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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우리역사(펌) 스크랩 [실제상황194쪽]환국-배달-고조선의 7천년 역사
빙혼서생 추천 0 조회 184 17.03.08 13:4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창세역사의 수수께끼 

 

우리나리의 역사는 9,2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처음 환국의 7대 환인께서 3,301년간 국가를 통치했고, 뒤를이어 배달국 18대환웅이 1,565년간 나라를 지켰으며, 배달국의 뒤를 이어받아 47대 단군이 2,096년간의 국통을 이어온 유구한 인류문화의 뿌리민족임이 밝혀지고있다.   

  

현생인류 "슬기슬기사람"(Homo sapience sapience) 은 지난우주1년의 겨울(카오스) 개벽이 끝나고 이번 "우주1년" 선천 봄철5만년 전에 화생이 되었다. 그러면 선천봄의 탄생개벽이래 최초로 출생한 현생인류의 원 조상은 누구이며 처음생겨난 곳은 어디일까?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문제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창세의 수수께끼가 아닐수 없다. 한민족의 정통사서인 [태백일사]는 인간탄생의 현묘한 천지이치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천도는 북극에서 처음열린다. 따라서 하늘의 통일정신[一太極] 이 물을 생성하니 이를 "북수北水"라 이른다. 북극의 물은 인간생명 창조의 씨[子]가 머무는 곳이다.

 

천지의 만물생성과 변화운동의 출발점은 북극이다. 주위로 부터 360개의 물줄기가 들어와 이루어진 바이칼호는  천하 또는 천해 라 불리운다. 이 천해는 "감방坎方"의 북극수로, 인간을 처음 탄생케하는 지구의 자궁이다. 놀라운 것은 바이칼호의 성분이 모체의 양수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가을개벽이 이루어 지는 간도수 역시 북감방의 북극수에 그 출발점을 두고 있다. 즉 우주의 봄철에 북녘의 감방에서 인간이 나오고 그들이 태고시절 중앙아시아로 이동하여 남북5만리 동서 2만리에 퍼져나가 진동방에서 인류문명을 크게 열었다가 간방 으로 들어가 천지의 열매를 맺는것 이 간도수 의 실체이다. 

 

이러한 만물창조섭리에 의해 북해에서 선천인류의 첫 조상인 "나반那般" 과 阿曼 이 태어났다. 동서에 떨어져 살던 두분이 처음 만난곳은 시베리아의 아이사타 이며 북해를 처음건넌날은 7월7일 이라한다. 나반과 아만은 천신(상제님)의 가르침을 받아 혼례를 올렸다.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이미 2만5천년~4만5천년 전에 알타이 산맥과 남부시베리아의 바이칼호수 주변에서 현생인류의 문명이 있었던것으로 나타났다. 선천봄까지도 남아있던 얼음층이 약 1만1천년 전에 북쪽으로 완전히 물러가면서  오늘날과 비슷한 따뜻한 기후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이주하게 되었다. 인류는 이 때부터 다시금 번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이칼호(天海) 전경

 

 

인류문명의 뿌리시대 환국

 

桓國(환국) 서기전7197~3897년 9200년전에 한민족이 건국한 세계최초의 국가인 "환국"은 9환족과 64민(무리)로 이루어진 열두나라의 연방국 이었으며, 3301년동안 모두 일곱분의 환인이 통치하여, 선仙 의 장수문화를 누렸다. 

 

[삼성기]를 보면 "파내류산 아래에 환인씨桓仁氏 의 나라가 있었으니 천해(지금의 북해)의 동쪽땅을 또한 파내류국 이라, 그 땅의 넓이는 남북이 5만리 동서가 2만리인데 이것을 모두 "환국"이라고 한다. 고 하였다. 그 열두나라는 비리국,양운국,구막한국,구다천국,일운국,우루국,객현한국,구모액국,수밀이국,매구여국,사납아국,선비국, 등이다.(객현한국,구모액국,사남아국 등은 위치가 미상)

 

수메르 문명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크레머는 서구문명의 뿌리가 된 3500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주인공 수메르인들이 동방에서 왔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는 수메르언어가 한국언어와 똑같은 교착어이며, 검은 머리사람이란 점 등으로 확인된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환국의 12국가 가운데에 우르,우르크,움마,등의 나라 이름이 수메르인들이 세운 도시국가 이름과 같다는 것이다.

