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식품에서 프리마라는 분말 커피용 크림을 판매할 때 가루 인스턴트 커피와 설탕과 함께 끓인 물에 프리마를 타서 마시는 커피에 익숙해 있었던 제가 1979년 말 처음 토오쿄오 킷사텐(다방)에서 처음 맛본 원두 커피의 향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처음 시작한 해외 생활이라 모든 게 생소하고 신기함의 연속이었지만 주말 아침 동네 커피 집에서 모닝 세트를 주문하면 토스트, 삶은 계란과 함께 나오는 커피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커피 콩을 핸드 그라인더로 직접 갈아 핸드 드립으로 내려 주는 커피는 제가 커피를 정말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게 미국식 드립 커피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일본말에 익숙해진 후 주인 아저씨와 커피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이었습니다.
커피가 기호 식품이라 그런지 저는 지금도 드립 커피만이 진정한 커피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커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토오쿄오 커피집 주인 아저씨가 하필이면 드립 커피 전문가이었고 내려 주는 커피 맛을 제가 느끼고 좋아하게 된 것도 큰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 온 후 해외에서 즐기던 것 중에서 먹을 수 없거나 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커피이었습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찾아 낸 것이 던킨 도너츠의 ‘오리지널 커피’였습니다. 기계식 드립이었지만 가격도 적당하고(당시 1잔에 1,800원) 아쉬웠지만 맛도 그렇게 나쁘진 않았습니다. 지금은 ‘맨하탄 드립’으로 이름도 바뀌고 가격도 2,300원으로 인상되었으며 가장 아쉬운 점은 생두를 로스팅할 때 옛날보다는 더 많이 태워 쓴 맛이 좀 더 많이 난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15일 지난 볶은 콩은 페기하고 내린 후 30분 지난 커피를 버리며 관리하는 커피의 품질은 바깥에서 마실 수 있는 커피 중에는 최고 수준입니다.
서울에서 같은 맛 즐기기 프로젝트 중 하나가 커피였습니다. 부산에 있는 생두 수입상을 알아내어 생두를 구하고 (지금은 취급점이 많아 졌지만 2001년도에는 정말 찾기 어려웠습니다)
수망( 스테인레스 네트로 된 커피 볶는 도구)을 구하여 가스 불에 흔들어 가며 볶으니 균일하게 볶이지도 않고 볶는 과정에서 생기는 커피 껍질의 처리는 정말 성가신 작업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볶아서 밀봉된 커피콩을 구매하여 그라인더로 갈아 사용하였지만 문제는 커피 빈의 종류와 볶은 지 얼마나 경과된 콩인지 검증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콩은 볶은 지 15일 정도 경과하면 산화하기 시작하고 오래된 콩은 맛과 향도 떨어지고 건강에도 그리 이롭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 개봉하면 빨리 사용해야하고 시간이 지나면 버리는 일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2003년 드디어 일본에서 홈 로스팅 머신을(미국 산인데 일본용으로 OEM 생산) 구입하게 된 후 부터는 그린 빈을 구매하여 직접 로스팅하여 블렌딩으로 맛을 만들고 제가 좋아하는 드립 커피를 찾아내어 지금도 즐기고 있습니다.
