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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開拓者)★
[노숙 7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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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천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돌아온 것은 다음날 오후 3시경이었다. 그때까지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던 민경아와 마주 앉은 김명천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카잔스키하고 합의를 했습니다.”
“합의를 하다니요?”
표정을 굳힌 민경아가 김명천을 보았다.
“무슨 합의를 어떻게 말이죠?”
“마트로프를 제거하는 원칙에 대해서 일차 합의를 한겁니다.”
김명천도 이제는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카잔스키도 부하들하고 오늘밤에 다시 만나 확인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탁자위로 상반신을 굽힌 김명천이 민경아를 보았다. 호텔 커피숍 안이었는데 주위에는 손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쪽에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김명천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카잔스키는 이번 일에 나하고만 공작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비밀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작전이 외부로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겁니다.”
민경아의 시선을 잡은 김명천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작전과정을 본부에 사사건건 보고하지 않겠습니다. 나 혼자서 진행하고 끝내겠다는 말입니다.”
“아니, 그러면…”
“작전은 5일이면 끝날 것 같은데 민경아씨는 하바로프스크로 돌아가 주셨으면 합니다. 나도 오늘밤 호텔을 옮길 테니까요.”
그러자 민경아가 한동안 눈도 깜박이지 않고 김명천을 보았다. 이윽고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요. 돌아가죠.”
“끝나면 연락하지요. 물론 일이 실패했을 경우에는 연락 못합니다.”
그리고는 김명천이 빙그레 웃었다.
“실패했다면 난 시체가 되어있을 테니까요.”
“그럼 김명천씨가 직접 나서기로 한건가요?”
“카잔스키는 마트로프 근처에 접근할 수 없어요. 내가 앞장을 서야 합니다.”
정색한 김명천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래야 향후 사업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쥡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카잔스키가 마트로프 흉내를 내게 될 겁니다.”
맞는 말이었으므로 민경아가 희미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난 오후에 출발하겠어요.”
“5일 후에 뵙지요.”
“김명천씨는 이 일을 즐기는 것 같네요.”
불쑥 말했던 민경아가 말끝을 웃음으로 때웠다. 그러자 김명천이 따라 웃지도 않고 말했다.
“말씀 드린 것 같은데요. 이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그 날 저녁 8시경에 김명천은 나호트카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의 단층 주택으로 옮겨가 있었는데 이곳은 카잔스키의 먼 친척 소유였다.
응접실에는 김명천과 카잔스키, 그리고 바실리와 표트로 불리는 두 사내까지 네 명이 둘러앉았다. 카잔스키는 이제 김명천을 허물없이 대했지만 아직 믿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가끔 러시아어로 제 부하들과 심각하게 뭔가 상의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김, 우리 정보에 의하면 마트로프는 내일 일본의 로시나 사람들하고 나호트카만으로 낚시를 가기로 되어 있어.”
카잔스키가 검은 눈을 좁혀 뜨고 말했다.
“마트로프는 근사한 유람선을 갖고 있는데 배에 오르면 그곳은 성보다도 더 든든한 요새가 되지, 치고 도망 나올 수도 없단 말이야.”
지사장 고영호의 숙소는 아무르 거리 끝 쪽에 위치한 구식 맨션이었지만 넓고 시설이 잘된 건물이다. 이 곳에서 고영호는 최경태를 포함한 지사의 팀장 세 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으므로 맨션은 간부 숙소나 같았다.
맨션의 끝 쪽방은 회의실로 쓰였는데 밤 10시가 되었을 때 고영호를 중심으로 세 명이 둘러앉았다. 김명천을 제외한 최경태 팀이 모두 모인 셈이었다. 민경아는 나호트카에서 곧장 이곳으로 온 것인데 도착한지 10분도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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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호와 최경태는 민경아의 보고가 끝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서 한마디도 거들지 않았다. 특히 고영호는 앞쪽의 벽에 시선을 둔 채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이윽고 보고가 끝났을 때 먼저 최경태가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쯤 카잔스키 일당과 만나고 있겠군 그래.”
“8시경에 만난다고 했습니다.”
민경아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 이상은 알 수가 없습니다.”
“김명천이 너무 앞서 가는 것 같은데.”
이맛살을 찌푸린 최경태의 시선이 고영호를 스치고 지나갔다.
