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수르는 남왕국 유다를 향한 1차 침공을 한 이후에 약간의 시간이 흘러 다시 2차 침공을 감행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는 길목인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새번역 성경에서는 “윗 저수지의 수로 곁에 있는 빨래터로 가는 큰 길 가”라고 번역)에 진을 칩니다(17절).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공에 대비하여 암반층을 뚫어 엄청난 수로(水路)를 만들어 예루살렘에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그러한 수로 옆에 세탁하는 사람의 밭이 있었고, 그곳에 앗수르 군대가 주둔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앗수르 군대와 함께 온 이들은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라고 17절에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앗수르의 직책의 칭호입니다. 다르단(Tartan: Supreme commander)은 앗수르 군대의 최고사령관을 일컫는 칭호이며, 랍사리스(Rab-saris: The chief officer)는 바벨론과 앗수르의 고위 관리를 부르던 칭호이고, 랍사게(Rabshakeh: The field commander)는 바벨론과 앗수르의 고위 관리를 부르던 칭호로 왕의 술잔에 술을 따르는 자들의 최고책임자를 일컫는 직책입니다. 왕의 술잔을 맡았다는 것은 왕의 최측근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을 향한 길목에 주둔한 앗수르의 군대는 히스기야 왕을 불러 협상을 시도하였고, 이에 히스기야 왕은 힐기야(Hilkiah)의 아들이며 왕궁의 책임자(궁내대신)인 엘리야김(Eliakim)과 서기관인 셉나(Shebna), 그리고 사관(史官, 역사기록관)인 요아(Joah)를 보냅니다(18절). 협상이라는 것은 유다의 왕 히스기야에게 항복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앗수르의 랍사게는 앗수르에게 맞서지 말고 항복하라는 것입니다(19절~25절). 랍사게는 유다를 향해 앗수르를 대적하고 애굽을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애굽을 상한 갈대 지팡이로 묘사했으며(21절),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면서 히스기야가 산당들을 다 제거하였는데, 하나님이 도와주겠냐고 비아냥거립니다(22절). 앗수르의 랍사게는 산당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장소인데, 그러한 산당들을 히스기야가 제거한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랍사게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제사를 드리는 곳은 오직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어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한 말입니다. 그러면서 앗수르가 남왕국 유다를 침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앗수르에게 뜻하신 것이라는 궤변(詭辯)까지 늘어놓습니다(25절). 그러면서 앗수르의 군사력은 유다의 군사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기에 앗수르가 유다에게 말 이천 마리를 준다고 하더라도 앗수르의 작은 지휘관 하나조차도 물리칠 수 없을 것이라고 조롱합니다(23절, 24절).
이런 랍사게의 말을 듣던 히스기야가 앗수르에 보낸 사신(使臣)들은 아람어로 이야기해도 충분히 알아 들을 수 있으니 유다말(히브리어)로 말하지 말고, 아람어로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합니다(26절). 랍사게의 이야기를 유다 백성이 들으면 사기가 떨어질까 염려하여 이렇게 요청한 것입니다. 그러자 랍사게는 오히려 유다의 왕과 유다의 백성을 조롱하는 말로 응답합니다(27절). 유다 백성이 먹을 것이 없어서 자기의 똥오줌을 먹고 있다며 우롱(愚弄)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랍사게는 일어나서 유다 말(히브리어)로 더 크게 소리 질러 유다의 왕과 유다의 백성에게 도발(挑發)합니다(28절~35절). 랍사게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부질없는 것이고, 히스기야 왕을 믿고 따르는 것도 모두 헛된 것이니 항복하고 앗수르에게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앗수르에게 항복하고 나아오면 생명을 보존해 주고, 평안하게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회유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이라고 말하는 히스기야의 말에 속지 말라고 외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였습니다(33절~35절). 여호와 하나님뿐만 아니라 그 어떤 민족의 신도 앗수르에게서 건져낸 신은 없다고 큰소리칩니다.
이러한 랍사게의 도발에 유다의 백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잠하였는데, 그 이유는 히스기야 왕이 아무 대답도 하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36절). 아마도 감정적으로 휘말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진영에 보낸 사신들은 랍사게의 말에 옷을 찢으며 비통해하면서 히스기야 왕에게 가서 랍사게의 말을 보고합니다(37절). 앗수르가 강력한 국력과 군사력을 배경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고, 남왕국 유다를 조롱한 것은 참기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1차 침공 때 애굽과 동맹을 맺어 앗수르를 대적하려고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의 2차 침공이 일어나자 히스기야는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이후의 말씀을 보면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위협 속에 하나님을 찾는 모습을 보인 것을 통해서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앗수르가 하나님을 조롱하고 모독할 때 그것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히스기야의 태도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면 아무리 강한 대적이 위협하고 공격해 오더라도 능히 이길 것입니다. 주님, 대적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문제를 두려워하기보다는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믿음으로 주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