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시세아 -시로 세상을 아름답게-라는 잡지의
사무장 하명희입니다
이번 저희 잡지 창간호에 권오을 사무총장님께서
아주 오래전 사모님께 보냈던 편지가 소개되었습니다.
한통의 편지는 결혼 전 군대에서 보내셨던 편지이고
또 한통의 편지는 갓 결혼 후 안동 본가에 홀로 남겨져서
시집살이를 하시던 사모님께 보내셨던 편지입니다.
사모님에 대한 사랑과 안쓰러움이 듬뿍 묻어나는 편지지요.
사무총장님의 편지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런 진실과 깊이 있는 생각을 이미 하셨는가 하는 거였습니다.
사무총장님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편지를 보면서
진실이란 무엇인가를 한참 생각하였습니다.
모든 게 빠르게 지나가고 단순하고 감각적인 것만이 돋보이는 이 시대에
이렇듯 진실이 묻어나는, 보배와도 같은 편지를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이렇듯 카페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급해지는 연말연시에
이 편지를 읽으시면서 잠깐이나마
쉬어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끝으로 저희 시세아 창간호를 위하여
귀한 편지를 선뜻 보내주신
권오을 사무총장님과 배영숙 사모님께 다시 한 번 감사 말씀 드립니다.
추신: 이번에 알았습니다.
진실은 영원히 따뜻한 난로고 불빛이라는 것을.
두 분의 연애편지는 그 진실의 기념관 역할을 지금도
하고 있다는 것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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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아,
내 영혼이 편안히 쉬었던 곳, 그래서 나는 착하고 순수한 인간이 되어 썼던
편지 글귀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다.
너무 피곤해서 군대를 갔었고 군대라는 조직은 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더구나.
확연히 4계가 구별되고 안강 산속에서 너무 메말라버렸던 내 정서를 일깨웠고
진달래 흐드러지고 송화가루 날리는 山頂에서 피로해진 내 심신을 달래었다.
뭔가 그립고 아쉬운 것이 무척 많았지만 많은 친구들이 나의 갈증을 풀어주더구나.
편지를 보내주는 친구, 책을 보내주는 친구, 면회 와서 같이 한잔하고 가는 친구,
모두가 고맙고 정다운 친구들이었다.
연탄 져 나르고 쌀 져 나르고 물 길어 밥하고 교육 훈련 나가고 밤샘하며
매복 근무하고 격무에 시달렸지만 내 몸무게는 4kg이나 더 불었던 것을 보면
난 그만큼 편했나보다.
산에서 살면서 자연히 나는 순화되고 情的이 되었던 모양이다.
몇 편의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이 모든 것을 증명하고 남는다.
심심할 때 시를 쓴다면 시인들이 노발대발할 일이지만 나의 경우
사실인 것을 어떡하나?
그만큼 글이 쓰고 싶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산기슭 저수지 찬이슬 내리고
자지러지는 개구리 울음
맘의 정적과 어우러지다
어스름
둥근달이 떠오르면
반짝이는 수로, 떠도는 풀잎
고이 물속에 잠기우고....
외로운 심정
그리운 마음
쓰디쓴 충성 담배 속절없이 타는데...
사랑, 갈등, 번뇌, 양심, 행동
흐려지는 달빛에 어우러져
싸늘한 냉기, 차디찬 쇳덩이
봄밤의 정적은 깊어만 간다.
(봄밤의 서정 1980. 4월)
이것이 내가 최초로 써봤던 시다.
몇 번을 고치고 지우고 했던 작품이다.
5월에 보리 꽃이 바람에 일렁일 때는 너무 아름다워 넋나간 사람처럼
들을 내려다보기가 여러번이었다.
보리밭이
누렇게 일렁거릴때
엄마, 아빠는
배를 곯았었다
보리고개라하여
부황진 얼굴에
허기진 배를 움켜 잡았었다
큰대문집 찾아가
머리 조아리며
꾸어라 하루하루 연명했었다
그러고
10년
20년...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변했다
허기진 배와
술막지에 찌들던 육체는
맥주와 양주에
영혼마저 찌들어 버렸다
이제는
잘살게 되었다고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다고...
술막지
보리고개는
향수를 달래주는 얘깃거리가 되었고
호롱불아닌
전등밑에서
귀여운 꼬마 녀석들
눈을 초롱 초롱
재미있어 했었다
숱한 사람들
아직 배고프고
영혼도
허기진데...
