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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달사 원문보기 글쓴이: 관조
혜목산 기슭의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 (764년)에 건립된 것으로 전합니다. 이 절은 고려 초기에 국가가 관장하는 3대 선원 가운데 하나로서 왕실의 보호를 받 는 중요한사찰이었습니다. 975년에 세워진 원종대사(원종대사)비문에 의하면 당시 에는 고달원 또는 고달선원(고달선원)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1530년에 간행된 ' 신중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승람)에 고달사가 기록된 것으로 보 아 조선초기까지는 번창하였으나, 1799년 편찬된 '범우고(범우고)'에는 폐사된 것 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 Site of Godal-sa, Built in 764. this temple was one of three temple supported by the govermant and pattonized by the royal court in the early Goryeo period, According to the documents, it had prospered until the in mid joseon Period, but later was deatroyed.) |
1998년도부터 시작한 발굴 조사는 현재 6차까지 완료하였으며 향후 7~9차 발굴 조사
를 진행한 후에 정비사업을 시행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ㅇ 국보 및 보물 소개
절터 안에는 깔끔한 모양과 세련된 조각수법의 고달사지부도(국보 제4호)를 비롯하여 훌륭한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와 이수(보물 제6호)는 원종대사의 행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탑비로 975년에 만들었는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로 넘어가는 탑비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보물 제7호)은 원종대사의 묘탑으로 아름답고 화려한 조각이 있어 고려시대 부도의 조각 수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밖에 고달사지석불좌(보물 제8호)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긴 고달사지쌍사자석등(보물 제282호)이 있습니다.
* 국보 1 점 과 보물 4점 최근에 발굴조사를 통해 금당터를 비롯한 건물터를 확인하고, 절터의 규모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참고로 고달사지에 얼마나 귀중한 문화재가 많은가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위해 국보와 보물 랭킹 10위에 대하여 알아 보았습니다
[ 국보 1~10호 ] 문화재(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164호)로 격하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없는 상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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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달사지 부도(高達寺趾浮屠)
종 목 : 국보 제 4 호
지 정 일 : 1962 . 12. 20
이 탑은 바닥의 형태가 8각을 이루고 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완전하지 않은 것을 제
외하면 대부분 잘 남아 있습니다.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基壇)은상·중·하 세 부
분으로 갖추어져 있는데, 특히 가운데돌에 새겨진 조각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가
운데돌은 8각이라기보다는 거의 원을 이루고 있으며, 표면에 새겨진 두 마리의 거북은 입체
적으로 표현되어 사실감이 느껴집니다. 각 거북을 사이에 두고 네 마리의 용을 새겨 두었으며,
나머지 공간에는 구름무늬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돌에 꽉차게 새겨진 무늬들이 과장되지
않고 세련되어 능숙하면서도 대담한 힘이 느껴집니다. 가운데돌을 중심으로 그 아래와 윗돌
에는 연꽃무늬를 두어 우아함을 살리고 있습니다.
사리를 모셔둔 탑몸돌에는 문짝 모양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새겨져 있는데, 문에 새겨진
자물쇠 모양의 조각은 밋밋하여 형식적으로 흐른 감이 있습니다. 이를 덮고 있는 지붕돌은
꽤 두꺼운 편으로, 각 모서리를 따라 아래로 미끄러지면 그 끝마다 큼직한 꽃조각이 달려
있는데, 크기에 비해 조각이 얕아서 장식효과는 떨어집니다. 지붕돌꼭대기에는 둥그런 돌
위로 지붕을 축소한 듯한 보개(寶蓋)가 얹혀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신라의 기본형을 잘 따르면서도 각 부분의 조각들에서 고려 특유의 기법을 풍기고
있어 고려시대 전기인 10세기 즈음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돌을 다듬은 솜씨도 깨끗하고
조각에서도 세련미가 묻어나오는 작품입니다.
이 부도(浮屠)는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 부도(浮屠) 가운데 손꼽히는 거작으로 상륜부(相輪部)
만 완전하지 않을 뿐 각부(各部)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기단중대(基壇中臺)의 거북을 중심으로 네 마리의 용(龍)과 구름모양을 조각한 솜씨가 힘차고
능숙하며 대담합니다. 팔각(八角) 탑신(塔身)의 각면에는 문비형(門扉形)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조각되고, 비교적 두꺼운 지붕에는 각 전각마다 높직한 귀꽃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신라부도(新羅浮屠)의 기본형을 따르면서 세부에서 고려시대(高麗時代) 양식(樣式)을 강하게
풍기고 있습니다.
