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꿩들도 안경을 쓴다는 소식을 들어 본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보통 앞이 잘 보이지 않으면 안경을 씁니다.
보다 더 선명하고 잘 보기 위해서입니다.
꿩들도 안경을 쓴다는 소식을 들어 본적이 있습니까?
ㅋㅋ 꿩들도 공부를 하나?
무엇을 위해서 안경을 쓰게 될까요?
요즘은 꿩들을 사육합니다. 수많은 꿩들을 사육하려면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 꿩들이 날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면. 생 각할수 없고, 생각할 수 없으면 시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가리면 하늘로 날 수 없습니다.
이 편리한 생각이 꿩들의 입장에서 보면 푸른 하늘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안경을 쓰는 순간부터 꿩들을 하늘을 잃고, 사육당하는 닭이 됩니다. 잘먹고 잘살지만 결말은 뜨거운 기름가마가 그들을 위해 준비되어있습니다. 주인의 잔치날을 위해서 사육되는 요리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작은 뿔이 정확히 교황권에 적용된다는 사실을 공부했습니다. 8가지 10가지로 분류해 보는 작은 뿔의 신원조회
어느 것 하나 예외없이 정확하게 교황권에 적용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종교개혁시대에 살아있었다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문자 그대로 적용되는 예언의 말씀의 정확성을 보고 경탄했을 것입니다. 정치와 종교가 하나가 되어 인간의 양심을 강요하는 어둠의 세계, 성경은 금서목록에 포함되고, 신부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도 성경을 읽을 수도 해석할 수도 없는 사육당하는 영혼들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의 예언해석들은 당연히 일치했었습니다.
로마의 엄청난 핍박과 환란들을 피의 순교로 이겨냈지만, 로마 다음에 나오는 작은 뿔의 공격은 더욱 잔혹했습니다. 교회의 이름을 가지고, 진실된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로마 교황권의 가르침을 거부하면 이단이 되고, 그들의 생각을 돌리기 위해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잔혹한 고문의 도구들이 만들어지고, 거부의 마지막은 화형장이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분명한 적 그리스도의 확인이 또 어디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을 3년반, 42달, 1260년간 핍박하는 어둠의 세력이었습니다. 정치적, 탐욕적 인간의 욕망을 품고 보좌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권세를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계명까지 자기의 생각으로 바꿔버리기 까지 했습니다. 이보다 더 분명한 증거가 어디있을 수 있나요?
천년이상 역사에 분명히 나타난 이 엄청난 역사적 증언들을 무엇으로 가릴 수 있겠습니까?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나요?
중세기의 로마 교회가 성경을 신자들이 읽어서는 안되는 금서목록(禁書目錄)에 포함시켜 소유는 물론 자국어로 번역하거나 전하는 행위 일체를 화형(火刑)등 중벌로 다스렸음은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12 그러나 12세기에 알프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개혁자들인 왈덴스인들(the Waldensians)과13 14세기 영국의 개혁자 위클립(John Wycliffe), 16세기 독일의 루터(Martin Luther)와 영국의 틴데일(William Tyndale)등 목숨을 내건 개혁자들의 희생으로 마침내 성경이 영어, 독일어, 등 자국어로 번역되어 읽혀지면서 종교개혁의 불길은 세차게 번졌다.
깊어진 성경 연구를 통하여 영적인 시력을 회복하게 된 개혁자들은 중세 교회의 극도로 타락한 성직 제도와 함께 면죄부 제도, 고백성사와 고행(苦行)에 의한 속죄, 공덕(功德)에 의한 구원, 예배를 대신한 제사인 미사, 유물 숭배와 성상(聖像)예배, 마리아의 중보, 연옥 교리와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 성자 숭배, 성찬에서의 미신적인 화체설(化體說), 잔인 무도한 종교재판등 온갖 제도가 그리스도교 신앙에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임을 성경에 비추어 확인했다.15
종교 개혁자들은 이러한 배도(背道)를 주도한 중세 교황권(Papacy) 이 다니엘서(7장, 8장, 11장)와 요한계시록(12장, 13장., 17장), 사도 바울의 데살로니가후서(2장)에 일찌기 예언된 적 그리스도의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철저한 회개와 개혁을 촉구했다.16 위클립을 비롯하여 17 루터의 동료 개혁자요 성경학자인 멜란히톤(malancthon),18.그리고 예언 연구에는 소극적이었던 칼빈(John Calvin)도 교황권을 적 그리스도로 규정하는 일에는 적극적이어서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밝혔다.