“연락할 방법도 있을 텐데 말이야.”
“아니야. 그것이 최선이야.”
벽에서 시선을 뗀 고영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고영호가 민경아에게 물었다.
“5일 동안이라고 했나?”
“예, 지사장님.”
“김명천이 직접 앞장을 선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그 방법밖에 없어.”
머리를 끄덕인 고영호가 이번에는 최경태를 보았다.
“용기 있는 놈이야.”
“그렇긴 합니다.”
“우리 조직에 필요한 놈이라구.”
“그렇습니다.”
최경태가 마지못한 듯 대답하자 고영호는 입술 끝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우리 조직에서 처음으로 공격형 작전이 시행되는 거야. 그것도 입사 며칠 밖에 되지 않은 신입으로부터.”
긴장한 최경태와 정시환, 민경아까지 입을 다물었고 고영호의 말이 이어졌다.
“김명천이 실패했을 경우의 대비책을 세워놓도록, 김명천을 카잔스키의 일당으로 만드는 방법이 가장 무난하겠지만 결과에 따라서 신속하게 대처해야 될 거야.”
“알겠습니다.”
대답한 최경태가 길게 숨을 뱉았다.
“먼저 김명천이 오늘자로 사표를 낸 것으로 처리 하겠습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근거 자료를 남겨둬야 할 테니까요.”
“마트로프가 그걸 믿을 리는 없겠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놓아야지.”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한 고영호가 자리에서 일어섰으므로 희의는 끝이 났다.
민경아와 정시환이 맨션을 나왔을 때는 11시였다.
“내가 데려다 주지.”
정시환이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민경아의 아파트는 두 블록 거리여서 걷는 것이 나은 것이다.
“걱정마. 난 아파트 앞에서 택시를 타고 갈 테니까.”
어깨를 부딪치며 정시환이 말했다.
“어쨌든 김명천이가 입사 며칠 후부터 이름을 떨치는군.”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으면서 정시환이 앞쪽을 본채 말했다.
“나호트카의 거물 마피아 마트로프를 제 손으로 처치한단 말이지?”
눈을 치켜뜬 정시환이 머리를 돌려 옆을 걷는 민경아를 보았다.
“어때? 가능할 것 같아?”
그러나 민경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낮이었지만 바닷가의 카페 안을 어두웠다. 천정에 몇 개 매달린 유색 전등과 안쪽의 바에 켜놓은 형광등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님의 요구가 있으면 테이블에 촛불을 켜 주었는데 김명천과 이성구는 내버려 두었다.
손님 대부분이 부두 노동자거나 선원, 또는 실직자 등이어서 카페 안은 소란했고 가끔 싸우는 듯 큰소리도 일어났다. 수준이 낮은 카페였다. 그러나 김명천은 시간이 지날수록 편안해졌다.
한국어를 큰소리로 뱉어도 주위가 원체 시끄러워서 옆 테이블에서 조차 알아듣지 못한 것이었다. 이성구는 벌써 보드카를 넉잔 째 마셨지만 어둠속에서도 긴장하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가끔 번들거리는 눈의 흰 창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 이쪽을 힐끗거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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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천이 다시 연락을 했을 때 이성구는 만날 장소를 어항 옆의 카페로 지정해 주고는 30분이나 늦게 나왔다. 보드카는 45도나 되었지만 뒷맛이 깨끗했으므로 김명천도 한 병 정도는 마실 수가 있다. 그러나 오늘은 아직 한잔밖에 마시지 않았다. 이성구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마트로프 조직은 시베리아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중의 하나일 겁니다. 행동대만 30명 가깝게 되고 정보원은 이르쿠츠크까지 심어져 있단 말입니다.”
“대단한데요.”
맞장구를 친 김명천이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이성구는 마트로프 조직을 과장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트로프 조직원인 자신의 배경을 과시하려는 의도였고 끝까지 균형을 맞추면서 양쪽을 이용해 먹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김명천이 담배 연기를 이성구의 가슴을 향해 품었지만 어두워서 연기는 보이지 않았다.
“이선생, 마트로프 한테서 한 달에 얼마 받습니까?”
“1만불 받습니다.”
이성구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가끔 받는 보너스까지 합하면 1만 5000불은 될 겁니다.”
“많이 받으시는데요.”
“난 중간 보스급이어서.”
