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곰파에서 둔체로 가는 길목, 급전직하의 산길을 내려온 지점의 데우랄리(2,625m) 게스트하우스
▶ 2014년 9월 20일 (토요일) * [제12일] 신곰파(3,330m)→ 둔체(1,960m 하산)
* [신곰파-데우랄리-카테콜라 계곡까지] — 캄캄한 새벽, 급경사로 쏟아지는 밀림의 산길
☆… 새벽 5시가 되기 전, 미명(未明)의 시간에 신곰파(Singompa) 롯지(Hotel Yak and Nak)를 출발하여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오늘은 이곳 해발 3,330고지에서 해발 1960m의 가테콜라(Ghattekhola) 계곡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둔체(Dunche, 1960m)까지 걸어서 가야 한다. 대원들 모두 이마에 헤드렌턴을 장착하고 어둠 속의 숲길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간밤에 비가 많이 내렸으나 우리가 출발할 즈음에는 비가 그쳐서 다행이었다. 오늘은 일단 둔체까지 내려가서, 거기에서 대기한 찝차를 타고 카투만두까지 가야 하는 날이다.
새벽 5시의 출행
미명의 새벽, 어둠 속의 산행
☆… 사실 간밤에도 밤새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설쳤다. 우리가 카투만두에서 이곳까지 차를 타고 들어올 때의 위기와 고생을 생각했다. 겨우 117km의 길을 12시간 이상 걸렸으니 참으로 끔직한 여정이었다. 아찔한 급사면의 산간도로에 산사태가 난 곳도 있고, 깊은 진흙탕 길에 차바퀴가 빠져서 고생을 했으므로, 혹시 내일 나가는 길에, 간밤의 폭우로 산사태가 나거나 도로가 유실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가이드 리마가 둔체의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둔체에는 우리를 태워가기 위해 어젯밤 카투만두에서 짚차가 들어와 있었다. 어제 그 길을 거쳐온 기사에게 확인하니 도로에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이었다.
원시림의 숲길에서 여명의 아침을 맞다
* [‘포터’… 네팔 친구들] — 그들의 노고를 감사하는 마음
☆… 신곰파에서 내려오는 산길은 급전직하(急轉直下)의 가파른 길이었다. 아직도 물기가 남아있는 숲에서 간간히 물방울이 후두둑거렸다. 지그재그의 급경사 길은 매우 오래도록 이어졌다. 무릎에 통증을 느낄 정도로 가파른 길이다. 거기에서 무거운 카고백을 메고 내려오는 네팔 친구들, 그런 상황에서도 그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우리보다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자연 속에서 단련된 그들의 체력과 그렇게 힘든 일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낙천성(樂天性)이 너무나 건강해 보였다. 그들은 가난하고 열악한 조건에서 매우 팍팍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높고 험한 산중에 짐을 지고 달리는 일은 분명 고된 노역(勞役)이다. 우리가 하는 산행은 내가 좋아서 하는, ‘사서 하는 고생’이므로 고생은 고생이 아니다. 무언가 내면의 충일감을 얻는 여정이지만, 그들은 오직 금전적 대가를 바라고 고된 일[勞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선뜻선뜻 짐을 지고 달린다.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친밀감을 드러내며 인사를 하거나 웃음까지 건네는 여유가 있다. 그러한 그들의 건강한 모습에서 이방의 길손은 일종의 인간적인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거목 사이로 날이 훤하게 밝아오고 있다
☆… 오전 5시 30분, 급경사의 산길을 내려오니 안개에 싸인 외딴집 롯지가 나타났다. 해발 2,625m의 데우랄리(Deurali)였다. 신곰파에서 고도 700을 내리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간밤에 비를 맞은 밀림의 나뭇잎들이 번들거린다. 장대한 윈시림이 다시 이어지고 길은 다소 완만한 내림길이 되었다.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계곡이 가까워 오는 모양이다. 산길에는 물기를 머금은 히말라야 산죽이 울창하게 우거져 넘실거린다.
자연과 신앙과 인간의 집이 그려낸 한 폭의 수채화
* [카테콜라 계곡의 오두막집] — 그리고 밀림의 찰거머리 팔목을 파고들다.
