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전절의 뜻은 종교 예식의 재생, 성전의 재봉헌을 뜻한다. 즉, 두가지 큰 뜻이다. 율법의 회복과 성전의 회복이다. 이 두가지는 함께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1 수전절은 메시아가 누구인지를 말한다
일년중에 가장 낮이 짧고 어두운 수전절에 예슈아께서 갈릴리에서부터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성전에 오셨다. 그때 유대인들이 유일하게 물어본 것은 메시아시냐는 질문이다. 그때 메시아신 증거로 보이신 것은 여호와의 일이었다.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일들을 했지만 그 당시 많은 종교 유대인들은 이미 인간의 전통으로 계명을 폐하여 여호와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행하고 있었다. 그러니 예슈아께서 하시는 일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예슈아께서는 이러한 당연한 진리안에 영생이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처럼 수전절은 메시아를 분별하게 하는 절기이다.(요10:22~28)
2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유월절이 거의 이르렀을 때 예슈아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 소와 양,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고 상을 엎으시며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책망하셨다. 이로써 유대인들은 이런 행동으로 메시아로써 무슨 표적을 보이겠느냐며 예슈아를 비웃었다. 이 행동은 성전을 몹시 사랑한 예슈아께서 오히려 비난을 받게 된 것을 말하고 있다. 예슈아께서 성전을 반대하거나 희생 제사를 반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경건치 않은 그들의 마음을 책망한 것이다. 그래서 이 성전을 헐면 3일만에 다시 일으키겠다고 자신의 부활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 부활은 거듭남을 상징한다. 우리의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성전은 더이상 성전이 될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이 성전일 때 건물인 성전도 거룩한 공간이 될 수 있는 것과 같다. (요2:13~19)
3 먼저 성전이 되라
예슈아께서 3일만에 성전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말로 인해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죽으실 때도 증인들이 나와 죽어 마땅하다고 정죄했다. 그럼에도 예슈아께서는 사람들에게 오해받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으셨다. 왜냐하면 예슈아께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실 필요도, 증언이 필요하지도 않으셨기 때문이다. (요2:20~25)
4 사람은 배를 위해 산다
예슈아께서 물고기 5마리와 빵 2덩이로 남자만 5천명 이상을 먹이고 12광주리를 남겼을 때 사람들은 예슈아께서 선지자라고 고백하며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
어쩌면 기적으로 너무 쉽게 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슈아께서는 거절했다. 왜냐하면 기적을 좇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의 배를 불리고자하는 자들의 왕이 될 필요는 없다. 이들이 예슈아를 3일동안 따라 다닌 것이 기적을 보기 위함은 아니라 말씀을 사모함으로 쫒아 다녔다. 그러나 기적 때문에 왕으로 세우려고 했던 그들의 마음 중심을 아시고 예슈아께서는 거절하셨다. 하나님은 결코 기적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진리를 사모하는 자들을 모으시고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기적과 표적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된다(요6:14,15)
5 사람의 영광을 구하다 고발당한다
예슈아께서는 사람의 인정도 구하지 않으시고 영광받기도 거절하셨다. 왜냐하면 사람들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나름 율법을 행한다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전통을 따르는게 율법을 준행하는 것 보다 더 옳고 중요했다. 왜냐하면 이들이 '부모에게 드릴 것이 성전에 예물이 되었으면 된다'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의 전통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신들의 교리와 다른 예슈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믿을 수 있겠는가? 예슈아께서는 그런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했다. 그러나 예슈아께서 이들에게 자신이 고발할거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한다. 오히려 이들이 신뢰하는 모세가 고발할거라고 말한다. 사실 이들은 전통을 지키면서 계명을 지키고 있다고 오해한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믿음에 대해 오해한다. 그렇다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우리를 고발하지 않을까 돌아봐야 한다. 이때나 지금이나 사람의 영광을 구하다가는 분명 우린 모세나 아브라함에게 고발당하고 말 것이다. (요5:41~47)
6 우리 몸은 성전이다. 더이상 내 것이 아니다
우리 몸은 더이상 내 것이 아니다. 나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여호와께서 예슈아의 피로 값을 지불하고 우리 몸을 사셨기 때문이다.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주님께서 투자하셨으니 그분의 영광이 되야할 것이다. 100배의 결실을 드려야한다. 우린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가 사형수대신 죽어주고 살수있는 기회를 주었다면 이젠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사람의 인정과 영광을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고 그분의 영광을 구해야 할 것이다(고전6:19,20)
