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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1: 39 돌을 옮겨 놓으라. - 요 11: 43 큰 소리로
요 11: 39 돌을 옮겨 놓으라. -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
주님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까지 기적으로 나타내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심은 사람의 일을 하게 하심이다.
1]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부활시키심에 있어서, 거기 모인 사람들더러 그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라고 하신다(44절 참조). 그것은,
(1)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일에도, 인간이 할 일은 인간이 해야 한다는 진리를 여기서도 가르치고 있다.
(2) 거기 모여 있는 인간들이 예수님의 이적 역사(異蹟役事)에 수종들므로, 그들은 그 이적의 놀라운 사실을 좀 더 인상 깊이, 또는 밀접하게 체험하게 되어 확신에 이르게 된다.
2]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이것은 마르다의 불신앙을 표시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권능을, 인간의 냄새 맡는 표준으로 측량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나 마르다의 이 말은, 그 이적의 위대함을 다시금 뚜렷이 드러나게 했으니, 곧, 냄새 날 정도로 부패한 시체를 부활시키셨다는 사실이, 만대(萬代)에 전파될 수 밖에 없다.
요 11: 40 네가 믿으면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
주님은 항상 믿음을 귀하게 여기시고 믿음을 강조하셨다.
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예수님께서 여기 관설하신 말씀은, 25-26절 말씀이다.
그러면 여기서 예수님이 의미하신 바는, 마르다의 믿음이 나사로를 부활시키실 조건이란 뜻은 아니다.
다만 마르다가 불신앙하면, 그 나타날 부활의 이적을 영적 눈으로 보지 못하며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적이 보여 주는 하나님의 영광은, 오직 믿음으로만 느낄 수 있다.
불신앙하는 유대인들도 나사로의 부활한 사실을 보기는 보았으나, 거기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은 보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은 믿음으로만 보며 느낀다(Grosheide).
요 11: 41 아버지여 감사하나이다. -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
주님의 명령에 따라 무덤의 돌문을 옮겨 놓으니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우러러 보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1] 돌을 옮겨 놓으니
주님은 주위의 사람들이 먼저 무덤 문의 돌을 옮겨 놓도록 하셨다.
주님이 먼저 손수 하셨다면 주님이 세상의 마술사처럼 사람들의 눈속임으로 나사로를 살렸다고 부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2]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예수는 많은 유대인 앞에서 먼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기도하셨다.
예수의 하는 일이 아버지의 일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나사로의 부활로 인한 바른 믿음을 보이신 것이다.
그의 기도는 항상 감사가 있다. 감사(感謝, Thanksgiving)는 타인에 의해 자기에게 보여진 호의(好意)에 대한 승인(承認)의 정(情)이다.
성경은 하나님께 대해 백성들이 가지는 태도로 나타난다. 구약성경의 감사는 히브리어 야다’(yadah)로 ‘고백하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찬양하다, 감사하다’의 의미로 쓰일 때 목적어는 하나님이다.
* 창 29: 35 -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 스 3: 11 -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 시 33: 2 -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 사 12: 4 -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그러므로 기독교에 있어서는 특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응답하는 사람의 물심(物心)의 표현을 말한다. 따라서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감사로서, 성전에 들어가는 것은 감사이고, 노래로서, 또는 희생 제물을 드리는 일로서 감사한 마음이 표시되었다.
* 시 95: 2 -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 시 54: 6 -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신약의 감사는 헬라어로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인데 이 단어는 두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나님에 대해 사용되었다.
* 눅 17: 16 -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 롬 16: 4 -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친히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신 것이 보여져 있고, 감사의 중요성이 가르쳐져 있다.
* 마 11: 25 -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 요 11: 41 -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 눅 17: 16, 18 –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또한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습관에 따라 최후 만찬 때도, 잔을 가지사 사례하여 이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셨다.
* 막 14: 22-23 – 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말세의 특징 중 하나는 감사가 없다.
* 딤후 3: 2 -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 18)고 권면하였다. 감사는 기독교인이 가져야할 제일 중요한 덕목이다.
