 인사말,
황금으로 부조한 십장생과 논제집 헌정과 꽃다발 증정이 이어졌다.
동문회장 유 형준선생의 축사 중 기억나는 말은 조선생은 군자이시다.
또 도사로 전공분야가 아니더라도 예를 들면 현시국의 상황판단 등은 너무나 정확하였다고.
이어 김 성연선생의 축사 중 나온이야기는 서울대 내과의 기인들인
김 노경선생님, 이 정상선생님과 조보연선생님의 공통점은?
애연가, 술을 못 마시고, 운동을 안 하고.
과연 나중에 나 온 사진에 담배를 물고 찍은 사진들이 나왔으나 요즈음은 금연이시란다.
조선생님은 퇴임사는 그동안 갑상선학회를 위하여 애를 써준 여러분들에게 공을 돌리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 속에 핀 연꽃처럼.” 이란 불경의 말씀으로 끝내었다.
음식은 많이 신경을 쓰서 싱싱한 석화(halfshell)로 시작하여
이어 나 온 맑은 송이스프, 샐러드와 부드러운 주 음식으로 스테이크가 나왔고,
국수장국과 김치, 마지막으로 과일로 마감하였다. 그러고 보니 차가 빠졌네.
와인은 칠레와인으로 시라이었고, 차를 가지고 오지 않는 나는 기분 좋게 마음껏 마실 수 있었다.
민 헌기선생님의 건배로 만찬이 시작되었다.
재주 많은 후배들의 축하 연주는 피아노연주와 관악으로 이어졌고
사실 조 선생님에 대한 추억은 내가 많은 편이다.
왜냐하면 1년 선후배간이기 때문에. 사실 그 관계가 가장 무섭다. 비밀도 많이 알고 있고.
내과 의국시절은 별로 기억이 나는 일이 없다. 그저 모든일에 도사인 것 이외에는.
적어도 경력상에는 군대를 마칠 때까지 딱 일년을 뒤따라 다녔다.
군대에 가서도 조선생님이 서울 통합병원의 유행성 출혈열센터에 계셨고,
내가 일동야전병원에 근무하고 있었을 때 갓 진급하여 사단장으로 온 분이
운천 개인병원에서 유행성 출혈열로 진단을 받고 내가 호출되어 왕진을 갔을 때.
조선생님은 서울통합병원에서 대기 중이었고 헬기까지 준비되어 있어 내가 유행성 출혈열입니다. 하면
헬기 후송에 몇 달간의 입원 등으로 군대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줄 수 있는 상황.
다행히 내가 조마조마하게 유행성 출혈열 판단을 유보하여 조선생님은 귀가할 수가 있었다.
비가 무섭게 오던 어느 토요일 오후 이천 미란다호텔에서 내분비내과 세미나를 갔던 일,
친구들과 북한산 주능선를 탈 때 홀로 앉아 쉬고 있는 걸 나에게 들킨적도 있었고.
요즈음 운전은 하시느냐? 고 물었더니 여전히 못하신다며.
그러면 출퇴근은? 지하철을 바꾸어 타면 된다고.
절에 갈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던지 몇 군데 가실때는 기사를 고용한다고.
앞자리의 끝에서 기념촬영으로 오늘의 행사를 마쳤다.
3월부터는 조 보연선생님이 우리 병원에 갑상선센터장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첫댓글 조보연 교수님은 경복고등학교 내 일년 선배라서, 학생때는 매년 경복 신입생 환영회 때 뵈었지만, 막상 서울대병원에서 수련 받을 때는 자주 뵌 기억이 없습니다. 정말 양반 같은 조용한 성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정년 퇴임을 하셨네요... 나이로 볼 때는 퇴임이 좀 이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병원으로 오시려고 명예퇴직한 것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