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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61회>
씬 무진주 성 외경(낮)
씬 동 성 안
견훤을 비롯하여 많은 제장들이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비통하고, 침울하다. 견훤이 입을 연다.
견훤 경들은 들으오.
모두들 예.
견훤 이번 전투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뼈아픈 교훈을 주었소이다. 강주를 빼앗겼고, 또한 금성도 잃었소이다.
수달 ....
견훤 이것은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짐이 부덕하고 매사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탓일 것이오.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그러나, 이곳 무진주는 짐이 제일 먼저 기업을 이룩한 곳이었고, 아직도 서남해를 지켜주는 큰 상징으로 버티고 있소이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짐도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소이다. 하나의 성을 빼앗는 것보다도 다른 하나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더 어려운가를 알았소이다.
수달 폐하.... 참으로 신이...
견훤 아, 아, 그만 되었어. 한 번 실수는 병가상사라 하였어. 그러나, 문제는 그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야.
수달 이 기회에 파진찬께도 용서를 구하오오이다. 그토록 걱정을 해주셨건만 이 놈이 그만 방심하여...
최승우 장군, 폐하의 말씀을 듣지 못하셨소이까? 지난날에 연연하기보다는 앞으로가 더 큰 숙제올시다. 과연, 저 금성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그것 말이오.
능환 맞네. 이제부터일세. 폐하께서는 자네에게 다시금 금성을 되찾으라고 명하셨네. 그리해 보이게나.
수달 이를 말씀이겠사옵니까?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목숨을 다하여 금성을 되찾아 보이겠나이다.
견훤 금성은 수달에게 맡기고, 우리는 다른 전선을 모두 점고해 보아야 할 것이야. 빼앗긴 강주도 되찾아야 할 것이고, 또한 군사를 정비하여 고려의 허를 찌를 방도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야.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하오나, 그 일들은 여기 무진주에서 할 것이 아니라, 황도인 완산주로 돌아가시어 세세히 살펴야 할 것이옵니다.
추허조 그러하옵니다. 일단 황도로 돌아가시오소서. 나라의 중심인 그 곳에서 앞일을 의논하심이 가한 줄로 아옵니다.
박영규 추장군의 말씀이 일리가 있사옵니다. 속히 환궁하시오소서.
공직 그리하오소서. 폐하. 황도를 너무 오래 비우심은 아니 될 말이옵니다.
방장군 신 또한 그리 생각하옵니다. 속히 환궁하시오소서.
견훤 (끄떡이며) 그리하세. 돌아가세나. 돌아가서 오늘의 이 부끄러움을 되 갚을 계책을 세우세나. 수달장군!
수달 예, 폐하.
견훤 그대가 이 무진주를 맡게나. 그리하여, 어떻게 하든 금성을 되찾을 방안을 찾아보아.
수달 예, 폐하. 꼭 그리하겠사옵니다. 죽을 죄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니, 분골쇄신하여
폐하의 영토를 되찾겠나이다.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은 끄떡인다. 수달은 울먹이고 있다. 지긋이 눈을 감는 견훤의 표정에서...디졸브.
씬 길
견훤군이 가고 있다. 황도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위로 해설.
해설 견훤의 참담한 귀환. 그리고, 고려와의 첫전투에서의 대패. 비록 수달이 모진 각오로써 무진주에 남아 금성을 다시 노리기로 하였지만, 그러나 금성은 오랜 세월 고려의 땅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육년 후인 909년에 금성은 수달에 의해 상당한 위기를 맞게 되지만, 그러나 그때도 역시 승리는 왕건의 몫이었다. 견훤은 참으로 요지 중에 요지인 이 금성을 잃은 이후 두고두고 전략상의 큰 부담감을 안게 된 것이었다. 아무튼, 견훤은 이렇게 하여 황도인 완산주, 즉 지금의 전주로 되돌아갔다.
씬 금성관아 외경
씬 동 금성관아 안
왕건과 세 가신들이 함께 해있다. 왕건이 각지에서 올라온 장계를 다 읽고 한 쪽으로 치우며, 세 가신을 본다.
왕건 견훤왕이 완산주로 되돌아갔다?
유금필 그러하옵니다. 수달이 무진주 도독으로 남아서 계속 이 곳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왕건 그럴테지. 어찌 아니 그렇겠는가? 절치부심하고 있을게야.
박술희 하지만 어찌하겠사옵니까? 이미 모든 사정이 바뀌었사옵니다.
유금필 그렇지가 않네. 우리는 그 수달이란 장수의 용맹을 보았네. 생각할수록 대단한 장수였어.
능산 사실이옵니다. 삼한을 통 털어 그만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옵니다.
왕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한다고 하였네. 조심하고 방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저들은 결코 쉽게 이곳을 넘보지 못할걸세. 금성을 둘러싼 천혜적인 지리적 여건이 일단은 우리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
유금필 그렇사옵니다. 지금까지는 그리 염려할 것이 없어보이옵니다. 하오나....긴 안목으로 보자면 역시 이곳은 우리 본국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사옵니다. 안심할 수 있는 장기적인 대비책이 있어야 할 것이옵니다.
왕건 그건 그러하이...... 실은 그 이야기를 도영낭자와 나누기는 하였네마는....허허....이것 참....
능산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왕건 그렇다네. 아주 난처한 일일세.
박술희 조금은 .....알 것 같사옵니다마는....
유금필 무엇을 안다는 겐가?
박술희 헤헤헤.....이놈도 한 여인을 죽기로 사모하고 있사옵니다.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이나 눈빛은 어디가 달라도 다른 법이지요. 도영 낭자는 주군을 연모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두사람 뭐라...?
그들은 모두 왕건을 본다. 왕건은 답답한 한숨을 내쉰다. 박술희가 비시시 웃는다.
박술희 주군, 소인이 보기로 그 도영낭자는 미모도 천하에 일색이지만 총명함이 아주 뛰어난 낭자 같았사옵니다.
능산 어디 그것 뿐인가...? 담력 또한 어지간한 사내 열 몫은 능히 넘어보였네그려.
유금필 허허허허...그건 그러하옵니다. 우리가 지난번 정주에서도 여러 번 볼 수 있었사옵니다.