“다니엘과 바울은 적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서방 교회에 있어서 이 저주받은 가중한 왕국의 머리를 우리는 교황이라고 단언한다.”22
최초로 원어에서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배포한 죄로 화형을 당한 옥스포드 출신의 학자인 틴데일(d. 1536)도 “로마의 적 그리스도를 그들은 교황으로 부른다.”23고 썼다. 같은 때의 캠브리지 출신의 학자인 바안스(Robert Barnes . d, 1540) 는 교황권을 성경에 예언된 적 그리스도라고 선언하다가 두 동료와 함께 화형에 처해졌다.24
이렇게 중세 교황권을 성경에 예언된 적 그리스도라고 선언하는데 제일 앞장선 것은 역시 루터였다.25 1534년에 출판된 “루터 성경”(The Luther Bible)에는 요한계시록 17장에 나오는 짐승을 탄 음녀에게 교황의 삼층관을 씌워 적 그리스도의 정체를 삽화로 드러냈다.26
성례전이나 교회관 등에는 심각한 이견을 보여 논쟁을 거듭한 개혁자들이 이처럼 다니엘과 요한계시록등 예언 해석에 놀라운 일치를 보인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들이 모두 예언해석에 있어서 역사주의(歷史主義 . Historicist)라는 공통된 원칙을 따랐기 때문이다. 역사주의 예언 해석이란 다니엘서와 요한 계시록에 계시된 예언을, 그것이 쓰여진 때로부터 세상 끝날까지의 역사에서 계속적으로 일어날 일련의 사건으로 해석하는 입장인 데 그것은 이미 성경 전체에 걸쳐 적용되고 역사에서 타당성이 입증된 성경적인 원칙이다.27
중세 로마 교회의 대응
유럽전역에 걸쳐 요원의 불길처럼 번진 종교개혁으로 다급해지고 안퍆으로 궁지에 처하게 된 중세 교회는 활로를 찾기 휘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리하여 1545년 트렌트 종교회의(the Council of Trent)를 열어 세 차례의 회기를 가지며 18년간을 끌었다. 이탤리 출신의 성직자들과 1540년에 탄생한 제수이트(the Jesuits . 예수회) 신학자들이 주도한 이 회의에서 개혁을 촉구하는강력한 소원을 오히려 거절되고 면죄부제도와 연옥의 교리를 비롯한 이전의 모든 교리를 그대로 옹호할 것을 재천명하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비롯한 루터와 칼빈등 개혁자들의 가르침은 저주받을 이단의 교리로 정죄되었다.28
그리고 로마 교회와 로마 교회의 절대적인 권위를 재확인하는 한편 종교개혁을 철저히 분쇄하는 반 종교개혁(Counter . reformstion)의 입장을 확정했다. 그리고 교회와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든 이단자들을 징벌하기 위해 1542년 악명 높은 종교재판을 부활시켰으며 마리아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과 로마 교회와 교황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다짐한 스페인 출신 로욜라(Ignatius of Loyola . d. 1556)가 창설한 예수회[제수이트]에 반종교개혁의 과업을 맡겼다.29 종교 문서 출판과 독자적인 성경 연구를 철저히 통제하기 위하여 1564년 강화된 금서목록(Tridentine Index)을 제정했으며, 그때까지 정경(正經)으로 인정치 않았던 다수의 외경(外經)을 포함시킨 라틴어 성경(the Latin Vulgate)만을 공인(公認)하고 로마 교회가 인정하는 성경 해석 외에는 일체 허용하지 않기로 재확인했다.30
이러한 물리적 대응 외에 근본적인 대책으로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에 의거하여 교황권을 적 그리스로 선언한 개혁자들의 변명할 여지가 없는 논증을 침묵시키거나 전복시킬 방안을 찾아야 했다. “카톨릭 백과사전”에도 고민이 아래와 같이 드러나 있다.
