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 신림면 중앙고속도로 신림 IC로 빠져 나와
용소막(龍沼幕) 마을, 용소막 성당에 도착
성당 앞에서 바라보니 명동 성당을 축소해 놓은 모습이다.
성당 역사를 살펴보면,
병인박해(1866년) 무렵 수원 지방에서 이주 해 온 신자들이
공소를 세우면서 교우촌이 형성(1898년),
프와요 신부 부임으로 본당으로 승격(1904년),
풍수원 성당, 원주 성당에 이어 강원도에서 세 번 째로 건립
된 성당.
일제 강점기에 성당 종이 공출 당하고,
한국전쟁 때는 공산군이 창고로 사용, 공소회장 고문 등 피해.
성당 출입문이 세개, 놋쇠 중앙문은 고정되어 있고
양쪽 옆문으로 출입한다.
성당 안,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배경으로 한 제대,
신비로움에 성스러움을 더한다.
고딕양식의 천장은 하늘로 날아오르듯!
제대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여러분 자신과 양떼를 잘 보살피십시오.(사도29,28)'를 묵상.
과연 나는 내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지도 않고 남의 허물만 따
지고 있지는 않을까?
십자가의 길, 옛말로 된 기도문이 마음 속 깊이 스며든다.
성당 밖,
150년 되었다는 느티나무 밑에서 잠간 휴식하다가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 유물관으로 들어 간다.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는 이곳 용막마을에서 태어나 '말씀의
영보 수녀회'설립(과천에 있음),
성경 번역(구약성경의 원문인 히브리어와 희랍어를 우리 말로 최초로 번역)에 큰
자취를 남긴 사제임을 알게 된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8년) 정신에 따라
갈라진 형제(개신교)들과의 일치운동 일환으로, 가톨릭 선종완
신부와 개신교 문익환 목사를 중심으로 1968년 부터 약 8년간 공동
번역, 선종완 신부는 말기 간암을 무릎쓰고 번역을 다 마친 후 선종
하였다고 한다. 그 투지력과 책임감에 감탄!
전나무 숲 속의 사제관이 아름답고도 정겨워 보인다.
용소막성당 터에 얽힌 이야기에서 성령의 도우심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서 다음 순례지 풍수원 성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 참고
원주교구 도보 순례 ‘님의 길’은
교구의 유서 깊은 신앙 유적지인 풍수원성당- 배론성지-서지마을-
강원 감영-원동주교좌성당을 잇는 234K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