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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ChatGPT가 하이브리드 차량 연비 높이는 방법을 알려주어 글을 써 볼 생각이다.
그런데 이 소재만으로는 글을 쓰기엔 다소 부족할 것 같아 우리 가족 자동차에 대한 추억도 함께 써보자는 생각에 ChatGPT에게 물었다.
(질문)
서울시 구청장들이 타는 차량은?
(답변)
서울시 구청장들이 타는 차량은 "이 차로 통일" 같은 규정이 있는 건 아니고, 대체로 지자체 공용차량 기준 + 예산 + 관행에 따라 정해지는데, 그래도 흐름은 꽤 뚜렷합니다.
현대 그랜저(가솔린. 하이브리드)
- 구청장 최다 선택
- 체면. 승차감. 유지비 균형이 좋아요
- 친환경 정책 때문에 하이브리드 비중도 늘어가는 중
제네시스 G80 (일부 구청)
- 재정 여유 있거나 대외 행사가 많은 구
- "과하다"라는 민원 때문에 모든 구가 쓰진 않음
- 예전보다 점점 줄어드는 추세
기아 K8
- 그랜저 대안으로 선택되는 경우
- 이미지 비교적 무난해서 민원 부담 적음
나는 37년 동안 서울시 공무원으로 서울시청과 구청에 근무하다 2020년에 정년퇴직을 했었는데 언제 구청장님들의 차량이 그랜저급으로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있을 때는 국민차 소나타 급이었다.
공무원들은 자긍심으로 일하는 직업 중 하나이기에 대부분 경제적 여유가 없고 또한 구청장이 소나타 타는데 직원이 그 이상의 차를 타는 분위기가 아니라 국민차인 소나타를 많이 탔었다.
나의 경우도 소나타를 13년 넘게 타다 퇴직하고 얼마 지나 그랜저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바꾸었다.
지금도 나는 차에 대한 관심과 욕심이 없고 그냥 이동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친구들과 운동 모임이 있는데 외제 차를 갖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
요즘에는 우리나라 차들이 워낙 좋아 그렇지는 않지만 오래전에는 가오 때문인지 운동을 갈 때면 거의 외제차 가진 친구들이 운전을 했다.
내 쏘나타와 비교하여 승차감도 그렇고 그렇게 좋다는 걸 느끼지 못하겠고 타보고 싶다는 마음도 없다.
"옆집 말보다 내 집의 노쇠가 더 좋다"라는 옛말처럼 나도 친구들의 외제차보다 나의 국민차 소나타가 더 좋았다.
공무원은 국민차인 소나타가 제격이라고 하면서....
그런데 구청장님들의 차가 이전에는 소나타급이었는데 그랜저급으로 바뀐 것을 보면 이제 그랜저가 국민차가 되었나 보다.
정도 들고 편했던 쏘나타 내가 바꿀 생각을 안 하자 아내가 차를 주문해 버렸다.
그랜저 하이브리드, 여러 가지 기능이 있어 운전도 편하고 이전 쏘나타와 비교하면 연비도 높다.
기능이 하도 많아 3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도 알지 못해 사용하지 못하는 기능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다.
오늘 아침 운전하는데 네비의 안내 소리가 너무 작아 이 기능 저 기능 만지다가 "DRIVE MODE"를 눌러보았다.
물론 이 기능이 있다는 것을 이전에도 알았지만 이것이 정확히 어떤 기능을 하고 어떤 상태를 선택하면 에너지 효율이 좋은지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그러다 똑똑한 ChatGPT에 물어보았다.
(질문)
내 차가 현대 그랜저인데 드라이브 모드에 보니 'ECO', 'SPORT', 'MY DRIVE'가 있는데 'ECO'모드로 하면 연료가 덜 드나요?
(답변)
응, 확실히 덜 들어요!
- 그랜저에서 ECO 모드는 연료 절약에 맞춰 세팅된 모드예요
ECO 모드가 뭐가 달라지냐면
- 가속 반응이 부드럽게 바뀜 → 급가속 줄어듦
- 변속 시점이 빨라짐 → 낮은 RPM
- 에어컨. 엔진 출력도 절제 → 불필요한 연료 소모 감소
그래서 시내 주행, 정체 구간, 출퇴근용으로는 ECO가 가장 효율적이에요.
실제 그런지 오는 퇴근하는 길에 ECO 모드로 해보았다.
엑셀을 밟을 때 눈금이 왔다 갔다 하는 부분이 달라졌다.
3년이 다 돼가는 동안 이것을 몰랐다는 것이 좀 억울한 생각이 들면서 차를 파는 딜러님이 이런 기능을 좀 설명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차 이야기에 우리 가족 자동차들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
우리 가족이 처음 산 차는 프라이드 베타 중고였다.
상계동 공무원 아파트에 살았을 때이니 큰 아이가 유치원 다녔을 때인 것 같다.
