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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선희(李仙姬) |
출생 | |
본관 |
아랫사진은 1991년 서울시의회 시의원 선거 당시 선거 벽보 포스터 사진 |
명성황후
프랑스 책자에 실린 명성황후 사진. LA REINE DE CORÉE(조선의 왕후)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다.
친어머니 : 한창부부인 감고당 한산 이씨(韓昌府夫人 感古堂 韓山 李氏, ?~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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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사진 이선희와 명성황후의 이목구비가 거의 비슷합니다
명성황후 친어머니와 가수 이선희는 본관이 같은 한산 이씨 입니다
딸은 대부분 어머니를 닮는다고 합니다
위의 두사진을 비교분석 했을때 가수 이선희와 용모가 비슷하므로
명성황후는 친어머니를 닮았다고 보입니다
물론 키는 아버지를 닮아 평균 이상으로 컸을 수도 있고요
**명성황후 사진의 진위여부로 인해서 논란이 많은데
프랑스 책자에 실린 명성황후의 사진이 진짜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참고로 여러분도 유심히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성씨에 따른 얼굴 골격과 이목구비는 대부분 구분이 되며
세월이 가도 서서히 바뀌므로 천년이상 간다고 봅니다
영국 왕립지리학회회원이기도 한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는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에서 명성황후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했다.
“ | 민씨는 첫눈에도 예사로운 여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매가 날카롭고 매서웠으며 두뇌회전 또한 기민해 보였다. 성격도 대단히 차분하고 냉철하게 느껴졌다. 왕비는 마흔 살을 넘긴 듯 했고 퍽 우아한 자태에 늘씬한 여성이었다. 머리카락은 윤이 나는 흑단이었고 피부는 투명하여 진주빛을 띠었다. 눈빛은 차갑고 예리했으며 반짝이는 지성미를 풍기고 있었다. …(중략)… 나는 왕비의 우아하고 매력적인 예의범절과 사려 깊은 호의, 뛰어난 지성과 당당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통역자를 통해 나에게 전달되기는 했지만 그녀의 화법은 탁월한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기묘한 정치적 영향력, 왕 뿐만 아니라 그 외의 많은 사람들을 수하에 넣고 지휘하는 통치력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대화가 시작되면, 특히 대화의 내용에 흥미를 갖게 되면 그녀의 얼굴은 눈부신 지성미로 빛났다. 왕비의 주위는 온통 적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우두머리는 왕의 아버지인 대원군이었다. 왕비가 그녀의 재능과 권력으로 조정의 고위관직을 친인척을 등용하여 거의 석권해 버렸으므로 그녀에 대한 대원군의 반감은 엄청났다.[98] | ” |
미국 공사관 서기인 윌리엄 프랭클린 샌드
“ | 뛰어난 학문과 지성적인 강한 개성과 굽힐 줄 모르는 의지력을 지녔으며 시대를 추월한 정치가이자 외교가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애쓴 분이었다. | ” |
— 윌리엄 프랭클린 샌드(William Franklin Sands) |
미국인 선교사이자 명성황후의 어의였던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의 부인 릴리어스 호튼 언더우드
“ | 우아하고 근엄있다. 체형은 수척하고 얼굴은 창백했으며 눈빛은 날카롭고 초롱초롱했다. 순수하면서도 뛰어난 기지와 매력을 지닌 분으로 서양의 기준에서 볼 때에도 완벽한 귀부인이다. 그녀는 세계 강대국과 그 정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섬세한 감각을 가진 유능한 외교관이었고 반대세력의 허를 찌르는 데 능했다. 일본을 반대했고 애국적이었으며 조선의 이익을 위해 몸을 바치고 있었다. 그녀는 아시아의 그 어떤 왕후보다도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여인이었다. | ” |
— 릴리어스 호튼 언더우드(Lillias Horton Underwood), 《조선견문록(Old Korea)》 |
(*윗 내용은 위키백과를 참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