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미 26일에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하겠다고 밝힌바 있는 이승만 대통령은 26일에 국회가 그의 하야 촉구를 결의하자 “국회의 결의를 존중하여 대통령 직을 사임하고 물러 앉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여생을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바치고자 하는 바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27일 오후 두시에 대통령 사임서를 국회에 송부했고, 국회는 이를 접수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반에 경무대를 떠나 종로를 경유하여 모처로 향하였다. 다만 이미 사퇴를 천명항 이기붕국회의장의 경우는 사퇴서가 아직 국회에 접수되지 않았으나 이미 국민 앞에 공포한 바 있으므로 형식상 사퇴서가 처리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국회는 28일 중 그의 사퇴와 이재학 부의장의 부의장직 사퇴를 처리할 예정이다. 이 부의장도 이미 사퇴를 표명한바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도보로 이사한다는 설과 이기붕 일가 자살 사실이 전해지자 자유당은 패닉상태이다. 일부 의원들은 비통과 흥분 속에 이화장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일부 자유당 의원들은 “이박사를 경무대에서 이화장까지 걸어가게 하실 수는 없다. 굳이 걸어가신다면 우리들이 모시고 가자” 는 마음으로 경무대로 달려가기도 했다.
결국 이박사는 도보로 경무대를 떠날 것을 고집했으나 이는 자유당 뿐 아니라 민주당까지 함께 만류하여 28일 오후 2시 50분 경 승용차로 경무대를 떠났다. 그는 효자동, 중앙청, 원남동, 서울법대를 지나 이화장으로 지나는 동안 가끔 차 밖의 인파에 손을 흔들기도 했다.
이에 앞서 이승만 대통령은 26일 오전,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언명하고, 여론에 따라 정부통령선거를 다시 실시하도록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이 원한다면” 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으나 거리에 쏟아져 나온 데모대들이 서로 축하와 환호를 하는 등 국민들은 하야를 단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허정 외무장관도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는 단서는 문구상 표현에 불과하고 사실상 하야한 것이라고 전했다.
2
이기붕씨 일가가 28일 오전 5시 45분쯤, 경무대 별관 경비실 옆에 있는 대통령 여비서 이무기씨 집에서 자살했다. 알려진 바로는 장남 강석이 자신의 권총으로 식구를 모두 사살하고 자신도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 이씨 일가는 25일 밤, 서대문 자택을 빠져나와 신변을 숨겨왔다.
한편 이기붕씨 일가의 자살 사건이 알려지자, 허장관은 “참으로 비통한 일이나, 이의장과 부인이 국민 앞에 죽음으로 사과한 것은 차라리 잘된 일이다. 그러나 아이까지 죽게 한 것은 지나친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기붕 일가의 자살사건의 수습에 대해서는 그가 국회의장으로 재직했던 점과 현역의원인 점을 감안해 국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3.
국무위원들이 총사퇴를 결의한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기 전에 이미 임명되어 있는 몇몇 국무위원 가운데는 서열상 허정 외무장관이 수석국무위원이다. 따라서 국회와 함께 허 장관이 사실상의 대통령 권한 대행 격으로 시국 수습에 손발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다 허장관은 공석 중인 잔여 장관에 대하여 28일 중에 임명하고, 각 도지사와 각 도경국장 가운데 선거에 과오가 있는 자들을 대폭 경질하겠다고 밝혔다.
4.
이정재가 구속되었다. 그는 28일 오후 서울지검에 자수했으며, 그에 대해 이미 발부되어 있던 구속영장을 집행했다. 그는 고대앞 습격사건의 주동자인 임화수와 유지광의 배후 조종자로 수배를 받아 왔다.
이미 구속된 임화수도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깡패들에게 고대 앞 데모대 습격작전을 벌이면서 이를 격려하기 위해 술값조로 20만 환을 제공한 사실과, 영화제작사와 극장 등을 운영하면서 벌인 탈세, 그리고 7-8명의 배우에 대한 폭행사실을 자백하고 있다.
경찰은 이미 반공청년단의 수괴인 임화수와 유지광을 구속했으며, 이들의 윗선에 한때 자유당 감찰 차장까지 지냈고, 지금도 동대문시장 조합장이라는 직함을 유지하고 있는 이정재가 있다는 설이 유력해 보인다.
따라서 경찰은 이 설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있으며, 사실로 확인되면 이정재도 구속할 계획이다. 훗날 역사는 이정재는 58년 공천문제로 이기붕의 눈 밖에 난 후 반공청년단의 업무에서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419의 배후는 아니라고 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당시는 그의 배후설이 사실로 받아들여졌고, 그로 인해 그는 훗날 박정희혁명정부 하에서 교수형에 처해지게 된다.
5.
