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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보면 제갈공명이 죽고, 이제 본색을 드러내는 한 장군이 있다. 그는 이제 제 세상을 만난 것처럼 좋아한다. 그렇게 귀신같았던 제갈공명도 죽고 나니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때를 이용하여 정권을 쥐고, 나라를 쥐락펴락하고 싶었던 것이다.
양의가 반역한 위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말 위에서 연거푸 세 번 ‘누가 감히 나를 죽이겠느냐?’고 소리칠 수 있다면 참 대장부라 할 만하니, 내 즉시 한중성을 너에게 바치겠다."
"양의 이 머저리 놈, 들어라! 만약 공명이 살아 있다면 나는 삼분(三分)쯤 두려워하겠지만 지금은 이미 죽었는데 천하에 누가 감히 나를 막겠느냐? 연달아 세 번은 고사하고 3만 번을 외치라고 한들 무엇이 어렵겠느냐?"
위연은 양의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칼을 들고 고삐를 당기면서 말 위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천상천하에 누가 감히 나를 죽이겠느냐?
천상천하에 누가 감히 나를 죽이겠느냐?
천상천하에 누가 감히 나를 죽이겠느냐?
체 세마디도 마치기 전에
“내가 너를 죽인다!”
위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대의 칼이 번쩍하더니 위연의 목을 베었다. 제갈량이 임종 전에 마대를 불러 은밀하게 전한 계책은 위연이 이러한 고함을 칠 때, 그것을 신호로 삼아 즉시 나와서 그를 죽이라는 것이었다.
세상의 마지막에 하늘향하여 큰 소리칠 자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도 그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계 13:4)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 마귀의 최후발악의 모습을 아시는 것이다.
계시록 13장에서 그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하여 정면도전을 한다.
하나님은 첫번째 계명을 통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라고 하시나
적 그리스도는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 ...”(계 13:4)라고 명령한다.
심지어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다 죽이게 한다.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5)
두번째 계명은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사탄은 이렇게 말한다.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라고 말한다.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5)
세번째 계명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지 말라고 하시는데 사탄은 이렇게 말한다.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계 13:6)
입을 벌려 하나님을 비방한다. 심지어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살후 2:4)
위연장군처럼 죽을 길을 스스로 택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불법의 세력이라고 말하며, 그 마지막은 멸망이라고 말한다. 죄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불법에 기초한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 2:3)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하나님의 계명을 분명하게 하나님이 친수로 쓰신 십계명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그리고 그것은 불변하여 하늘의 언약궤속에도 일점일획도 변함없이 보관되어 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계 11:19)
그런데 적 그리스도는 어떻게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변경시키는지 오늘 우리는 그것을 살펴볼 것이다.
작은 뿔의 신원조회
①. 일어나는 장소-네째 나라 즉 로마에서 일어난다.
②. 일어나는 때-네째 짐승(로마제국)이 열 뿔(열 나라)로 나누인 직후에 일어난다.
③. 국가적 속성-다른 열 나라(뿔)와 같은 점도 있으나 눈과 입이 있는 점에서 다르다. 이 것도 뿔 가운데 하나이므로 왕국(군주 국가)인 것은 틀림없으나, 눈과 입으로 감독하는 기능을 가졌다.
④. 도덕적 특성-큰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등 교만하고 신성모독적이다.
⑤. 준법적 속성-때와 법을 마음대로 변경하는 등 무법적이다.
⑥. 성도와의 관계-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오랫 동안 핍박할 세력이다.
⑦. 성도들을 핍박할 특별한 통치기간-“한 때, 두 때,반 때” 즉 1260년 간이다.
⑧. 최후의 운명-최후까지 그 권력을 유지하나 마침내 통치권을 빼앗기고 종내에는 파멸 당할 것이다.
서양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것이 로마 교황권, 즉 교황 로마 밖에는 아무도 아님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실제로 서기 330년 로마제국이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기면서, 로마 황제의 보좌는 로마교회의 감독에게 양도되었고, 5세기에 이르러 게르만 민족의 침입으로 서로마가 망한 뒤에는 명실공히 로마교회의 감독이 황제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서 로마의 황제가 없어진 후에 로마 사람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 조직을 유일한 국가 조직으로 알고, 로마 주교를 전 카톨릭 교회의 교황으로 섬기게 되었으며, 또 사실상 대교황 레오는 훈족 왕 앗틸라의 로마 침입을 막아내고(452년), 대교황 그레고리는 롬바르드족의 침입을 막으면서, 실제로 로마 국왕의 일을 맡아 보았다」
「정치적 로마의 폐허로부터 로마교회의 거대한 형태로 거대한 도덕적 왕국이 일어났다」.
