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 헤미스 축제/오래된 미래, 축제는 끝나도 생은 계속된다
글·사진 박하선 사진작가 www.photodrag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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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다크의 중심인 레에서 동쪽으로 45km 떨어진 헤미스 곤파, 황량한 산속 깊숙한 곳에 오아시스처럼 박혀 있다. |
라다크(Ladakh) 지역은 대 히말라야(Great Himalaya) 산맥과 라다크 산맥, 그리고 잔스카르(Zanskar) 산맥이 얽혀 있는 히말라야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곳으로 눈길 닿는 곳마다 장쾌하게 뻗은 산들이 버티고 있다.
나무는 물론 풀마저도 변변치 못한 앙상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산천들은 긴 겨울 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눈이 녹기 시작하는 5월 하순경부터 이곳으로 통하는 길들이 열리기가 무섭게 이상향을 찾아 떠도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한없이 맑아 투명에 가까울 지경인 쪽빛 하늘, 상대를 찌르다 못해 자신마저 찔러버릴 기세로 내뻗은 산들을 말없이 품어, 지상의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순화시키고자 하는 것인가. 고통의 연속인 현생보다는 죽어 맞이할 다음 생을 기대하고 끊임없이 마니차를 돌리며 ‘옴마니밧메홈’의 진언을 되뇌는 라마승의 벗이 되라. 결국 오염된 현대문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느껴 보도록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길을 가다 보게 된 ‘라마의 땅-라다크’라고 쓰여 있는 도로표지에서 이곳 특유의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봄바람을 타고 찾아온 객들을 위한 것인지 여름으로 가는 길목 곳곳에서 축제가 열린다.
그 중에 매년 6월 라다크의 중심인 레(Leh)에서 동쪽으로 45km 떨어진 헤미스 곰파(Hemis Gonpa) 행사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이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 왔지만 이번에야 겨우 시기를 맞출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홀가분하게 올 생각이었지만 그 좋은 곳에 같이 가자며 따라 나서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혼잡을 피해 축제 하루 전에 헤미스에 도착, 야영장에 텐트를 쳤다.
이곳은 숙박 시설이 전혀 없는 곳이기에 평상시에도 캠핑을 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아쉽지만 당일치기로 보고 가는 곳이다.
야영장에는 여기 저기 많은 텐트들이 들어서 있다.
단체 관람객들을 위해 주방과 식당 칸도 마련되어 있어 제법 분위기가 있어 보인다.
일교차가 심하고 해발 3600m쯤 되는 곳이기에 밤에는 상당히 추울 것을 예상해 침낭을 준비해왔다.
그렇지만 여름용으로는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현지 트레킹 가이드에게 특별히 침낭을 몇 개 더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황량한 산속 깊숙한 곳에 오아시스처럼 박혀 있는 헤미스 곰파는 제법 큰 규모와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이 곰파가 유명하게 된 것은 러시아 말기의 특이한 화가인 니콜라스 로에리치 때문이다.
그는 인근 히말찰 프레디쉬의 낙가르에 머물면서 이곳을 방문했는데, 예수님이 젊은 시절 이 헤미스 곰파에 머물렀다는 기록을 보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 기록은 행방불명 상태로 찾아 볼 수 없다.
역시 밤에는 상당히 추었다.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비까지 겹쳐서 처지를 더욱 옹색하게 하는데, 일행 중의 한두 명이 고소증세까지 호소한다.
휴대용 산소를 마시게 하고, 마사지와 지압을 하고 나니 좀 견딜 만하다고 한다.
이래저래 잠을 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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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미스 축제는 12년마다 찾아오는 ‘원숭이 해’에 가장 성대하게 열린다. 그것은 티베트 불교에서 석존 다음가는 위치에 있는 수행자 ‘파드마삼바바’가 바로 원숭이 해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
마음 비우러 와서 채우기에 정신없는 사람들
축제의 날이 밝았다.
어제 저녁 때와는 달리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다.
이제 햇볕이 너무 따가울 것 같아 걱정이다.
곰파 광장에서 행해지는 축제는 오전 10부터 시작되지만 아침 일찍부터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
마당은 물론이고 건물 지붕 위까지 빽빽이 들어서 몸을 추스르기도 힘들 지경이다.
현지인들도 많지만 절반 정도는 관광객들이다.
이중에는 나처럼 한국에서 온 사진가들도 제법 눈에 띈다.
모두가 욕심 사납게 멋진 장면을 놓치지 않겠다고 기다란 망원렌즈를 끼운 카메라를 준비하고 벌써부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사실 이 헤미스 축제는 12년마다 찾아오는 원숭이 해에 가장 성대하게 열린다.
그것은 티베트 불교에서 석존 다음 가는 위치에 있는 수행자 파드마삼바바가 바로 원숭이 해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작년인 2004년이 바로 원숭이 해였다.