이것이 皇帝의 恩德이다
위대한 영도자의
功德이다
(보리고개 1980년 5월)
이러한 이야기도 이미 옛 이야기가 되었고 내 꿈이 자라고 사랑이 싹텄던 안동에서
난 다시 앓기 시작했고 몸져 눕기조차 했다.
혼자 저녁놀에 물드는 낙동강을 보면서 人間存在자체에 대해서
생각해봤고 다시 살아야할 사회를 생각했다
오랫동안 못 보던 친구들과 만나 탁주 한잔하면서 지나온 이야기를 하면서
지난 여름 보냈고 가을에는 말 한마디 열병에 비틀거리기까기 했었다.
앓고 비틀거리고 고민하면서 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이제 난 아무것도 해 줄수가 없다는것을 확인하고도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요즈음,
내 마음을 무척이나 다지고있다.
산다는것은 자기의 믿음이지 결코 다른것은 아니다.
군복을 벗을때 모든 것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야한다는 생각,
단 한번 나 자신의 깨어지고 허물을 벗도록 준비를 해야한다는 생각뿐이다
우리 나이 이미 25살, 뭔가 언약을 해야할 시기지마는 아무말도 해줄수가 없는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 그렇게 살아갈것 같다.
아픈 일이 있으면 처절하리만큼 아프고 철저하게 자기자신을 부정하고
회의하고 그러다 새살이 나면 다시 건강하게 살아가고..
늙어 죽을때까지 그러한 과정의 연속이지 싶다
이미 恨을 품고 태어났고 恨을 지니고 살아가는것 억지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지는 않겠다.
지금 내가 확실하게 이야기 할수 있는 말은 한마디뿐이다.
영숙씨,
사랑하고 있소.
1981년 2월 安東에서 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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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친척과 友人들이 모인 가운데 새가 하늘을 날던 날,
洛江 (낙동강)의 흐름은 변함없었고 우리는 어른이 되었소.
오랫동안 바라던 꿈이 現實로 되었고 난 마음의 안식처를
찾게 되었소.
바쁜 와중에 며칠을 보내다가 서울로 오던 날,
두고 온 사람의 건강이 염려스러워 무척이나 안스러웠고,
금요일,
오랜만에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지금 혹시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렇게 소식 전하다오.
말로만 듣던 시집살이 시골생활이 힘들지는 않는지 무척 궁금하다오.
떠나버린 사람을 원망하지는 않는지 적이 걱정이 된다오.
英淑씨,
무척이나 불러보고 싶던 당신이라는 말이 막상 쓰기가 힘들게
느껴지는 것 같소
조금 힘들더라도 잘 참아 주길 바라겠소.
내 곧 내려가리다.
항상 건강에 주의하고 부모님, 동생들에게도 안부 전해주길 부탁하오.
1982년 11월 27일 당신의 남편 乙
첫댓글 지난 이야기지만 감동적이어서 금춘가족 카페로 퍼갑니다.
진실이란 이름이 지닌 여운은 實로 아름다움이라는 형용사이며
아름다움과 슬픔은 함께 공존하는 아이러니가 아닐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낸 빛바랜 편지 사연은
사랑의 힘은 부드럽고 강하여
한 가정을 튼실하게 잡아 주는 버팀목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단지 젊은 날의 러브레터라기 보다
감성과 지성이 가즈런한 총장님의 인간미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어설픈 댓글이 행여 실례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ㅎㅎㅎ.
추신 : 허명희 사무장님.
오늘 받은 귀한 책은 아직은 읽지 못했는데
차분히 읽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허명희사무장님 편지글, 그리고 ....감사합니다.
신혼 때 반 지하에 산 적이 있어서 편지들이 곰팡이까지 핀 것이 많이 있지요.
더 절절한 사연이 많습니다만 "시세아"의 창간호에 맞게 "詩"가 있는 편지를 택했습니다.
젊은 날의 고민과 사랑이 담겨 있는 많은 편지와 일기장, 어렵고 힘들 때 버팀목이 되어주곤 하지요.
"시로 세상을 아름답게"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시길...
"봄밤의 서정'.....^^....당신(^*^)의 진솔한 내면을 다시한번 뵙습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