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지금은 보리나 보리밥은 잘 알고 있지만 <보리 타작>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얼마 전 일행이 식사를 하러 경기도 포천의 어느 식당에 들렀는데 상호가 <보리타작>이어서 눈이 번쩍 뜨였다. 소싯적 추억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보리는 밭농사다. 보리는 추운 겨울을 밭에서 견디어 내는 곡식이다. 가을에 추수한 식량이 다 떨어지는 이른 봄철이면 춘궁기(春窮期), 즉 '보릿고개'라 하여 5월 하순이나 6월 초순 보리 수확기까지 양식이 떨어지는 농가가 많았다. '보릿고개'는 우리 민족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애환이다.
'보리피리'나 '깜부기'는 아련한 추억이지만, '보릿고개'나 ''보리타작'은 배고픔이 생각나는 가난한 시절의 애환이 깃든 용어들이다.
'보리타작'은 넓은 타작마당을 만들고 보리단을 놓고서 도리깨로 두드려대는 것이다. 보통 장단을 맞추어서 한다. 선후창으로 부르는 보리타작소리의 뒷소리는 옹헤애, 오헤야, 어기여차, 어여라 등과 같이 다양하다. 힘이 들면 어아, 에화, 오호로 더 짧아진다. 소리 내용은 대체로 일의 고됨과 희망찬 삶에의 기대가 주를 이룬다.
보리는 까끄레기 (초목의 가시 부스러기, 가시랭이의 방언) 때문에 타작을 마치면 찬물로 등물(목물)을 해야만 했다. 아버지 등물을 해드리면 아버지께서는 나의 등물을 해주셨다. 가곡 <보리밭>이 아련히 흐르는 느낌이다.
맥주의 원료가 보리이다. 공교롭게도 보리는 영어로도 보리(barley)로 발음이 거의 같다.
한 여름 꽁보리밥을 물에 말아서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서 먹던 추억이 떠오른다. 쌀밥은 엄두조차 낼 수 없던 시절이었다.
북한은 김일성이 외치던 '이밥(쌀밥의 함경도 사투리)에 쇠고기'는 아직도 요원한 실정이다.
그러나 미사일을 날리면서 달러를 허공에 뿌리고 있는, 지구상에서 막강한 미국과 맞서는 나라가 유일하게 북한이다 북한사람들은 북한이란말을 가장 실어한다 내가 민족대표단으로 북한에 갔을 때도 북한이란 말을 썼다가 곤혹을 치룬일이 있었다 왜! 북조선이라 하지 북한이라 하느냐는거다 북한에선 남한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 그또한 남조선이라 한다.
인민은 굶기면서까지 핵무기를 만드는나라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터 우리를 겨냥한게 아니라 마국과 맞서기 위해 하는 것으로 보고있다. 동족을 '주적'이라면서 아예 '두 개의 국가'라고 외치는 김정은은 신체구조 상 오래 살기 힘들어 보인다. 그 후계자가 열세 살의 김주애다.
우리 민족은 5,000년 동안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온 순한 민족이며 남에나라 침약하지 않은 민족었다.
쌀밥은 너무나 귀했다. '생쌀을 먹으면 어머니가 죽는다고 해서 먹을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다.
그토록 먹기 싫어하던 보리밥이 지금은 건강식이라 하여 보리밥집의 인기가 대단하다. 이천 쌀밥은 반찬이 많으나, 보리밥집은 된장과 나물 등을 비벼서 먹는 간편한 식단이다.
밀주가 금지된 시대에는 보리짚 속에 누룩을 숨겼다. 여치 집을 만들어서 키워보면 정확하게 낮 시간을 울면서 알려주었다.
지금은 도리깨가 있는지조차도 모르겠다. 지게·도리깨·도랭이,삼태기는 우리민족의 손재주를 여실히 보여주는 생활도구이자 농기구였다. 산에,들에 지게를 지고 가면서 작대기로 장단 맞추던 시절이 아련하다
이런 손재주는 세계기능 올림픽을 수차례 제패토록 하였으며, 선진국으로 점프하는 초석이 되었다.
아낙네의 다듬이질과 동정을 달던 인두질과 다름질 그리고 골무를 끼고 하던 바느질 등도 우리 민족의 두뇌를 세계 1위로 끌어 올리는데 큰 요소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 항심 장재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