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기쁜 마음으로 보시하거나 초선정에 들었을 때 다음과 같은 마음-마음부수가 일어납니다.
마음, 접촉, 느낌, 지각, 의도, 일념, 생명 기능, 주의, 기울인 생각, 유지하는 생각, 결정, 정진, 희열, 열의, 믿음, 사띠(알아차림), 도덕적 부끄러움, 도덕적 두려움, 탐욕 없음, 성냄 없음, 중립, 정신적 몸의 경안, 마음의 경안, 정신적 몸의 가벼움, 마음의 가벼움, 정신적 몸의 유순함, 마음의 유순함, 정신적 몸의 적응성, 마음의 적응성, 정신적 몸의 능숙함, 마음의 능숙함, 정신적 몸의 올곧음, 마음의 올곧음, 지혜 기능.
인식과정의 자와나(속행) 심찰나에서 초당 수십억 번의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마음은 홀로 일어나서 사라지지 않고 위와 같은 마음 부수와 함께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그것을 보면서 무상, 고, 무아로 관찰하는 것이 위빳사나 수행입니다. 질문하신 무아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봅니다.
무아에 대한 5가지 지각
1) 무아(anattato, 아낫따또)
다섯 무더기 스스로 소유자, 거주자, 행위자, 경험하는 자, 결정하는 자.
가. 소유자 자아: 몸 무더기를 소유한다.
나. 거주자 자아: 몸 무더기가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고 매 삶(생)에서 항상 살아간다.
다. 행위자 자아: 모든 일과 기능을 실행한다.
라. 경험하는 자아: 대상을 느낀다.
마. 결정하는 자: 모든 일과 기능을 결정한다.
무아(아낫따)는 (소유자, 거주자, 행위자, 경험하는 자, 결정하는 자의)자아가 아닙니다.
2) 공으로(suññato, 순냐또)
모든 무더기는 소유자, 거주자, 행위자, 경험하는 자, 결정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공’인 것입니다. 이것은 (소유자, 거주자, 행위자, 경험하는 자, 결정하는 자)의 자아가 없습니다.
3) 이방인으로(parato, 빠라또)
무더기는 연기 인과관계 단계에서 언급한 것처럼 원인에 따라 일어납니다. 결심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바람을 따를 필요가 없듯이, 마찬가지로 무더기는 고통스런 느낌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오직 즐거운 느낌만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 아름답고 잘 생기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자기 자신의 바람을 따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바람을 따르지 않고 ‘늙지 마라, 병들지 마라, 죽지 마라’와 같은 명령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늘 친하지 않는 이방인인 것입니다.
4) 비었음으로(rittato, 릿따또)
붓다의 가르침 밖에서 사견을 지닌 사람들은 다섯 무더기가 영원한 상태, 아름다움, 행복, 자아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신, 물질과 다섯 무더기는 사견을 지닌 사람들이 믿고 있는 영원성, 아름다움, 행복, 자아가 항상 비어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항상 영원성, 아름다움, 행복, 자아라는 본질이 없고 비어있는 것입니다.
5) 헛된 것으로(tucchato, 뚯차또)
다섯 무더기, 정신, 물질에는 영원성, 아름다움, 행복, 자아라는 본질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섯 무더기, 정신, 물질은 영원성, 아름다움, 행복, 자아가 비어 있음으로 헛된 것입니다.
다른 식으로, 다섯 무더기, 정신, 물질이 영원성, 아름다움, 행복, 자아가 비어있더라도 궁극적 실재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단계에 존재합니다. 일어남의 단계, 머묾의 단계, 사라짐의 단계에 발생하는 궁극적 실재의 수명은 아주 짧기 때문에 궁극적 실재의 정신, 물질은 아주 짧은 시간에만 존재합니다. 아주 짧은 시간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헛된(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마음부수는 조건따라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매우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궁극적 정신-물질을 보고 ‘나의 의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 ‘나의 노력이 일어나고 사라진다’라고 개입할 틈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수행하려고 의도하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이 있는 사질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수행자는 수행하려고 의도하고 노력합니다. 이것은 전생에서든 현생에서든 조건(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생의 나의 노력, 의도, 현생의 나의 노력, 의도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위의 ‘마음-마음부수’란에 보면 의도와 정진(노력)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궁극적 실재(진리)라고 합니다. 모든 조건 지어진 법의 본성입니다.
두 종류의 진리, 관습적인 진리(sammuti·sacca, 삼무띠삿짜)와 궁극적 진리(paramattha·sacca, 빠라맛타삿짜)가 있습니다.
이 두 종류의 진리 사이를 구별해야 합니다. 관습적인 진리에 따르면 붓다, 빅쿠, 아버지, 어머니, 남자, 여자, 동물, 천신, 건물, 산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 진리에 따르면 붓다도 없고, 빅쿠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고, 동물도 없고, 천신도 없고, 건물도 없고, 산 등도 없습니다. 충분히 강한 위빳사나(vipassanā, 통찰) 지혜가 있으면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위빳사나 지혜로 붓다를 보면 다섯 무더기인 정신-물질을 볼 것입니다. 그것들은 무상, 고, 무아입니다. 자아가 없습니다. 초당 수십 억 번 일어나고 사라지는 궁극적 정신을 보고 ‘일어나라’, ‘일어나지 마라’, ‘사라져라’, ‘사라지지 말라’해도 자신의 지시에 따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것이라면 그것들이 자신의 바람에 따라 일어나거나 사라지거나 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아’인 것입니다. 궁극적 정신에 노력(정신), 의도 등이 포함됩니다.
다섯 무더기(물질, 느낌, 지각, 상카라[행], 식)와 그들의 원인을 조건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궁극적 측면에서는 조건 지어진 것이 조건 지어진 것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궁극적 정신-물질을 식별했을 때 자아에 대한 관념을 점차로 제거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안녕하고 행복하시길
담마다야다
첫댓글 감사합니다.반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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