다른 음식도 마찬 가지입니다만 커피는 aroma와 flavor를 함께 즐기는 식품으로 특히 aroma의 비중이 다른 식품보다 유난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커피의 생산지에 따라 커피의 맛과 향도 다르고 로스팅 정도와 추출하는 방법에 따라 같은 콩도 맛과 향이 다르니 본인의 기호에 따라 커피콩의 종류와 로스팅 정도, 추출 방법을 선택하여 즐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드립 커피는 유럽식 기계추출 커피(스타벅스에 의해 우리나라에 퍼지게 된 에스프레소 베이스 커피머신) 보다 볶는 정도가 덜합니다. 통칭 시티 로스팅이라고 불리는 드립커피 용 로스팅은 약간 짙은 브라운 컬러를 띠며 프렌치 로스팅이나 이탈리안 로스팅처럼 검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시티는 뉴욕을 일컫는 용어이고 맨하탄을 지칭한다고도 하여 맨하탄 로스팅이라고도 합니다. 고열로 오래 볶을수록 쓴 맛이 강해지고 신맛이나 단맛은 줄어듭니다. 그러나 향은 더욱 강해집니다. 이태리에서 이른 아침 짙은 커피 냄새에 끌려 찾아가 보면 꽤 떨어진 곳에 있는 bar에서 뿜어내는 에스프레소 향인 걸 알고 감탄할 정도입니다.(이탈리안 로스팅이 가장 많이 태웁니다) 물론 신선한 콩이어서 더욱 그러합니다. 이태리에서는 아침에 bar에 가서 카페라테나 카푸치노 한잔과 빵 한 개로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른 아침부터 동네 bar에서 커피 냄새를 많이 뿜어냅니다. 커피 가격이 1유로 전후이고 빵 가격도 비슷한 수준이라 출근 시간대 지하철 역 주변 bar에서 아침 먹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처럼 드립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태리에서 커피 사정은 지옥입니다. 요리 배우러 이태리에서 2개월 체재할 때 눈만 뜨면 커피 내려 마시던 저는 우선 슈퍼에서는 에스프레소 용으로 미세하게 그라인딩한 검은 커피 밖에 구할 수 없었고 드립용 커피 기구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함께 기숙사에 머물던 일본인의 조언으로 모카포트를 구하여 짙은 커피를 내려서 약간의 더운물을 부은 이태리식 아메리카노 커피로 타협하며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태리 바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려면 카페 룽고(cafe lungo)를 주문하면 가장 비슷한 커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 카페(un cafe)를 주문하면 에스프레소가 나옵니다.
프랑스에서는 카페 알롱제(cafe allonge)를 주문하면 스타벅스 식으로 에스프레소에 더운물을 부어서 만들어 주고 메뉴에도 카페 아메리카노로도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차 대전 당시 파병 온 미군 들이 많이 마셔서 그렇게 이름 지어 졌다고 합니다. 프랑스 카페에서는 서서 마시거나 테이크 아웃의 가격과 자리에 앉아서 마실 경우의 가격이 5~6배 정도 다릅니다.
저는 신맛과 단맛을 느낄 수 있는 커피를 좋아해서 덜 볶은 커피빈( 케냐AA, 콜롬비아,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등)을 볶아 블렌딩하여 82도의 데운 물로 드립하여 만들어 즐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질 좋은 생두를 구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좋은 생두 농장은 일본의 커피 무역상들이 거의 아시아 독점권을 갖고 있어서( 메이지 시대 개항과 함께 고오베나 하코다테 항구에 커피 전문 무역상들이 생겼음) 어쩔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지만 케냐AA로 익숙해진 탓인지 얼마전에 일본에서 구한 케냐AAA를 맛보아도 큰차이 느끼지 못했습니다. 스타벅스가 만든 미국식 유럽커피에 우리나라 젊은이 들이 맛들여져 가는 것과 같이 기호식품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간 이태리 사람들이 미국에서 만든 미국식 피짜가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주류를 이루다가 이태리 현지에서 맛본 나폴리식 피짜로 선호도가 바뀌어 가는 걸 보면 언젠가 드립식 커피의 가치에 눈뜨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 취향도 많이 바뀔 거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가정용 로스팅 머신
칼리타 그라인더
이태리에서 사용했던 모카포트와 에스프레소 머신
볶기 전의 커피 생두( green bean)
핸드 드립용 도구들
첫댓글 개인적으로는 카페인 장애가 있어 커피를 잘 마시지는 않지만 글을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옛날 뉴욕서 아파트의 방 하나를 빌려 지낸 적이 있었는데... 주말 마다 주인 할매와 그 일당으로 부터 순뽁끔예배당에 가자는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즈음 산프란시스코 서 일을 하던 할매 아들이 왔다 가는 길에 커피원두를 여러 보따리 사가면서 상항에서는 도저히 못 구했다고 하길래 흠~~ 상항이 작은 도시도 아닌데 구할 수가 없다니 여기도 또 다른 세계가 있나보다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는 야그 올씨다.
그런데 요런 긴 글을 올릴때는 단락 사이에 빈 라인을 하나씩 넣어주면 읽기가 훨씬 수월캤는데요...
다른 모임 카페에 글을 올리다가 여기에도 올려보자 싶어서 복사하여 옮기다 보니 읽으시기 힘들게 된것 같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