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3일(월)
* 시작 기도
주님...
주일 이후 첫날을 맞이합니다.
이번 한 주도 나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님의 의를 드러내는 삶이 되게 하소서.
철저히 나는 죽고 오직 예수만 드러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조그만 틈이 있어도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자기주장의지가 내 안에서 비집고 나오려 하오니 이런 나를 심판의 칼로 쳐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의 능력을 덧입기 원합니다.
이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로 서서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에스더 2:1-11
제목 : 아하수에로 왕의 후회어린 행동에 내가 들어 있습니다.
1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치매 와스디와 그가 행한 일과 그에 대하여 내린 조서를 생각하거늘
2 왕의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왕은 왕을 위하여 아리따운 처녀들을 구하게 하시되
3 전국 각 지방에 관리를 명령하여 아리따운 처녀를 다 도성 수산으로 모아 후궁으로 들여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손에 맡겨 그 몸을 정결하게 하는 물품을 주게 하시고
4 왕의 눈에 아름다운 처녀를 와스디 대신 왕후로 삼으소서 하니 왕이 그 말을 좋게 여겨 그대로 행하니라.
5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6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7 그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
8 왕의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매 처녀들이 도성 수산에 많이 모여 헤개의 수하에 나아갈 때에 에스더도 왕궁으로 이끌려 가서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의 수하에 속하니
9 헤개가 이 처녀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몸을 정결하게 할 물품과 일용품을 곧 주며 또 왕궁에서 으레 주는 일곱 궁녀를 주고 에스더와 그 궁녀들을 후궁 아름다운 처소로 옮기더라.
10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이는 모르드개가 명령하여 말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11 모르드개가 날마다 후궁 뜰 앞으로 왕래하며 에스더의 안부와 어떻게 될지를 알고자 하였더라.
* 나의 묵상
아하수에로의 왕비인 와스디의 폐위 사건이 있은 후에 아하수에로의 분노가 가라앉으면서 왕은 와스디와 그녀가 한 일 그리고 그녀에 대해서 자기가 한 일에 관하여 조서를 생각하였다.
그 때 왕의 신하 한 명이 말하기를 이제 우리로 하여금 왕을 위하여 아름다운 처녀들을 찾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전국 각 지방에서 감독을 뽑아서 그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처녀들을 수산 왕궁으로 데려오게 하자는 내용이었다.
수산궁에 들어온 이들을 후궁에 보내서 궁녀들을 돌보는 환관인 헤개에게 맡기고 몸을 가꿀 수 있도록 화장품을 보내주자고 하였다.
그런 뒤에 왕의 마음에 드는 여자를 와스디 대신 왕후로 삼자고 하자, 왕은 이 말을 기쁘게 여겨서 즉시 실행에 옮겼다.
그 무렵 수산성에는 모르드개라는 유다인이 있었는데, 그는 베냐민 지파로서 야일의 아들이고 시므이의 손자였으며 기스의 증손자였다.
모르드개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여호야긴)와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갈 때 함께 잡혀간 자이다.
모르드개에게는 하닷사라는 사촌누이동생이 한 명 있는데 부모가 계시지 않아서 모르드개가 자기의 딸처럼 양육하였다.
하닷사라 불리는 에스더는 몸매와 얼굴이 아주 곱상한 아름다운 처녀였다.
왕의 조서가 내려지자 많은 여자들이 수산궁으로 뽑혀와서 헤개의 손에 맡겨졌다.
에스더 또한 뽑혀서 왕궁으로 들어와서 궁녀들을 돌보던 헤개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헤개는 에스더를 어여쁘게 봐서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기도 하였다.
이에 헤개는 에스더에게 화장품과 일상용품들을 주었고 또 궁녀 일곱을 주어 시중들게 하였으며 후궁에 있는 아름다운 처소를 숙소로 마련해 주었다.
한편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지시에 따라서 자기 민족과 종족에 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잘 지내고 있는지, 그리고 무슨 일은 없는지 살펴보고자 늘 후궁 근처를 서성거렸다.
180일간의 연회는 단순한 여흥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곧 있을 그리스 원정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하수에로는 그의 재위 5년인 주전 481년에 그리스 원정을 단행하였다.
그의 그리스 원정은 481년과 479년 두 번에 걸쳐 진행이 되었는데 이 두 번의 전쟁에서 그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과 미칼레 전투 등이 있었다.
하지만 아하수에로는 이 두 번의 원정을 모두 실패하고 만다.
이에 페르시아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반대로 그리스는 점점 강성하여지기 시작한다.
여하튼 아하수에로의 새로운 왕후 간택은 3,4차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이후였다.