박술희 주군, 그렇다면 무얼 더 망설이시옵니까? 어차피 영원히 홀로 사실 것은 아니지 않사옵니까? 이보다도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사옵니까?
유금필 술희의 말이 옳사옵니다. 실은 너무 늦었지 않사옵니까? 이 기회에... 한 번 생각해 보심이......
능산 더군다나 금성을 길이 보존하자면..... 이야말로 서로가 모두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왕건 ....(그러나 왕건은 한숨만 쉰다)...........
유금필 왜 그러시옵니까? 혹시....도영 낭자가 마음에 아니 드시옵니까?
왕건 그런 것이 아닐세. 누가 마음에 들고 아니 들고 하는 것보다도... 나로서는 이 금성의 보존이 더 마음에 쓰인다네.
박술희 아, 그러니까....이 기회에.... 님도 보시고 뽕도 따시고.....
왕건 내게는 이미 여인들과 정담을 나누는 일 따위는 큰 의미가 없네. 다만 어렵게 성취한 지금의 이 금성이 문제가 되고 있네......
유금필 도영낭자를 받으시오소서.
두사람 그리하시오소서.
왕건 ..........허지만...그게 .... 그리 쉽게 결정을 할 일이 아니야.
능산 그렇다고 어려울 것도 없지 않사옵니까?
왕건 아닐세... 아주.......... 큰 어려움이 또 있다네.
유금필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왕건 (어렵게 운을 뗀다) 실은 미처 자네들에게 이야기를 못하였네마는.. 나는 이미 유장자댁 부용낭자와 정혼을 약조하였다네.
그러자 모두들 놀란다. 왕건은 연신 민망한 표정을 짓는다.
유금필 아니, 주군.....언제.. 도대체..그렇게....
왕건 그렇게 되었어.....그런 일이 있었다네
모두들 ...........................?
왕건 물론 도영낭자도 그 일을 알고는 있네...허어....일을 어이하나....이제 곧 해가 지면 오장자와 만나기로 하였고 뭔가 대답을 하기는 해야하는데.....허어 이것 참...... 난처한 일이 겹쳐들고 있네그려.
아직도 뻥한 세 형제들과 고심하는 왕건의 그 표정에서 디졸브...
씬 길(밤)
어두워져 오는 저녁 길을 왕건이 두엇 시종들을 거느리고 가고 있다. 그는 여전히 곰곰 생각에 잡혀 있다. 세 형제들의 소리가 들려 온다.
유금필 (E) 일이 그렇게 까지 되었다면 어쩌겠사옵니까?
씬 다시 조금 전의 그 관아 안 (짧은 회상)
유금필 도영낭자가 모든 것을 이해하겠다면 쉬운 일이 아니옵니까?
능산 부용낭자와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이곳을 지키는 일 또한 대사중에 대사이옵니다. 이래저래 참으로 곤란하시게 되었사옵니다....
왕건 .... 이야말로 여난일세. 여난이야. 내가 여인들로 하여 이리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박술희 하하하. 얼마나 좋사옵니까? 한꺼번에 두 분씩이나... 이 얼마나 경아드릴 일이옵니까? 여난이라뇨?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유금필 허허, 이보게 술희. ( 나무라듯 술희를 제지하고 왕건의 눈치를 보다가) 주군, 차라리 이 일을 페하께 의논을 드리심이 어떠하겠사옵니까?
왕건 폐하께? 아니 이 사람들아, 이 일을 폐하께?
유금필 이래저래 난처함을 피하면서 일은 일대로 해결을 하자는 것이옵니다. 혼례도 올리시고, 두 분 형수님도 뫼셔오시고, 금성도 지키고 말이옵니다. 페하께서 나서시면, 모든 것을 풀 수가 있사옵니다.
능산 명안이옵니다. 참으로 명안이옵니다. 그리하시오소서. 당장 전령을 송악으로 보내겠사옵니다. 철원에 가셨던 폐하께서 송악으로 돌아오고 계신다하니, 아주 기회도 좋사옵니다.
박술희 경사올습니다, 주군. 단번에 장가를 두 번씩이나 가시게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경사이옵니까? 하하하.
씬 길(현실,밤)
왕건이 도리질을 한다. 참으로 난처한 표정이다. 저만큼 오장자의 집이 보여온다. 대문 앞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집사가 달려나오며, 허리를 숙인다.
오집사 장군, 어서오시오소서. 나으리께서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왕건 고맙네.
왕건이 말에서 내리면, 하인들이 말을 치우고 집사는 왕건을 안내해 안으로 들어간다.
씬 동 오다련의 집 마당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간다. 오다련이 도영과 함께 나오며, 왕건을 맞는다.
오다련 아이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오시오, 장군.
도영 어서오시오소서. 장군.
왕건 이렇게 특별히 청해주시니, 고맙소이다.
오다련 허허허, 그 무슨 말씀을... 그 동안은 전쟁을 치르느라 대접을 변변히 못하였습니다. 이렇게나마 뒤늦은 자리를 마련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옵니다. 어서 안으로.
도영 장군, 안으로 드시오소서. 주안상을 보아 놓았사옵니다.
왕건 고맙소, 낭자.
이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간다.
씬 동 집 후원 방
불이 휘황하게 밝다. 상다리가 부서져라 음식이 마련되어 있다. 사람이라고는 다련군 부녀와 왕건 뿐이다. 도영이 술을 따라 올린다. 그리고, 타는 듯한 시선으로 왕건을 본다.
도영 드시오소서, 장군.
왕건 장자께서도 드시지요.
오다련 예, 장군.
이들 술을 마신다. 그리고, 놓으면....
왕건 이렇게 각별히 대해주시어, 정말로 고맙소이다. 장자 어른.
오다련 어인 말씀을.. 그보다도....(망설이다가) 오늘 이렇게 초대해 응해주신 것을 다시 한 번 감사올립니다.
왕건 감사라니요?
오다련 이야말로 은혜 중에 은혜가 아니겠사옵니까? 제 딸을 거두어 주신다 들었사옵니다.
왕건 예?
오다련 이 얼마나 고맙고 또한 든든한 말씀이옵니까?
