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손이 가벼운 사람에게.... -
권다품(영철)
철이 든 이후부터 뺨을 맞으면, 그 치욕감 때문인지 이성을 잃는 편이다.
그래서 나도 가능하면 뺨을 때리진 않는다.
대입 검정고시 학원을 다닐 때였다.
친구들이 어느 여학생에게 가서 농담을 했다.
"저 사람이 니 좋아한단다."
그런데, 사실은 나는 그런 여학생은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여학생은 따로 있었다.
나도 그때만 해도 순진했고, 또, 그 여학생은 공부를 학원내에서 제일 잘하는 여학생이라, 성적이 그 여학생을 따라가지 못하는 나로서는 말을 못하고 애만 태우고 있을 때였다.
그렇다고, 그 싫어한다는 여학생에게 "나는 너 안 좋아한다. 좋아하는 여학생이 따로 있다."고 말하는 것도 잔인할 것 같아서 그냥 농담으로 생각하고 한참을 그렇게 지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여학생이 정색을 하고 와서는 나를 노려보며 "나한테 할 말 없어요?" 했다.
"무슨 말?"
"아저씨가 00 언니 좋아한다고 학원에 소문났던데, 진짭니까?"
"아직 말도 못하고 나 혼자 좋아하는 거지."
"그럼 그동안 나를 놀린거네요?" 하며 손이 내 뺨으로 날아왔다.
'친구들이 농담을 했고, 그래도 자존심 상할까 봐 다른 여학생을 마음에 두고 있다고 말하기가 좀 그랬다'고 말할 틈도 없었다.
순간적으로 손을 잡았다.
또 왼손이 날아왔다.
왼손을 잡으면서 순간적으로 여학생의 뺨을 갈겨 버렸다.
"이 가시나가 미쳤나? 어이, 연속극 흉내 좀 내지마라. 가시나가 어데 아무데나 손이 올라오노? 친구들이 농담으로 한 거고, 설사 니가 예쁘다 캐도, 나는 남자 얼굴에 손 올리는 가시나는 질색이야. 앞으로 우리 모임 근처에도 얼쩡거리지마."
그 이후 그 여학생은 학원내 건달같은 다른 남학생과 밥먹으러 가면서 일주러 내 앞으로 지나가곤 했다.
그러다 그 남학생이 다른 여학생과 다니는 것을 봤고, 그 이후부터 그 여학생은 학원에서 보이지 않았다.
십대 후반 때였다.
우리 집은 시골에서 정미소를 했다.
그런데, 우리 정미소는 우리 동네가 아닌, 이웃 동네에 있었는데, 그 이웃 동네 아이들과 우리 동네 아이들은 이상하게 만나기만 하면, 아무 싸울 일이 없는데도 만나기만 하면 서로 욕을 하고 싸우기가 예사였다.
심지어 저녁을 잘 먹고 나와서는 우리는 이웃 동네 아이들을 패겠다고 올라가고, 그 동네 아이들은 또 우리 동네 아이들을 패겠다고 내려오다가 중간에서 만나면 마치 영화에 나오는 듯한 그런 패싸움을 벌이곤 했다.
하루는 우리가 올라가다가 그 동네 선배들에게 붙잡혔다.
우리 한두 해 선배들이 내려올 줄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싸우러 올라가다가, 2회 3회 4회, 심지어 6회 선배까지 우리 버릇을 고치겠다며 내려오는 중이었다.
그렇게 붙들려서 우리는 줄도 서고 원산폭격도 당했다.
2회 선배가 "이 개새끼들 너거 오늘 잘 만났다. 한 번 죽어봐라. 일열 횡대로 써, 이 개새끼들아."
그렇게 붙들려서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고 원산폭격도 당했다.
"이 새끼 아거는 방아쟁이 새끼 아이가?" 하며 내 뺨을 후려 갈겼다.
눈에서 불이 번쩍했다.
순간 그만 이성을 잃어 버렸다.
주먹만한 돌로 그 선배를 머리고 몸이고 할 것없이 수도없이 찍어 버렸나 보다.
그 선배는 급한 나머지 "잘못했다." 소리를 지르면서 다른 사람들과 도망을 가는 그런 싸움을 하며 컸다.
나는 이처럼 "짝" 하며 뺨을 맞는다는 게 너무 기분이 나쁘다.
내가 그렇게 자존심이 상한다면 다른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아내가 보는 드라마를 보다보면 어쩌다 여자가 남자 뺨 때리는 장면이 나올 때가 있다.
나는 그런 여자라면 재벌 딸이라도 싫다.
나는 손이 가벼운 사람은 그만큼 경망스럽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이가 들다보니, 언성을 높여 싸우는 것도 부끄럽고, 치고받고 싸우는 것은 더 부끄럽다.
'이 나이에 남과 싸운다는 건 내가 지는 것이다'라고 나 자신과 승부를 걸며 이를 악물며 참아 본다.
또, "사람 패는 사람이 이긴 것 같지만, 사실은 진 사람이다. 싸울 정도가 되면 차라리 그 자리를 피해버려라."라는 어른들 말씀도 생각하고....
어이, 옛날처럼 미친듯이 성질이 나지는 않아도, 그래도 성질나게 만드는 인간이 있으이끼네 아직도 성질은 좀 나더라꼬.
그라고, 나는 지금도 뺨따귀를 맞으면 성질이 폭팔할 것 같더라꼬.
아직 그 옛날 성질이 다 걸러지지는 않은 모양이라.
2023년 6월 21일 오후 2시 34분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