 

인류문명의 뿌리가 되는 최초의 시원국가인 환국에 대해,[삼국유사][고조선기]에 보면 "석유환국" 즉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 고 명확히 기록이 되어있다. 그런데 이 환국桓國 의 國자를 일제 식민 사학자 "이마니시류(今西龍)가 인因 자로 변조하여 환국,배달,조선의 창업자 환인 환웅 단군을 모조리 신화의 인물로 몰아붙이고, 한민족의 뿌리사를 송두리체 거세시켰다. 

 

환국에서 뻗어나간 4대문명 4대문명을 동서로 가르는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은 인류문명의 요람이다. 지도를 잘 살펴보면, 그곳으로 부터 지운이 태극의 음양으로 뻗어서 4대 문명의 경계를 그어주고 있음을 알수있다. 

 

1.메소포타미아문명(BCE 3500년경)  2.이집트 문명(BCE 3100년경)

3.인더스 문명(BCE 2500년경)           4.황하문명(BCE 3000년경)

 

환국시대 말년에 초대 환웅천황께서 동방으로 이주하여 배달국을 건설하기 이전부터 동쪽으로 베링해협을 건너 이주한 무리가 아메리카의 인디언이 되고, 남아메리카에 간 무리들은 인디오가 되었다.

 

이 사실은 언어,혈액형,체질,치아모양 등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이미 밝혀 졌으며, 미국의 고고학자들이나 인류학자들도 이미 이를 인정하고 있다. 윷놀이,실뜨기 같은 인디언과 인디오의 풍습,유물 등이 한민족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배달국 18세 환웅시대                   
배달국 서기전3898년~2333년12환국중 환국의 정통을 계승한 한민족은 백두산으로 이동하여 나라를 세웠으니 그것이 "배달국"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900년전,인구가 증가하고 급격한 기후변동이 오자 시원국가인 "환국"의 9환족은 동서양의 각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때 천하를 건지려는 큰뜻을 품고 환국의 정통을 계승하여 동방의 새 역사를 개척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서자부의 수장인 "환웅"이다.

 

환국의 마지막 임금인 7대 지위리 환인은 삼위산과 태백산(백두산)을 두루 살피시고 동방의 백두산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만한곳" 이라 하여 환웅을 백두산으로 보내셨다. 이때 환인은 문명개척단 3천명을 환웅에게 내려 주셨는데, 당시의 인구수준을 감안할때 3천명이라면 대규모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이들은 새로운 문명을 열어 세상을 구원하는 "재세핵랑" 이라고 불리웠다.

 

동방의 태양이 떠오를때 가장먼져 밝아오는 광명의 땅이 태백산(백두산)이다.

태조 거발환 환웅은 동방 백두산의 신단수神檀樹 에 도착하자 이곳에 "신의도시"라는 뜻의 도시국가인 신시神市를 열었다. 환웅은 환국의 정통을 계승하여 친히 제단을 쌓고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렸으며 삼신상제님의 신교로써 백성을 다스렸다. 신시배달은 동방한민족 최초의 시원국가로서, 신시는 제정일치시대의 종교적 성지 이다.

 

당시 환인 천제께서는 우리겨레의 첫 조상이신 거발환 환웅께 "道權"의 상징인 천부인天符印 세 개 를주시며 백성들이 삶의 지표로 삶아야하는 기본강령을 내려 주셨다. "만세자손의 홍범으로 삶으라" 고 내려주신 이 가르침을 동방신시배달 개국의 창세 이념으로 삼았다. 이에 대해 그 후손들인 오늘의 한국인들은 그로부터 1,600년 후에 세워진 단군의 개국이념으로 잘못알고 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

 

 

 

 

환웅이 환국으로부터 동방 태백산으로 떠난 직후, 또 다른 한 무리가 삼위산 으로 향하였다. 중국의 소수민족인 묘족과 한족의 창세신화에 등장하는 "반고" 가 그 주인공이다. 환웅이 3천 핵랑을 거느리고 동방개척을 향해 떠나자 이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반고는 삼위산으로 이주하기를 환인께 자청했다.