왕건 아, 그런 것이 아니라...
도영 이미 아버님께 다 말씀을 올렸사옵니다. 소녀는 장군님을 뫼시기로 하였고, 오늘밤 그 대답을 주신다 말씀 올렸사옵니다.
왕건 이보시오, 낭자. 분명히 얘기하였거니와 나는 정혼녀가 있다 하였소이다.
오다련 그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허지만, 장군같이 훌륭하신 분이라면 어찌 둘인들 셋인들 없을 수가 있겠소이까? 게의치 않는다 하였습니다.
왕건 허지만...
오다련 딸아이는 그동안 스스로 자신의 반려자를 찾겠다하였습니다. 오랜 세월 숱한 자리를 물리치더니, 결국은 장군을 만났소이다. 우리 부녀는 이미 목숨을 걸어 장군께 맡겼소이다. 딸아이를 받아 주시구려.
왕건 허지만....이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올시다. 내게도 집 안 어른이신 숙부님이 계시고, 또한 사사로이는 제 의형이 되시는 황제페하께 허락을 받아야 할 일이옵니다.
도영 (미소지으며) 장군께서 하시는 일이십니다. 또한 주변에서 오래도록 장군의 혼례를 모두들 바라고 또 기다려 온 것으로 아옵니다. 그렇지 않사옵니까?
왕건 ....(할말이 없다)
도영 정주에 계시는 부용낭자의 일도 장군의 숙부님이나 폐하께 말씀을 올렸사온지요?
왕건 아.... 아직 그런 것은 아니오만....
도영 그렇다면 아주 잘 되었사옵니다. 이번에 함께 모두 말씀을 올려 처리하신다면 오히려 복잡함을 덜 것이옵니다.
왕건 .... (역시 할 말이 없다)
오다련 우리가 송악과 사돈이 되면 결국은 형제요, 한 핏줄이 되는 것이 올시다. 금성을 보존하는데 있어서, 이보다도 확실한 약속은 더 없을 것이외다. 아니그렇소이까? 왕장군.
왕건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남녀의 일은 정략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서로간의 신의와 믿음과 정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도영 이미 소녀가 장군을 사모하고 있사옵니다. 그 말씀이 새삼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오다련 하하하. 글세 내 딸아이가 이렇습니다. 이 아이는 너무 솔직해서 탈이예요. 허허허.
왕건 좋습니다. 일단 이 일을 송악에 계시는 우리 폐하께 주청을 올려 대답을 구하기로 하겠습니다.
도영 폐하께서는 분명 허락을 하실 것이옵니다. 그렇게 되면, 소녀도 작은 청이 하나 있사옵니다.
왕건 말씀해보시구려.
도영 비록 제가 자청하여 부용아씨 다음으로 두 번째 부인이 되옵니다만은, 혼례는 먼저 올리고 싶사옵니다. 이 작은 자존심 하나를 지켜주신다면, 평생의 은혜로 알겠사옵니다.
왕건이 놀란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찌할것인가?....
도영 어렵겠사옵니까? 장군.
오다련 이미 모든 것을 각오하고 또한 수용했소이다. 어쨌든 우리 딸아이는 장군의 두 번째 부인자리로 되었소이다. 이 아이도 처녀의 몸으로써 은근한 섭섭함이 있을 것이외다. 그것을 아량을 베풀어 풀어주시구려. 이곳에서 식을 올려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외다.
왕건 .... 글세올습니다. 허허, 이 일을 어찌할꼬? 혼례를 먼저 올린다? 이 곳에서 혼례를?...
씬 정주 유장자 집 외경
많은 일꾼들이 마당을 오가고 있다. 옷감을 들고 가고, 집기들을 들고 가고, 집사장과 집사가 이들을 감독하고 있다.
집사장 이보게.
집사 예, 집사장 어른.
집사장 나으리와 마님께서 하루에도 몇 번씩 혼례 일을 묻고 계신다네.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게야.
집사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오늘도 중국과 일본에서 들여온 물건들이 있어서 이렇게 밤 늦게까지 사람들이 바쁘옵니다. 허허허.
집사장 왕건 장군이 이 댁에 사위님이 되신다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허허허. 송악과 정주가 사돈집이 되는 것이야.
집사장이 그렇게 안채 쪽을 보면.
유장자 (E) 내일 폐하께서 송악에 도착하신다 하는구나.
씬 동 집 안
유장자가 부용모녀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장자 폐하께서 송악에 오시면, 왕장군과의 혼례 일을 다 말씀 올릴 것이니라. 송악사람들과도 그렇게 약속을 했다.
부용모 폐하까지 아셔야 하옵니까?
유장자 그렇고 말고요. 이 혼사는 국가적인 일이올시다. 왜냐하면, 왕장군은 폐하와 의형제가 됩니다. 대단히 반가워하실 것이올시다.
부용 하지만, 아버님. 그렇다고는하나 개인의 혼인을 그렇게까지 크게 하실 일이 무엇이옵니까?
유장자 모르는 소리. 너와 왕장군의 혼례는 세상이 널리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느니라. 왕장군은 이미 송악뿐만 아니라 고려가 자랑하는 천하의 대장군이고, 너는 그 부인이 되기 때문이니라. 너와 함께 이 정주 또한 세상에 그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야. 알겠느냐?
부용 예, 아버님.
유장자 허허허, 부인. 한때는 그렇게 불안해하고 걱정을 하더니, 지금은 어떻소이까?
부용모 모든 일이 다 잘되어 가니, 꿈만 같사옵니다.
유장자 세월이 가면 더 큰 보람과 기쁜 일들이 생길 것이오. 도선대사의 예언이 사실로 확인이 된다면 말이오. 왕장군은 예비된 황룡이오. 아시겠소이까? 부용아, 너도 그것을 잊지 말거라. 네 서방이 될 사람은 하늘이 점지한 황룡이란 말이다!
씬 송악 왕건의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왕평달과 두 사부, 두 아들 그리고 장수장도 함께 해있다.
