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들것네님의 답글을 읽다가 월남전 참전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나는 월남전 참전 용사 가 있어서...
제가 2017년 5060에 처음 들어와 썼던 글 중의 하나 '보급관 지상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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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 입은 소년이 영내를 어슬렁거린다 싶으면 어김없이 그였다. 얼굴 동안에 키가 작아 멀리서 보면 소년같아 보이던 보급관 지상사님.
월남전 참전 용사였는데, 수송병과다 보니 전투에 관한 무용담은 하나도 없고, 주로 미군 군사식량인 레이션을 들고 다니며 오입한 무용담이 더 많던 그 분.
말주변이 없어서 했던 말 또 하고... 연하의 수송부대장(소령)을 만나면 입이 얼어붙던 어버버 하시던 그 분.
두주불사에다가 새로 배운 지르박에 푹 빠져 부대에 출근하면 어제 만난 파트너 이야기로 아침을 웃게 만들던 그 분.
나보다 스무 살 연상의 아저씨임에도 친구 같은 느낌을 들게 하던 그 분.
“어이~ 영감~” 하면 나를 부르는 소리다.
수송부대에서 행정일을 하던 나의 주 보직은 경리계와 정훈병이었는데, 지상사님은 꼭 나를 영감으로 불렀다.
스물다섯에 군에 입대를 하고 대머리 조짐도 확연하던 터라 일반 사병들 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나를 놀리는 호칭이었다.
“넵! 부르셨습니까. 보급관님? 무슨 하명하실 일이라도...?”
같은 행정반에 근무하다보니 서로 오고가는 말에 정이 진득했다.
“필요한데가 있어서 그런데 내 재형저축 대출 좀 하자~”
“또 술 빚 갚으시려고요?”
“일루 온다. 2초!”
총알같이 달려서 부동자세로 그의 앞에 선다.
귀를 잡아 당겨서는...
“니 우에 알았노...?”
킬킬대며 마주보고 웃었다.
찝차를 한대 내어서는 은행으로 달렸다. 지상사님은 골치 아픈 서류 작성이라면 딱 질색이다. 얼른 대출 받고나서는 고맙다고 짜장면을 한 그릇 사주신다네. 바다 가까운 부산 수영의 지상사님 집으로 달렸다.
운전병과 함께 미리 시켜 불어터진 짜장면을 먹으면서 둘러보니 살림이 궁색하기 그지없다.
단칸 셋방에 중학생인 딸과 초등학생인 아들과 아내, 네 식구가 살다보니 두서가 없이 살림들이 어질어져 있었다.
재산을 불릴 재주는 없다하더라도, 명색이 월남 참전 용사요, 대한의 자랑스러운 직업군인 살림치고는 아무래도 너무 궁색해 보였다.
같은 상사인 알뜰살뜰한 인사계님의 집안 형편과는 격이 다르게 느껴졌다. 인사계님은 이미 고속터미널 부근 아담한 집을 한 채 장만한데다가, 학력 좋은 사병이 들어오면 가끔 집에 데려가 아이들 과외도 시키고... 눈치 빠르게 재산을 축적한데 비해 보급관 지상사님은 미래에 대한 아무 대비 없이 사는 사람 같아 보였다.
물론 인간적인 면에 있어서는 인사계님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분이긴 했지만...
그러던 어느 날.
“어이~ 영감~”
“넵! 보급관님. 불러 계시옵니까.”
“어데 돈 3백만 원 구할 데 없을까?”
“네??? 갑자기 무슨...?”
사연인 즉,
현재 살고 있는 집 가까이 잘 아는 사람이 집을 팔려고 하는데 그 집을 사고 싶다는 말씀이었다.
“니도 알다시피 나도 내 명의로 된 집 하나 갖고 싶다.”
그날은 평소와는 달리 자못 심각해 보였다. 이미 여러군데 손을 내밀어 봤을 텐데, 평소의 생활태도나 신용으로 볼 때 다 거절당했음이 분명해 보였다. 밑져야 본전, 나에게 툭 던져본 말이었다. 행정반에 있는 선임하사들이랑 행정병들이 키득대는 걸 보면서 뭔가 수단을 강구해보고 싶었다.
“근데...집값이 얼만데요? 삼백으로 집을 사요?”
“그 집이 방이 여러 개야. 터도 넓고. 주인 사는 방 하나 빼고 다 세를 놓았는데, 세 빼고 오백이면 판단다. 내가 전세 보증금 빼고 가진 돈 모으면 이백쯤 되니 삼백만 있으마 되는데... 저 인간들이 내 말을 안 듣네. 인사계 저눔~ 돈 있는 줄 뻔히 아는데 꿈쩍도 안한다. ㅎㅎㅎ”
“금세 파신데요?”
“아니... 아직 시간 여유는 좀 있어. 내가 산다면 기다려 줄 거야.”
“그라마...저 잠시만 외출 좀 하고 올께요. 기다려보세요.”
“응? 뭔 방법이 있는 거야?”
내라고 특별한 방법이 있을 리가 있나. ㅎㅎ
행정병인데다 경리계라 부대장이나 장교, 상사들 개인 은행 심부름을 도맡아서 하다 보니 은행에서 기다리는 시간동안 얼핏 살펴본 안내장에 적금 기간 중 4분의 1만 적금을 들면 적금액 전액을 대출해준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 당시야 나도 대학 졸업하고 바로 군에 간 터라 세상 물정을 알 리가 없었다. 얼른 안면 있는 은행직원에게 꼬치꼬치 물어보니 직업 군인이면 신분보장이 되어 가능하다는 확답을 받았다.