 

원동중의 [삼성기]를 보면, 수많은 재물과 유모,유수,의 부족장과 뱃성을 거느리고 삼위산 납립굴 에 이르러 왕이 되었다. 이들을 제견 이라 하였으며 우두머리인 반고는 반고가한 이라 불렀다.  

 

태백산족과 삼위산족은 모두 환국에서 갈려나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종족 가운데에 태백산족, 즉 신교(삼신상제님) 의 가르침 의 신권조화의 상징인 천부와인 세게를 전수받은 동방신시배달의 환웅천황이 환국의 법통을 이어온 환국의 정통장자이다. 

 

5,900년전 동아시아의 동방끝인 태백산과 서방끝인 삼위산에 터를 잡은 양 종족은 각기 황화의 상류와 하류에서 중원을 향해 문명개척을 시작하였다. 여기에서 고대 황하문명이 태동이 된 것이었다.

 

 

주역의 창시자인 태호 복희씨와 의학과 농경, 교역의 창시자인 염제 신농씨는 동방 신시배달 의 혈통으로서 중원땅에 분국 을 세우신 배달의 성황들 이시다.

 

배달국이 도시국가의 차원을 넘어 넓은 중원땅으로 그 영역이 확장되자 마침내 10세 갈고환웅은 영토를 나누어 동방 이주민이 세운 염제 신농씨의 나라와 경계를 정했다.

 

한편 중원으로 내려온 삼위산족 가운데 일부는 동방족 성황의 교화를 받아 구성원이 되기도 하였는데 그 한예로 지금은 중국 남부의 소수민족으로 남아있는 묘족 을 들수있다. 그들은 오늘날에도 반고씨와 태호복희 씨와 치우천황을 조상으로 섬긴다.

 

한민족과 중국 한족의 역사가 갈라진 분기점이 바로 배달시대 이며 지금으로부터 4,700년전, 두 민족은 처음으로 양분되어 동방배달의 천자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이 10년 대전쟁의 극한 충돌을 이르킨다.

 

국제대전의 시초인 이 전쟁이 바로 "탁록" 대전투이다. 이 전쟁에서 치우천황은 헌원을 사로잡아 제후국의 왕으로서 앉히게 되는데 이후에 한나라 무제BCE141~BCE87)때의 사관 사마의(BCE145~?)가 "금살치우(치우를 잡아죽였다) 로 역사를 둔갑시킴으로서 동방 한민족의 고대사가 송두리째 뿌리뽑힌 것이다.   

 

 47대 단군 고조선 시대  

고조선 서기전2333년~238년 거발한 환웅이 동방 백두산 문명을 개창할무렵 백두산에서 송화강에 걸친 만주일대에는 원주민인 웅족熊族 과 호족虎族이 어렵생활을 하며 굴속에서 실고 있었다. 범을 토템으로 하는 호족은 남권男勸 중심의 부족으로 사나우면서 약탈에 능했고, 곰을 토템으로 하는 웅족 은 여권女勸 중심의 부족으로 어리석고 고집이 세었다.

 

당시 환족의 발달된 문물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던 그들은 자신들도 삼신상제님의 계율을 따르는 밝은 백성이 될수 있기를 환웅께 간절히 청하였다. 이에 환웅은 신교의 가르침으로 두 부족을 포용하고자 그들에게 햇빛을 보지말고 100일을 기원하면 인간답게 될 것이라는 기원을 내려 주셨다.

 

환웅이 내려주신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달래 스무개를 먹으며 웅,호 두 부족은 수도생활에 들어갔는데, 호족은 참지못하고 뛰쳐나왔고 웅족 여인은 굼주림과 추위를 참고 계율을 지킴으로서 "21일(三.七日) 만에 삼신의 광명의 도를 깨우쳐 마침내 참 인간이 되었다. 

 

그런데 환웅의 동방문명 개척단과 웅,호족의 결합에 관한 고대사가, 외래 종교에 찌들어 있던 고려의 승려 "일연" 에 의해서 곰과 호랑이의 "사람으로 태어나기위한 기도운동" 이라는 유치한 신화로 윤색되어 버렸다. 그 뒤에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더욱 근본이 부정되고 엉뚱하게 해석되어 한민족의 뿌리가 지금까지 왜곡되어 버린 것이다.

