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어떻게 살았는지 어느날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은 파랗고 손가락으로 콕 찌르면
금새 터질것만 같습니다.
어느새 코스모스도 들에 핀 노란꽃 하얀꽃들이
이쁘게 수를 놓고 있었습니다.
그 무덥던 여름을 보내면서 아쉽기라도 하듯이
꽃잎들이 살랑살랑 배웅하고 있어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더니,.벌써 제가 불혹입니다.
아직도 그 어린 철부지 막내딸로만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중년을 향해 이미 가고 있습니다.
삶이 그런것일까요?
나아서 곱게곱게 길러주시고, 금이야 옥이야
그 얼마나 애지중지 사랑으로 키워주셨던가요.
이 세상엔 아름다운것만 있는줄 알았습니다.
이 세상엔 어려운것도 없는줄 알았습니다.
미워하는것도 싸우는것도 그리 많게 보고
살지 않았기 때문에 온실안의 화초처럼
곱게만 살아온 저였습니다.
그러나,....
세파안에 휩싸이다보니 어느날 전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아줌마가 되어 버렸습니다.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 남자를 사랑했습니다.
철부지 어린나이에 아무것도 모른채
한남자만을 바라보면서 사랑하다가
결혼도 해버렸습니다.
그 남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저를 사랑하고,
우리 아이들의 자상한 아빠로 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엄청난 사고를 당했습니다.
청천벽력같은 엄청난 사고.
그사람은 중환자실에서 꼼짝없이 누워있었습니다.
병원밖의 나는 늘 병원의 소파에서 떨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사고처리......그것이 제가 할 일로 남겨진채..
아이를 낳은지 열흘만에 사고가 났기 때문에
내몸은 만신창이었습니다.
부은얼굴, 수술한 아랫배가 욱신거리고,
하혈은 심하고,.그땐 겨울이라
눈비가 얼마나 내렸던지....
울고 주저앉아 있을시간이 없었습니다.
저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도 수십군데를 다니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하고, 자료도 모으고,...
그러다가 난관에 부딪히면 뒤로 자빠지고,
또 일어나서 다시 싸우고,.....
어느날인가는 눈을 떴는데 병원일때도 있었고,......
어느땐 어느공원 벤치에도 있고,.
하다가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죽으려고
한강으로 간적도 있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너무나 힘이 부쳐서
차라리 죽어버리자 이렇게 비겁한 생각을하고
한강으로 그 진눈깨비를 다 맞으면서
간적도 있었습니다.
비몽사몽인지 그때 처음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무섭게 호통치면서 어린 핏덩이를 생각하라며
뒤로 밀치시던 아버지.
저는 그 남자와 결혼할 때
사람들앞에 맹세한게 있었습니다.
누구나 다 하는 맹세지만,..
“비가 오나 눈이오나,....기쁠때나 슬플때나,..”
그 구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제가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아이들의 아빠이기도 하구요.
살려야지,...내가 해야지 하는마음으로
피해자든 가해자든 다 만나고, 합의도하고,
용서도 빌고,.탄언서도 쓰고,.
경찰서로 변호사 사무실로 법률사무소로,.
또 그가 누워있는 병원으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사람이 그 얼마나 무서운지를,..
협박도 당하고, 폭언도 당하고,..
꽁꽁 얼어붙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무릎 끓고 내남편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용서해 달라고 빌어도 보고,.....
그땐 정말 사람이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오랜싸움 끝에 그는 병원에서도
경찰에서도 다 해결되어 자유가 되었고,.
난 지치고 지쳐 그때 비로소 눈물이 나왔습니다.
하늘을 보면서 아버지를 부르면서
남몰래 많이 울었습니다.
그때 그일을 겪고서 정말
강한 아줌마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 일이 지난지 벌써 7년이 되어갑니다.
그때 낳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거든요.
사람은 홀로 태어나지만,
홀로 살아가긴 힘듭니다.
아무리 잘난사람도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나보다 힘든사람, 나보다 약한 사람,
나보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 알려줄 겁니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른상태에서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이 혹시라도 있거든
기꺼이 도와줄거라구요.
홀로 싸우는건 참 외롭습니다.
홀로 싸워야 한다는건 세상을
비난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알고보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인데요.
이젠 전 평정을 찾고 있습니다.
꽃을 보면 웃음이 나오고,
구름을 보면 사람들이 그립고,.
바람만 불어도 지난 추억을
떠올리는 여유도 생기고,.
이렇게 오늘도 이 자리에 앉아
일할 수 있다는걸 고마움으로 여기며 삽니다.
아침엔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인사 드릴 어머니가 계시고,.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하는 내아이들이 있고,..
또 저녁엔 그런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소중한 우리가족들이 있어
오늘 비록 몸은 지치고 힘들지만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합니다.
제가 굳건히 지키고 잃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건 소중한 우리가족 입니다.
너무나 건강하게,,
이쁘게 잘 자라주는 내아이들이고,
다시 직장생활 열심히 해주고
가족들의 든든한 기둥이 되고 있는
그 남자 제 남편이 있어 행복합니다.
그 모든 것들을 보듬어 주신
묵묵히 말씀 없으신 우리 친정엄마가 계시어
전 참 행복한 부자 입니다.
정말 전 부잡니다.
돈만 빼고 다 있는 부자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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