왕평달 견훤왕이 완산주로 돌아갔다지? 안되었구먼. 허허허. 우리조카에게 그토록 당했으니 얼마나 원통해하며 돌아갔을꼬? 허허허, 사실 그리 될 줄 알고 있었지만, 금성의 일은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었어.
변사부 그러하옵니다, 어르신. 주군께서 덕이 크시어 이루어진 일이옵니다. 사실 이번에 금성공략은 주변의 많은 도움으로 이루어진 일이옵니다.
마사부 그렇사옵니다. 정주에서도 파격적으로 온 재산을 던져 도왔고, 또한 패서의 많은 호족들도 아낌없이 도왔다 들었사옵니다.
왕평달 암, 알고 있네. 그 고마움들을 잊어서는 아니되지.
왕식렴 그보다도 더 큰 은인들이 있사옵니다. 바로 금성에 있는 오다련장자와 태수 종례라는 사람이옵니다.
왕평달 그렇지. 그 사람들의 공은 결코 가벼이 해서는 아니되지.
왕식렴 그리고, 또 있사옵니다. 바로 장자 오다련의 따님인 도영낭자라는 처녀이옵니다.
왕평달 그 이야기도 들었지. 대단한 낭자라면서?
왕식렴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서 금성의 일로 상급을 내리시려면 형님외에 제일 먼저 그 낭자를 첫 번째로 칭찬해야 할 것이옵니다. 그만큼 공이 컸사옵니다.
왕평달 이야기 들었다. 어찌 조정에서 이를 모르겠느냐? 다 알고들 있을 것이니라. 폐하께서 오시면 그에 마땅한 상급을 내리시겠지.
왕식렴 아버님, 내일 폐하가 오시는데 저희들도 나가야 하옵니까?
왕평달 그렇다마다. 폐하가 먼길을 다녀오시는데 마땅히 마중을 나가뵈어야지. 왕신이 너도 가야하고.
왕신 예, 아버님.
왕평달 될 수 있는 대로 황실의 눈에 나지 말아야 한다. 건이 조카가 저렇게 크게 이름을 드러낼수록 우리는 조심을 거듭해야해. 좋지 않은 눈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니깐 말이야. 장수장도 집 안팎의 경계를 각별히 하고.
장수장 예, 어르신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한숨을 쉬는 왕평달의 얼굴에서...
씬 송악 성(낮)
궁예 일행이 들어서고 있다. 많은 신료들이 영접하고 있다. 종간, 염상 박유, 그리고 복지겸, 강장자 부부와 황후인 연화, 슬이, 제조상궁, 진내관과 함께 왕평달 가족들, 유장자, 박지윤부자, 장자 1,2도 보인다. 많은 이들이 백마를 타고 들어서고 있는 궁예와 그 뒤를 따르는 아지태, 은부, 그리고 그들을 호위해오는 내군들을 보고 있다.
모두들 폐하, 먼길 다녀오시옵니다.
궁예 허허, 왜들 이렇게 모두 나왔소이까?
종간 폐하께서 환궁하시는데 신료들이 영접해 올림은 당연한 것이옵니다. 어서오시오소서,폐하.
박지윤 먼길, 얼마나 노고가 크셨사옵니까?
궁예 허허허, 노고라고 할 게 무엇이 있겠소? 철원은 이제 자주 다니다보니, 바로 옆집 다녀오는 것 같소이다. 허허허. 황후께서도 나오셨구료? 두 분 장인어르신과 장모님께서 나오시구요.
강장자 예, 폐하. 새 도읍지를 돌아보신다 들었사옵니다. 좋은 곳을 찾으셨사옵니까?
모두들 ....?
궁예 그렇다마다요. 아예, 궁궐터까지 확실하게 보아두었소이다.
백씨 그러하시옵니까? 참으로 다행이옵니다.
종간 ....
궁예 자, 황후 길에서 이럴게 아니라 어서 들어가십시다. 뭘 황후까지 나온단 말씀이오? 허허허, 이런 참. 가십시다.
연화 예, 폐하.
궁예 (움직이면서 박유를 본다) 이보시오, 내원.
종간 예, 폐하.
궁예 저 사람은...?
종간 일전에 폐하께 장계로써 아뢴 박유라는 학인이옵니다.
박유 박유라하옵니다, 폐하.
궁예 오, 박학사. 내 이야기는 들었소이다. 여기 아학사와 동문수학을 한 사이라지요?
박유 그러하옵니다.
그러자 아지태와 박유는 서로를 잠시 보며, 의미있는 눈치를 나눈다. 결코 반가운 표정들은 아니다.
궁예 공부를 많이 한 학인들이 조정에 들어오는 것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오.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해주시구료.
박유 견마지로를 다 하겠사옵니다, 폐하.
궁예 고맙소이다. 자, 내원.
종간 예, 폐하.
궁예 모두들 돌아가시라 하시오. 며칠 후 조회를 열 것이니 그때들 보십시다.
종간 예, 폐하. 어서 궁으로 드시오소서. 신료들에게는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염상에게) 신료들분에게 폐하의 영을 전해올려라.
염상 예, 내원어른.
궁예와 황후 연화들이 나란히 궁 쪽으로 간다. 신료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궁예를 그렇게 보내면..
씬 송악 황궁, 대전복도
대전내관들이 내군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다.
씬 동 대전
궁예가 쌓여 있는 장계들을 일일이 보고 있다. 그 앞에 종간과 박유, 아지태, 은부가 함께 해 있다. 궁예는 기분이 좋다.
궁예 평양일대의 호족들이 귀부를 해온다?
종간 예, 폐하. 그곳 십여고을이 그동안 독자적인 행보를 취하고 있었사온데, 이번에 폐하께 귀부를 원해왔사옵니다.
궁예 허허허. 하긴 여기서 그곳은 너무 멀어.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는데, 스스로 머리를 숙여 오겠다니 어찌 받지 않겠는가? 이들을 잘 단속하게.
종간 예, 폐하.
궁예 그리고 (다른 장계를 보며) 금성의 일은 어찌되었는가? 왜 보이지를 않는게야?
종간 방금전에 올라온 장계가 있사옵니다. 바로 거기...
궁예 아, 이것이로구먼. 워낙 장계들이 많다보니 어디 좋은 소식이 있나 봅시다.