‘감사 드리다’라는 말은 식사 전에 드리는 축복기도나 성만찬의 용어로도 사용되었고, 2세기에는 ‘유카리스티아’란 말이 성만찬 예식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통용되었다.
* 고전 11: 24 -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요 11: 42 둘러선 무리를 위함 -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
주님은 항상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어떤 기회라도 둘러선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메시야임을 믿게 하셨다.
1]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예수님은, 자기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어떤 사건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그는,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경우와 달라서 언제나 계속한다고 하여, 여기 "항상"이란 말을 사용하셨다.
그는, 이 말씀으로써 자기의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통은 끊임없는 것임을 지적하신다.
그의 하나님 아버지와의 사이에 끊임없는 교통이 있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이신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는 둘러선 사람들이 다 듣도록 소리를 내어 그 사실을 기도로 발표하신 것이다.
2]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그는 언제나 사람들이 그를 메시야로 알기를 원하셔서 그 어느 기회에라도 가르치셨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그를 메시야로 바로 알아야만 그들이 구원을 받겠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남들의 구원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셨다.
3]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주님의 모든 말씀은 결국은 듣는 사람에게로 향한다.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 롬 10: 17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약 2: 17-26 –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요 11: 43 큰 소리로 -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
예수는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였다. 그리고 감사하신 후에 나사로를 향하여 나오라고 명령하셨다.
1]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큰 소리는 그저 소리의 음량이 크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사실이 확연하고 확실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진리이시며 공명정대하시다.
그는, 마술사들의 어물어물하거나 중얼거리는 것과는 반대로 큰 소리로 명백히 말씀하신 것이다. 그는 죽은 자를 산 자 처럼 불러내신 것이다.
* 롬 4: 17 -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 요 5: 28 -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어떤 재미있는 말이 있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 묘지에서 "나사로"란 이름을 부르시지 않고 그저 "나오라"고 하셨더라면, 묘지에 묻혔던 모든 시체들이 다 일어나 나왔을 것이라고 한다.
예수께서는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부르셨다. 그는 나사로의 몸을 떠나갔던 영혼을 부르셨고 잠든 몸을 깨우셨다.
그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를 부르셨거나 아버지께 호소하신 것이 아니었고 자신의 권위로 그를 부르셨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도 친히 죽은 자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 요 5: 29 -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마지막 심판의 날에 의인과 악인, 즉 믿고 순종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의 부활이 있을 것이다.
* 살전 4: 16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요 11: 44 수족을 동인 채로 -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
죽었던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무덤에서 나오는데 그의 얼굴은 수건으로 싸였으므로 예수는 주변에 있던 유대인들에게 수족을 풀어주어 활동할 수 있도록 하셨다.
1]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죽은 자는 자기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한다.
‘베’라는 원어(케이리아)는 ‘붕대’ 혹은 ‘수의’를 가리킨다. 죽은 나사로는 수의를 입은 채로, 얼굴이 수건에 싸인 채로 나왔다.
그는 예수께서 부르신 그때에 살아났다. 아직 수의나 수건을 벗을 겨를도 없었다. 이것은 기적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사건이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사람이 일어났다.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 자가 일어났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신성(神性)과 자신이 부활과 생명이 되심을 증명하셨다.
그가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그는 전에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셨고(눅 7: 11-17) 야이로의 외동딸도 살리셨다(눅 8: 40-42, 49-5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과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요 우리의 구주이시다.
이것은 그 살아 나오는 자가 나사로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만일 그에게 베로 동인 것이 없었다면, 무슨 유령이 아닌가 생각될지도 모를 것이다.
2]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그 부활 이적의 역사에 무리들이 수종들므로 그들로 하여금 그 사실의 진실성을 살깊이 체험하게 하시려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하지 못하는 기적을 친히 이루시고도 그 일과 관련하여 사람들에게 일을 주신다.
그는 기적을 행하시지만, 그 기적 때문에 사람들이 태만하여지거나 무책임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왜냐하면 일을 하는 것이 인간의 존귀한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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