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원씨 게시글 전문
최근 내 신상의 변화 하나
아무래도 여기에 제일 먼저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이곳이 내 공식홈페이지는 아니지만, 여기 말고는 따로 내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저, 지난 4월 조선일보를 끊었습니다.
사실은 지난해 6월부터 많이 망설이고 망설였던 일입니다.
<언론개혁 공방>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언론사 세무조사 공방>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무렵부터 망설이며 고민하던 일이었습니다.
조선일보를 끊은 다음 조선일보 기자에게도 그 내용을 메일로 알려주었습니다.(끊으면 그냥 끊지, 핑계처럼 왜 '비겁하게' 그 내용을 알려주었는지는 잠시 후에 설명하기로 하고요)
아무튼 제가 조선일보를 끊었다니까 어떤 신문사 기자는 "형, 참 어려운 결정하셨네요."라고 그랬고, 또 어떤 신문사 기자는(이넘은 친구입니다) "니가? 정말? 정말 그랬단 말이야?" 하고 묻고 또 묻더군요. 비교적 내 성격을 잘 아는 동향의 후배 소설가 한 사람은 "선배 입장에서는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을 했네요. 그런데 또 그랬다고
하니까 그게 또 가장 선배다운 모습이기도 하네요." 라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얼마 전 소설가로 등단한 한 제자는 "선생님, 축하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러고요. 그러면서 그 제자가 이런 말도 하더군요.
"사실 바깥에서 조선일보와 제일 친한 소설가로 이문열, 이인화, 이순원...하는 식으로 말들을 하기에 제가 그동안 속이 많이 상했거든요. 사실 그동안 선생님은 지난번
언론사 세무조사 때에도 조선일보 반대쪽에서 말하고 했는데..."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보았다면, 거기엔 내가 그렇게 보이도록 행동한 부분이
많기 때문일 거다. 그런 세상의 시선에 대해 내가 섭섭해 해서는 안 될 거 같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면 반성을 해도 내가 해야겠지." 라고 말입니다.
그 제자의 말대로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볼만한 충분한 이유도 있었고, 그런 과정도
있었으니까요. 앞서 후배 소설가가 '선배 입장에선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다'고 말한
것도 아마 그래서였을 겁니다.
1996년 "수색, 어머니의 가슴 속으로 흐르는 무늬'로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안티조선일보 운동'이 있기 전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막 전업을 시도 하던 때였고, 나이 마흔 살이 되던 해여서 앞으로의 내 문학에
대해 크게 격려받고 또 고무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게는 첫 문학상이기도 했구요.
그리고 틈틈히, '일사일언'이며, 다른 문화칼럼과 경제칼럼을 쓰기도 하고, '이순원'이름으로 6개월가까이 매주 토요일마다 '문학레터'를 썼던 것도 오래지 않은 지지난해까지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이미 사회적으로 '안티 조선일보 운동'이 시작된 다음이기도 하구요.
또 5-6년 기간 동안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보았습니다. 아, 하나 더 있군요. 조선일보는 아니지만 조선일보 계열사인 스포츠조선에 연재소설을 쓰기도 했군요. 또
책을 내면 낼 때마다 조선일보 문화면의 큰 지면을 받았던 작가입니다. 때로는 내
작품이 좋아서라기보다 내가 조선일보와(아니, 조선일보라기 보다는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들과) 가까워서 이렇게 큰 지면을 주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될 때도 있었습니다.(정말 이랬다면 공정하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기자들에겐 욕이 될 수도 있는
말이지만 늘 큰 지면의 기사를 받는 것에 대해 제 마음 한편에 고마움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일부러 가까워지려고 애를 썼던 것은 아닌데,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가
늘 좋은 쪽으로만 발전되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누가 보든 조선일보와 가장 가까운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런 제가 지난 4월 조선일보를 끊었습니다.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짐작하실 테니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지난 여름부터 시작해 그간 몇번 글 청탁이 있을 때 이런저런 핑계로 사양을 하다가,때로는 그게 또 미안해 지난해 추석 땐가 명절 칼럼 하나를 쓰기도 했습니다.그러다 지난 4월 어떤 글의 청탁 때, 언제까지 그럴 수만은 없어 청탁을 거절한 다음
바로 구독정지 신청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구독 정지 신청을 하고 나니 그동안 서로 인간적 관계를 유지했던 문화부 기자들한테 참 미안한 마음이더군요. 더구나 연배도 비슷해 서로 오래된 친구처럼 지내던 사이였는데, 마치 오래도록 좋은 관계에서 내가 먼저 인간적 배신을 하고 돌아서는 듯한 기분이 들던 것도 사실이구요. 그래서 위에서 말한 대로 기자에게
그간 나와 조선일보간의 관계, 몇몇 기자들과의 우정을 얘기하고 그럼에도 이제 내가 조선일보를 절독하는 이유에 대해 장문의 메일을 썼던 것입니다.
그 메일 말미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작가와 기자 사이를 떠나 그간 인간적으로 참 가까웠다. 함께 마신 폭탄주도 만만찮다.(정말 전설적으로, 전투적으로 마셔댔으니까요. 그 기자와는 폭탄주에 얽힌 에피소드도 참 많습니다.) 최근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과 태도에 불만을 품고 절독을
하긴 하지만 그간의 인간적 관계, 우정만은 변함없이 가져가자. 시간나면 서울에서든 일산에서든 예전처럼 폭탄주로 통음난무의 밤을 한번 보내자" 하고요.
아, 그 말미 바로 앞에 "그간 누가 보든 조선일보와 참으로 가까웠던 내가 이제 조선일보 절독을 하고, '안티 조선일보 운동'을 하게 될 거 같다"는 말도 했군요.
그랬더니 바로 메일 답신이 왔습니다. '폭탄주 제의'에 대한 화답으로요. 지난주에
서로 시간 약속까지 했는데, 제가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 잠시 뒤로 미루었습니다.
언제일지 모를 빠른 시간 내에 아마 그날은 이제 '조선일보 기자'와 '안티조선 작가'로서 또한번 전투적 폭탄주 잔치를 할 것 같습니다.
이게 최근 제 신상 변화 중의 하나입니다.
저, 조선일보 끊고, 안티 조선 운동을 하게 될 거 같다고, 이 게시판에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제 앞으로는 책을 내도 조선일보와는 인터뷰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이곳을 제 홈페이지처럼 여기기 때문에 다른곳이 아닌 바로 여기에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