종간 금성의 일은 이미 일단락이 된 듯 하옵니다. 견훤왕도 완산주로 돌아갔고, 수달이란 장수가 무진주에 남아 금성을 엿보고 있다 하옵니다.
궁예 하핫하하.. 엿본들 무엇하는가? 이미 그것은 짐의 땅이거늘. 아니그렀소이까? 내원?
종간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하하하. 왕장군이 무슨 장계를 올렸나? 어디 봅시다.
궁예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웃으며 장계를 활짝 펴본다. 그러다가, 정색을 하며 깜짝 놀란다. 다시 한 번 글을 읽는다.
궁예 이것이 방금 전에 올라온 장계라하였소이까?
종간 그러하옵니다.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궁예 있다마다, 이런 일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
모두들 .....(뭔가 하여 본다)
궁예 허허, 이런. 이럴 수가 있나...
아지태 무슨 일이시옵니까? 폐하.
궁예 (갑자기 폭소) 하하하... 왕장군이 장가를 간다는구료. 장가말이오.
모두들 예?
궁예 (계속 웃으며) 이럴 수가 있나.. 그것도 한꺼번에 부인을 둘씩이나 얻는다는구료. 세상에...이럴 수가 있나..그토록 장가를 아니가던 왕장군이 글세 한꺼번에 둘씩이나 부인을 보게 된다는 구료.
은부 참으로 놀라운 소식이옵니다, 폐하. 소신도 믿기지가 않사옵니다.
궁예 내막인즉 이렇소이다. 금성에 가기 전에 유장자 집안의 여식과 혼인을 약속하였는데, 지금은 금성의 오장자 집안에서 혼인을 청해왔다는 것이오. 금성을 오래 지키자면, 이 청을 또한 거부하기 어려우니 어찌하면 좋은가하고 나에게 물어왔구료.
박유 폐하, 바로 그것이옵니다. 신은 일전에 내원어른께 그 일에 관하여 말씀을 드린 적이 있사옵니다. 금성을 지키는 길은 군사나 성으로써가 아니라 바로 서로간의 피로써 약속하는 길이 가장 확실한 것이라 아뢰었습니다. 이 일이 바로 그것이옵니다.
종간 그러하옵니다. 참으로 적절한 때에 이 일이 논의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허락을 하시오소서, 폐하.
궁예 허락이라니?... 짐이 부탁을 해야 할판에 허락이 다 무엇이오? 그리해야지. 그렇게 해야 하고 말고. 허지만, 놀라운 일이 아니오? 평생 혼자 살 것 같더니만 세상에 한꺼번에 두 번씩 장가를 간다는 게요.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얘기요? 하하하하.
궁예는 계속 폭소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웃음을 멈추며 끄떡이다가 박유를 본다.
궁예 맞소이다. 사실 서로가 사돈을 맺어 놓는다면 누가 누구를 배신할 수 있소이까? 땅을 지키는 가장 안전한 길은 바로 그것이지요. 암.자, 이 일은 즉시 파발을 띄워 대답을 전해주시구료.
은부 예, 폐하.
궁예 아, 하 참... 그런 큰 일이 있었는데 논공행상을 아니할 수가 없지. 장수들이야 돌아오면 짐이 친히 위로를 할 것이지만, 장자 오다련과 태수 종례라는 사람은 마땅히 상급을 내려야 할 것이야.
은부 예, 폐하.
궁예 그리고 그 금성이라는 곳이 이름이 마음에 들지가 않아. 철원 옆에도 금성이라는 똑같은 이름이 있어. 그러니, 지금 왕장군이 있는 곳은 새로운 이름을 쓰라고 하시오. 나주라고 하면 어떨가? 신라를 취하여 주로 삼는다는 뜻에서 붙여 본 말이오.
종간 참으로 의미가 크시옵니다, 폐하.
궁예 그렇게 하십시다. 금성을 고쳐 나주라 부르라 하시오!
종간 예, 폐하.
궁예 그리고 다련군에게는 나주를 본으로 하는 오씨 성을 내리고, 태수 총례라는 사람도 나주의 나자를 따서 나주 나씨의 본을 내리는 바이오. 이를 그대로 전하시오.
종간 예, 폐하.
궁예 그리고, 박학사.
박유 예, 폐하.
궁예 경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소이다. 일단은 내원을 도와주면서 두 태자의 스승이 되어주시구료. 아직은 어리지만 지금부터 스승이 필요한 것이오. 어린 가지를 바로 세워야 좋은 재목이 나는 것이거든.
박유 예, 폐하.
궁예 자, 그럼 나는 황후전으로 가 보아야겠소이다. 다른 일들은 조회에서 논의하도록 하십시다. 그럼...
궁예가 일어선다. 모두가 일어나 예를 올린다. 궁예가 그렇게 빠져나가면... 종간은 노려보듯 아지태를 본다. 아지태가 그런 종간의 시선을 받으며, 다시 박유를 본다.
아지태 이보게, 유... 이렇게 다시 보게 되었구먼. 어떤가? 오랜만인데 우리 차 한 잔 하는 것이...
박유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하세.
아지태 내원어른, 오늘은 이만....
종간 ......(대답이 없다)
그렇게 바라보는 종간의 표정에서 디졸브되면...
씬 황후전 복도
씬 동 황후전
궁예가 어린 두 아기를 보고 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끄떡이다가 연화에게 말한다.
궁예 이번에 철원에 간 일은 성과가 좋았소이다. 곧 그에 관한 일을 조회에서 결론을 내게 될 것이오.
연화 도읍을 옮기는 일 말이옵니까?
궁예 허허허. 당장 옮기는 것이 아니라 준비를 하는 것이오.
연화 백성들을 생각하시오소서.
궁예 그렇기 때문에 그리하는 것이오. 다 백성들을 위해서..
연화 ....
궁예 허허허. 방금 전에 아주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소이다. 글세 왕건아우가 장가를 간다는구료.
연화 .....(꿈틀하고)...?
궁예 그것도 부인을 둘 씩이나 얻는다는게요. 그것참... 이거야 말로 놀라운 소식이 아니오? 황후? 아니그렀소?
