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싶은 시 / 최병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나
먼지같은 말,
말을 버려야 한다
말을 줄여가던 당신의
세월처럼 찾아온
失語의 증세
언제나 보이지 않은 말의
무게가 컸다
바라보기만 할 것,
내 생각을 만들지 말 것,
좋은 시를 쓴다고 벼르지 말 것,
(2007, - 버리고 싶은 시)
나는 완성이 싫다 / 최병무
기다리는 동안, 소원하는 동안이
행복인 것을 생각한다
시인은 다시 詩에 시달리고 부자는
더 큰 가난에 시달린다
꽃봉오리에 숨막히는 절정있다
이루어진 날부터 시들해지던 언제나
실현된 꿈의 상실 때문에
도중의 행복을 다시 보는 것이다
꽃들은 낙화에 시달리고
봄을 기다린 겨울이 더 아름다웠다
겨울에 소원하던 여름은 역시 더웠다
사랑이 시들해지는 이유 때문에
나는 완성이 싫다
언젤까 유언같은 시집을 위해
미완의 시를 쓴다
(2008, - 이 손바닥만한 자유)
시인의 기도 / 최병무
기도라는 제목의 시는 얼마나
진부할 수 있는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기도라는 시
그러나 그 시가 나 때문에
순전히 나를 위한 것이었을 때
기도는 내 별이 된다
다시 도진 불면과 우울이 공존하는 밤
서늘한 그 밤의 바다에서
헷세의 <향수>를 읽었다
'시간과 영원에 대한 개인적인 관계를
밝히려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는
이 말에서 나는 책을 덮었다
우정과 사랑과 진리 지금은
거의 폐기되어버린 방랑이라는 말까지
그의 시대에는 가능했을까,
지금도 피혁공과 대장장이가 있는가
시인이 되라고 한다
인구 수만큼 지상의 간격은 좁아지고
그 벽은 견고해지고
외로운 사람끼리 모여산다
아, 지금 기도의 응답이 왔습니다.
눈부신 햇살이 쏟아집니다
*
지난 밤 카페를 들랑거리다 단 두줄의 쪽지를 보낸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 분이 기도라는 제목의 시를,
나를 위한 기도의 시를 아침에 보내셨습니다.
감사한 우정에 화답하는 글을 나도 (김시인처럼)
퇴고없이 올립니다
(2005 Cebu에서)
* 기도 / 김민홍
그의 외로움이 서서히 몸을 바꾸어
내게로 온다
그가 만나는 적막한 시간의 갈피 마다에
처연함으로 내릴 비 굿고
텅 빈 그의 오후에 가득 햇살이 비추이길
나는 묵상하였다
정결하지 못한 나의 기도가
그 분에게 닿을 진 모르겠지만
진정 저를 보지 마시고
제 기도만 경청해 주시길
세상에서 가장 큰 귀와 가슴을 지니신 분
용서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분을
오늘 새삼 생각는 것은
그의 온몸을 휘감을 먹갈색 고독 때문만은 아니다
갈수록 초췌해가는 나의 늙음과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음도
함께 승리하게 하길
텅 빈 객석을 향해 노래 부르는
무명 가수와 무명 배우들의 쓸쓸한
귀가길에 공평하게 비추이는 달빛처럼
분명 그에게도 그런 공평함이 닿을 수 있길
난 묵상했다 나의 삿됨과
오만과
역겨운 이기심도 함께 태워 주시길
허나, 하실 수 있다면
그의 상처를 먼저 어루만져 주시길...
시에게 / 최병무
시에 무슨 위로가 있을까,
구원이 있을까
나는 매달린다
한때 나는 시에 기대어 살고
시처럼 살고 싶었다
시인은 절망하며 시를 쓰고
나는 그 부스러기를
주워 담는다
귀신같은 시,
스멀스멀 찾아든
노년, 떠도는 詩語들
집처럼
따듯한 시가 그립다
(2007 초정리에서)
시를 읽다가 / 최병무
시 같은 삶은 어려워도 지천으로
넘쳐나는 시, 시, 시들... 시의 바다에서
시인의 이름만 들어도 믿고 싶은 시 다음으로
나는 시의 제목에 먼저 눈길이 멎는다
그 흔한 간판 제일주의는 아니고
좋은 詩題는 절반의 성공이라는 생각,
이 예측은 거의 틀린 적이 없다
가슴을 뛰게 하는 시의 향기, 文字는
생물이다
시인이여, 깃발처럼 시제를 걸어야할 일이다
(2017. 5. 13)
12월에 시를 쓰는 이유 / 최병무
- 내 말에 귀기우려 주는 당신 때문에
시를 씁니다
때를 안 묻히고 살아갈 수는 없다
구름도 심술이 있지 않더냐,
바람은 더 하지 않았더냐
맑은 습성으로 살아 간다는 것은
너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때로는 내 안의 구름,
내 안의 바람으로 하여
나도 비교할 줄 알며
서운을 타며
언제나 너에게서 최고로 남아있고 싶다
지금이야 나와 닮은 사람이 외워줄
시 하나 남기는 것이 소원이지만 너에게
이것이 인생이다,
말할 수 없다
오랫만의 해후보다 화해가
반가운 계절,
다시 길을 내며 가야하는 12월
(2000 -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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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싶은 시> 책머리에
驛馬처럼 떠돌았던 날들의 기록,
문득 시를 버리고 싶은 날이 있었다
그건 스스로에게 익숙해진 習,
내 생각과 말과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권태였다
여기 모은 글들은 그 날들의 기록이다
- 2007년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