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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를 해야겠어요....... ”
언제나 사람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던 인우의 집 주방 식탁에서 밥을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
은 인우가 조용히 말한다.
그 말소리에 신문을 보던 남사장과 인우의 엄마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들을 쳐다본다.
“ 뭐라고 했니? 너 ”
놀란 듯한 엄마를 보며 인우가 고개를 들고는 자신의 아버지를 쳐다본다.
“ 공부를 하겠어요. 그래서 대학에 가고......... 그리고 이제라도 된다면..... 지금부터라도 아버
지 말씀대로 따르겠어요... ”
조용했지만 단호하게 자신을 보며 말하는 아들을 보며 한사장의 한쪽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내려와 또 다시 신문으로 향한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며 살짝 한숨을 쉬던 인우의 엄마가
다시 아들을 보며 묻는다.
“ 갑자기 너 왜 그러는 거야? 무슨 사고라도 친 거야? 뭐야? 너 ....... 싸운 거야? 누구랑? 그
래서 이렇게 착한아들처럼 행동하는 거냐고 ..... ? ”
자신의 말을 믿지 않고 사고부터 쳤다고 생각하는 엄마 때문에 가슴한쪽이 답답해지기 시작
했지만 다시 한번 한숨을 내뱉으며 말한다.
“ 이제부턴 엄마가 하라는 대로 모든지 한다는데 뭐가 불만인거야..... 대학도 갈 거고 엄마가
그렇게 오라던 모임도 나갈 거라고.. 그러니까 기분 잡치는 말 좀 그만해요.... ”
“ 니가 여태까지 잘해서 내가 이러니? 공부 좀 하라고 그렇게 난리난리 치면서 듣지도 않고
남들은 돈 없어서 못가는 유학 보내주겠대도 니가 공항에서 도망친 게 어디 한 두 번이야?
갑자기 또 대학이라니...... 며칠 전엔 외국 대학 보내주겠다고 하던 나한테 너 어떻게 쳐다봤
니..... 넌 아주 속물 취급을 하고.... “
“ 그래서...... 이제부턴 내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
신문을 마지막장 까지 다본 뒤 그것을 식탁위에 얹어 놓고는 남사장이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아들을 천천히 쳐다본다.
그의 옆에서 인우에게 몰아치듯 말하던 엄마의 말을 자르면서......
인우는 자신의 눈을 강하게 쳐다보는 아버지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 네....... 이제는 하라시는 데로 다 하겠어요. ”
살짝 흘러내린 안경을 올리던 남사장이 물 잔에 물을 따르며 말한다.
“ 그런데 갑자기 마음이 바뀐 이유가 뭐냐....... 원하는 거라도 있는 거냐? ”
“ 그런 거 없습니다. ”
애써 진지하게 말하는 아들을 믿기지 않는 다는 듯 살짝 코웃음을 치는 남사장..
“ 포커페이스... 그 말은 장사할 때도 매우 중요한 말이지.... 난 벌써 30년을 넘게 장사꾼들 사
이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어느 정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내 앞에서 게
임이 안돼.... 그건 내 아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야... 속이지 말고..... 니 마음을 이렇게 변화
시키게 된 이유를 솔직하게 말해봐... ”
역시 쉽게 자신을 믿어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버지.... 절대
로 속내를 보이지 않는 어려운 분.... 그런 아버지 앞에서 커오면서 그가 많은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언제나 사람 속을 꽤뚫어 보는 그에게 자신이 가족들을 어떻게 생각하는 마음을 들키
고 싶지 않아서 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를 얻기 위해 달라져야 하는 그에게 있어선 자신의 아버지에게 모든 것
을 들키는 것은 그거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었다.
“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어요.... ”
“ 너....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니가 일년에 여자사고를 안친 적이 있었니 ?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거야? 어? 너 혹시 임신........ ”
“ 여보!!!!!!! ”
또 다시 대화에 끼어들며 아들에게 소리치던 인우의 엄마가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는 남편을
보고 입을 다문다.
그의 소리에 민망했는지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면서 그 자리를 나와 거실로 걸어
간다.