 

초대 환웅이 배달국을 개국한지 약 1,500년이 지난 18대 환웅에 이르러 한민족은 거대한 역사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단군성조의 "고조선古朝鮮" 시대가 열린것이다. 고조선의 시조 단군왕검은 웅족으로 배달국 말기인 BCE 2370년 5월2일 에 탄생하셨다.

 

태어날 때부터 신령스런 덕을 갖춘 단군은 나라 안팎에서 존경을 받아 14세때 웅씨 부족의 왕을 보좌하는 비왕으로 임명받고 24년간 국사를 섭정하며 경륜을 쌓았다. 그러다 38세때 웅씨 왕이 전사한후, 배달국 말기의 혼란을 바로잡고 천재의 아들로 추대되어 제위에 오르셨다.

 

지금으로부터 4,333년(2005년기준)전의 일이다. 초대 단군왕검은 9환족을 통일하여 아사달 지금의 흑룡강성 하얼빈에 도읍을 정하였다. 一神卽三神과 天地人 의 원리에 의해 고조선을 진한,마한,번한의 삼한으로 나뉘어 통치하셨다.

 

이를 "삼한관경" 이라하며, 진한은 단군왕검께서 직접 다스리고, 압록강 이남의 마한(수도는 지금의 평양)은 "웅백다熊伯多"를 왕으로(부단군) 요하 서쪽의 번한(수도는 지금의 하북성 당신시)은 치우천황의 후손인 "치두남蚩頭男" 을 각각 1대 왕으로 임명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고조선의 천도

고조선은 건국한지 1,048년이 지난 22대 색불루 단군에 이르러 백악산 아사달 (현제의 길림성 장춘)로 천도하게 된다. 원래 단군의 자리는 아들에게 세습되거나 오가중에 가장 덕망이 높은 사람에게 전해졌다. 그런데 색불루 단군은 정치 쿠테타를 일으켜 스스로 단군의 자리에 오른뒤 도읍지를 자신의 근거지인 백악산 아사달로 옮겨왔다. 그리고 그동안 병권을 주지 않았던 번한과 마한에 병권을 일부나누어 주면서 삼한체제의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860년간 번영을 누리던 고조선은 43대 물리단군 재위시절인 BCE 426년에 사냥꾼 두목 우화충이 반란을 일으킨다. 무리들은 도성을 습격하고 점거했으며 물리단군은 피난길에 붕어하고 말았다.

 

이때 구물장군이 장당경에서 군사를 일으켜 백성들을 규합하고 무리를 소탕하게 된다. 그후 구물장군은 모든장수들의 추대를 받아 44대 단군으로 즉위한 뒤 국정을 쇄신하기 위해 국호를 대부여로 개칭하고 백악산에서 장당경(요령성 개원)으로 천도 하였다.  

 

조선 중종때의 찬수관으로 한민족의 뿌리역사를 복원시킨 행촌 이암은 [단군세기]에서 고조선의 천도과정을 기록하였다. 곧 고조선은 문화의 심장부인 송화강 아사달 (지금의 흑룡강성 하얼빈)에서 백악산 아사달(지금의 길림성 장춘) 그리고 세 번째는 장당경(지금의 요령성 개원시)으로 수도를 옮겼다, [삼국유사에도 이와같은 기록이 남아있다. 

 

 

 삼조선 체제로의 개편과 고조선 몰락

 

구물단군이 반란을 진압하고 등극하였으나 중앙정부의 권력은 약해지고 번한과 마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삼한 관경제는 무너지고 대신 두 분조의 병권이 인정되는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의 삼조선 체제로 변경된다.

 

중앙정부인 진조선의 권한은 축소되고 좌우 두 조선이 형식적으로 진조선을 받드는 형국이 되자 장군들의 반역이 끊이지 않고, 마침내 47대 고열가 단군에 이르러 고조선은 2,096년의 장구한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된다.

 

한편 고조선 멸망을 앞둔 BCE 239년에 헤모수가 북부여를 일으켜 고조선의 국통을 계승하였으며, 그후 BCE 194년에는 번조선 '준왕'이 거짓으로 항복하고 들어온 한족 '위만'에게 나라를 찬탈 당하게 된다.그런데 오늘의 역사가 들은 마치 준왕이 고조선의 마자막 왕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고조선이 한족에게 멸망당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은 그렇지 않다. 준왕은 고조선의  서쪽 날개였던 번조선의 부단군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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