12년 만에 맞이하는 행운을 놓치지 않으려고 어찌나 많은 관람객들이 몰렸던지 이곳으로 오는 길목에서 차량이 인더스 강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나 여러 관광객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파드마삼바바의 대형 초상화가 그려진 탕카가 내걸리면서 축제가 시작됨을 알린다.
먼저 가면을 쓴 동자승이 나와 한 바퀴 돌고 들어가니 화려한 의상으로 치장을 한 무리가 불전에서 걸어 나와 춤을 춘다.
수많은 카메라들이 바삐 움직이면서 모두가 술렁거린다.
어떤 곳에서는 자리 문제로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마음을 비우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이곳에 온 이들이 마음 채우기에 정신이 없는 것이다.
첫 번째 춤이 끝나자 이번에는 가면을 쓴 이가 나와 어슬렁거리며 춤을 춘다.
또 다음으로는 동물 가면을 쓴 무리가 이상한 도구들을 들고 나와 춤을 추면서 계속 이어진다.
이렇듯 이 축제는 라마승들이 가면을 쓰고 제전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그러나 활발하게 움직여 흥을 돋우거나 하는 것은 없기 때문에 그 내력을 잘 알지 못하고는 재미를 느낄 수 없다.
단지 화려한 가면이나 소도구 그리고 의상에 관심이 집중될 뿐이다.
하지만 이는 관음에게 공양과 공덕을 드리고 하늘에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한다.
축제 분위기는 고조되어 간다.
밤새 고소증에 시달리던 사람들도 고통스러워하던 표정은 어디 가고 없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사진촬영에 정신없다.
볼거리가 어디 꼭 승려들의 춤추는 데에만 있겠는가. 독특한 복장을 하고 구경나온 라다크 사람들의 모습 또한 구경거리다.
특히 한 동자승이 가면을 쓰고 관중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개개인의 목에 노끈을 걸치고 “우~우~”하면, 어쩔 수 없이 복채(돈)를 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서로 동자승을 피하다 걸려든 사람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웃는다.
축제는 통상 이틀 동안 진행된다.
다음날도 거의 같은 내용들이 진행되기 때문에 첫날 초대된 VIP관람객들이나 패키지 관광객들이 거의 빠져 나가 활동에 좀 여유가 생겨 좋다.
하지만 축제의 열기가 첫날에 미치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 투명한 블루에 가까운 하늘이 오후가 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앞에 보이는 산이 먹구름에 휩싸여 있다.
비 아니면 눈이 내리고 있는 듯한데,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다.
축제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것일까. 라마승들이 제 자리로 돌아가 불법을 외고, 구경 나온 사람들도 서서히 산 아래로 흩어져 간다.
축제를 구경하는 그 자체도 관음에게 공양과 공덕을 비는 것이기에 이제 모두들 마음속에 풍요를 간직하고 또 한 해를 살아갈 것이다.
텅 빈 자리에 일진광풍이 몰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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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미스 곰파 본전의 벽화. |
INFORMATION
라다크 길잡이
라다크 여행은 인도 비자가 필요하다.
여행 적기는 5월 중순부터 9월 하순까지다.
그 외 기간에는 이 지역으로 들어가는 길이 눈으로 길이 막혀 교통편이 없다.
단, 항공편은 델리에서 항상 열려있다.
라다크까지는 육로와 항공편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육로로는 델리에서 버스를 타고 일단 마날리로 간다(12시간 이상 소요). 마날리에서 지프를 합승하면 케이롱 고개를 넘어 레로 간다(24시간 소요). 카슈미르 지역의 스리나가르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레로 간다.
항공편은 델리 국내공항에서 라다크 중심인 레로 가는 항공편이 아침 일찍 2편 있다.
편도 약 15만원으로(Jet Air) 한국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라다크 내의 교통은 대중교통편이 있기는 하지만 자주 없어 불편하다.
몇 명이 어울려 지프를 렌트하는 것이 싸고 편리하다.
혼자서 빌린다면 한국의 요금 수준이다.
레에는 여러 종류의 숙소들이 있어 불편이 없다.
단 헤미스에서는 캠핑을 해야 한다.
물론 알아보면 민박이 가능하고, 사원에 딸린 가계 옆에 간이 숙소가 하나 있다.
라다크에서는 레의 궁전과 산정의 곰파, 헤미스 축제(매년 6월), 알치 마을과 곰파의 벽화, 라마유루의 사원과 마을, 쉐이 펠리스, 틱세 곰파, 카르둥 라 고개를 넘어 누브라 벨리 등을 볼 수 있다.
라다크 여행은 거의 해발 3400m 이상 되는 곳이다.
누브라 벨리를 갈 때는 카르둥 라 고개가 5602m이기에 특히 고소에 대비해야 한다.
고소 증세가 심한 사람은 즉시 레에 있는 병원에 가서 산소를 마시며 안정을 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