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모르는 투수가 투수인가.’
올해 KBO리그를 보노라면, 이런 한탄이 절로 나올법하다. 경기마다 투수들이 볼넷을 남발하는 바람에 관전하는 이들의 짜증을 유발하고 경기 자체도 질질 늘어지게 한다. 툭하면 밀어내기로 점수를 내주는 투수가 허다하다. 볼넷은 이른바 ‘저질 경기’의 주범이다.
2021 KBO리그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앞서 언급한 대로 투수들의 볼넷 양산과 부상자 속출이다. 지난해부터 부쩍 늘어난 이 두 가지 부정적인 양상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스프링 트레이닝을 따뜻한 해외에서 하지 못한 탓도 있겠다. 예년과 다른 악조건 속에서 시즌 대비를 하다 보니 훈련량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리는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한심한 현상을 코로나 바이러스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
투수들의 제구력 저하와 주전 선수들의 줄 부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6월 29일 현재 KBO 리그는 전체 720게임 가운데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346게임(48%)을 소화했다. 그 경기에서 나온 볼넷은 모두 3058개로 경기당 8.84개꼴이다. 이는 지난해 경기당 7.38개꼴(5314개)보다 1개 이상 늘어난 수치다. 몸에 맞는 공(368개)까지 합치면 경기당 거의 10개꼴이다. 그만큼 경기가 축 늘어졌다고 봐야겠다.
구단별로 살펴보면, 리그 최하위 한화 이글스가 365개로 가장 많다. 경기당 5.2개꼴로 투수들의 제구력이 형편없다는 얘기가 되겠다. 한화는 지난해에도 609개로 SK(SSG전신)의 670개에 이어 두 번째로 볼넷을 많이 내줬는데 올해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됐다.
한화 구단뿐만 아니라 KIA 타이거즈(349개), SSG 랜더스(332개), 롯데 자이언츠(309개), NC 다이노스(304개) 등 5개 구단이 팀 볼넷 300개를 넘겼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거의 모든 구단이 팀 볼넷 600개 이상 기록할 판이다.
투수들의 심각한 제구력 불안에다 끊임없는 부상자 발생이 리그 질 저하를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해 KBO 등록 부상자 수는 10개 구단 합쳐 299명이었는데 올해도 그에 못지않게 주전들의 전열 이탈이 속출, 6월 28일 현재 89명에 이른다.
10개 구단 가운데 두산 베어스가 무려 16명이나 돼 2015년 이후 2020년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의 후유증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두산이 고전하는 이유가 해마다 FA 선수들의 이적에 따른 전력 손실도 손실이거니와 그나마 버텨준 주전들의 피로 누적도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징표다.
볼넷 남발과 줄부상 사태를 단순히 훈련 부족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선수 개인의 관리 소홀과 전반적인 자질 문제로 볼 수도 있다. 그런 가운데 예전의 일이지만 선동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주창했던 ‘전지훈련 3000개 투구론’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선동렬 전 대표팀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인 2010년에 옛일을 떠올리면서 ‘봄철 전지훈련 3000개 투구론’을 설파한 바 있다.
삼성은 김응룡 감독, 선동렬 수석코치 체제였던 2004년 시즌 초반에 10연패 수렁에 빠진 적이 있었다.
2004년 5월 5일 어린이날 대구 현대 유니콘스전부터 5월 18일 KIA 타이거즈전(대구)까지 속절없이 10연패를 했던 참담한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전지훈련 때 투수조련의 전권을 쥐고 있던 선동렬 코치는 감독의 용인 아래 투수들에게 3000개 투구를 지시했다. 그 효과가 뒤늦게 나타나기 시작, 결국 삼성은 초반 꼴찌 수모를 딛고 반등에 성공,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그해 팀 평균 자책점(3.76)은 1위였다.
선동렬 전 감독은 “삼성 시절에 전지훈련 때 3천 개 투구를 시킨 것은 젊은 선수들의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그랬다. 기량이 올라온 선수들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 2군에서 1군으로 올라가려면 어찌 됐든 제구력이 좋아야 한다.”면서 “실력 향상은 그냥 얻어지는 게 없다. 야구만 그런 게 아니다. 본인의 노력 필요하다는 얘기다. 젊은 선수들은 생각하면서 훈련을 해야 한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투수들의 전반적인 제구력 저하 현상에 대해 “투수들이 볼넷을 남발하는 것은 스트라이크를 못 던져서 그럴 수도 있겠고, 타자가 겁이 나서도 그럴 수도 있다.”고 전제, “코로나 때문에 전지훈련을 해외로 못 간 영향도 있겠지만 요즘 트렌드가 많이 던지게 되면 안 좋다는 인식도 있는 듯하다. 빅데이터로 가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젊은 선수들은 던지면서 모든 것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프로는 최고의 선수들이다. 프로의식을 가져야 한다. 팬들한테 좋은 투구를 보이려면 실망을 주어서는 안 된다.”면서 “사명감을 가지고 연습을 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은 훈련 부족이라고 본다. 팀마다 전력분석이 잘 돼 있어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혼합해서 투구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트랙맨 같은 좋은 기계도 있지 않은가. 선수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선수들의 자질 문제를 거론하는 데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한 그의 쓴소리를 선수들이나 지도자들이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투수들의 제구력 문제를 그대로 놓아둔다면 ‘저질리그’의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