둘 만 남은 식탁......
인우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런 아들을 남사장이 잠시 동안 말없이 쳐다본다.
“ 그래......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하던 말마저 하 거라.... ”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해보지만 이제부터 꺼낼 이야기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인우의 가슴이 계
속해서 두근거린다. 그래서 짐짓 활발이 자신의 여자친구를 자랑하듯 말을 시작한다.
“ 여태까지.... 만나던 여자애들과는 달라요. 그 앤 머리도 좋고 누구보다도 똑똑한 아이에요.
절 변화 시킨 거 보시면 알잖아요. 그리고 그 앤... ”
“ 뭐가 이리 장황한거야... 너 고작 니 여자친구 자랑하려고 바쁜 사람 이리도 잡고 있었던 거
야? 도대체 할말이 뭐니? 꾸물대지 말고 어서 이야기해! ”
짜증나려는 듯 언성을 높이는 아버지를 보며 다시 고개를 숙이는 인우.... 계속해서 뛰는 심
장이 더 이상 도망갈 틈은 없다고 그에게 경고한다.
“ 졸업하면 그 애와 같이 유학가고 싶어요.... ”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을 의문스럽게 보는 아버지의 눈을 마주치는 인우......
“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지.... 니가 아직 어리긴 하지만 있어서는 안되는 일은 아니
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 어머니가 없는 이 곳에서 나에게 이 말을 하는 이유가 있겠지...
안 그래? 니 어머니가 반대할 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거냐? 혹시 영민이처럼 자신보다 열
몇 살 많은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
영민의 일...... 어렸을 때처럼 영민의 집과 그리 왕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2년전 처음 영민
의 그녀와 결혼하겠다며 인우의 집에도 찾아왔었다. 하지만 영민의 이모인 인우의 엄마도 그
의 부모들처럼 그의 결혼을 반대했었다.
갑자기 그의 입에서 영민의 이름이 나오자 인우는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잠시 동안 숨
을 쉬지 못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스리고는 다시 말을 잇는다.
“ 그런 건 아닙니다. 그 앤 저와 동갑이에요. ”
“ 그럼... 심하게 가난한 집안의 여자인거냐? ”
가난한 집...... 그녀의 집은 인우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의 몇 십 배 더 큰 기업을 운영하
는 집...... 그런 면에서 꿇리는 것은 한영이 아니라 인우였다.
“ 아닙니다. ”
“ 그것도 아니면.. 니 어머니가 반대할 만한 조건이 아니잖니... 난 더 이상 너랑 말씨름 할 시
간 따윈 없는 사람이야.... 너의 그 용기 없는 겁쟁이 같은 태도에 더 놀아나줄 생각도 없다. 그
만...... ”
인우를 보며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려는 아버지를 차마 보지 못하고 내 뱉어 버린 말.....
“ 그 아인.... 영민이 형의 동생입니다. ”
한손을 식탁에 두고 일어나려는 행동을 멈춘 남사장이 다시 의자에 앉으며 고개를 숙인 인우
를 뻔히 쳐다본다.
“ 그 아인.... 제가 좋아하는 그 아인 ...... 영민이 형의 이복동생입니다. ”
“ 이복동생이 아니다...... ”
순간 쿵하고 떨어지는 가슴.... 놀란 눈을 하고 자신의 아버지를 쳐다보는 인우의 가슴이 또
다시 숨조차 쉴 수 없이 답답해진다.
“ 아니에요. 아버지..... 그 앤.... 아시잖아요.... 이모부가 재혼하셔서... ”
“ 넌 어려서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야!! 그 아인 호적상 영민의 친 동생이야.... ”
‘ 아니다.... 내가 알기로는 분명 우연히 만나서 서로 아이를 가진 상태로 결혼을 한거였는
데.... ’
“ 니가 헛된 희망을 품었구나... 그런 요구이면 난 들어줄 수 없다. 다른 요구를 생각해 내...
협상이 가능한 것으로 말이야... 다시는 이 이야기에 대해선 꺼내지 말거라. ”
잠시 동안 인우를 바라보던 남사장이 다시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거실로 나가려고 발을 뗀
다. 멍하니 있던 인우가 갑자기 일어서서 그의 아버지의 팔을 잡으며 말한다.