그때는 왜 그렇게 자주 세차하고 여름 한낮 뙤약볕에서도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왁스 칠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고 차가 있는 사람들은 다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군대 주특기가 운전(610) 이었다.
자대에서는 운전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제대와 함께 그때는 따기 힘들었던 운전면허증을 받게 되었다.
군대서 몇 번 운전해 본 것이 모두라 운전 연수가 필요했다.
우리 직원 중에 운전직 직원에게 토요일 퇴근하고 부탁했다.
차량이 많지 않은 청평 댐 주변 도로에서 연수를 하기로 하고 갈 때는 직원분이 끌고 갔고 올 때는 내가 몰고 상계동까지 왔다.
그러다 그다음 토요일이 되었다.
아이들 둘을 뒤에 태우고 아내는 조수석에 앉았다.
상계동을 출발해서 종로까지 갔다 오기로 했다.
동부 간선도로를 타고 어찌어찌해서 복잡한 종로까지 나왔다.
그런데 비가 약간 내리면서 앞 유리에 흙이 튀어 잘 보이지 않는다.
유리를 닦아야 하는데 와이퍼를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겠다.
군대 후반기 교육 때 가평 야전수송 학교에서 운전을 배웠고 자대에는 가끔 훈련 때만 6.25 미군들이 쓰던 5톤 부교 차를 짧은 거리만 운전했는데 와이퍼는 작동을 해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설령 해보았다 하더라도 옛날 군용차와 승용차는 달랐을 것이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최대한 몸을 앞으로 숙여가며 운전을 했다.
종로 대로에서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다.
종각을 지나고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지금의 경희궁 공원을 지나쳐 강북삼성병원 골목으로 올라가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겨우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신문지로 앞 유리창을 닦고 다시 상계동 집으로 출발했다.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했다.
그럼에도 아내는 내가 운전을 잘하는 줄 알았단다.
물론 아빠가 진땀을 빼는지 알 리 없는 아이들은 처음 타보는 자가용차에 신나기만 했다.
차로 설악산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아마 그때가 여름휴가였을 것 같다.
지금처럼 네비가 있으면 길 찾기도 편했을 텐데, 그 시절에는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다니는 시절이었다.
물론 지금처럼 도로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다면 아무리 베테랑 운전자라도 지도만 보고 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 시절에는 몇 개 되지 않은 단순한 도로였다.
지도에서 어디로 어디로 가는 몇 번씩 길을 체크하고 출발했다.
아마도 양평이 나오기 이전인 것 같다.
도로 표지판이 왼쪽으로 '설악'이라고 보인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설악산이 유명하기는 유명한가 보다. 여기서부터 설악산 안내 표지판이 나오는 걸 보면.
한치의 의심도 없이 좌회전을 했다.
올라가는 길이 구불구불하고 경사가 심하다.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설악산이 험하기는 험한가 보다야.
어찌어찌해서 산 정상까지 올라가니 지금의 휴게소처럼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고 사람들이 쉬고 있다.
우리도 주차를 했다.
아이들은 멀리까지 바라보이는 풍경을 스케치북을 꺼내 그림을 그린다.
얼마 있다가 트럭 운전기사님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요. 설악산 가려면 얼마나 남았나요?
순간 아저씨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트렸다.
배를 움켜잡고 웃던 아저씨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설악산 가는 길이 아니고 양평 설악면이에요. 다시 왔던 길로 내려가서 직진해 가세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그 유명한 설악면 유명산이었다.
그 구불구불한 길을 어떻게 운전해 내려왔고 그 머나먼 설악산까지는 어떻게 운전해 찾아갔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어쨌든 우리 네 가족 그 해 여름휴가는 설악산에서 보냈다.
나는 지금도 그 표지판을 만든 도로공사가 실수 한 것이라 생각한다.
표지판에 설악이 아니라 설악면이라고 했어야 했다.
나와 같은 실수의 추억을 가진 사람들 꽤 많을 것 같다.
아내는 운전을 하지 못할 때라 나의 엉터리 같은 실수에도 운전에 있어서는 나를 존경할 정도로 잘하는 줄 알았단다.
그래서 누구나 자기가 못하는 것을 상대방이 하면 정말 대단해 보이는가 보다.
상계동 공무원 아파트는 아이들도 다 비슷하고 공무원들 형편도 비슷하여 몇 집이 너무나 잘 지냈었다.
중학교 선생님 가족, 국립재활원 연구원님 가족, 용산구청 직원 가족, 그리고 중구청에 근무했던 우리 가족, 모두가 외벌이이기도 했다.
그렇게 지내다 공무원들 일산과 분당에 아파트 특별분양으로 나는 일산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지금이야 지하철과 아파트 간 연계 마을버스도 잘 되어 있지만 입주 초기에는 그런 시스템이 전혀 없었다.
버스는 있었지만 시간이 많이 걸렸기에 멀지만 걸어오는 것이 차라리 편했다.