7 성전에 메시아가 오시고 고대와 같이 거룩해진다
마지막 때 메시아께서 성전에 갑자기 나타나실거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는 언약의 사자이다. 즉,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들을 전하는 분이다. '사자'의 헬라어 뜻은 '말을 전하는 사람, 선지자, 제사장, 교사'등을 의미한다. 우리가 기다리는 예슈아 메시아는 언약을 더이상 지키지 않아도 되게 만드신 분이 아니라 그 언약으로 불법한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오시는 분이다. 그때에 '누가 감히 서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우리 성전은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해 하누카 절기를 보내야 한다. 즉 정결케하여 재봉헌해야 한다. 그 때에는 금을 연단하는 것처럼 표백하는 것처럼 깨끗하게 연단하고 공의로운 재물을 드리도록 하고 고대와 같이 거룩한 예식으로 회복되도록 할 것이다. 우리가 동의하든 하지 않든 역사는 반드시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말3:1~6)
8 우리의 몸인 성전을 물과 성령으로 거룩하게 씻으라
예슈아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물과 성령은 우리를 정결케한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예슈아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신다. 이제 요한의 시대가 아니라 예슈아의 시대가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기 위해 예슈아께서 주목 받으실 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고 고백해야한다. 진정한 진리 준행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진리를 위해 자신이 죽는다.(요3:5~30 막1:7,8)
9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예슈아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마리아 이방 여인에게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말씀하신다. 진리가 생명수이기 때문에 사실 같은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전이다. 우리의 몸인 성전이 정결해지는 것은 물과 성령이다 다시 말해, 진리와 영으로 예배해야 정결해진다. 이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같다. 예슈아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제 건물 성전이 필요없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육체인 성전이 정켤케 되는 법을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그래야 건물 성전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요4:13~24)
# 이제 성전을 거룩하게 하고 재봉헌 수전절 역사책 마카비서를 잠시 살펴보자
10 진리를 핍박하기 시작하다
여호와의 율법은 진리이다. 그리고 그분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라고 다윗은 고백하고 있다. 또한, 예슈아도 진리이시다. 그렇다면 예슈아의 가르침은 율법이나 계명에 대립해서는 안된다.
A=C, B=C 그렇다면 A=B 예슈아도 진리이고 율법도 진리이면
예슈아의 가르침은 율법에 대한 순종이어야 한다. 율법이 순종을 가르치는 것이 진리라면 그리고 예슈아의 가르침이 진리라면 예슈아께서 순종을 가르치셔야 둘 다 진리가 될 수 있다. 또는, 진정한 순종의 의미를 가르친다면 둘다 진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예슈아가 진리이기 때문에 율법을 안지켜도 된다면 율법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틀린 것이 된다. 과연 그럴까?(시119:142,151)
말씀이 진리이고 진리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대적은 진리를 핍박하고 끊임없이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만약 없앨 수 없다면 진리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 지키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순종에 대한 핍박의 역사 중 하나가 수전절이다.
헬라왕은 자신이 정복한 온 나라 백성이 하나가 되야한다고 하면서 조상의 관습을 버리라고 명령했다. 여기서 관습은 두가지이다. 계명을 폐하는 관습이 있고 계명을 지키기 위해 생긴 관습이 있다. 당연히 헬라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생긴 관습을 없애고싶어했다. 이방 사람들이 관습을 버리는 것은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 관습을 포기하는 것은 말씀이신 하나님을 버리는 중대한 문제였다.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1. 샤밧 금지
2 절기 금지
3 희생 제사 금지
4 돼지로 헬라신에게 제사할 것
5 율법 준행 금지, 율법서 소지 금지
6 할례 금지
7 돼지 고기 먹을 것
8 이중 하나라도 어기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
이러한 명령에 대해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기로 결단했고 거룩한 언약을 더랍히느니 차라리 죽는 것을 선택했다. 이러한 헬라왕의 핍박으로 약 8만명이 순교했다고 한다.
과연 성전 재봉헌의 역사가 다시 마지막 때 일어난다면 과연 우린 그들편에 서서 함께 환란을 당할까? 아니면 핍박하는 자들의 편에서 방관하고 있을까?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마카비1서1:57~64)
11 마따디아가 투쟁을 시작하다
마따디아는 제사장 가문이며 후에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마카비의 아버지이다.
