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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증거 (행 5:29-32)
베드로가 산헤드린 앞에서 행한 위대한 연설의 마지막 부분인 32절 끝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교회 모임을 유일무이하게 만드는 특징은
첫째 - 바로 성령의 임재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어떻게 증인이 되실까요?
성령이 교회 위에 임하셨고 교회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교회의 등장은 성령강림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성령강림과 교회의 등장은 모두 성령이 증거하신 “이 일”에 속합니다.
둘째로, 성령강림은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신약은 구약의 성취입니다. “이 일”은 모두 예언되었던 것들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 – 요엘, 에스겔을 비롯한 선지자들- 은 하나님에게서, 성령에게서 계시를 받았습니다.
성령이 친히 그들에게 이 같은 지식과 지각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선지자들에게 지식을 주셨고, 오순절 날 교회에 임하심으로 그 예언들을 성취하셨습니다.
세 번째 방식은 사도들 안에 변화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 성령도 그러하니라.” 사도들에게 어떤 변화가 나타났습니까?
성경은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오만하게도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행 4:13).
게다가 그들은 비겁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와 사도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베드로는 오순절 날 사람들 앞에 서서 두려움 없이 설교했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느니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사도들에게서 알 수 있듯이,
기독교는 사람을 완전히 변화시켜서 새로운 출생과 새로운 마음, 새로운 지각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에서 우리는 이 새로운 인간성을 부여받습니다.
그의 안에 있는 이 완전한 인간성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그리스도인들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변화와 교회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성령충만으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복음은 성령으로 사람들 안에 오셔서 그들의 삶을 새롭게 하시며 새로운 능력을 주시고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복음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 2:1-4).
이것이 복음이 확산되는 방식입니다.
이런 증거가 없었다면 교회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증언하셨느니라.” 거듭 말하지만, 그가 증거하지 않으셨다면 교회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며 존속되지도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성령은 불가능한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하심으로써 죄를 입증하십니다.
그 성령께서 오늘날도 계속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저는 아무리 상황이 불리해져도 낙심치 않으며 절망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멸하기 위해 수없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존속되어 온 이유를 설명할 길은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존재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번에도 32절 끝 부분의 말씀을 계속해서 다루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사도들에게 놀라운 일을 하게 한 것은 성령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순종은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입니다.
그런다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계명을 지키며 선한 삶을 살면 성령이라는 선물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참뜻은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처럼 첫 번째로 순종을 요구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끝 부분에서 복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롬 16:25-26).
우리는 항상 순종의 문제로 돌아가야 합니다.
베드로가 첫 번째 서신에서 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벧전 1:2).
베드로가 산헤드린 연설 마지막에서 강조한 이 큰 요점, 즉 순종의 필요성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복음은 거리를 두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단순히 지적으로만 받아들일 대상이 아닙니다.
복음은 반응을 요구합니다.
행동을 요구합니다.
결단을 요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반드시 한 사람의 삶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순종’이라는 말의 참뜻입니다.
왜 우리가 순종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죄의 본질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성경은 율법을 위반하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을 죄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자신의 모습대로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거푸집입니다.
[*만들려는 물건의 모양대로 속이 비어 있어 거기에 쇠붙이를 녹여 붓도록 되어 있는 틀]
그러나 인간은 그 거푸집을 깨뜨리고 하나님께 반역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한 것입니다.
복음을 듣기에 앞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일이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단순히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존경받는 인물들을 죄인일리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죄의 본질이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분입니다.
그는 모든 삶의 통제자이십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자신의 거푸집, 본에 따라, 자신의 형상과 모습대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가 이렇게 사람을 만드신 것은 그들과 친구가 되어 즐거이 교제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십계명과 산상설교, 구약 선지자들의 설교와 신약 서신서들의 가르침을 통해 그가 원하시는 삶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의 법칙을 두신 것처럼,
사람도 하나님의 본과 법에 따라 살게 하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부했습니다. 반역했습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자기 힘으로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죄과란 제멋대로 하려는 욕구,
자신이 원하는 일과 즐겨 하는 일만 하려는 욕구를 말합니다.
거기에는 의도적 선택, 적극적 반항 행위가 수반됩니다.
"나쁜 줄 알면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의도적으로 악을 행한 저는 반역자입니다."
불순종의 결과,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기 때문에 곤경에 빠집니다.
성경은 회개하지 않는 인간과는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죄에 대한 성경의 입장은,
죄는 끔찍한 악의 세력이며 너무도 끔찍하고 너무도 강력해서
이 세상 사람 모두 죄 앞에 무릎 꿇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인간은 털끝만치의 소망도 없는 존재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유일한 소망이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죄인들을 위한 복음입니다.
복음이 개입하는 시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럼 우리에게 주어진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그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행 5:30-31).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메시지이며,
사도들이 산헤드린 앞에서 전한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으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제가 무슨 권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고 싶으시다면 주님의 말씀을 인용해 드리겠습니다.
주님은 어느 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다시 말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무슨 명령을 따라야 주님이 말씀하신 영생을 얻게 되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
주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분이므로 그를 믿는 것이 곧 그들이 할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할 일입니다. 여러분이 지켜야 할 명령입니다.
순종은 곧 실천입니다.
복음이 삶 전체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리 복음을 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순종해야 할 명령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잠시 멈추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나아가 자기 자신에게 하나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회개한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을 쫓아냈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그 일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자신이 잘못했으며 하나님께 반역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셨는데도 그를 외면했습니다.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소리쳐 자비를 구합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했습니다(롬 10:13).
회개하라는 명령에 순종한 사람들은 이미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이 복음을 믿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나사렛 예수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요 유일한 독생자라는 사도들의 증거, 여기 기록된 증거를 믿으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나사렛 예수가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육신으로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습니까?
그가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모든 원수를 심판하고 자신의 영광과 은혜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까?
그것을 믿으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유일한 구원의 길로 믿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이른바 이신칭의의 교리를 믿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복음에 순종하기만 하면 이 자리에서 즉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복음은 그가 하신 일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 부활하여 다시 살아나신 일,
우리를 대신해 주신 일 때문에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는 말씀을 참으로 믿어야 합니다(사 1:18).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의, 자신의 선행과 노력을 의지하는 태도를 전부 포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경건한 자들뿐 아니라 경건치 못한 자들도 의롭다 하심을 알게 됩니다.
물론 여러분이 복음에 순종하여 복음을 믿는다면 그 증거를 내놓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섬겼던 우상들을 버리고 떠남으로써,
온 힘을 다해 세상과 육신과 마귀에게서 떠남으로써 전심으로 하나님께로 돌이켰음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갈망,
자신을 이토록 사랑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
거룩한 아들 예수를 일으켜 임금과 구주로 삼으신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는 갈망을 품게 됩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자랑합니다.
입술로, 삶으로 믿음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은 여러분이 믿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며 이 가르침에 맞추어 형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여러분은 “세상은 무모하게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지만 나는 구속받은 백성 중에 있다”고 말하는 자들과 나란히 서게 됩니다.
오순절 날 믿었던 사람들처럼 교회에 더해집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들처럼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고 새 생명을 얻어 새 사람이 되었다는 하나님의 확언을 공적으로 받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제 무엇보다 하나님과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우리 구주이신 복되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갈망합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행 2:42, 4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