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홍민은 1971년 장미라와 듀엣으로 발표한 김동주 작곡 '그리운 사람'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듬해인 1972년 번안곡 '고별'과 박시춘 작곡 '고향초'를 리메이크해 호응을 얻었다.
홍민은 이후 부드러운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앞세워 '석별', '공원 벤치', '망향' 등으로 1970년대를 풍미했다. 그는 한때 이수만, 장현과 함께 '마삼(馬三) 트리오'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홍민의 인기를 곁에서 지켜본 가수 김도향은 "그가 오빠 부대의 원조"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홍민은 2019년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버지가 어릴 적 월북했고, 아버지를 찾으러 어머니도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고 가족사를 공개하기도 했다.
홍민은 작년 7월에도 KBS 1TV '가요무대'에 출연해 기타를 메고 '행복의 나라로'를 불렀다. 그는 당시 이미 몸이 매우 좋지 않음에도 KBS 측에 출연을 자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홍민의 마지막 무대가 됐다.
고인은 충북 제천에서 라이브 카페를 운영했다가 건강이 악화하면서 사업을 접었다. 그는 2013년 제천시 홍보대사로도 위촉되기도 했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홍민은 중후한 목소리를 매력으로 조용한 포크를 구사했다"며 "1970년대 청년 문화를 리드한 가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평가했다.
홍민은 작년 11월 2일 대장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노을이 빨갛게 물든 부둣가
말없이 마주 앉은 사랑의 그림자
눈물이 눈물이 눈물이
뱃머리에 앉아 노래 부르며
손가락을 접어 맹세한 사람
즐거웠던 날의 짧았던 행복
기약 없는 약속 서로 나눌 때
바람에 날리는 검은 머리
지나간 옛사랑이 파도에 여울 지네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뱃머리에 앉아 노래 부르며
손가락을 접어 맹세한 사람
즐거웠던 날의 짧았던 행복
기약 없는 약속 서로 나눌 때
노을이 빨갛게 물든 부둣가
말없이 마주 앉은 사랑의 그림자
눈물이 눈물이 눈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