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의 정명과 현대사회 한국의 정명
철학과 2022101243 서은서
공자에서 맹자로 전해진 사상 중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정명’이었다. 공자의 정명은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기의 명분에 해당하는 덕을 실현함으로써 올바른 질서가 이루어지는 정명의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군군신신부부자자’라는 말은 이러한 정명을 조금 더 자세히 나타내준다. 이는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를 의미하는데 ‘~답게’라는 말은 곧 각 위치에 맞게 정해진 해야 할 일이 있고 이러한 일을 행해야 비로소 그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의 정명은 어떠한가? 나는 ‘~답게’라는 말에 늘 의문을 품어왔다. 여성답게, 남성답게, 학생답게, 어른답게, 한국인답게, 오늘날의 ‘~답게’라는 말은 공자의 정명처럼 이러한 직분을 가졌을 때 행해야 하는 명분으로서의 행위를 일컫는 것이 아닌 그저 어떤 사회적 계급의 틀을 형성하여 그 틀 밖으로 벗어난 사람들을 ‘~답지 못하다.’ 로 일컫기 위한 말로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학생답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학생답다’는 교복을 바르게 입고 치마를 줄이지 않으며 수업 시간엔 자지 않고, 딴짓하지 않으며, 지각하지 않고 노는 시간보다 공부하는 시간이 많음을 의미한다. 어른들은 학생들이 ‘학생답지 않은 것’을 하였을 때 ‘학생이 공부나 할 것이지’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학생은 용모가 단정히 공부만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용되는 ‘학생답다’라는 말에는 사회적으로 부여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군자는 군자답게 해야 군자라 불릴 수 있다.’라는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학생’이라는 집단의 특징을 뽑아놓고 그 외에는 모두 ‘학생답지 않다’라고 칭하는, 학생이라는 집단에 통일성을 부과하는 것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배움을 받는 자로서의 예의를 가르치기 위해 시작된 사고일 수도 있고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것을 ‘보편적인 학생의 틀’로 잡아놓고서 이 외의 학생들을 ‘학생이 아니다’라고 칭함으로써 각자의 개성을 배제한다는 점이다.
‘학생답다’라는 말 외에도 이러한 특징은 찾아볼 수 있다. ‘어른답다’라는 말을 듣고 바로 떠오르는 것들을 정리하자면 ‘아이처럼 떼쓰지 않고 본인의 일을 꿋꿋이 하는 사람, 경제적으로 독립한 사람, 모두에게 인자하고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 자신의 미래를 척척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 그러한 기준으로 나 자신을 보았을 때,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사회적 틀로 바라보았을 때의 어른과 나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가고 그러한 어른의 틀에 들어가려 버둥거린다. 올바른 어른의 상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 바르다고 여겨지는 어른의 상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바른 것인지는 잘 모른 채 말이다.
정명에서 이러한 얘기를 끌어온 이유는 한 사회적 계층의 특징을 잡고 그 계층에 통일성을 부과하는 것이 아닌, 권력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가질 자격이 있도록 행위해야 함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최근 등교하면서 한 라디오를 듣는데 거기서 정치가가 한 발언이 꽤 충격적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가까운 미래를 챙길 필요가 있다. 그보다 과거는 모르겠고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겉으로 보기엔 좋은 말인 것처럼 보이나, 이 말은 4.3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나온 말이라는 점에 중점을 둬야 한다. 4.3은 오래된 역사이니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아야 하며 이 사건에 대해 과도하게 신경을 쓰는 것은 문제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느껴졌다. 정치가는 국민을 위해 정치해야 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권력에 의해 무차별하게 희생당한 국민들을 바라보지 않고 그저 앞으로의 미래만을 바라보고자 하는 발언에 나는 이 사람이 정치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묻어두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정치가답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앞서 언급한 것들을 통해 어떤 사회적 계층에 특징을 부과하여 통일성을 잡는 것, 개개인의 개성과 특징을 지우는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닌, 각자가 서 있는 위치에 맞게 각자의 최선으로 살아가야 함을 언급하고 싶다.
첫댓글 정명론은 올바른 이름 붙이기와 이름에 걸맞게 하기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대상을 부를 때는 그것에 맞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것은 평가와 관련 있습니다. 권력자라고 해서 그의 행동 등 사실과 동떨어진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지요. 이에 비해 이름에 걸맞게 하기는 실천과 관련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을 인지하면 그것에 맞도록 실천하여야 하는 것이지요. 게시물에서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통일성"으로 표시하면서 부정적으로 서술한 듯했는데, 결론으로는 이름에 걸맞게 사는 데로 귀결했네요. 통일성은 그런 이름을 가진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일종의 정체성에 주목한 것으로 보이는군요. 주체의 입장에서 타자의 차이를 무시하는 듯한 이러한 통일성은 부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디테일한 차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것을 그것이게끔 하는 정체성이 있지요. 정명론의 대상은 이러한 정체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