“ 이해가 안되요... 제가 알기로는 분명 이복동생인데... 왜 친동생으로 되어 있다는 겁니까? ”
천천히 뒤를 도는 남사장.... 혼란스러워하는 아들을 그의 눈이 어느 때 보다 더 단호하다.
“ 아버지..... 아니에요.. ”
“ 최사장이 그 아이의 엄마와 결혼할 때.... 그 여자아이와 그 위에 있는 딸 모두 그녀의 엄마
의 성이었어. 그래서 결혼할 때.... 최사장이 친자소송을 내고 그 둘을 자신의 딸로 만들었다.
그 아인.... 최한영이야... 그렇지? 바로 영민이와 성이 같아....... ”
최한영... 최영민...... 둘이 성이 똑같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인우가 그 둘의 관계를 알았을 때
는 우연히 성이 같게 된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절대 헛튼 짓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아버지의 그 말이 인우의 뛰는 가슴을 송두리째 가져간다.
“ 니가 그 아이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모르겠지만..... 얼른 하루빨리 정리하거라.. 있을
수 없는 일에 괜히 쓸데없는 힘 빼지 말고....... ”
왠지 모르게 아버지의 말을 듣던 그의 머릿속에 또 다른 생각이 나 자신 없는 말을 내뱉는 인
우....
“ 그렇더라도....... 법적으로 아무 상관없다는 거...... 압니다. ”
일어섰던 남사장이 자신의 아들을 아무 표정 없이 쳐다본다. 그러다 천천히 ..... 그의 표정이
만족한 듯 변하기 시작한다.
“ 그래? ”
며칠 전.......아니 그 전부터 인우와 한영이 사촌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그의 관심을 끌었던
사실들 중 ....... 그에게 지금 절대적으로 피어난 한 가지 희망을 의아해 하는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기 시작하는 인우.....
“ 사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래도 알고는 있어요....... 큰 이모님은....... 돌아가
시기 전....... 이모부와 이혼을 하셨어요....... ”
“ 그래..... ”
“ 그럼....... 아무 소용없는 거 아닌가요? 우리나라는 아직 호주제가 폐지되지 않은 나라입니
다. 한영이랑 저는 .......... 그러니까.... 아무 상관없습니다. ”
자신도 확실치 않은 말을 뱉어 냈는지..... 길게 숨을 몰아서는 인우...... 그리고 천천히 사형
선고를 맡듯 그의 아버지를 쳐다본다.
그런 자식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절대 표정이 바뀌지 않는 남사장........
“ 많이 ........... 니가 공부라는 걸해봤구나..... 그래 니 말대로 지금 영민에겐 지금의 어머니
가 엄마이지..... 그게 우리나라 호주제의 폐해다. 그리고 법적으로는 영민이와 너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그리고 너무나 끈질긴 언론까지도 최사장과 우리와의
관계는 거의 다 안다. 난 그걸 허락할 수 없어. ”
“ 그래도 전 포기안합니다. ”
살짝 몸이 떨리는지 양손을 꽉 쥐는 인우가 그의 아버지를 쳐다본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
며 여전히 표정변화가 없는 남사장....
“ 지금은 그렇겠지...... 하지만 사랑이라고 믿는 모든 것이 다 이뤄지지는 않아. 넌 아직 어리
고 2년만 있으면 니가 지금 그렇게 포기하기 싫은 사람도 하나씩 잊혀지게 될게다. ”
“ 전 달라요!!! 아버지 !!!!! ”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뒤를 돌아 거실로 가는 그를 따라 인우가 따라간다. 천천히 소
파에 앉아서 담뱃불에 불을 붙이는 남사장....
그의 옆에 서서 그런 아버지를 바라본다.
“ 그 앨 사랑해요... 절대 변하지 않을 마음으로 사랑한다구요. 제가 이제부터 아버지가 하라
는 대로 한다는 이유도 그 애에게 걸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구요... 그런데 이리저리 얽히
는 관계 때문에 한영일 포기하진 않아요!! ”
깊게 담배를 빤 후 길게 연기를 내뱉는 남사장.... 여전히 인우를 보지는 않는다.