어느날 마따디아가 사는 곳 근처에 이방신에게 제사하려고 헬라의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 여러명이 왔다 그리고 그들이 마따디아의 명성을 알고 있었으므로 왕에게 복종하면 왕의 벗이 되고 은,금과 많은 패물로 부귀영화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마따이아는 모두 다 떠난다 해도 자신의 집은 언약으로 살것이며 율법과 규례를 버리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는 왕의 명령에 결코 복종하지 않을거라고 선포한다. 이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할 때 이렇게 외친다. "율법에 열심이며 언약을 지지하는 자는 나와 함께 가자" 당신은 마따디아의 부름에 응답하겠는가? 아니면 헬라왕의 편에 서겠는가? (마카비1서1:18~27)
12 일곱째 막내 아들이 순교할 때 신앙고백
일곱 아들중 여섯 아들이 모두 잔인하게 고문당하다가 순교한 후 이제 마지막 소년이 남았다. 아직 작은 소년을 보고 헬라왕은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막내만을 살리고 싶었다. 또한 아직 소년인 막내만은 헬라왕의 자존심을 세워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부자가 되게 하고 관직을 주고 행복한 삶을 주겠다고 맹세하며 그의 엄마에게 아들을 잘 설득해서 하나라도 살리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엄마는 히브리어로 부끄럽지 않게 죽으면 하나님의 자비로 다시 모두 부활하여 만날 것이라고 조언한다. 엄마의 조언이 끝나기도 전에 막내는 결코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것이며 모세의 율법에만 순종할거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온갖 악행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고문하여 죽이는 왕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결코 피하지 못할 거라고 책망한다. 막내는 자기 민족은 죄로 잠깐 징계를 받지만 결국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다시 입을거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신앙 고백이 소년의 입에서 나왔다. 크다고 해봐야 청소년의 고백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주님앞에 성장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겠다. 이로 인해 안티오코스는 극도로 화가 나 더욱 가혹하게 소년을 고문하여 죽였다. 마지막으로 일곱 아들의 엄마도 순교했다. 막내의 고백 뿐 아니라 마카비서에 나오는 9명의 순교자의 고백이 모두 놀랍도록 은혜롭고 생각하게 한다(마카비2서8:24~41)
13 수전절은 전쟁 중에 얻은 승리의 역사이다
순교자들의 행렬이 있은 후 다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었고 마따디아의 아들 마카비가 일어나 전쟁에서 승리하기 시작했다. 유다와 그 형제들이 전쟁에서 승리하자 바로 성전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께 다시 봉헌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시온 산으로 올라갔을 때 황폐하고 더럽혀지고 불에 탄 성전을 보았다. 이것을 보고 이들은 옷을 찟으며 재를 몸에 뿌리며 대성통곡했다. 나팔을 불며 하늘을 향해 부르짖었다. 율법에 충실한 흠없는 제자장들을 택하여 성전을 정결하게 할 때 나머지 군사들은 계속 전쟁하고 있었다. 우리는 평안할 때가 아닌 어둠과 전쟁하면서 여호와의 것을 회복해야한다. 승리는 전쟁중에 얻는 것이고 전쟁해야 승리를 지켜낼 수 있다(마카비1서4:36~45)
14 키슬레브 월 25일에 이방인의 치욕이 제거되었다
이들은 이방인들이 재단을 더럽혔던 바로 그날 여호와 하나님께 다시 드려야만 했다. 이날이어야만 했고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가능하게 하셨다. 8일동안 제단 봉헌식을 기쁘게 번재로 드렸고 성전 앞에 황금 왕관과 작은 방패로 장식했다.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를 찬양하며 전쟁으로 여호와의 법과 여호와의 성전을 지키기로 결의했다. 바로 이날 이방인의 치욕이 제거되었다. 키스레브월 25일을 항상 수전절로 지키기로 결정했고 예슈아께서도 지키신 것이다. (마카비1서4:52~60)
15 안티오코스의 비참한 최후
안티오코스는 니카노르가 유대인에게 패배한 것을 알고 화가 났다. 지금까지 자신이 패배한 것에 대한 화풀이로 예루살렘을 유대인의 공동묘지로 만들리라 작정하고 예루살렘까지 멈추지 말고 병거를 몰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장에 극심한 고통을 주었다. 수많은 성도들의 창자를 고문한 그에게 이러한 형벌은 매우 정당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오만함을 멈추지 않고 더 빨리 가라고 명령했고 급기야 병거에서 떨어졌다. 파도를 향해 명령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의 오만함이 땅바닥에 떨어져 들것에 실려감으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났다. 이러한 불경건한 자의 몸에 구더기가 들끓고 살이 썩어들어가자 악취로 아무도 그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고 본인도 그 악취를 참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별도 딸 수 있다고 생각한 그가 깨닫기 시작했다. 자신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임을 말이다. 결국 수많은 후회와 함께 그는 비참하게 죽었다(마카비2서9:3~12)
# 수전절(하누카)은 빛의 절기로 알려져 있다 성전에 다시 불을 밝힌 날이기도 하고 실제 기름에 대한 기적과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꼭 키슬레브월 25일에 재봉헌을 해야 했던 마카비와 그 형제들은 성전을 아무리 둘러봐도 더럽혀지지 않은 정결한 기름은 오직 하루치 밖에 없었다. 또다시 정결한 기름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날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하루치 기름을 메노라에 붓고 봉헌 예식을 드렸다. 그런데 다시 정결한 기름이 준비되기 까지 8일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하누키아는 초를 8개를 꽂고, 가운데 초는 종이라는 의미로 '샤마시'라 부르며 샤마시 초로 오른쪽 초부터 하나씩 켜가며 8일동안 메노라에 불을 밝히며 이 날을 기념한다.
