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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趙나라 도읍 한단邯鄲에 사는 기창紀昌이라는 한 남자가 천하제일 궁술의 명인이 되겠다는 뜻을 세웠다.
그래서 스승으로 모실 인물을 물색했는데,백 보 떨어져서 버들잎을 백발백중으로 맞히는 달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멀리 찾아가 비위飛衛의 제자가 되었다.
스승은 기창에게 우선 눈을 깜빡이지 않는것 부터 익히고 다시 오라고 했다.
집에 돌아간 그는 아내가 베틀질 하는 밑에 드러누워 베틀신끈이 바쁘게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가만히 깜박이지 않는 훈련을 했다.
2년 후에는 분주히 왕래하는 베틀신끈이 눈썹을 스쳐도 깜박이지 않게 되었다.
그제야 그는 베틀 밑에서 기어 나왔다.
이미 예리한 송곳 끝으로 눈을 찔려도 깜박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의 눈꺼풀은 이미 눈을 덮는 근육의 사용법을 잊어버려, 밤에 잘 때도 기창은 눈을 빤히 뜨고 잤다.
결국에는 그의 속눈썹과 겉눈썹 사이에 작은 거미가 줄을 치기에 이르렀으니,
그는 이윽고 자신감을 얻어 스승 비위에게 이를 알렸다.
스승은 다음으로는 보는 것을 익히도록 하여 보는 것에 익숙해져서 작은 것이 크게,
희미한 것이 또렷이 보이게 된다면, 그때 다시 오라고 했다.
그는 집에 돌아가 속옷에서 이를 한마리 잡아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이를 묶어 창가에 걸어놓고
매일 노려 보는 훈련을 하기를 3년을 하던중 어느듯 이가 말처럼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기창은 무릎을 치고 밖을 뛰어나기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사람은 탑처럼 돼지는 언덕 같고 말은 산처럼 보였다.
기뻐 날뛰며 집으로 돌아온 기창은 다시 창가의 이를 마주하고, 화살대를 시위에 메기고 쏘니,
화살은 멋지게 이의 심장을 뚫었다. 더 나아가 이를 묶은 머리털조차 끊지 않았다.
기창은 곧바로 스승을 찾아가 알렸고, 스승 비위는 함께 기뻐하며 궁술의 비법을 남김없이 기창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눈의 기초 훈련에 5년이나 걸린 보람이 있어 기창의 실력이 느는 속도는 놀랄 만큼 빨랐다.
두 달이 지나 집에 돌아온 기창은 아내와 말싸움을 하던 도중 아내를 겁주려고 화살을 팽팽히 당겨 아내의 눈을 쏘았다.
화살은 아내의 눈썹 세 가닥을 자르고 저쪽으로 날아갔으나, 아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해 눈도 깜박이지 않고
남편에게 계속 잔소리를 퍼부었다.
확실히 극치의 기예에 의한 화살의 속도와 겨냥의 정묘함은 실로 이런 영역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스승에게 더 이상 배울게 없던 기창은 어느 날 문득 스승 비위만 없으면 자기가
세상에서 최고의 궁술의 달인이 될것이 아닌가 하는 나쁜 마음을 먹는다.
스승은 이를 눈치채고 이 위험한 제자에게 새로운 목표를 주어 그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은 더이상 전할게 없고, 서쪽의 험한 태항산太行山을 지나 곽산霍山의 꼭대기에 올라가면
그곳에老師(노사)라는 스승이 있다고 알려주는데,
그는 고금에 따를 자가 없는 이 분야의 대가로서 노사의 기예에 비교하면,
우리의 궁술은 거의 아이들 장난과 같다고 말한다
한달만에 산 정상에서 의욕에 넘친 기창을 맞이한 사람은 양 같은 온화한 눈의,
그러나 매우 늙어 기운 없는 노인이었다. 나이는 백 살을 넘은 듯했다.
기창은 자신이 찾아온 뜻을 고하자, 노인은 그의 기량이어느정도 인가 묻자,
성급히 활을 잡고 마침 하늘 높이 날아가던 철새 떼를 겨냥해 시위를 놓자 한 발에 곧 다섯 마리의 큰 새가
선명하게 창공을 가르며 떨어졌다.
노인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것은 어차피 사지사 射之射〔화살을 쏘아 표적을 쓰러뜨리는 것 )요,
그대는 아직 불사지사/不射之射〔화살을 쏘지 않고 표적을 쓰러뜨리는 것〕를 모르는 것 같도다."