이 부도는 누구의 것인지 확실치 않으나 각부 양식수법으로 보아 고려(高麗) 광종(光宗)
9년(958)에 입각한 원종대사(元宗大師)의 혜진탑(慧眞塔)보다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높이는 3.4m입니다.
3.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비귀부및이수(高達寺元宗大師慧眞塔碑龜趺및리首)
종 목 : 보물 제 6 호
분 류 : 기록유산/ 서각류/ 금석각류/ 비
지 정 일 : 1963. 01. 21
시 대 : 고려시대
고달사터에 세워져 있는 비로, 원종대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원종대사는 신라 경문왕 9년
(869 .4. 4)에 태어나, 고려 광종 9년(958 .8. 20)에 90세로 입적하였다.
광종은 신하를 보내어 그의 시호를 ‘원종’이라 하고, 탑이름을 ‘혜진’이라 내리었다.
* 왕이 주지로 임명한 날 921년 10. 21( 비에 남아 있는 세부적인 날자0
현재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 있으며, 비몸은 깨어진 채로 경복궁으로 옮겨져 진열되어
있다. 비문에는 원종대사의 가문·출생·행적 그리고 고승으로서의 학덕 및 교화·입적 등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한다.
받침돌의 거북머리는 눈을 부릅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눈꼬리가 길게 치켜올라가 매우
험상궂은 모습이다.
다리는 마치 땅을 밀치고 나가려는 듯 격동적이고, 발톱의 사실적 표현은 땅을 꼭 누르고 있는
듯하다. 목은 길지 않아 머리가 등에 바짝 붙어 있는 듯 하다. 등에는 2중의 6각형 벌집 모양이
정연하게 조각되었으며, 중앙부로 가면서 한 단 높게 소용돌이치는 구름을 첨가하여, 비를 끼워
두는 비좌(碑座)를 돌출시켜 놓았다.
머릿돌은 모습이 직사각형에 가깝고, 입체감을 강조한 구름과 용무늬에서는 생동감이 넘친다.
밑면에는 연꽃을 두르고 1단의 층급을 두었다.
이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은 탑비에 기록된 비문에 의해 975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4. 고달사 원진국사 혜진탑 (高達寺元眞國師慧眞塔)
종 목 : 보물 제 7 호
지 정 일 : 1961. 01. 21
5. 고달사지 석불좌 (高達寺趾石佛座)
종 목 : 보물 제 8 호
분 류 : 불교조각/ 석조/ 대좌
지 정 일 : 1963. 01.21
시 대 : 고려시대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되었으나, 누구에 의해 창건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이 석불좌는 불상(佛像)은 없어진 채 대좌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보존상태
가 거의 완벽합니다.
받침돌은 위·중간·아래의 3단으로, 각기 다른 돌을 다듬어 구성하였는데, 윗면은 불상이 놓여
져 있던 곳으로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잎을 서로 대칭되게
돌려 새겨져 있습니다. 이 대좌가 사각형으로 거대한 규모이면서도 유연한 느낌을 주는 것은
율동적이면서 팽창감이 느껴지는 연꽃잎의 묘사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연꽃잎의 표현 수법
은 고달사지부도(국보 제4호) 아래받침돌과 매우 비슷하며, 가운데 꽃잎을 중심으로 좌우로
퍼져나가는 모양으로 배열하는 방법은 고려시대의 양식상 공통된 특징입니다.
조각솜씨가 훌륭한 사각형 대좌의 걸작으로, 절터에 있는 고달사지부도가 고려 전기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대좌도 1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6.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高達寺址雙獅子石燈)
종 목 : 보물 제 282 호
분 류 ; 종교신앙/ 불교/ 석등
지 정 일 : 1963. 01. 21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시 대 : 고려시대
관 리 : 국립중앙박물관
고달사터에 쓰러져 있었던 것을 1959년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습니다. 높이는 2.43m이며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까지만 남아있었으나, 2000년에
경기도 기전매장문화연구원이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지붕돌이 출토되었습니다.
직사각형의 바닥돌 4면에 둥글넓적한 모양의 안상(眼象)을 새기고, 아래받침돌 대신 2마리의
사자를 앉혀 놓았습니다. 사자는 좌우에서 앞발을 내밀고 웅크리고 있으며, 등 위로 구름이 솟아
올라있습니다.
가운데받침돌에는 구름무늬를 돋을새김하였고, 윗받침돌에는 연꽃을 새겼습니다. 그 위에 놓인
화사석은 4면에 창을 뚫었습니다.
우리나라 쌍사자석등의 사자는 서있는 자세가 대부분인데, 이 석등은 웅크리고 앉은 모습이
특징적이며, 조각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인 10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