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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도시 2 - 루방-라-네뷔
루방-라-네뷔의 도시중심부 출처: sites.uclouvain.be
서울공대지 2017 Spring No.104
한광야 동국대학교 건축공학부 도시설계전공 교수
서유럽의 관문으로 네델란드어와 프랑스어를 함께 사용하는 플랜더(Flanders) 지역에 새로 운 대학도시가 조성되기 시작한 시점은 1970년대이다. 플랜더 지역은 현재 벨지움의 북쪽 지역으로 서유럽 도시들의 바다관문인 ‘북해(Nordsee 또는 Mer du Nord)’를 바라보며 잉 글랜드와 연결되는 목이기도 하다. 이 지역의 젊은 대학도시 루방-라-네뷔(Louvain-la- Neuve)가 우리에게 특별한 것은, ‘대학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시가 어떻게 조성될 수 있는 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특히 한 세대 만에 벨지움을 대표하는 첨단 산업의 ‘R&D’ 거점으 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도시설계의 관점에서 루방-라-네뷔는 자동차 중심의 도시문화로부터 벗어나, 이 시 대에도 ‘과연 보행중심의 도시를 어떻게 가질수 있는가’에 관한 실현과정을 보여주는 실험적 인 도시이다. 물론 플랜더 지역은 우리에게 ‘플란다스의 개(1975)’라는 고전만화의 배경으로 ‘탱탱의 모험(The Adventures of Tintin, 1929–1976)’이 태어난 곳이며, ‘해수면보다 낮은 땅(Nederland)’에서 범람과 방어를 위해 조성한 운하가 스텔라 맥주(Stella Artois)의 유통 망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무엇보다 뱃사람들이 모아온 조각 이야기들이 화가와 물리수학자 를 만나 종이 위에 짜맞추어져 신세계도 그려낸 ‘지도제작술(cartography)’로 꽃피운 땅이 다. 플랜더 지역은 역사 속에서 북부의 플랜더 네덜란드 문화권과 남부의 프랑스 문화권으 로 나뉘어져 기능해 왔다.
플랜더 네덜란드 문화권의 오래된 거점 도시인 루벤(Leuven)이 지도에 등장한 계기는 유럽 대륙을 지배한 신성로마제국 영토 내에서 ‘저지대 지역(Low Countries)’을 실질적으로 지 배했던 브라반트 왕조(Duchy of Brabant, 1183-1430)의 수도로 기능하면서이다. 당시 브 라반트 왕조는 영토를 네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그 행정거점으로 브루셀, 앤트워프, 스-헤 르토헨보스('s-Hertogenbosch), 그리고 루벤을 두었다. 브라반트 왕조의 루벤은 이 네개 의 행정거점들 중에서도 내륙에 입지하여 디일러 강(River Dijle/Dyle)의 운송체계를 이용해 일찍부터 상업활동으로 성장했다. 특히 루벤은 14세기 후반부 터 린넨 직물의 일종인 ‘레윈(Lewyn)’의 생산으로 도시 이름을 얻 고 부를 축적했다. 이 즈음이 루벤이 1425년 교황 마틴 5세의 교 황령을 획득하고 루벤대학교(Studium Generale Lovaniense 또 는 Universitas Lovaniensis, 1425–1797)를 설립한 시기이다. 당 시 루벤대학교는 파리, 콜른, 빈의 대학교들을 모델로 설립되어, 15 세기 이후 캐톨릭교 신학연구의 중심거점이었다. 이후 루벤의 상 업기능이 점차 북해의 관문 항구도시로 빠르게 성장한 엔트워프에 게 뒤지게 되면서, 루벤은 대학교를 중심으로 지식활동의 거점으 로 특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루벤은 디일러 강의 운하로서 북서쪽 40 km에 입지한 북해의 중심 항구인 앤트워프와 연결되어, 항구 도시 배후의 지식생산의 거점으로 기능했다. 이러한 ‘엔트워프-루 벤’의 지역권에서의 기능적 공생관계는 ‘베네치아-파도바’의 그것 과 매우 유사하다.