일 년 만기로 삼백 적금을 들고 삼개월 불입하면 전액을 대출해준단다.
제대하던 날.
보급관 지상사님께도 제대 신고를 했다.
“충성! 병장 ***, 보급관님 보살핌 덕분에 군무 무사히 마치고 무사히 제대함을 신고합니다!”
보급관 지상사님이 주섬주섬 꾸러미 하나를 내미셨다.
“이기 뭡니까?”
“니가 알아서 챙기가라카이 아무것도 안 챙겨서 내가 샌삐 군화 하나 챙겼다. 예비군 훈련할 때 신어라고마~ 잘 가래이.”
“고맙심다. 잘 신겠습니다. 충성!'
“그라고 내 빚 갚느라고 요샌 술도 안 묵지만, 니 부산오마 꼭 연락해래이. 술 한잔 사꾸마~”
서로 울컥한 포옹 한번하고 돌아섰다.
85년에 제대하고 88년 올림픽이 한창 나라를 뜨겁게 달구던 때, 마침 부산 출장길에 그 부대를 찾았다.
인사계며 선임하사며 모두 다 그대로 계셨다. 보급관 지상사님만 빼고...
거창 고향으로 돌아가서 돼지 키우며 살고 싶다던 동갑 이중사가 보급관 지상사님의 소식을 전했다.
"안 그래도 지상사님이 니 오마 꼭 연락하라카던데... 금방 가야된다카이 아쉽네.“
"와요? 뭐 빚 받을 거 있다캅디까?
“지상사, 이제 부자됐어. 그때 산 집이 집터도 너른데다가 부동산 값이 올림픽 땜에 갑자기 하늘로 오르다보니 억대 부자가 됐어. 게다가 수송부대 근무경력 인정 받아서 전역하자마자 바로 개인택시 면허 받고... 이제 개인택시 모는 사장님이야. 지사장님~ ㅎㅎ”
..
..
멀리 부산 사시는 부자 지사장님~
벌써 은퇴하신지 오래 되셨겠네요.
저한테 사주시기로 한 술 빚 갚기 전에는 어데 아푸시지 말고 건강하게 잘 기다려 주이소~
좀 늦더라도 언젠가는 꼭 그 빚 받으로 가께요~~
단풍님의 글을 읽다가...
“어이~ 영감~” 하며 불러주시던 보급관 지상사님이 오늘 참 보고 싶어집니다. ㅎ
첫댓글 수영이란 지명이나오고 부근에 친정이 ㅋ그래요 그곳
벡스코 센텀 억수로 좋아졌지요 모두가 부자대열ㅋ
부산의 발전이 워낙 빨라 이젠 부산에 가도 길 잃을 것 같습니다. ㅎ
수영 부근도 엄청 바뀌었겠지요?
하여튼 남자들 모이면 군대얘기안하면 시체라더니 이글도 쏠쏠히 재미있습니다. 저도 74년겨울 군대가 76년가을 제대하기까지 원주하사관학교에서 28주훈련받고 거여동 특전사령부에서 보충대 내무반장하며 일반하사로 근무해 군에 대한 이야기는 책으로 한권이지만 오늘은 참겠습니다. 더 세월가기 전에 지싱사님 한번 만나러 가보세요.
네. 살아계신다면 꼭 만나뵙고 싶습니다.
마음자리 님 글 넘 재미있고
감동적이라 순식간에 읽었습니다.
그리고 지상사님 이야기는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감동이네요.
집값이 뛰어 부자가 되셨다니
마음자리 님께서 한몫을 하셨네요.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제가 살며 생각없이 한 일이 잘 한 일이 된 몇 안되는 경우입니다. ㅎㅎ
언젠가 다시 한번 뵐 기회가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가끔 글을 볼때마다 바르게 사시는 분이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글을 보니 맞구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
사는 일이야 다 비슷비슷하겠지요. 쑥스럽습니다. ㅎ
아!
군인 생활은
가족으로 살았던 저에게도
깊은 추억이 그립습니다.
인정 많고 의리 있고
마음자리님 지상사님 꼭 만나서
회포 푸는 날 기다려집니다.
조윤정님이 군인가족이셨군요.
나라를 위해 산다는 보람과 긍지, 그러나 자주 거처를 옮겨야하는 불편...
돋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애 쓰시는 군인과 그 가족에게 다시 감사드립니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은 김상사가
이타심 많고 순수한 청년 만난건
대박였어요.
러더스 다이제스트에 나와야하는 이야기같아서요.
저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맘 님^^
제가 복이 많아 멀리 떨어져 살지만
아주 멋진 이웃들을 여기 5060에서
다 만나고 있습니다.
글 속에 담긴 마음들이 참 아름다운 분들이지요.
나무랑님이 그런 분이십니다.
글을 쓰신 마음자리님의 모습입니다.
그 지상사님은 만남의 인연이 있는 분이네요.
학력이나 가진 것 자랑은 안되지만,
인연에서 만난 좋은 분은
얼마든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훈훈한 세상 이야기 입니다.
언젠가 만나지는 분이었으면 합니다.
편하게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수필방이 있어 참 좋습니다.
잘 지켜주셔서 언제나 등이 든든합니다.
여성인데도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가 왜 이리 재밌는지 질리지도 않네요~~~
ㅎㅎ 워낙 에피소드가 나오기 좋은 환경입니다. 군대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