연화 정말.... 그러하옵니다.... 어떻게... 둘씩이나...
궁예 그러게 말이오. 그러니 놀랄 일이 아니겠소? 그건 그렇고 이 어린 태자들 말이오. 돐이 지났으면 마땅히 선생이 있어야하오.
연화 이야기 들었사옵니다. 이 어린 태자들을 별처에서 기른다 하셨사옵니까?
궁예 큰 나무를 만들자면 어려서부터 질서있는 교육을 받아야하오. 이미 그리하도록 조처를 하였으니, 황후가 이해를 하시구료.
연화 아니되옵니다. 이제 갓 돌 지난 아기들이옵니다. 이 아기들을 어미에게서 떼어내려 하시옵니까?
궁예 떼어내는 것이 아니오. 공부를 하기위해 그런다 하지않소?
연화 신첩은 지난 날 북원부인의 일을 잊지 않고 있사옵니다. 그 소생이 명주 근처에서 살다가 지금은 행방이 묘연하옵니다.
궁예 허허. 이런. 그 일과 이 일을 왜 결부시키는게요?
연화 겁이나서 그렇사옵니다. 폐하께서 하시는 일이 워낙 냉철하시어서 겁이 나옵니다.
궁예 그렇지가 않소이다. 이 두 아이는 황궁안에서 자랄것이오. 지금부터 제대로 된 스승과 질서 위에서 자라게 될 것이오. 그리하시오.
연화 아니되옵니다. 그리는 못하옵니다.
궁예 해야하오. 사사로운 정으로 막을 일이 아니오. 국가를 책임질 수 있는 인재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를 황후도 알아야 하오. 반드시 그리해야 하오.
연화 저 어린 것들을.... 저 어린 것들을.... 벌써부터 애미에게서 거두어 가십니까? 너무하시옵니다. 너무하시옵니다.
궁예 황후 한 사람의 정보다도 수 많은 백성들의 목숨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왜 모르시오? 황제가 잘 못 되면 수 많은 백성들이 죽게 되오. 그 일을 지금부터 잘 되도록 하자는 것이오. 그리아시오, 황후.
연화 폐하....?
씬 황궁 내원
종간과 은부가 마주해있다. 종간이 거듭 한숨을 내쉰다.
은부 그나마 박유라는 대학자가 황궁에 오게되어 다행이옵니다.
종간 그건 그러하이.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상당히 현명한 학자 같더구먼.
은부 아지태와 동문수학한 사이라니, 우연치고는 놀라운 일이옵니다.
종간 허허허. 그러게 말일세. 아마도 세상을 보는 서로의 생각은 다른 것 같더구먼.
은부 그러니 다행이 아니겠사옵니까? 저 아지태처럼 분별없이 날뛰다가는...
종간 그러게 말일세. 폐하께서 곧 조회를 여신다하셨는데.... 예전같으면 미리 나에게 많은 것을 의논해주시었네. (한숨) 허나, 지금은 아니야. 폐하께선 많이 변하셨네.
은부 그렇사옵니다. 철원에서 보니 아지태는 폐하께 강력한 독재를 은연 중 권하고 있었고, 폐하께서는 또한 이를 받아들이시는 듯 했사옵니다. 두렵사옵니다.
종간 그러게 말일세. 나도 두렵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무서운 시련이 다가올 것 같은 예감일세.
은부 ....
종간 폐하께서 변하고 계신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그리 탐탁치 않은 존재들로 전락하고 있다는 이야기와도 같은 것일세.
은부 (크게 놀라며)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내원어른께서 누구시옵니까? 그리고, 이 은부가 얼마나 충성을 받쳐왔사옵니까?
종간 고대의 많은 역사를 보면 나라를 세울 때 공이 있는 자들이 그 다음 대까지 오래 살아있는 예는 그리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네.
은부 ..... 내원 어른?
종간 허허허. 그렇다는 것이야. 그만큼 우리도 조심할 때가 된 것일세. 허나, 그대와 나의 이 충성심이 어디로 가겠는가? 목숨을 달라면 드릴것이고, 머리를 뽑아 신을 삼으라면 삼아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저 사악한 것들을 어떻게든 우리는 막아야 하네. 그것이 우리의 절대절명의 목표일세.
은부 알겠사옵니다, 내원어른.
종간의 답답한 한숨에서 디졸브....
씬 동 황궁 어느 방
아지태와 박유가 차를 마시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빤히 보고 있다.
아지태 이보게, 유. 금강산에선 왜 내려왔는가?
박유 허허허. 신선처럼 살려고 하였는데, 그렇지가 못하게 되었네. 자네가 온통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고 하여 무슨 일인가하고 내려왔지.
아지태 하하하. 그랬는가? 그래서 보니 어떻든가?
박유 사실 그대로였네. 자네가 이 나라를 온통 흙구덩이 속으로 집어 넣고 있더구먼.
아지태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박유 자네는 소시적부터 헛된 망상을 자주 꾼 사람이었어. 망상말일세.
아지태 허허허. 또 그 소린가?
박유 자네가 꿈꾸고 있는 대 제국의 꿈은 현실로는 어려운 것이야. 이 삼한은 대륙의 끝자락에 있어서 북으로 진출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네.
아지태 옳지.
박유 그런데도 자네는 지금의 폐하를 충돌질하여 이루기 어려운 꿈을 현실처럼 만들려고 하고 있어. 그것은 결국 백성을 죽이고 나라를 망치고 자네 자신을 불태우는 일일세.
아지태 못난 소리. 나는 오십 평생 내 뜻을 받아 줄 세상을 기다려왔네. 그리고, 이제서야 만났어. 대 제국의 꿈이 왜 꿈으로만 끝이 나야 하는가? 그 옛날 고구려는 대륙의 절반을 먹어치웠네. 왜 그것이 아니된다는 것이야?
박유 지금은 삼한의 통일조차도 앞으로가 어찌될지 암흑 속일세. 현자는 백성을 먼저 생각한다 하였어. 수십년째 신라의 쇠퇴와 함께 세금과 굶주림과 전쟁과 병마에 시달려 온 백성들일세. 그 불쌍한 백성들을 다시 또 황궁을 짓는다, 더 큰 제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채찍질하며 괴롭힐 것인가?