그리고는 마침 하늘 아주 높은 곳에 솔개 한 마리가 유유히 원을 그리며 날아가는데.
깨알처럼 작게 보이는 모습을 한동안 올려다보던
노인이 이윽고 보이지 않는 화살을 무형의 활에 메기고 만월처럼 당겨 휙 날리니,
보라!~ 솔개는 날갯짓도 하지 못하고 하늘에서 돌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창은 소름이 끼쳤다. 지금이야말로 비로소 예도藝道의 심연을 엿본 듯한 심정이었다.
그리곤 9년간 기창은 노인의 밑에서 지냈다.
그동안 어떠한 수업을 쌓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9년이 지나 산에서 내려왔을 때, 사람들은 기창의 얼굴 생김새가 달라진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예전의 지기 싫어하던 사나운 얼굴은 어디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고, 아무런 표정도 없이
목우木偶〔나무 인형〕처럼 바보같이 용모가 바뀌었다.
한단 도읍에서는 천하제일의 명인이 되어 돌아온 기창을 맞이하여, 곧 눈앞에 보게 될 것이 틀림없는
그의 묘기에 대한 기대가 끓어올랐다.
그런데 기창은 전혀 그 요망에 부응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 활조차 전혀 손에 잡으려 하지 않았다.
친한 친구가 기창에게 그 이유를 묻자 심드렁하게 말했다.
“최상의 행위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요, 최상의 말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며,
최상의 쏨은 쏘지 않는 것이다(至爲無爲 至言去言 至射無射).”
친구는 알듯 모를듯한 친구의 말에 아리쏭해 했고,이런저런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었다.
그런데 그이후 기창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매일 밤 삼경이 지날 때, 기창의 집옥상에서 누가 그러는지 모르는 활시위 소리가 났다고 했다.
또, 그의 집 가까이에 사는 한 상인은 어느 밤 기창의 집 상공에서 구름을 탄 기창이 오랜만에 활을 손에 들고,
옛날의 명인 예羿와 양유기養由基 두 사람을 상대로 솜씨를 겨루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고 했다.
그때 세 명인이 쏜 화살은 각각 밤하늘에 창백한 빛줄기를 끌면서
삼수參宿〔오리온자리〕와 천랑성天狼星 사이로 사라졌다고 했다.
어느 도둑은 기창의 집에 살며시 들어가려고 담에 다리를 걸친 순간,
한줄기의 살기가 화살처럼 집안에서 휙 날아와 정면으로 이마를 쳤기 때문에 밖으로 떨어졌다고 자백했다.
그 후로 악한 마음을 품은 자들은 그의 집에서 1리 사방을 피하여 먼 길로 돌아갔으며,
현명한 철새들은 집 위의 상공을 지나지 않게 되었다
노사 스승의 밑을 떠난 지 어언 40년, 기창은 조용히, 실로 연기처럼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 40년동안 그는 결코 사(射)를 입에 올린 적이 없었고, 활과 화살을 든 활동이 있었을 리가 없었다.
그가 죽은뒤 전설처럼 전해진 이야기가 있다.
그가 죽기 한두 해 전의 일이라고 한다. 어느 날 늙은 기창이 친구집에 놀러갔는데,
그 집에서 하나의 도구를 보았다. 확실히 본 적이 있는 도구지만 아무래도 명칭이 떠오르지 않으며
용도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기창이 친구에게 물었다.
"여보게!~저것은 무엇이라 부르는 물건이고, 또 무엇에 사용하는 것인가?"
친구은 기창이 농담한다고 생각해, 빙긋이 능청스런 웃음을 띠었다. 늙은 기창은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그래도 친구는 애매한 웃음을 띠고 기창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세 번째로 기창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같은 질문을 거듭했을 때, 비로소 친구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나타났다.
그는 기창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결코 기창이 농담하는 게 아니고, 정신이 이상한 게 아니고 또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
그는 거의 공포에 가까운 낭패감을 보이며 더듬거리면서 외쳤다.
“아아, 이보세!~기창이 ~고금무쌍 궁술의 명인인 자네가 이 활을 잊어버렸단 말인가?
아아~활이라는 이름도, 사용법도?”
그 후 한단에서는 한동안 화가는 붓을 감추고, 악사는 거문고의 줄을 끊고,
목수는 잣대를 손에 드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옮김)
첫댓글 최고의 경지에 오르는 길은
그리도 어렵고
그 자리에 오르면 겸손해 지나봅니다
어떤 분야든 최고의 경지는 신선의 수준이겠지요 ~
무더위에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