아내는 이 기회에 운전을 배우기로 작정했다.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차 시동을 걸어 대기하고 있다가 지하철까지 태워다 주었다.
퇴근하는 시간에 전화하면 도착할 시간을 계산해서 미리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도 운전 배우는 재미로 나를 출퇴근 시키는 것은 아주 큰 재미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아내에게 참 미안한 생각이다.
아내의 운전이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차를 세우라고 소리쳤다.
그때도 아내는 여전히 내가 운전을 참 잘하는 줄 알았단다.
우리 가족 차에 대한 추억과 설악산 여행
그렇게 우리 가족과 정이 들었던 프라이드 베타는 우리 가족을 떠났고 다음 우리 가족차는 대우 루비라 중고였다.
새 차에 가까운 중고였는데 문짝도 무겁고 차량도 무겁고 그래서 기름을 많이 먹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다.
나는 몰랐지만 공무원 박봉에 아내는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했고 대형 모닝글로리 점장을 하다 어찌어찌하여 공인중개사 시험공부를 하게 되었다.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밤 11시가 넘어 내가 차로 데리러 가 맨 뒷좌석에 앉아 아내의 공부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하나둘 다 일어서는데 맨 앞자리에 앉은 아내는 12시가 훌쩍 넘어 거의 한두 사람이 남았을 때 그제야 고개를 돌려 내가 왔음을 확인하고 일어섰다.
그리고 자격증을 따자마자 오픈을 했다.
그 이후 아내는 작은 차를 사서 끌고 다녔다.
나에게도 공무원 국민차 소나타를 사주었다.
물론 나는 서울시청이나 구청에 주차할 곳도 없고 지하철로 다니는 것이 편했기에 아주 가끔 운전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내 운전 실력은 형편없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직원들이 운전면허증조차 없었기에 서울시청에 경영기획실 있을 때 차로 출장 나가야 할 때가 많았는데 그때는 우리 팀 운전은 내가 했다.
우리 팀장님을 비롯해서 직원들은 나에게 운전을 잘한다고 했다.
한번은 버스만 좌회전 되는 곳에서 버스를 따라 좌회전했고 교통경찰에 걸렸다.
창문을 열고 머쓱하게 목덜미를 긁으며 웃었더니 차에 붙은 서울시 마크를 보신 경찰관 아저씨 마주 웃으며 경례로 멋지게 보내주셨다.
어쨌든 아내는 운전을 계속하고 다녔고 나는 가끔 아주 가끔 운전할 기회가 있었다.
이제 아내가 나보다 훨씬 더 운전에 능숙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여름휴가로 설악산 쪽으로 갈 때나 장거리 여행에는 이제 아들들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운전할 거지!"
내가 아내보다 운전이 서툴고 느리다는 것을 아이들도 알아버렸다.
이제 우리 가족이 여행을 갈 때면 아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아내의 운전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우리 가족 강원도로 놀러 갈 때였다.
지금이야 에어컨도 잘되고 선탠으로 자량 안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그때는 차 안이 다 보였고 문도 많이 열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아내는 운전 실력을 뽐내며 창문을 열고 여유롭게 경춘선 1차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차량을 지나쳐 가는 남자 운전자들이 우리 차를 보면서 손가락으로 V자 모양을 하고 지나간다.
아내가 말했다.
애들아~ 그래도 아직 엄마 미모가 되나 보다야~ 남자들이 V자 모양을 하고 지나가잖아~ ㅎㅎㅎ
아내의 들뜬 말에 작은 아들이 말했다.
엄마, 그게 아니고 1차로 가지 말고, 2차로로 가란 소리 아니야?
잠시 후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차선을 바꿨다.
작은 아들놈 말은 일부는 맞지만 일부는 분명히 틀렸다.
내가 아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아내의 미모는 뛰어나다.
이렇게 말하던 아이들도 이제 각자 자기 차를 갖고 운전을 한다.
결혼해서 한 돌이 지난 딸이 있는 작은아들이 말했다.
엄마 ##이(와이프) 차도 있고 ##(딸)는 차가 2대나(장난감) 있는데 나만 차가 없어!
얼마 전 아내가 새 차로 바꾸고 아들에게 차를 주었다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유아원에서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각자의 차가 필요하다)
1970년대 시골, 광주에서 녹동으로 가는 버스가 몇 시간에 한 대, 농산물을 싣고 광주로 올라가는 트럭이 긴 먼지를 날리면 신작로 길을 달리던 시절
나는 중학교 영어시간에 배우는 미국 사회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 차, 아빠 차, 아들 차, 딸 차 가족 모두가 각자 자기 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 이야기를 아프리카 등에서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늘 ChatGPT에게 하이브리드 차량 연료 절약 방법 물어봤다가 나의 차에 대한 추억을 회상할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첫댓글 지난 일은 늘 행복하게 연상되지요. 그 때가 인생에서 제일 좋으셨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