검찰은 부정선거의 최고의 주모자로 최인규 전 내무장관을 지목하고, 28일 중 구속하기로 했다. 서울지검은 몸을 숨기고 있는 최인규를 추격하고 있다. 검찰은 28일 중 그를 찾아낼 것을 자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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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부정선거의 자유당 내의 사실상의 사령탑으로 활동하던 장경근 의원과 반공청년단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친위폭력집단을 지휘했던 신도환 의원도 사퇴서를 제출했다. 장경근은 이후 내연의 관계에 있는 여성과 함께 일본으로 밀항했다고 전해지며, 이후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또 시국의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한 임철호 부의장과 한희석 의원의 의원직 사퇴서 처리 표결 결과 무기명 투표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되어 사실상 자가숙청을 단행했다.
7.
뒤에 낭설로 확인되지만 27일 현재, 이기붕, 한희석, 이정재, 이존화 등이 인천 월미도에 잠복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수많은 데모대들이 월미도에 집결하고 있고,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과 대치 중이다. 시중에는 이들이 월미도에 잠복하여 막대한 재산을 외국으로 반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8.
향후 정국의 방향타는 국회가 쥐게 되었다. 내각이 총사퇴한 상황에서 대통령도 하야했고, 윤보선 부통령도 진작에 하야한 상황이라, 헌법상 대통령 권한을 대행할 사람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이처럼 행정부는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 상황이나 국회는 여전히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국회에서 정한 헌법에 따라 새로운 총선과 대선을 실시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힐 것이다.
한편 여야는 기민하게 국회시국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정치일정을 준비하고 있다. 동위원회는 긴급소집된 회의에서 315선거를 무효로 하고, 과도내각을 구성한 후 완전내각책임제 개헌을 단행하며, 새 헌법이 확정되면 즉시 총선거를 실시한다는데 합의했다.
이 안은 야당에서 입안 했으며, 만일 자유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야당만으로 결정사항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는데, 자유당의 이재학부의장이 즉시 이 내용을 지지함으로써 정국은 민주당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
9.
대법원은 26일, 경향신문 정간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경향신문은 정간 1년 만에 복간하게 되었다.
10.
이대통령의 하야 성명에 서울거리에는 수십 만 명이 쏟아져 나와 민주주의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탑동공원의 이승만 동상은 무너뜨려졌다. 질서유지를 위해 계엄군이 공포를 발사하고 있으나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한편 데모대 대표 5명은 27일, 송요찬 계엄사령관의 안내로 경무대에서 이대통령과 면담하여 허정외무 장관 하에 10분 간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이대통령은 “선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어제 그제야 그 내용을 알았다.”고 말하면서 국민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겠다고 다시한번 하야 의사를 확인했다.
또한 한희석 최인규 등 부정선거 책임자의 엄벌도 약속했다. 대표들과 이대통령은 서로 감정이 격해져 두 손을 붙들고 통곡했으며 대통령의 슬픈 표정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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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419가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도 있었다. 데모만능주의가 그것이다. 마산에서는 24일 노인들의 데모가 열렸다. 마산애국노인회라는 단체는 이승만 퇴진을 외치며 데모를 벌였다.
다음날인 25일에는 할머니 시위대가 등장했다. 약 300 명의 할머니들이 이대통령 물러가라고 외치며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면서 애국가와 전우가 등을 부르며 행진했다.
12.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총재직 사퇴, 중앙위원장 이기붕의 죽음, 중앙위원 사퇴 등으로 자유당은 모든 주요 직책에 공백이 생겨 사실상 당으로서의 기능이 정지되었다. 다만 자유당은 의회 내에서 교섭단체의 지위만 유지하게 된다.
13.
이승만과 곽영주 경무대 경무관의 비호로 영화계의 거물로 행사한 영화제작자 임화수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깡패집단의 두목이다. 그런데 임화수의 집에 경비전화가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종로경찰서 경비전화 60번이 임화수의 집 번호임이 기자들에 의해 확인된 것이다. 경비전화란 경찰 경비와 수사사찰을 위한 특수 업무 목적 전화인데 이것이 깡패두목의 집에 설치된 것은 이승만 정권 시절의 자유당과 깡패가 어떻게 유착하였는지를 잘 말해준다 할 수 있다.
14.
경찰은 영화계의 거물로 행세하던 임화수가 조직한 반공예술인단을 조사하고 있다. 강압에 의해서건 자발적이건 반공예술인단에서 깡패조직으로 돈이 흘러간 정황이 있기 때문에 임화수 등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증인 자격이다. 경찰은 이 조사를 위해 박암, 김승호, 최무룡, 주선태, 최남현, 김진규 등 배우를 불러 조사하고 있으며, 임화수가 경영하는 평화극장과 한국연예 주식회사, 반공예술인단 사무실을 수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