“그렇군요.”
“솔직히 나도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일성측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할 말이 있습니다.”
이성구의 흰창이 어둠속에서 번들거렸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트로프가 보호비를 두 배 인상시켜야 한다고 통보 했다는데 내 정보비도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습니까?”
“김선생이 담당이시니까 드리는 말씀이요. 다음 달부터 인상해 주십시오.”
“고려해보지요.”
김명천이 소리치듯 말했을 때 이성구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처음으로 만족한 표정을 지은 것이다.
그러더니 생각난 듯 물었다.
“참, 카잔스키에 대해서 물으셨는데, 접촉하실 계획입니까?”
“아니, 참고로 알아본 것뿐입니다.”
김명천이 정색하고 이성구를 보았다.
“마트로프의 경쟁조직에 대한 정보도 갖고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카잔스키 조직은 곧 망하게 될 겁니다.”
주위를 둘러 본 이성구가 탁자위로 상반신을 굽혀 김명천에게 몸을 붙였다.
“마트로프가 경쟁 조직으로 성장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군요."
머리를 끄덕인 김명천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일어섰다.
“나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이 낫겠는데, 같이 나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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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온 김명천이 이성구를 돌아보았다. 한숨 돌렸다는 표정이었다.
“안이 너무 소란해서 정신이 얼떨떨한데, 어디 조용한 곳 없습니까?”
“그럼 저쪽으로 가십시다.”
이성구가 턱으로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
“깨끗한 해산물 식당이 있어요.”
그때 그들의 뒷쪽으로 식품회사 상표를 붙인 벤 한대가 다가와 섰는데 문이 열리면서 사내 세
명이 쏟아져 내렸다.
“어.”
뒤에서 한쪽 팔이 비틀려 잡혔을 때 이성구가 놀라 눈을 크게 떴지만 외마디 소리만 뱉았을 뿐이었다. 다음 순간 뒷머리를 강타당한 이성구의 몸이 늘어졌고 곧 벤 안으로 던져지듯 실렸다. 사내들과 함께 김명천이 차에 오르자 벤은 출발했다.
김명천은 길게 숨을 뱉고는 창을 내다보았다. 카페 안은 혼잡했지만 밖의 거리는 한산해서 인도에는 행인도 보이지 않았다. 설령 누군가가 보았다고 하더라도 신고하기에는 애매한 사건이다.
차 안에서 이성구의 몸은 테이프로 묶여졌는데 정신이 돌아온 듯 꿈틀거리자 다시 무지막지한
타격이 뒷머리에 가해졌다. 카잔스키의 행동대원들이다. 한 시간 가깝게 벤이 달려가는 동안 김명천은 물론이고 차안에 탄 러시아인 네 명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은 김명천이 이성구를 밖으로 유인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성구를 납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 혼자서 밖으로 나오면 되었으니 결정은 김명천이 내린 셈이었다.
벤이 도착한 곳은 교외의 농가 앞마당이었는데 국도에서도 몇㎞ 떨어진 외딴 곳이었고 주위는 황량한 들판이다. 그 때는 이성구도 깨어나 눈만 껌벅이며 자꾸 김명천을 보았다. 내막을 짐작은 하는 것 같았지만 묻고 확인하기에는 불안한 표정이었다.
농가의 창고는 꽤 컸고 이미 카잔스키와 부하들이 이성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연락을 받은 것이다.
“김선생,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창고 한복판으로 끌려가 땅바닥에 밀려 앉게 되었을 때 마침내 이성구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가 김선생한테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내가 이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것 아닙니까?”
이성구는 사내들이 카잔스키와 일당인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한국어였으므로 알아듣지 못한 러시아인들은 눈만 꿈벅였고 김명천이 입을 열었다.
“한달에 1만 5000불을 받는다고 했소?”
그리고는 입술을 비틀면서 웃었다.
“그리고 정보비를 인상해야겠다고? 마트로프의 위세를 빌린 당신의 행태가 더 고약해.”
그때 카잔스키가 러시아어로 무언가를 지시하자 사내들이 이성구의 주위로 다가섰다.
그래서 이성구의 대답은 이어지지 않았다. 창고 밖으로 나온 김명천은 다시 심호흡을 했다. 이른 오후였지만 하늘은 흐렸고 눈이 내릴 것 같이 눅눅한 습기에 덮여져 있었다. 그러나 폐로 흡입된 공기는 시리도록 맑고 신선했다.