“개혁자들에게 있어서 특별히 요한계시록은 로마 교회의 교권에 대해 퍼부을 수 있는 공격 거리를 파내는 무진장의 원천이었다. 로마의 일곱 언덕들, 추기경의 자줏빛 복장, 그리고 교황청의 불운한 악습들은 그 적용을 쉽고 마음이 끌리는 것으로 만들었다.”31
교황권을 예언에 명시된 적 그리스도로 끈질기게 적용하는 개혁자들의 일치된 논증을 피하거나 깨뜨리는 최선의 방편은 그들로 하여금 그러한 결론에 이르게 한 역사주의 예언 해석(Histoticist)방법은 전복시키는 것이였다. 이 일은 제수이트 신학자들에게 맡겨졌으며, 곧 이어 두 가지 대안이 제출되었다. 그것이 바로 현대 교회들의 예언 해석을 주도하고 있는 과거주의(過去主義)와 미래주의(未來主義)예언 해석의 기원이며 여기에 비밀 휴거사상을 탄생시킨 세대주의(世代主義)의 뿌리가 숨겨져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예언 해석의 과거 주의와 미래주의
개혁자들에 의하여 일치하게 적 그리스도로 지명된 중세 교황권이 다니엘서와 요한 계시록의 예리한 집중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이전에 존재했던 사상들을 참고하고 집대성하여 새롭게 창출한 두 가지 예언 해석법이 제시되었는데, 그 내용이 19세기 주석학자인 태너(Joseph Tanner)에 의하여 아래와 같이 요약되어 있다.
“16세기말에 이르러 이러한 과업에 자신을 바친 [로마카톨릭의] 저명한 두 학자가 나타났는데, 이들은 적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이 교황제도에서 성취되었다는 인식으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하여 각자 목적은 같지만 방법이 다른 시도들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제수이트 학자인 알카자(Alcazar)는 과거주의 해석방법을 드러내는 일에 자신을 바쳤는데...이로써 그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들은 교횡이 로마를 다스리기 이전에 이미 이루어진 것이므로 교황권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보이려고 애썼다. 한편 다른 제수이트 학자 리베라(Ribera)는 미래주의 해석방법을 끌어들여 교황권에 관한 예언의 적용을 빗나가게 하려고 시도했다. 미래주의 해석은 이러한 [적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이 교황권의 행적에 관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어떤 초자연적인 개인이 할 일이며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타나면 3년 반 동안 권세를 쓸 것이라고 주장한다. ... 그러므로 1580년경에 나타난 제수이트 인 리베라는 현대의 미래주의 해석법의 창시자로 간주된다.”32
설명된 대로 제수이트의 나라 스페인 출신의 학자 리베라(Francisco Ribera. 1537-91)는 1950년 500쪽이나 되는 요한계시록 주석책을 출판하여 계시록의 적 그리스도가 교황권 이라는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그는 계시록의 첫 부분은 요한 당시에 해당되는 예언이지만 나머지는 재림 직전에 나타나 성도를 핍박하고 모욕할 무신론적인 인물인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활동하는 3년반 동안 이루어질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간동안 그는 하나님처럼 행사하고 세상을 다스리며 예루살렘에 성전이 재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33 탁명환 씨가 정통 재림론으로 소개한 세대주의 자들의 요한계시록 해석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내용임을 쉽사리 알 수 있다.
또 다른 스페인의 제수이트 학자인 알카자(Luis De Akcazar . 1554-1613)는 리베라의 미래주의 해석이 교황권을 옹호하는데 미흡하다고 생각하면서 40년에 걸쳐 연구 끝에 9백쪽의 분량의 요한 계시록 주석 책을 썼다. 그는 계시록의 전반부를 유대인 거절과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것으로 후반부는 이교 로마 의 멸망과 그리스도교 의 개종에 관하 것으로 돌려 중세 로마 교회와는 상관없는 예언으로 만들었다.34 또한 계시록의 (11, 12장) 1260일은 과거에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핍박한 기간으로 , 다니엘서의 같은 기간인 “한때, 두때, 반때”(단7:25)는 과거에 시라아왕 안티오커스(Antiochus Epi-phanes)가 유대인을 핍박한 기간으로 돌려 교황권이 다니엘서와 요한게시록의 적 그리스도로 해석될 시간적 소지를 없앴다. 35이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다니엘서 주석에서 발견되는 과거주의 해석의 기원이다.
