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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와 노랑나비
오종락
오랜 가뭄 끝에 사흘 걸쳐 내린 봄비가 먼지잼으로 내리다 말았다.
겨우내 쌓인 미세먼지를 씻어내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목마른 대지에 작은 물기라도 뿌려주어 새순을 틔우는데 다소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적은 양의 봄비지만 참으로 고마운 비다. 오랫동안 비가 흡족하게 한번 내리지 않아 우리나라도 UN이 정한 ‘물부족 국가’라는 말이 자꾸 떠올라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날씨가 가물고 미세먼지 농도가 높다고 하니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도 메마르고 까칠해 보였다. 어제 봄비가 내린 뒤 오늘 외출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은 물기를 머금은 식물처럼 싱그러운 표정이다. 또 인도변에 심어놓은 피라칸사스의 잎사귀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반들반들한 모습으로 싱그럽게 미소를 짓는다. 사나흘 사이에 이런 엄청난 변화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인 봄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봄비는 예부터 ‘일비’라고 했다. 봄에는 할 일 많기 때문에 비가 와도 일을 한다는 뜻으로 그렇게 불렀다. 봄은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철이라 이 시기에 적당량의 비가 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농촌에서는 비가 필요할 때 때맞춰, 농사짓기에 적합하게 내리는 비를 ‘꿀비’라고도 불었다. 이번처럼 가뭄 끝에 내린 봄비는 식물의 생육에 필수적이고 농사에 도움을 주는 꿀비인 셈이다.
유년시절 시골에서 살 때의 일이다. 가뭄 끝에 비가 내리면 어머니와 누님은 하늘을 쳐다보시며 “고마운 빗님, 꿀비가 내리신다.” 하시며 ‘꿀비’를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반가운 빗님, 꿀비’라고 말씀하시던 소리를 종종 듣곤 했었다.
천수답이 대부분인 시골에서는 비는 단순한 비가 아니라 생명수나 다름없는 소중한 존재였다. 잦은 봄비로 인해 들판에서 부모님의 일손을 돕다가 봄비를 맞을 때도 간혹 있었다. 그럴 땐 아버지는 “어서 집에 가서 우의를 몇 개 가져오너라” 하시며 심부름을 시키셨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논둑길을 잽싸게 걸으면서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 순간 들판의 흙냄새가 코 속으로 가득히 스며들어 왔다. 그 내음은 봄비와 흙이 결합되어 빗어낸 오묘한 자연의 향취였다. 그 시절은 비를 맞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거나 아주 싫어하지 않았다. 비를 좀 맞아도 요즘 아이들 물놀이하다가 옷 젖는 정도로만 여겼다. 또한 가랑비 정도는 하늘이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웬만큼은 맞아도 괜찮은 것으로 여기며 살았다.
봄비가 내린 다음 날, 들길을 나서면 반가운 봄 손님을 만났다. 바로 노랑나비다. 새봄의 전령(傳令) 노랑나비는 나를 아주 기쁘게 해 주었다. 그 까닭은 노랑나비를 먼저 보면 한 해에 길운이 따른다고 믿었다. 그런 날은 부모님의 일손을 도우면서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흥얼 거리며 신나게 일했다. 어저께는 그 시절을 추억하고자 봄비 내린 들판을 걸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예전에 흔하게 보았던 노랑나비는커녕 흰나비조차 보기 힘들었다. 한참을 헤매다 겨우 노란 유채꽃에 앉아 있는 작은 흰나비 한 마리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였고 환경변화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원인을 알아보았더니 지구온난화 현상과 지나친 농약사용으로 한반도에 서식하는 나비들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무심히 살아왔는데 참으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태계가 변하게 되면 결국 인간들도 기후변화에 따른 재해와 식량난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지 않을까 한다.
일찍이 마하트마 간디는 '탐욕에 관한 명언'을 통해 “지구는 인류가 필요한 것을 충분히 줄 수 있지만, 그들의 탐욕까지 채워주지는 못한다.”라고 설파했다. 이분의 말씀처럼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초래되는 생태계 파괴가 너무나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학자들은 그동안 우리가 자연 생태계가 제공하는 각종 자원과 서비스에 의지하여 살아오며 자연생태계를 배려하지 않고 살아왔음을 지적했다. 이를 두고 인간들의 '무임승차'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생태계가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는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태까지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봄이 오면 봄비가 내리고 식물들은 자연스레 새순이 돋아나는 것으로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는가? 버들강아지의 복슬복슬 몽글몽글 귀여운 모습을 보면서도, 지난밤 내린 이슬비에 목마름을 추긴 들풀의 내음을 맡으면서도, 청량한 숲길을 걸으면서도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누리기만 하지 않았던가? 하고 반성하게 된다.
꿀비를 기다리며 자연환경의 변화를 마주하게 되니 생각이 많아지는 봄이다. 주위의 어르신들을 봐도 자녀와 손주들은 귀여워하면서도 환경의 소중함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다. 우리는 지구를 후손에게서 잠깐 빌려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녀와 손주들을 귀엽게 여기는 마음으로 환경도 함께 사랑하고 가꾸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침 산책길 길섶의 식물들은 먼지잼 꿀비에 아직까지 목말라하고 있었다. 노랑나비를 쉽게 만나기 힘든 환경도 그 원인은 인간들이 ‘지구 별’에 너무나 심한 고통을 가한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 아닐까 한다. 인간들은 무임승차함으로써 자연을 오·남용하여 환경을 파괴하고 결국 기후변화라는 결과를 초래하여 노랑나비를 쫒아버린 셈이다. 이제부터는 생태계가 주는 다양한 서비스에 대한 가치를 알고 그 대가를 지불할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노랑나비가 환경변화를 알려주는 정유년 춘삼월이다. 꿀비의 경제적 가치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예전처럼 노랑나비가 나풀나풀 들판을 수놓고 꿀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는 아름다운 지구환경이 몹시 그립다. (2017.4.1)
첫댓글 어저께 하루 적은 양이지만 꿀비가 내렸읍니다.봄비는 우주만물의 생명수 이지만 비가오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양면의 존재입니다.물 부족
국가로 전략한우리나라도 물을 돈쓰듯 해야하는데 아직도 물을 물쓰듯 하고있으니.걱정 아닌 걱정입니다.노랑나비 춤추는 진정한 봄이 그립읍니다.
벌과 나비가 줄어들고 그 줄어든 곤충의 역할이 꽃들의 수분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봄이면 과수원을 하는 사람들이 인공수분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정말 걱정입니다. 우리나라에 제비가 없어진 것도 종달새가 자취를 감춘 것도 모두 먹이가 없어서라니..... 멀지않은 장래를 생각하면 지구별의 원상 회복이 절실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저도 자연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생태계가 주는 서비스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자연 보존에 힘쓰도록 노력해서 노랑나비가 훨훨 날 수 있길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오랫만에 내린 봄비를 받아 봄의 소식이 한결 앞당겨진 느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우리가 늘상 마시는 산소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고 있듯이 일비와 꿀비의 소중함을 잊지 말라고, 인간의 탐욕으로 생태계 파괴를 자초하지 말라며 일침을 놓는 그래서 하나뿐인 이 지구를 지금이라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이 글을 읽으면서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식물들이 아름다운 여러모습으로 꽃을 피우는것은 벌과 나비를 유혹하여 수정하기 위한 본능인데 매개 곤충이 사라지면 수확량이 적어지고 궁극에는 멸종으로 가는길이라 우려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