이곳은 나호트카에서도 수십키로 떨어진 건물로 유리창은 부서졌고 문짝도 떼어졌다. 그러나 단단한 벽돌 건물이다. 그때 뒷쪽 창고에서 이성구의 비명소리가 울려왔다. 고문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저도 모르게 발을 옮겨 창고에서 떨어진 김명천이 안채 모퉁이를 돌았을 때 담배를 피우고 있던 카잔스키의 부하 한명과 마주쳤다.
흰 피부에 장신의 러시아인이었는데 이성구를 납치해온 일행 중 하나였다. 사내가 웃음 띈 얼굴로 담배를 꺼내 김명천에게 내밀었다. 동료에게 보이는 호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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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또씨, 이쪽으로.”
이또에게 앞쪽 소파를 가리켜 보인 마트로프가 웃음 띈 얼굴로 말했다.
“곧 여자들이 올 겁니다. 괜찮은 여자들이지요.”
“아아, 그렇습니까?”
정중하게 물은 이또의 시선이 옆에 앉은 오가와를 스치고 지나갔다.
오가와는 못들은 척 딴전을 보고 있었지만 편치 않은 얼굴이었다.
이제 마트로프와 나호트카 만으로 2박 3일의 낚시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마트로프는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초대했다고 생색을 내었지만 로니전자의 극동지역 책임자인 이또는 물론이고 하바로프스크 지사장 오가와도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이쪽은 정보비로 부르지만 보호비 명목으로 지급하던 돈을 지난달부터 두배로 인상시킨 마트로프인 것이다. 2박 3일의 여행 중에 어떤 요구가 또 추가될지 모른다고 오가와는 우려하고 있었다.
“집안 장식이 훌륭합니다.”
이또가 응접실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며 뻔하게 보이는 공치사를 했다.
항구 근처의 2층 양옥은 이른바 마트로프의 안가(安家)였는데 이또 등은 이곳에 처음 온 것이다. 오전 10시 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자들은 늦잠을 자는 버릇이 있어서 말이야.”
벽시계를 올려다본 마트로프가 혀를 찼을 때 부하 하나가 응접실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마트로프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흥, 그래?”
눈을 가늘게 뜬 마트로프가 웃음 띤 얼굴로 머리를 끄덕이더니 곧 이또를 보았다.
“이또씨, 내가 이야기 했지요? 일성전자 직원이 엊그제 들렸었다고.”
“예, 그러셨지요.”
이또가 대답하자 마트로프는 부하에게 지시했다.
“이곳으로 데려와.”
“예, 보스.”
부하가 방을 나갔을 때 마트로프가 벽시계를 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여자들이 늦는 바람에 일성전자 직원을 만나고 가야 되겠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10분이면 끝나는 일입니다.”
마트로프가 웃음 띈 얼굴로 이또와 오가와를 번갈아 보았다.
“며칠 전에 만났을 때 부탁을 했더니 빨리 결정이 되었군요. 일성전자는 액션이 빠릅니다.”
그리고는 마트로프가 활짝 웃었다.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습성은 가끔 편리할 때가 많지요.”
마트로프가 빨리빨리를 한국어로 발음했으므로 이또와 오가와는 따라 웃었다. 그러나 일성전자 이야기는 그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었다.
부탁을 했고 빨리 결정이 되었다는 말도 이쪽을 겨냥해서 한 말일수도 있다. 빨리 결정이 되었다는 말도 로니사의 결정이 상대적으로 늦다는 표현일수도 있는 것이다.
그때 마트로프가 말을 이었다.
“일성전자에 관리비를 두 배로 인상 시켜야겠다고 한 겁니다. 물론 예상을 하고 계셨겠지만.”
마트로프가 웃음 띈 얼굴로 이또를 보았다.
그는 보호비를 관리비라고 불렀는데 때로는 정보비라고도 했다. 그가 부르기 나름이고 가격도 마찬가지였다.
“일성전자는 이번에 신입사원 하나를 아예 나하고의 연락원으로 배정시켜 놓았더군요.”
“아, 그렇습니까?”
“그것이 효율적입니다.”
정색을 한 마트로프가 이또에게 말했다.
“지금 오는 자가 바로 연락원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