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사회와 오늘날 현대사회의 죽음에 대한 분석 및 비교
2022101254-철학과-현도환
인간이라는 존재는 유한한 존재이기에 영원한 이별인 ‘죽음’을 준비해야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죽음 그 자체에 대한 많은 의견들이 존재한다. 오늘은 중국고대사회 대표 사상들인 불교, 도가, 유가를 통해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죽음과 오늘날 한국사회 살아가는 사람들의 죽음을 비교하고자 한다.
불교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은 다시 삶을 처음부터 돌아가는 ‘윤회’라고 표현한다. 삶을 다시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좋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불교에서 인간의 삶이란 고통 그 자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에서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 얻는 행복보다 삶을 영위하면서 느끼는 고통의 연속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불교에서는 고통의 연속인 삶에서 벗어나 더 이상 윤회의 삶을 살지 않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죽음’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불교에서는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후 열반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해탈이란 정신적인 자유를 의미한다. 즉, 욕망의 마음을 버리고 편한 마음을 갖으며 도를 쌓는 것이다. 이렇게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면 더 이상 윤회의 삶을 살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도가에서는 ‘죽음’이란 두려운 것이 아니며, 그저 자연의 이치에 따라 흘러가는 물과 같다고 표현한다. ‘무위자연’을 말하는 것이다. 무위자연이란 인위적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함으로써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도가에서의 죽음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죽은 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죽은 사람에 대해 슬퍼하여 곡소리를 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죽음을 통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왜 슬퍼하고 곡소리를 내는 것인지 오히려 남아있는 사람들은 자연으로 돌아간 것에 행복해야한다고 말한다.
유교에서는 ‘죽음’을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선악으로 판단하지 않고 부모가 돌아가신 후 자식들이 해야하는 것들을 말한다. 자식들은 부모가 돌아가신 뒤 부모를 애도하는 마음을 갖고 제사를 지내며 3년상을 치른다는 등 부모가 죽은 뒤에도 부모를 애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진정한 ‘효(孝)’를 달성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유교에서는 효(孝)와 충(忠)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이러한 효와 충은 부모나 자신이 모시는 왕이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닌 죽은 후에도 지속적으로 해야 진정한 효와 충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본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죽음’에 대해 다양한 입장들이 존재한다. 그 중 대표적인 죽음에 대한 입장을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아직 경험해보지도 않은 죽음에 대해 왜 걱정하냐?”와 같은 경험주의와 비슷한 입장이 대다수이다. 인간은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살아있는 인간과 연결될 수 없으며, 죽음을 경험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고대사회에서의 불교는 죽음이라는 것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여 열반의 상태가 되면 고통의 연속인 삶이라는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제공이라고 볼 수 있다. 도가의 죽음은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유교의 죽음은 선과 악이 아닌 자신의 부모나 왕에게 얼마나 효와 충을 다하는지를 의미한다. 오늘날의 죽음과 비교하면 불교는 죽음을 윤회를 끊을 수 있는 기회라 보지만 오늘날의 죽음은 아직 경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윤회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또한 도가의 죽음과 비교해보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슬퍼하고 곡소리를 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유교가 대부분 차지해 있어 사람이 죽을 때 곡소리를 내어 그 사람을 추모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금방 말했다시피 우리나라는 유교가 대부분 차지해있는 나라로써 거의 다른 것은 없지만 과거에 비해 장례풍습 등이 짧아지고 과거보다 효와 충에 대한 인식이 낮아졌다고 생각한다. 위에서는 말하지는 않았지만 오늘날의 죽음 중에서는 사회적 죽음, 정신적 죽음 등으로 오늘날 한국사회의 죽음은 보다 넓은 의미를 가진 죽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첫댓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인간의 자기 인식은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과 그것을 해결하려는 많은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종교만이 아니라 철학에서도 죽음의 문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하지만 종교와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됩니다. 왜냐하면 종교가 죽음 이후를 긍정하는 데 비해, 철학은 죽음 이전에서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결할 것인가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불교와 불교철학, 도교와 도가, 유교와 유가를 구분해야 합니다. 불교와 유교, 도교는 종교, 불교철학과 도가, 그리고 유가는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종교로서의 불교와 유교, 도교에서 극락과 저승을 긍정했다고 해서 각각의 철학에서도 그러한 논리로 죽음을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예컨대 불교 윤회는 인간이 어떻게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유전연기와 어떻게 죽음을 해결할 것인가를 설명하는 환멸연기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윤회가 곧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불교철학에서 죽음이란 윤회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면 한 번 뿐인 이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으로 설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