☆… 한참을 내려가는가 하더니 다시 가파른 절벽의 바윗길을 차고 오른다. 3,000m 이상의 산이 직벽을 이루고 있는데 거기에 절벽을 깎아 낸 길이었다. 참으로 아찔한 길목이다. 그 절벽 길을 내려오니 가테콜라(Ghattekhola, 1,960m) 계곡의 거센 물살이 허옇게 몸을 뒤채며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강안을 따라 한 구비 돌아서니 외딴집 하나가 나왔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그 집앞 처마 밑에서 카메라를 배낭에 챙겨 넣으며 보았다. 다섯 명의 아이들이 얼굴을 내밀고, 까만 눈망울로 이방(異邦)의 길손을 바라본다. 연년생인 듯한 5남매의 아이들은 모두 까무잡잡한 얼굴이지만 눈이 깊고 이목구비 또렷한 것을 보니 인도계 종족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모두 잘 생긴 얼굴이었다. 주머니에서 홍삼캔디를 집어서 나누어 주었더니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아찔한 절벽 길, 포터가 파란색 비닐커버를 씌운 카고백을 메고 간다. 길은 저 길밖에 없다!!
☆… 오두막 집을 지난 아래쪽에서 현수교를 건넜다. 둔체로 가는 산록으로 접어든 것이다. 이제 거의 평지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런데 밀림의 숲길을 내려오며 팔목과 목덜미에 두어 차례 쥬가(찰거머리)의 공습을 받았다. 거머리가 일단 살을 파고들면 출혈이 그치지 않아 선혈이 낭자했다. 길이가 4~5cm 정도의 작은 거머리가 얼마나 부드럽고 유연한지 언제 살에 와 붙었는지 산행 중에 전혀 느끼지 못한다. 아프지도 않고 가렵지도 않다.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을 보고야 거머리가 내 몸에 온 것을 알아차렸다. 오늘은 팔목에 붙어서 내 뜨거운 피를 빨아먹었다. 이렇게 몇 방을 맞고 보니 녀석이 그렇게 징그럽거나 두렵지 않게 되었다. 몬순시기에 히말라야 밀림을 걷노라면 사람의 피를 좋아하는 거머리는 또 하나의 동행이다. 나도 모르게 나는 히말라야의 야성에 길들여진 것일끼?
둔체에서 샤브루베시로 가는 도로, 12일 전 밤에 저 길을 지나갔다
* [둔체로 들어가는 길] — 한국기업이 운영하는 히말라야 생수공장
☆… 그렇게 고행을 하며 내려오니 얼마가지 않아 찻길이 나왔다. 그렇게 둔체로 들어가는 길목에 한국의 기업인이 이곳에 세워서 운영하는 생수공장(Himalaya Spring Water)이 있었다. 공장에는 태극기와 네팔국기 그리고 회사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히말라야 산간오지에서 한국의 태극기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생수 공장
* [하산 지점-둔체] — 장장 10일 동안의 히말라야 트레킹
☆… 오전 8시가 못 되어 둔체(Dunche, 1,950m)의 거리에 도착했다. 신곰파를 출행한지 3시간 여, 해발고도 1,380m를 내려온 것이다. 아아, 이제 도보로 걷는 10일의 히말라야 트레킹 여정은 모두 끝났다. 고소의 고통이 늘 함께 하여 몸은 무겁고 일거수일투족이 힘들었지만 무사히 하산하게 되어 깊은 안도(安堵)의 숨을 쉬었다. 무사 산행에 대해 하늘에 감사하고, 트레킹의 모든 것을 이끈 이상배 대장에게 감사하고, 동행한 송기섭, 서진제, 백두일, 안영천, 김미숙 등 대원들에게 감사하고, 우리의 무거운 짐을 지고 고행한 네팔 친구들에게 뜨겁게 감사했다. 무엇보다도 천우신조(天佑神助), 하늘이 우리를 돕고 히말라야 산이 우리를 허락해서 이뤄낸 쾌거였다. 서로 감격의 악수를 나누었다.
* [티벳으로 가는 길목의 거점 마을, 둔체] — 두 대의 찦차에 분승하다.
☆… 둔체의 거리에는 아스트랙(ASTREK)에서 보낸 두 대의 찦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대원은 두 대의 차에 분승해서 카투만두를 향해 출발한다. 10일 동안 우리와 동행한 네팔 친구[포터]들과 작별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버스편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지금부터 모든 짐을 차량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그들의 임무는 끝난 것이다. 그 동안 고단한 여정 속에서 험난한 산길을 묵묵히 함께 걸었던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참으로 고맙고 고마웠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악수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가이드 리마와 마일러는 우리와 함께 동승했다.
제일 나이가 어린 락빠와 가이드 리마를 안고…
우리가 타고갈 사륜구동 찦차
<계 속>
첫댓글 긴 여정이 마무리되는것같습니다 .
그 동안 여행이 너무 힘든 기분이듭니다
제가 산행한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