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는 하얀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 교회 안에서는 주일 학교 아이들의 성극이 한참이고 그 틈에 유난히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오늘 부임해 온,회사로 치면 말단인 젊은 전도사가 바로 그였다. 난 참 괜찮은 분이 오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 * 딸의 차례가 끝나고 우린 먼저 집으로 향하는데, 까만 밤과 하얀 눈이 아름답고 환하게 기분을 들뜨게 했다. 성극을 하느라 분장까지 한 아이는 재미있고 귀여운 모습이 앙증맞았다. 천사들의 합창처럼 온 세상이 크리스마스캐롤로 뒤덮인 것 같아서 황홀하기까지 했다. 나오는데 눈인사를 하던 그도 충만함에 차 있었다. * * * 퇴근길에 수요 예배 갔다가 갑작스런 소식에 놀라고 있었다. “이번 주일로 한석우 전도사님께서 그만 두시게 되었습니다.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목사님도 서운하셔서 말씀을 잇지 못하고 교인들도… ‘1년 남짓밖에 안됐는데 벌써.. 말도 안 돼’ 서운함과 서글픔이 가슴과 목을 꽉 채워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예배를 마치고 어두운 교회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나오는데 “집사님” 부르며 그가 쫓아오는 게 아닌가? “정말,섭섭해요.” 겨우 말을 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잠깐 저하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 * * 근처 카페로 갔다. 우리는 아무런 말없이 나나무스꾸리의 노래 'Amazing Grace’를 듣고 있었다.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내 마음은 그랬다. 얼마 안 있으면 봄내음을 맡을 수 있을 텐데… * * * 눈을 뜨고 사방을 보니 모두 주위에 모여 있었다. 바로 옆에 그와 엄마가 앉아서 내 손을 잡고 있었다. ' 내…사랑!…' 모두가 다 그를 아는 것 같았다. 또 그와의 일을… 미리가 보고 싶었다. '불쌍한 미리' 나약한 엄마 만나서 눈치만 빠르고… 민우,그가 웃어 보였다. 이제 나서지도 못하고 뒷자리에서, 미안해,민우씨!… * * * “이제,이젠 됐어. 다신 안 잃어버릴 거예요” 속삭이듯 말하는 그의 몸은 얼어 있었다. ‘그래요,나 때문에 얼어 버린 몸과 마음을 다 녹여 줄게요. '소중한 사람!' 진갈색 눈은 충혈되고 젖어 있었다. 창밖에는 우리의 만남을 축복하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내리는 날 그가 온 것이다. * * * 눈이 내리는 날에는…… 눈이 내리는 날에는 반가운 사람이 올 것 같다. 지금도…! -김윤진- 소설 '눈 오는 날' 中에서 98년 월간문예사조에 발표 '노블21'http://www.novel21.com에 소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