“ 변하게 될 거다. ”
“ 변하지 않을 겁니다. ”
인우는 필사적으로 어떻게든 그의 대답을 들어야 했다. 절대로 한번 내 뱉은 말을 주어 담지
않는 그이기 때문에 이제 승산이 없는 일일지도 몰랐지만 한번 그에게 약속 받은 일은 인우에
게 있어서 어둠 속에 한 가닥 희망이었다.
“ 저한텐 사랑은 하나입니다. 그 애가 아니면.... 전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에요. ”
“ 지금 협박하는 거냐? 내가 허락한다 해도 니 어머니가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거다. 니 어머
닌 자신의 언니를 최사장이 버렸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그런 사람과 사돈이라는 것은 절대
로 하지 않을 거야. ”
분명 달라진 아버지의 말에 인우는 한가닥 희망의 줄을 잡았다는 것을 알았다. 다급하게 그
의 앞에 무릎을 꿇은 후 TV리모콘을 잡으려던 아버지의 팔을 잡는 인우....
“ 아버지만 약속해주시면 되요. 그럼 되요 아버지... 어머니가 싫어하시라는 거 알지만 그래도
아버지만 도와주시면 전 자신 있어요. 어머닌 아버지가 원하시는 일 절대로 반대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하라는 대로 무엇이든지 다 할 자신이 저한텐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제
발... 도와주세요. 아버지... ”
살짝 숨을 내뱉으며 이제는 울먹거리며 매달리는 아들을 보는 남사장... 얼마나 오랜만이던
가? 아들이 자신의 몸에 손을 댄지가.... 그리고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며 부탁을 하는 것
이.....
“ 그 아이도 너와 생각이 같은 거니? ”
순간 아버지의 물음에 당황했지만 그의 마음을 들킬 것만 같아 인우는 급하게 고개를 끄덕인
다.
“ 그럼 먼저 그 아이를 한 번 데리고 오너라. 그리고 나서 너와의 일은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자.. ”
그 말에 그의 하얀 치아가 들어날 정도로 미소를 짓는 인우.. 인우에게 잡힌 손을 떼어내고는
TV스위치를 켜는 남사장....
“ 만나보시면 마음에 드실 거에요. 걔가 어떠냐면은요.... ”
“ 그 아이가 똑똑한 아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어. 자식들 중에서 최사장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아이니까... 여태까지 그 아일 공식석상에 나오게 하지 않은 이유도 그 아일 너무 아껴서 그런
거야. ”
무뚝뚝하게 말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인우... 그때 안방 문이 열리고 화려하
게 차려입은 인우의 엄마가 나온다.
혹시나 엄마가 들었을까 라는 생각에 잠깐 가슴이 내려앉는다. 하지만 인우를 여전히 불신에
드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살짝 뛰는 마음을 진정시킨다.
“ 엄마.... ”
“ 너! 아버지랑 무슨 이야기 했는지는 몰라도 지금 내가 나갈 일 있으니까 갔다 와서 얘기하
자. 그니까 아무데도 가지 말고 집에 있어 !! 여보.... 나 동창모임 좀 다녀올게요. ”
“ 다녀와요.... ”
신발을 신으며 나갈 때까지 인우를 흘겨보는 그의 엄마가 나가자 남사장이 여전히 시선을
TV에 고정시킨 채 인우에게 말한다.
“ 한동안은 너희 엄마에겐 말하지 말거라. 괜히 확실하지도 않은 이야기로 집안 시끄럽게 할
필요 없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받아들인다고 해서 최사장도 같은 생각일거라는 생각은 일
치감치 버려라. ”
그 말에 또 다시 가슴이 답답해지는 인우.... 하지만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한걸음 더 발걸
음을 띈 거 같아 또 다른 가슴은 행복으로 벅차오른다.
“ 아버지가 어머니를 막아주시고 한영이 인정만 해주시면 그 다음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