세대주의로 분장한 미래주의
위에 제시한 역사적 고증은 카톨릭 학자에 의해서도 아래와 같이 확인되고 있다.
“1591년 제수이트 인 리베라에 의하여 설립된 미래주의 해석 학파는 적 그리스도, 바벨론,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그리스도교 시대 끝에서 찾고 있다. ... 1614년 제수이트인 알카자에 의하여 설립된 과거주의 해석 학파는 요한계시록을 예루살렘 멸망과 로마제국 멸망으로 설명하고 있다.”36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기초를 놓고 종교 개혁자들이 발판을 삼은 역사주의 성경 해석은 제수이트학자들이 창출한 미래주의와 과거주의에 의하여 끝입없는 도전을 받으며17세기와 18세기를 경과했다. 37 19세기에 걸쳐 개신교 신학은 성경의 영감을 부인하는 고등 비평에 문을 열었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대부분 과거주의(Preterist)로 돌아섰다.38 그리고 복음주의 학자들마저도 미래주의 (Futurist)에 관심을 고조시켰다.39
이러한 신학의 조류에서 영국 성공회 성직자였던 다르비(John Nelson Da-rby)는 미래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고 1827년 성공회를 떠나 “플라머스형제들”(Plymouth Brethren)로 알려진 작은 그리스도인 집단의 지도자가 되어 개신교식 미래주의를 발전시켰다. 그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우신 은혜의 언약이 당연히 지니고 있는 일관된 통일성을 무시하였다. 그리고 구속의 역사를 구속의 경륜이 서로 다른 대략 일곱 세대로 나누어 각각 다른 구원의 조건을 제시하는 현대의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를 창시했다. 40 세대주의자들은 신약의 교회가 구약의 이스라엘을 대신하는 영적 이스라엘임은 부인하고 배도한 유대인이 마지막 때에 회심하여 그들의 본래의 세대로 돌아오기까지 막간(幕間)을 채우는 이질적(異質的)인 세대로 간주하였다.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당연히 세상은 달라보입니다.
편견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당연히 세상은 온통 편견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꿩에게 안경을 쒸워주면 꿩은 더 이상 하늘을 볼수 없습니다.
적그리스도가 교황권이라는 것이 들통나자 천주교회는 예수회를 통하여, 과거주의와 미래주의를 고안해 냅니다. 미래주의에서 세대주의와 비밀휴거의 가르침들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개혁주의적 종말론을 혼란에 빠트리게 만들었습니다. 거짓된 해석의 안경을 벗으면 분명히 명확히 성경예언이 보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지켜왔던 역사주의적 해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들의 개혁정신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개신교라는 말 자체가 한자어로 **‘고칠 개(改)’, ‘새롭게 할 신(新)’, ‘종교 교(敎)’**를 사용합니다. 이 명칭 자체는 **16세기 서유럽에서 일어난 종교개혁(Reformation)**에서 유래했습니다.
당시 마르틴 루터, 장 칼뱅 등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패와 신학적 오류를 비판하며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종교를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교회를 고치고(改) 새롭게(新) 바꾸려 했습니다.
따라서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아 새롭게 된 교회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명칭입니다.
개신교를 영어로는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 신자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합니다.
유래: 이 말은 '항의하다', '반대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프로테스타리(protestari)'에서 나왔습니다.
역사적 배경: 1529년 독일의 슈파이어 국회에서 가톨릭 세력이 루터파를 억압하는 결정을 내리자, 루터파 제후와 도시들이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protest)'**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개신교'는 가톨릭의 권위에 **'항의(Protestant)'**하며 일어난 종교개혁의 전통을, **'교회를 고치고 새롭게 한다'**는 한자 뜻으로 표현한 명칭입니다.
다시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개신교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은 천주교회의 평화, 마리아의 치맛자락에 연합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의 구호로 돌아가야 합니다.
https://youtu.be/aooIfVSQ6Wg?list=RDaooIfVSQ6W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