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10월 29일, 매년 열리는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온 인파가 이태원역 근처 해밀톤 호텔의 좁은 골목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이례적인 대형 참사가 발생하였다. 사망자 수는 무려 159명. 참사 생존자 중 극단적 선택을 한 고등학생 1명을 제외하면, 희생자 대부분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군중 인파에 몰려 압사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참사 이후, 대한민국 전체가 거대한 슬픔에 잠겼다. 희생자 대부분은 핼러윈 축제에 참석한 2030의 젊은 층이었다. 미디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또래의 희생을 목격한 젊은 세대의 심리적 충격이 가장 컸다. 정부는 급하게 7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정부가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이 되기도 전에 서둘러 애도 기간을 공표하였다는 비난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난 안전 책임이 있는 기관들의 총체적인 행정 부실도 드러났다. 진실을 밝히는 일이 지연될수록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며 의혹이 증폭되었다. 진상 규명의 목소리가 커지자, 참사 발생 25일 만에 여야는 국정조사를 하기로 합의하였다. 국정조사 기간인 45일이 개시되었다. 하지만 여야 간 예산안 합의가 지연되면서 국정조사 기간의 절반이 지나고서야 국정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국정조사에서 실시한 현장 조사 2회, 기관 보고 2회, 청문회 및 공청회 3회를 거치며 이태원 참사의 진상은 어디까지 규명되었을까? 10·29 이태원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을 정리해 보았다.
진상 규명을 위해 밝혀야 할 부분
국정조사가 본격적으로 실시되기 전, 민주주의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은 “10.29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서 밝혀야 할 10대 과제 및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이하 ‘10대 과제’)을 발표하였다. 10대 과제는 재난 안전 책임이 있는 관계 기관(경찰청, 소방청,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서울시 등)에 따라 나뉘며, 각각의 기관들이 참사 방지와 대응을 위해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에 중점을 둔다.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이들 기관이 (1) ‘참사 전’ 핼러윈 축제에서 인파 사고가 발생할 수 있었음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와 (2) ‘참사 당일’ 현저한 위험 징후가 있었음에도 대형 참사를 막을 충분한 안전 관리 체계와 재난 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1) 참사에 대한 예견 가능성
2022년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3년 가까이 지속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처음으로 해제된 시점에 열린 행사였다. 더군다나 코로나 이전에도 매해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핼러윈 축제에 참석하였다. 따라서 평범한 시민들도 엔데믹 후 첫 핼러윈 축제에 더 많은 대규모 인파가 운집할 것이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이번 국정조사를 통해 관계 기관들 또한 엔데믹 후 첫 핼러윈 축제에 대규모 인파가 몰릴 가능성을 예상하였지만, 인파 사고를 막을 충분한 안전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주요 사실 관계는 다음과 같다.
서울경찰청은 최근 5년간 ‘마라톤 대회’, ‘월드컵 길거리 응원’, ‘벚꽃 축제’ 등 다중 운집 장소에서의 안전 대책을 수립해 왔다. 하지만 2022년 핼러윈 대비 계획에서는 ‘마약류 범죄 예방 및 단속’에 중점을 두었다. 국정조사에서 드러난 서울경찰청 문건에는 다중 인파 운집에 대한 안전사고 예방 계획은 없었다. 서울시 및 용산구 모두 예년과 달리 2022년 핼러윈 축제의 대규모 인파 관리와 관련한 안전 대책을 세우지 아니하였다. 이 두 기관이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대규모 인파 관리를 위한 상호 지침을 공유하고 협조를 요청한 적도 없었다.
(2) 참사 당일 안전관리 체계와 재난 대응 체계
참사 당일 현장에 경찰 137명이 배치되었지만, 현장에서 인파 관리 위험성을 전달할 정보관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참사 당일 112 신고에 대한 부실 대응도 논란이 되었다. 20:53경부터 21:10 사이에는 ‘인파 사고’ 내지 ‘압사’를 우려하는 신고가 5번 연속으로 접수되고, 최고 위험 단계인 ‘코드 제로’가 부여되었음에도 경찰은 아무런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참사 당일 이태원역 주변 대규모 인파의 운집을 막기 위해 21:39경 용산경찰서가 지하철 무정차 운행을 요청하였지만, 이 역시도 불발되었다.
이태원 거리와 가장 가까이 위치한 용산구의 참사 당일 부실한 행정 실태도 대규모 인파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서울시 소방방재센터가 참사 당일 22:29에 용산구청 상황실(당시 당직실)에 핼러윈 축제 압사 사고를 신고하였음에도 당직실 근무자들은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위 신고 시각보다도 1~2시간 앞선 시각에 이태원 퀴논길을 돌아봤고, 용산구 텔레그램 방의 주요 간부와 직원들은 인파 운집을 주시하겠다고 하였지만, 적절히 대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 용산구는 구청 내 CCTV 관제실을 통해 이태원역 주변의 시간대별 인파 운집을 확인할 수 있어 압사 전 위험 징후를 가장 빨리 포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경찰 및 소방 등 관계 기관에 인파 관리를 위한 협조를 요청하는 등의 조치 시기를 놓쳤다.
참사 당일 인파에 밀려 구급차의 통행 또한 제한되었다. 구급차 진입을 위한 교통 통제는 없었고, 통행로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탓에 환자 수송은 지연되었다. 치료가 급한 중환자와 심정지 환자를 구별하기 어려웠고 결국 심정지 환자를 인근 병원에 먼저 보내는 사태도 발생하였다.
국정조사 이후의 과제: 독립된 조사기구의 마련
재난안전관리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를 분석하고 개선 대책 등을 마련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축구 경기장에서 94명의 압사 사고가 발생한 영국의 힐즈버러 사건의 경우 독립 조사위원회가 2년의 조사 기간을 거쳤다. 당초 예정된 45일보다도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진 국정조사만으로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정교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야 정쟁 구도 속에서 국정조사가 책임자 처벌에 집중되면서 관계 기관들이 답변을 회피하거나 허위로 답변하였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반쪽짜리 진실만 접할 수 있었다. 따라서 국정조사 자체는 완결적인 조사 과정이 아니라 추가적인 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정조사를 통해 반쪽짜리 진실만을 접한 유가족들이 이후의 ‘독립된 조사 기구’를 요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향후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 기구는 참사에 책임 있는 행정기관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조사 활동을 펼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상당한 시간을 두고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한편 유가족들이 직접 전문가들에게 질문할 수 있는 선진적인 조사 기구를 설치하여야 한다. 독립된 조사 기구 설치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독립 조사위원회가 마련되면, 국정조사에서도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다루고 관계 기관의 보고 체계, 예측 체계, 대응 체계를 포괄하는 ‘총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향후 조사 기구는 국정조사에서 거의 배제된 유가족의 요구 사항과 구조 지원대 및 지역 커뮤니티의 현장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할 것이다.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의 이유
이태원 참사가 시민들에게 남긴 과제는 무엇일까? 국내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는 이태원 참사가 처음이 아니다. 2005년 상주 축제나 2006년 롯데 월드 무료 개방 깔림 사고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가 전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상처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은 유가족의 절실한 요구이자, 다시는 이런 대규모 재난이 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우리 모두의 결심이자 약속이다.
1) 미국변호사, 민변 10·29 이태원 참사 대응 T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