아지태 회생이 없이는 결과가 없네. 왜 그것을 모르는가?
박유 궁예 황제는 자네로하여 지금까지 이루어 온 그 거룩한 미륵의 모습을 잃게될 것이야. 이대로 계속 간다면 말일세.
아지태 ..... (한 참 보다가).... 황제 한 사람의 일이 아닐세. 내가 이 아지태가 누군가를 움직여 거대한 제국을 이룰 수 있는가 못하는가가 문제일세. 사내로써 세상에 태어났으면 뭔가는 해놓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박유 그 때문에 황제를 속이고, 세상을 속일 것인가?
아지태 이보게, 유. 황제가 세상을 만드는 게 아닐세. 대 제국을 이룩하는 것은 뒤에서 황제를 움직이는 바로 나일세. 우리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는가? 세상을 움직이는 공부를 하지 않았나 말일세.
박유 백성이 곧 세상이고, 우주임을 왜 모르는가? 자네는 기필코 후회할 것일세. 정도를 걷지 않으면, 하늘은 돕지를 않는다네. 그것을 왜 모르는가?
아지태 모르는 것은 자네일세. 두고보세나. 나는 폐하를 앞세워 대 동방국, 대륙을 호령하는 거대한 제국,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를 이룩할 것일세. 그리하여, 이 아지태의 이름도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 남도록 할 걸세. 어떤가? 유. 함께 해보지 않겠는가?
박유 하하하. 자네는 실성한 사람일세. 비뚤어진 천재야. 자네의 그 망상이 결국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걸세. 나는 그것을 막는데, 일조를 하게 될 걸세. 염두해두게나.
아지태 하하하. 그렇게 함세. 어디 그럼 우리 서로 잘해보세나. 허허허.
두 사람 그렇게 날카로운 미소를 주고 받으면서...
씬 황궁 정전
문무신료들이 모두 모였다. 궁예가 옥좌에 앉아 있다.
궁예 경들은 들으오.
모두들 예, 폐하.
궁예 오늘 이렇게 조회를 연 것은 그동안 짐이 오래 오래 생각을 거듭해어왔던 이 나라에 관한 일을 대중에게 알리려 함이오,
모두들 ....
궁예 왕장군은 금성을 함락하였고, 저 패서지역 북방에서는 평양성 주변의 호족들이 무더기로 이 나라에 귀부를 했소이다. 북으로 또 남으로 그리고 동으로 짐의 군대는 걸림이 없이 뻗어 나가고 있소이다. 이는 바야흐로 이 나라가 삼한 땅 한 구석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가 아니라, 그 옛날 광개토대제의 대 고구려처럼 넓은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한 좋은 조심이올시다.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궁예 우리는 좀 더 넓고 큰 꿈을 가져야하오. 그 때문에 짐은
제국에 중심이 될 도읍지를 두 번이나 돌아보고 왔소이다. 그리고, 결정하였소이다.
종간 .....
아지태 ....
궁예 짐은 황도를 이 송악에서 철원으로 옮길 것이오! 미리 말해두지만, 다른 이의나 반대는 허락하지 않겠소이다!
모두들 ....
궁예 그리고, 철원에서 황궁을 짓는 동안 나라 이름부터 바꾸기로 하였소. 지금의 고려는 옛고구려의 망령같은 기분이 드오. 따라서, 짐은 좀 더 웅대한 뜻을 담은 나라이름을 쓰기로 하였소이다! 앞으로 우리 제국의 국호는 마진이라 불리게 될 것이오! 마진이오!! 아시겠소이까? 국호는 마진이고 연호는 무태로 쓰기로 하였소이다!
모두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해설 마진, 언젠가 잠깐 언급하였듯이 이는 마하진단이라는 불교 용어에서 나온 약자이다. 즉 대동방국을 뜻하는 말인 것이다. 궁예가 승려출신이고 미륵을 자처했다는 점에서 불교적 용어로 나라 이름을 만든 것을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동안 고려의 중심세력이었던 많은 패서인들은 궁예의 이런 모험에 두려움을 느껴왔다. 지금껏 고구려의 부흥을 꿈꾸었던 목표가 사라지고, 그야말로 뿌리를 알수 없는 신생국 마진이 새로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종간도 은부도 실은 그들의 이런 불안을 공감하며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궁예는 신료들을 위압하며 이를 단행했다. 이때가 서기 904년, 단기로는 3237년의 일이었다.
궁예 짐의 뜻을 아시겠소이까?
모두들 예, 폐하.
궁예 또한 내년까지는 도읍을 옮길 수 있도록 공사를 서둘러야 할 것이오. 먼저 학사 아지태의 향리인 청주의 백성들을 철원으로 사민(거주지를 옮기는 일) 시킬 것이오.
박지윤 폐하, 사민이라 하셨습니까? 청주백성들 말이옵니까?
궁예 그렇소이다. 그들이야말로 지역주의에 물들지 않았고 짐과 이 나라를 위해 조건없이 충성하는 백성들이오. 저들을 일천호 가량 사민을 시킴과 동시에 철원 주변의 모든 군현 백성들을 다 동원하여 황궁을 짓는 부역에 참여케 할 것이오. 광치나는 이를 즉시 시행토록 하오!
박지윤 예, 폐하.
궁예 또한, 전국의 수령방백들은 모두 황궁의 대 역사에 참여하도록 할 것이오. 세금을 지금 수준의 갑절을 올릴 것이며, 목표를 지키지 못하는 수령들은 그에 관해 엄중한 죄를 물을 것이오. 삼가 깊이 통찰하도록 하시오!
신료들 예, 폐하.
궁예 조정의 부서와 관직도 대대적으로 개편을 할 것이오. 이보시오, 내원.
종간 예, 폐하.
궁예 오늘 짐이 조회에 내린 부서와 그 관련 책임자들은 조회가 끝난 후 각자에게 알려주도록 하오.
종간 예, 폐하.
궁예 그리고, 경사스러운 일이 하나 있소이다. 금성을 함락시킨 왕장군이 곧 혼례를 올리게 된다고 하였소이다.