루벤대학교에는 특히 16세기에 인본주의자인 데시데리우스 에라스 무스(Desiderius Erasmus)가 활동하면서 명성을 획득했다. 이 즈 음 독일의 김나지움 교육체계를 완성한 인본주의 교육자인 요하네 스 스투룸(Johannes Sturm)이 수학했다. 요하네스 스투룸은 그리 스 서적의 인쇄를 진행하며 스트라스부르그 대학교(Universite ´ de Strasbourg)의 전신인 쟝 스투룸 김사시움(Jean Sturm Gymnasium, 1538)을 설립했다. 또한 이 시기에 루벤은 지도제작자인 게 라르두스 메르카토르(Gerardus Mercator), 식물학자인 렘버트 도 도엔즈(Rembert Dodoens), 그리고 모던 해부학의 설립자인 안드 레스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의 활동무대였다. 흥미롭게도 중국 청조의 강시 황제(Emperor Kangxi 康熙帝)의 왕궁에서 활 동하며, 유럽의 달력체계를 소개했던 캐톨릭교 예수회 선교사이며 수학천문학자인 페르디난드 베어비스트(Ferdinand Verbiest 南懷仁)가 역시 이 시기에 루벤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루방-라-네뷔 출처: 한광야, 2011
루방-라-네뷔의 플라스 드 유니버시테(Place de l’Universite) 출처: 한광야, 2010
그는 리스본에서 선교사 활동을 시작하여 마카오를 거쳐 베이징 에 도착했으며, 이후 황궁에서 근무하며 베이징천문대(北京古觀象台, 1442)를 재건했으며, 천문대 연구센터에서 수학과장으로 활동하며 수로를 조성하고 대포, 증기선, 천체지도를 제작했다. 루벤대 학교는 이후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ary Wars)기에 폐교, 네덜란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the Netherlands) 지배 하에 국립루벤대학교(Rijksuniversiteit, 1816–1835)로 설립, 그 리고 벨지움의 독립과 캐톨릭대학교 루벤(Catholic University of Leuven, 1834–1968)으로 재설립 등의 일련의 격동기를 겪으며 개 교와 폐교를 반복해 왔다. 이 과정에서 캐톨릭대학교 루벤’은 아이 러니하게도 플랜더 네델란드어권의 도시인 루벤에서 프랑스어 권 의 대학교로 기능했다.
루방-라-네뷔의 서쪽구역 출처: www.cdm2015.fbsc.be
당시 캐톨릭대학교 루벤에는 라틴어로 강의되는 신학 교과목 외에 는 모든 강의가 프랑스어로 진행되었다. 이곳에 처음 네델란드어 로 진행된 교과목이 개설된 시점은 1930년대이다. 이후 캐톨릭 대 학교 루벤은 1962년 벨지움의 헌법개정으로 프랑스어와 네델란드 어가 모두 국가공식 언어화되면서, 하나의 행정체계 하에서 플랜 더 네델란드어 권과 프랑스어 권의 대학기능이 독립되어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플랜더인은 캐톨릭대학교 루벤에서 프랑스 어 강사들이 갖는 특권과 플랜더 네덜란드 커뮤니티에 대한 프랑 스권 커뮤니티의 차별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면서 두 세력간의 충돌 (Leuven Crisis, 1968)이 발생했다. 루벤의 충돌은 결국 1968년 벨 지움 정부의 중재로 마무리되었으나, 캐톨릭대학교 루벤은 언어권 에 따라 이분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캐톨릭 대학교 루벤의 프랑스어 권 대학기능은 캐톨릭 대학교 루방(Universite ´ Catholique de Louvain, 1968)을 새롭게 설립하고, 브루셀의 남동쪽 30 km에 프랑스어 권 지역에 새로운 도시인 루방-라-네뷔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한편 루벤에 남겨진 캐톨릭대학교 루벤의 플랜더 네델란드어권 대학기능은 캐톨릭대학 교 루벤(Katholieke Universiteit Leuven)으로 재구성되었다. 현 재 캐톨릭대학교 루벤은 벨지움과 저지대 지역에서 앤트워프, 옌 트, 부르게를 포함한 9개의 도시에 위성캠퍼스를 운영하며 55,500 명의 학생을 가진 거대한 대학으로 개편하고 있다. 카톨릭대학교 루벤의 프랑스 권 대학기능이 이전지로 결정한 곳은 브부셀로부터 남동쪽에 입지한 프랑스어 권의 왈로니아 브라반트(Walloon Brabant) 지역이다. 이들은 이 지역의 소도시인 오티니(Ottignies)에 인접한 면적 9 km²의 토지를 매입하고 대학도시인 루방-라-네뷔 (Louvain-la-Neuve)와 대학캠퍼스의 조성을 구상했다.
루방-라-네뷔의 플라스 드 유니버시테(Place de l’Universite) 출처: 한광야, 2010
현재 루방-라-네뷔는 원도시인 오뛰니와 함께 자지행정체인 ‘오 티뉘-루방-라-눼브(Ottignies-Louvain-la-Neuve)’를 구성하 며 교육, 연구의 기능과 문화적 기능을 나누어 담당해왔다. 루방- 라-네뷔는 계획 초기에 30,000명의 거주자와 15,000명의 학생들 을 위한 약 45,000명의 도시로 계획되었다. 루방-라-네뷔의 조성 공사는 1969년에 시작되었고, 이후 1972년에 약 600명의 거주자 와 응용과학대학(Faculty of Applied Sciences)의 전공학생이 입 주했다. 이후 루벤으로부터의 대학시설의 이전은 1979년에 완료되 었고, 이와 함께 주거지가 지속적으로 조성되면서 도시는 빠르게 성장하며 인구는 1981년 10,500명, 2006년 29,500명으로 증가했 다. 루방-라 네뷔는 도시중심부(Centre)를 중심으로 두개의 대학 캠퍼스와 그 주변에 인접한 다섯개 커뮤니티, 그리고 그 외곽을 정 의하는 4개의 R&D 리서치파크로 완성된다. 도시중심부에서 서쪽 에는 신학부와 인문사회전공의 ‘시온스 인마 구역(Zone Sciences Humaines)’와 동쪽의 과학과 엔지니어링 전공의 ‘시온스 이 테크 놀로지스 구역(Zone Sciences et Technologies)’가 입지한다. 한 편 도시중심부에는 대학시설과 철도역을 중심으로 대형 쇼핑센터 인 레스플레나드(L’Esplanade), 울라 망나 뮤지움(Aula Magna)와 뮤지 허즈(Musee Herge), 유지씨 영화관(Cinema UGC), 미디어 센터, 공공도서관, 그리고 외곽에 공원과 녹지와 연결된 스포츠와 레저활동 시설들이 입지한다.
