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이 오락가락 후 갑자기 추워진 어제밤, 잠실야구장 전광판 만한 삐까뻔쩍 네비
달린 친구놈 수입 새차를 빌려 혼자 구미에 다녀왔습니다, 잊어먹을 만하면 연락하는
후배놈 모친상에..
비와 바람 그리고 꽃과 나비가 그러하듯 후배의 어머니도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가신
거지요
삶과 죽음은 모두 자연의 한조각이지만 그 두 세상은 영원히 만날 수가 없기에 우리는
언제나 뒤늦게 아파하며 후회를 합니다
소설쓰던 최인호 선생은 어머니를 보내고는 '나이든 어머니의 고통을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손에 검정 칠을 한 거지 할망구처럼 꾸중하고 대했다..' 며 진저리치며 자학을
하기도 했지요
저를 포함한 이 시대 비정한 자식들의 죄를 대신 속죄하려는 듯이..
길사에는 안가봐도 흉사에는 꼭 가거라.. 마흔살 무렵 아버지로부터 들은 충고 이후
로는 어지간하면 거리의 원근이나 인간관계의 친소를 떠나 장례식장에는 꼭 참석을
합니다
더구나 평소 행실로 미루어 조문객이 그리 많지않을 것 같은 장례식장에는 더..
바람이 꽤 차가운 썰렁한 장례식장에는 후배가 외로이 서성대고, 가을이고 휴일이라
모두들 바쁘겠지요.. 민망했던지 안해도 될 말을 우물우물 덧붙입니다
십년전, 이 친구 대구 팔공산 유흥길에서 꽤 규모있는 식당을 했는데 삼년전쯤부터는
구미 변두리 작은 아파트 경비를 섭니다, 저보다 세살 아래..
조문객이 가을 기러기처럼 줄을 서는 옆 장례식장에 비해 아무도 없는 식장이 민망해
괜히 마시지도 않을 소주병을 따고 한시간 정도 앉았다 일어섭니다
이제 부모도 없도 마누라도 없고 딸 하나 남은 그 인간..
간다.. 정신 좀 채리면 부산 놀러 한번 오너라, 물론 지갑 빵빵 채워서.. 썰렁한 조크를
날리고 돌아섭니다
장례식장에서 차를 빼면서 보이는, 이쪽을 보는 백미러에 비친 사람의 모습은 늘 애잔
해 보입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생자필멸로 윤회하는 게 삶이라고 자위를 하지만 그
나 나나 우리는 만만찮은 속세의 세월과 정면으로 마주하며 살아낸 사람들이기에..
첫댓글 '길사에는 안 가더라도 흉사에는 꼭
가거라.'
구봉님 아버님의 말씀을 저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삶이 퍽퍽해 조문객이 많지 않을
후배를 격려하기 위해 먼 길
다녀 가신 구봉 님의 인간미가
느껴지는 글입니다
큰오빠가 60세에 돌아가셨을 때
한없이 울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를
찾아와 위로해 주시던 분들이 너무
고맙더라고요.
후배분 언젠가는 지갑 빵빵하게 채워서
구봉 선배님을 찾아 올 거예요.ㅎ
구봉 님, 글 잘 읽었습니다.
아버지 생전에 부족한 이 아들에게 성실 근면
검소 저축해라, 남과 화목하게 지내라는 말씀은
안하셨지만 길사흉사에 관한 가르침은 딱 한번
주셨는데 그게 지금보니 유언이었던 셈이지요
살면서 힘들 때 누군가 옆에 있어주는 걸로도
치유는 반이상입디다
후배 부모님의 상에 가게 되는 것은
그런대로 예의가 먼저이겠지만,
친구의 부음소리를 듣는 날이
정말 슬프지요.
구봉님은 젊은 나이입니다.
친구의 부음을 들을 때 되면,
삶이 허무해 지는 것입니다.
아주 건강하게 재미있게 사셔요.^^
선배님들 보시기에는 아직 구상유취지만
저도 이제 이거도 나이라고 주로 병으로
떠나는 친구 동기들 부음카톡이 심심찮게
울리는 연식에 이르럿습니다
더 나이를 먹어 주어진 수한을 다한 친구들
부고에는 정말 허무함을 느낄 거 같습니다
인생이란 여름날 풀잎 위의 이슬인 것을요..
일당백 하셨네요.
후배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장례식 끝나고 맘 추스르면
왠지 구봉 님 찾아 올것 같아요.
이 나이까지 눈도장 문상과 이런저런 조문을
꽤 다녔는데 문상객의 수는 상주가 어떻게
살아내었는지 간접척도도 됩디다
좀은 까칠하게 산 후배라 손님이 많지는 않겠다
짐작했는데 나무님 말씀처럼 제가 백명몫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진심의 위로가 되었
으면 좋겠습니다
환절기에는 결혼 소식도 많이 들리지만
부음 소식도 자주 들리군요.
후배님이 지갑 든든하게 채워서 구봉님 찾아가길 바랍니다.
어른들로부터 겨울로 드는 환절기에는 노인
들이 많이 떠난다는 말도 들으며 자랐는데
어느덧 저도 노인의 반열에 등극하는시기가
되니 그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해준 어머니와의 이별은
13년전 부모와 슬픈 이별을 한 제게도 참 가슴
아픈 비극이었습니다
아마도 저랑 고향이 같은 동갑내기의 모친상에 다녀오셨나 봅니다.
다녀오는 감회가 남달랐겠어요.
조문객도 별로 없는 까칠한 후배의 상가라...
인간이란 동물의 삶의 참 아련합니다, 눈에
잡힐 듯 선명한 삶의 흔적도 코에 숨이 끊어
지는 마지막 순간에는 그저 바닷가 모래
발자국이 파도에 씻겨나가듯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기에.. 마지막 순간 후회없도록 오늘 지금
을 열심히 살아내야겠다 귀로에 굳은 다짐을..
인간미가 스며있는 구봉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