유장자 ....(미소)
궁예 상대는 금성에 있는 장자 오다련의 여식이라 하오.
유장자 아니...?
궁예 그 첫 부인은 대룡부령인 유장자의 여식이 될 것이라 하였고, 두 번째 부인이 금성에 있는 오장자의 여식이라고 하였소이다. 허허허. 대룡부령, 참으로 축하드리오.
유장자 (어떨떨해 하면서) 망극하옵니다, 페하....하온데 신은 목포의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사옵니다.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궁예 짐도 바로 얼마전에 알았소이다. 아마도 그럴 사유가 급히 생긴 것 같소이다. 그 일은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십시다.
유장자 .....아, 예.....
궁예 그리고 왕장군도 목표를 다 이루고 큰 승리를 하였으니, 그만 돌아오라고 전하였소이다. 왕장군이 돌아오면, 우리 마진국의 군대는 새로운 공략처를 찾아 다시 움직이게 될 것이오. 병부령은 이에 관한 사안을 면밀히 검토해 올리시오.
복지겸 예, 폐하.
궁예 금성에서 왕장군의 혼례가 끝나고, 돌아오면. 이보시오, 대룡부령.
유장자 예, 폐하.
궁예 어찌되었든 여기서도 또 혼례를 해야하지 않겠소이까?
유장자 그....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나를 잘 잡아서 짐에게도 알려주시구료. 기꺼이 참석을 하리라. 왕장군은 나의 아우요. 어찌 형이 참석을 안 할 수가 있겠소?
유장자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자, 오늘의 일은 이 나라가 새로운 역사에 접하는 중요한 날이오. 지금부터 전국에 파발을 띠워 나라 이름과 연호를 새로이 하였음을 알리기 바라오. 속히 이 일을 알리시오!
모두들 예, 폐하.
씬 인서트
파발들이 달리고 있다. 그들은 한무리가 달려오다가, 곳곳에서 갈라지며 서로의 길을 간다. 그들 그렇게 멀어지면....
씬 금성 바닷가
씬 동 금성관아
왕건(E) 폐하께서 비답을 내려주셨다?
씬 동 관아 안
전령이 허리를 굽히고 서있고. 왕건이 일어나서 장계를 보다가, 다시 전령을 본다. 그 옆에 도영과 더불어 환선길, 이흔암, 홍유, 김언, 김락, 종회, 이치 등이 모두 서있다. 또한, 오다련과 종례도 자리를 함께 해 있다.
왕건 어떻게 이리 빨리 올 수가 있었는가?
전령 페하께오서 일을 속히 진행하도록 하셨사옵니다. 그날로 영을 뫼시어 다시 왔사옵니다.
유금필 허허허. 저희들이 뭐라 하였사옵니까? 좋은 대답을 주실 것이라 아니하였사옵니까?
환선길 허허허. 아무튼 감축드리오, 왕장군. 금성 땅을 얻고 장가까지 가시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허허허.
이흔암 이를 말이옵니까? 그야말로 꿩도 잡고 알도 찾고 일거양득이 올습니다, 왕장군?
왕건 허허. 이것 참.
이치 감축드리옵니다.
홍유 감축드리옵니다.
일제히 감축드리오, 장군.
왕건 그보다도 폐하께서 내리신 영이 있소이다. 이곳 금성을 고쳐 나주로 부르라 이르셨소이다.
김언 나주라하였사옵니까?
왕건 그렇소이다. 그리고, 여기 두 분께 내리신 상급이 있소이다. 먼저 오장자께는 다련군이라는 별호를 내리시는 동시에 나주를 본으로 하는 나주 오씨의 성을 하사하셨고, 종례 태수 또한 나주 나씨를 본으로 하는 성을 하사하셨소이다. 참으로 감축드립니다.
오다련 아니, 성을 하사하시다니 이 사람이 사성을 받게 되다니..이런 영광이 어디있겠소이까? 허허. 이렇게 고마울 때가.
종례 그러게 말이올시다. 이야말로 폐하께서 내리시는 상급 중에 가장 큰 상급이올시다. 허허허.
해설 사성, 이른바 황제가 내리는 성을 일컫는 것이다. 이때만해도 성이 없이 이름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황제가 성을 내린다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부귀와 영광을 누리는 귀족이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어찌 큰 선물이 아닐 수 있으랴? 나주 오씨와 나주 나씨는 금성의 일로 인해 그 공을 인정받아 성을 하사 받았다고 전해내려 오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바로 이 무렵, 그러니까 서기 903년에 일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모두들 웃음소리들이 계속된다. 그와중에서도 도영이 왕건을 본다. 뭔가 묘한 뜻이 교차되고 있다. 그것은 기쁨이다.
오다련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폐하께 큰 감사를 올리옵니다. 사성까지 내려주신 데다가 왕장군과 이 사람의 여식간에 혼례를 허락해주셨소이다. 이렇게 기쁠 때가 어디있겠소이까?
종회 참으로 감축드립니다. 허허허, 이거 여기서 그에 잔치떡을 얻어 먹게 되었습니다그려.
김락 그러게 말이올시다. 경사 중에 경사올시다. 허허허.
왕건 이거 뭐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폐하께서 영을 내리셨으니, 신하된 사람으로써 어찌 그 영을 거역할 수가 있겠소이까?
도영 참으로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소녀 또한 어찌 지엄하신 폐하의 영을 거역할 수 있사오리까? 마땅히 따르겠사옵니다.
박술희 하핫하하하.... 폐하께오서 시각을 지체지 말고 혼례를 올린 후 송악으로 오라하시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었다면, 혼례를 서둘러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오다련 그렇게 하겠소이다. 당장 일을 서둘러 내일 중으로 대사를 결정하겠습니다.
왕건 아니... 이렇게 서두를 것까지는....
도영 장군, 폐하의 영이시옵니다. 영을 지켜야 함이 신하된 본분이시라고 조금 전에 말씀하셨사옵니다. 그렇다면 서두르심이 마땅한 일이옵니다. 아니 그렇사옵니까? 장군?
그렇게 바라보는 도영의 얼굴에서.... < 61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