전쟁에서 패하고 돌아와서 심신이 몹시 피곤해진 아하수에로는 폐위된 와스디를 그리워하며 그녀를 폐위한 것에 대한 자신의 처사가 지나쳤음을 후회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1절에서 와스디 폐위사건 후에 페르시아 전쟁이 실패로 끝나자 자신의 처사에 대한 후회가 밀려와 그 일에 대하여 생각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왕비 와스디의 폐위를 주도했던 왕의 측근들은 왕의 심리상태나 왕비의 폐위사건을 돌아보건대 자신들의 자리가 몹시 위태로웠을 것이다.
만약 왕이 왕비의 복권이라도 추진하려고 하면 폐위를 주도했던 왕의 측근들은 파리목숨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왕의 심기를 잘 살펴서 와스디 대신에 새로운 왕비를 뽑을 것을 요청한다.
안 그래도 옆구리가 허전했던 아하수에로는 그런 신하의 요청을 수락한다.
그리고 그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을 시킨다.
모르드개와 그의 사촌누이 에스더는 본문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모르드개는 이미 수산궁에서 제법 높은 직위를 맡아서 일을 하고 있었고 에스더는 새로운 왕비를 뽑는 과정에서 후보로 선발되어 수산궁에 입성을 하였다.
이들의 등장은 에스더서의 아주 중요한 맥락을 차지한다는 차원에 보면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그 과정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아하수에로의 후회, 다가올 위기를 모면하려는 신하들의 간사한 조언 그리고 아하수에로의 변덕스러움까지 어우러져서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약점과 사악함까지도 사용하셔서 장차 하만의 간계로부터 유다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에스더를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본문 1절에 보면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친 후에 와스디와 그가 행한 일 그리고 그에 대하여 내린 조서를 생각하였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와스디가 행한 일에 대하여 후회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와스디가 행한 일이다.
이 일은 왕이 연회석으로 오라고 했을 때 그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었다.
당시의 상황으로는 왕의 명령은 지엄하여 곧 법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왕의 부인이라 할지라도 왕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왕이 왕비를 연회석으로 부른 이유는 왕비를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자기주장의지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아내를 사람들에게 자랑하면서 자기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는 아주 교묘한 계략이 숨어 있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이런 관계적 상황을 잘 보여준다.
하위권위인 아들은 창세전의 세계에서나 창조 이후에 육신을 입고 예수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셨을 때를 막론하고 상위권위인 아버지께 철저하게 복종하셨다.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 6: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요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목적이 다름 아니라 십자가에 죽기 위함이었다.
이는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왕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목적과는 너무도 다른 이유였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행해야 할 일은 이미 창세전부터 정해진 일이었다.
(벧전 1:19-20,쉬운성경) 한 점의 죄도 흠도 없으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여러분은 구원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그리스도를 택하시고, 이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구원하시고자 보내 주셨습니다.
두 사람 이상이 모인 공동체 안에서는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적용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바로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계명에 복종하고 그 복종을 받는 아버지는 자기 자신을 다 내어주는 사랑을 하시는 것이다.
아하수에로 왕과 와스디처럼 자기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위해서 상대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다.
둘 이상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의 발로로 어떤 요구를 한다면 이는 그 관계가 깨지고 마는 것을 오늘 본문은 잘 보여준다.
왕은 왕비의 자태를 뽐내고자 고관대작들이 모인 연회석으로 불렀고, 왕비 역시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알 수 없지만 왕의 명령에 복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왕은 왕비를 세워주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자기주장의지로 왕비를 불렀고, 왕비도 자기의 마음이 불편했던지 그 명령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만 것이다.
나는 과연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 왔는가?
나 자신을 다 내어주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대해 왔는가?
나를 대하는 아내의 모습은 항상 일관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아내 앞에서 나의 욕심과 욕망대로 행한 것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내 안에 아하수에로의 자기주장의지가 들어 있다.
내 안에 아하수에로의 강한 욕심과 욕망이 들어 있다.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자아는 언제든지 없애야 할 자기애이다.
그뿐 아니라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주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이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다 사용해도 부족함이 너무나 많다.
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나의 의를 드러내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하는 자로 서 있는 것이다.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아주 진멸하지 않으시고 아들 예수를 내어주셨다.
그리고 나를 그 피값으로 사셨다.
오늘도 죽기에만 합당한 자, 죽어 마땅한 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나의 몸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성령이 계시는 성령의 전이다.
피값으로 사신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동행하기를 시작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부족함밖에 없는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동안 얼마나 많이 나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는지요?
이런 나를 진멸하셔도 할 말이 없는데, 진멸은커녕 오히려 나를 살리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나는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자입니다.
그저 이 시간, 회개의 자리인 재와 티끌 가운데 앉아 두 손으로 입을 가릴 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있었던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이 나의 삶의 방식이 되게 하소서.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되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행하게 하시고, 성도들을 위하여는 아들의 사랑으로 복종하게 하소서.
예수를 믿는 믿음이 나의 삶을 바꾸게 하시고 그 삶속에 복종과 사랑이 드러나 오직 아버지와 아들의 영광만 나타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