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부터 21세기에는 바이오 의료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핵심 산업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이 두 산업 분야에서의 성패가 한국의 선진국 진입이나 지속적인
성장 여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줄기세포와
유전자 해독으로 대변되는 바이오 의료산업은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이르면 수년 내로 맞춤형 치료와 처방이 가능해 질 거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한 때 뼈아픈 좌절이 있었지만, 다시 심기일전해서 이러한 세계적 조류에 발맞춰 연구에 나서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점이다.
한편, 유튜브와
스마트폰의 보급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이른바 K-
POP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그리고 또 다른 지역으로 맹렬하게 뻗어 나가고 있다. 여태까지 TV 드라마였다면 이번에는 가요로 종목을 바꿔 전세계에 한국이 ‘젊고 자유롭고 매력적인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고 있는 것이다. 또,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면이 있다는 점이 자랑스러운 것이다.
이런 K-POP의 세계적 열풍은 지나가는 한 때의 바람일 수도 있겠지만,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21세기형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어엿한 한 유형이 될 것이다. 전 세계의 작곡가와 가수를 한 데 모아, 많은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이 즐기는 음악을 만들어 내고 세계를
무대로 연주여행을 하고 유료 다운로드의 기록을 높여가는. 바야흐로 한국에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태동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면서, 이미 알려진 브랜드를 가진
수출 대기업들에 좀 더 유리한 시장여건을 만들어 주는 요인이 될 것이다. 물론 K-POP을 만든 사람들은 대기업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대체로
중소기업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맞다.
창의력과 기민한 실행력을 갖춘. 그렇지만, 그로 인한 긍정적 효과는 상당 부분 수출 대기업들이 누리게 될 것이다.
베트남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장동건을 CF
모델로 내세운 모 대기업이 엄청난 매출을 기록한 것이 그 한 예다. 브랜드가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자금력 등의 열세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혜택을 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그간, 정부가 추진해 온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협력, 또는 동반성장이 소리만 요란할 뿐 성과가 부진하다는 평이 많다. 이런저런 진단이 많지만, 주요 원인은 생각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오너들의 생각이 문제라고 한다.
이제 시야를 해외로 돌려 K-POP의 열풍을 동반성장에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제대로 선순환이 되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막힌 경제의 돌파구를 찾는 방법은 없을까. 한 번 찬찬히 따져 보기로 하자.
우선, 대기업들이 해외 영업망을 활용해 중소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이나 수출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동반 진출’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존의 종합상사 기능을 좀 더 확장해서 자사와 협력관계에 있거나 ‘될 성 부른’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직접 도와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자사 브랜드와 이들 중소기업의 브랜드를 병기하는 등 협력관계임을 표시해서 중소기업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를 잘하는 대기업에게는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로는, 중소기업들이 공동 브랜드를 만들어서 해외시장에 함께 진출하는 방법이다.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경우, 공동 브랜드를 만들고 이에 대해 대기업이 품질을 보증하는 형태로 가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세부적인 협약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단숨에 수십, 수백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알려진 몇몇 대기업 브랜드 외에 새로 세계인에게 각인시킬 만한 중소기업 브랜드는
손가락에 꼽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동 브랜드도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다.
위의 두 가지 방법은 K-POP이 조성하는 우호적인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셋째로는, 대기업이 일부 비용을 대서 K-POP의 주요 주인공들을 자사는 물론 협력관계에 있는 중소기업들의
홍보요원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이는 위의 두 방법과 병행해서 쓸 수 있을 것이다. K-POP의 효과를 직접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해외시장에서 협력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충분하지 못한 국내시장을 놓고 제로섬 게임을 벌이면서 상쟁과 불신의 골을 깊게 할 것이 아니라, 아직 세상은 넓고 개척할 시장은 많으니까 말이다.
대기업들이 한국문화의 세계 보급을 위해 해외 한글학교 운영예산 등을 자발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최근 K-POP 붐을 타고 러시아의 한글학교에 학생이 넘친다는 소식도 들리는 만큼 대기업이 하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할 일은 널려 있다.
K-POP, 아니 한류는 짦은 시간에 우리에 대한 세계의 시각을 바꿔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실제도 그러한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할 만한가. 모두 다 자문해 볼 일이다.
이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의식의 진정한 변화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만큼 수평적 사고가 확산되고 있는가. 수직적 사고의 산물인 ‘갑을’ 관계가 청산되었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아니라고 본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문제는 의식의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적, 경제적 여건이 성숙되어야 한다. 가치 충돌에 따른 고통의 시간이 수반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의 허물을 벗는 아픔도 있을 것으로 본다.
역설적이지만, 의식의 변화를 위해서는 FTA의 지속적인 확충과 경제자유구역의 대대적인 확장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FTA가 양극화 현상과 대기업 우선주의를 확산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으나, 중소기업에 더 많은 교역과 해외시장 진출의 기회가 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잘 조성된 경제자유구역은 더 많은 외자유치를 통해 국내 중소기업에도
일자리와 일거리를 창출할 것이다.
한미FTA, 한EU FTA를 조속히 비준하고 중국, 일본과 본격적으로 FTA를 논의해야 한다. 한중일 3국간 FTA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동북아를 정점으로 하나된 아시아, 통일 이후 아시아의 구심점이 될 선진 조국을 머릿속에 그려야 한다.
K-POP을 통해 한국 문화가 전 세계에 확산되는 것을 바라는 만큼,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문화에 반한 외국인들이 와서 살고 싶은 나라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가급적이면, 전국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설정하는 게 좋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여의치 않다면, 서울과 수도권 일부를 제외한 전국을 경제자유구역으로 풀어야 한다.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와서 살고 싶어 하게끔 해야 한다. 외국인들을 위한 병원, 학교 등이 쉽게 들어서도록 함은 물론 각종 제도와 법이 좀 더 편리해져야 한다.
K-POP은 밖에서 우리를 보는 시각을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들의 생각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 누구보다 멋진 ‘샤이니’가, ‘소녀시대’가 살고 있는 나라로 바뀔 때가 되었다는 신호음인지도 모른다.
글/방병국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