흥미롭게도 루방-라-네뷔는 계획초기부터 ‘보행중심의 대학도시’ 라는 비전을 갖고 조성되었다. 과연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보행도 시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루방-라-네뷔의 인공지반인 라 달(La Dalle)과 지하주차장 출처: www.wikiwand.com
루방-라-네뷔는 도시의 보행동 선과 차량동선을 모두 도시중심부에 집중시키되 분지지형의 중심 부와 주변부의 지면 높이 차를 이용하여 이 두개의 동선을 수직적 으로 분리했다. 이를 위해 루방-라-네뷔는 ‘라 달(La Dalle)’이라 는 면적 0.1 km²의 거대한 콘그리트 플랫포움을 분지지형에 올려 놓고, 모든 철도인프라의 접근과 차량동선과 주차공간을 플랫포 움의 지하로 모으며 그 상부에는 완전한 보행중심의 도시중심부 를 완성했다. 라 달은 도시중앙부의 기차역과 대학본관을 포함해 교육, 상업, 커뮤니티 기능을 가진 총 32개 건물을 품고 있다. 한 편 네개의 도시진입로들은 모두 라 달의 지하부의 거대한 중앙집중 형의 주차체계와 연결된다. 이러한 라 달의 기능으로 지상의 도시 중심부에는 두개의 광장(Grand Place과 Place de I’Universite)을 연결하는 총 길이 2.6 km의 중심보행로(Rue du Charlemagne와 Rue de Walloon)가 서-동 방향으로 주거-교육-광장-상업-기 차역-광장-교육-R&D 기능들을 순차적으로 이으면서 거대한 도 시의 보행환경을 완성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라 달은 한번에 도시 중심부 전체를 계획하여 조성하는 경우에만 가능할 수 있는 단점 을 갖고 있으며, 슬라브 상부에서 녹지공간의 조성이 매우 제한적 일 수 있다. 한편 루방-라-네뷔의 외곽부를 정의하는 리서치파크 (Parc Scientifique Louvain-la-Neuve)는 1971년 벨지움에서 첫 번째로 조성된 첨단 R&D 콤플렉스로서, 인접한 대학연구시설과 연계하여 민간 기업체와의 산학협력 연구개발을 유도하고 지역경 제에 기여하고 있다.
루방-라-네뷔의 리서치파크는 초기에 총면적 2.3 km²의 부지 위 에 대학과 연계되어 계획되었으며, 네개의 ‘서브 파크(Parc Scientifique Einstein, Parc Scientifique Flemming, Parc Scientifique Monnet, Parc Scientifique Athena)’로 완성되었다. 이곳 의 리서치파크의 고용자는 대부분 대학교가 소유하는 주거구역에 거주하고 있다. 현재까지 루방-라-네뷔 리서치파크의 성공을 유 도한 핵심은 무엇보다 파크 시온티피크 아인슈타인에서 응용과학 대학이 운영하는 원형입자가속기인 ‘사이클로네(CYCLONE/CYClotron de Louvain-la-NEuve)’이다. 루방-라-네뷔의 사이클 로네는 루방-라-네뷔의 조성초기에 가장 먼저 완성된 연구인프 라로서, 당시 프랑스 국방-전기기업인 톰슨 시에스에프(Thompson CSF, 현재 Thales)와 벨지움의 전기기계기업인 애이씨이씨 (ACEC)의 공동투자로 조성되었다. 사이클로네는 이후 ‘파크 시온 티피크 아인슈타인’과 ‘파크 시온티피크 플래밍’의 첨단 R&D 클러 스터의 앵커시설로서, 이 지역의 생명공학, 핵물리학, 나노공학, 반 도체, 신약, 신소재 분야의 총 135개 기업의 입주와 창업을 유도하며 총4,500명의 일자리를 만들어 왔다.
루방-라-네뷔의 인구는 31,600명(2015), 인접한 오뛰니의 인구는 9,600 명(2007), 그리고 루방-라-네뷔 대학교의 대학인구는 약 28,500명(대학생 23,360명과 교직원 5,139명)이다.
※ 원고는 ‘대학과 도시(한울, 2017)의 일부 내용을 편집하여 완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