16 토라 공부가 금지되고 토라 스크롤을 가지고만 있어도 사형을 받던 핍박 때문에 유대인들은 토라를 종이에 써서 읽다가 그리스 군사가 오면 팽이속에 넣고 팽이를 돌리는 척하며 핍박의 시대를 지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수전절에는 팽이 돌리는 게임을 한다. 일반적인 팽이와 다르게 팽이 위에는 4개의 문자가 써있다.
전통적으로 팽이에 נ(Nun, 눈), ג(Gimmel, 김멜), ה(Hay, 헤이), ש(Shin, 신)이라는 네 글자가 적혀있다.
이 글자들은 ‘nes gadol haya sham’의 앞 글자로
‘거기에 큰 기적이 있었다’라는 의미다.
이스라엘에서는 1948년 정부가 수립된 이후 ‘거기’라는 뜻의 샴(sham) 대신 ‘여기’라는 단어 פ(Pey, 페이)로 바꿔 사용한다. ‘여기(이스라엘)에 큰 기적이 있었다’라는 뜻으로 말이다.
하누카 - https://naver.me/GsOs2Qr8 참조
# 수전절은 기름에 관련된 절기이기 때문에 이날은 기름에 튀긴 도넛을 먹고 감자전을 먹는다. 또한, 감자전과 함께 치즈를 먹기도 한다.
17 또 한번 그런 핍박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한 유대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그 유대인은 “그러면 우리들의 달력에는 축제일이 하나 더 생길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바로가 유대인을 핍박해서 유월절이 생겼고, 하만이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죽이려다가 부림절이 생겼다. 그리고 안티오코스가 이스라엘을 죽이려고 하다가 수전절, 하누카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들을 죽이려는 세력이 어떠한 힘과 권력으로 위협한다고 해도 자신들은 하나님이 또 하나의 축제일을 준비시켜 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이기게 될 거라고 말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아무리 기세등등하고 두려워할 만하며 마치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우리를 몰아친다 해도,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의 축제일을 준비해주시는 과정 가운데 한 부분이다. 하늘에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하누카 - https://naver.me/GsOs2Qr8 참조
18 적그리스도를 보내시는 이유
분명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불법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이며 심지어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내세울 것이다. 또한 능력과 표적과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 물론 사단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적그리스도의 활동을 허용하시는 이유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믿지 않는 자들을 함께 심판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진리인 율법, 토라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적그리스도에게 분명 미혹될 것이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마지막 때에 대한 경고이다(살후2:3~12)
19 구원을 받아 영광을 얻게 하심이다
바울은 적그리스도의 활동에 대해 경고한 후 구원에 대해 설명하고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처음이란 태초의 의미도 있다. 마치 구원 예정론처럼 한글 성경은 번역했지만 9개의 다른 영어성경과 유대인 영어성경은 사람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구원의 방법을 택하신 것으로 번역하고 있다. 즉,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여기서 무엇이 보이는가? 그렇다. 물과 성령이 보인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진리와 영으로 예배해야 영생에 이를 수 있으며 또 다시 바울이 성령과 진리로 구원에 이르게 한 것은 태초에 정해진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거룩함으로 구원받게 하시려고 복음으로 우리를 부르셨고 예슈아께서 얻으신 순종의 영광을 얻게 하시는 것이다. (살후2:13,14)
20 태초부터 들은 것이 내 안에 있는가?
요한은 마지막 때 수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때가 마지막 때였다면 지금은 더욱 마지막 때로 어쩌면 적그리스도의 영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적그리스도는 예슈아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진리이신, 율법을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예슈아를 거절하는 자들이 적그리스도이다. 왜냐하면 불법한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어려운가? 그래서 요한은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글 성경은 그러므로를 빼버리고 번역했다. 그러나 원문은 결론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안에 있게 하라 그러면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할 수 있다. 처음은 태초부터이다. 태초부터 들어왔던 성령과 진리에 관한 아버지의 말씀이 내 안에 있을 때 진리인 계명이 내 안에 있을 때, 언약의 말씀들, 진리인 모든 율법이 내 삶에 있을 때 그리고 준행할 때 우린 아들과 아버지가 있을 뿐 아니라 하나가 된다. (요한1서2:1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