큰 말하는 입을 가진 나라(7:8)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7:25)
작은 뿔인 교황 로마는 사람의 눈 외에도,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다고 했다.(7:8, 20). 그런데 이러한 상징은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는 일에(7:25) 관련되어 있음을 분명히 했다. 로마 교황에게 돌려지는 칭호는, 지도자에게 돌리는 존칭 이상으로 하나님께만 합당한 표현이 참람되게 사용되었음을 쉽사리 알게 된다. 다음은 역대의 교황들에게 돌려지거나 자칭한 그러한 유의 표현들이다.
「교황은 그토록 큰 위엄과 높음 때문에, 그는 단순히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니라, 말하자면,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대리자이다(the vicar).」
「교황은 하늘과 땅과 지하 세계의 왕으로서, 삼중관(三重冠)으로 관을쓰고 있다……」
「교황은, 말하자면, 땅 위의 하나님이요, 그리스도를 신실히 믿는 사람들의 유일한 지배자이며, 많은 권세를 가진 왕중 왕(王中王)이다. 그리고 그에게 전지 하신 하나님께서 땅 위의 나라들의 방향 뿐 아니라, 하늘 나라의 방향까지 위임하여 주셨다……」
「교황은 그토록 큰 권위나 능력에 속하였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수정하거나, 서명하거나, 해석할 수 있다……」
「교황은 그의 권세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수정할 수 있고, 땅 위의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는 그의 양들을 매고 푸는 가장 큰 권세를 가지고 행동한다」
「주 하나님 자신과 구속주가 하시는 것으로 언급된 것은, 무엇이든 그가 믿음에 어긋나지 않게 행한다는 조건이면, 그의 대리자도 한다」
1512년 제 5기 라테란 종교회의에서는 교황에 관해 언급하면서 “당신은 지상에 있는 또 하나의 하나님이시다”(Thou art another God on earth.)라는 대담한 선언을 했다. 이와 유사한 선언과 존칭이 끊임없이 강조돼 왔다.
「교황만이 가장 거룩하다고 불릴 수 있으며…… 거룩한 군주, 지고한 황제, 그리고 왕중왕(King of Kings)이라고 불릴 수 있다. 교황은 그토록 큰 위엄과 능력에 속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동일한 심판을 구성할 수 있다. 그래서 교황이 행한 바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발해진 것처럼 여김을 받는다.」
「우리(주: 교황들)는 이 땅 위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지상권을 뜻한 것으로 성경에서 그에게 돌려진 모든 명칭들은, 교황에게도 마찬가지로 돌려진다.」
지난 번 교황인 바오로 6세의 대관식 때에, 그의 머리에 다이아몬드와 에머랄드로 장식한 삼층관을 얹으면서 드린 오타비아니 추기경의 기도에서도 이러한 개념이 지금도 변치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세 관으로 꾸며진 이 삼층관을 받으소서. 당신은 군주들과 제왕들의 아버지이며, 세계의 주교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임을 생각하소서. 주의 명예와 영광이 영원하실 지어다」
이러한 존칭들이야말로 다니엘의 예언대로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는」구체적 표현이다. “대적”(對敵)이라고 번역된 말(leṣad)의 본 뜻은 “……의 곁에”(in the side of)인데 이는 교황이 “자신을 하나님 만큼” 높이려 함을 뜻한 것이며, 또 그렇게 선언할 것을 뜻한다.이러한 적 그리스도적인 선언에 대해, 사도바울과 요한은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예언한 바 있다.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 2:4)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계 13:5, 6).
신부(神父)라는 말의 의미는 참 고상하게 들려지나 그 단어를 따져보면 깜짝 놀랄만 하다. 하나님 신(神)+ 아버지 부(父), 자기를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대리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죄를 사하는 권세도 가지고 있어, 고해성사를 집행한다.
때를 변경하려 함(7:25)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 7:25, 개정)
“그는 가장 높으신 분을 거슬러 떠들어 대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을 괴롭히며 축제일과 법마저 바꾸려고 하리라. 그들은 일 년, 이 년, 반년 동안 그의 손에 넘겨지리라.”(단 7:25, 가톨릭)
카톨릭 성경에서는 때와 법을 “축제일과 법”이라고 번역했다. 축제일의 변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법을 변경시킨다는 의미이다.
안식일과 주일성수에 대한 논쟁은 오늘도 치열한다. 그러나 그 명확한 답변을 우리는 부활절의 시작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부활절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춘분이 지나고, 만월이 지나고, 그 다음에 오는 일요일날로 정했다.
벌써 325년이라는 년도 자체가 부활절이 언제 체계적으로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예수님 부활 한 때부터가 아니라 교회가 세상 정치와 짝을 하여 313년에 로마로부터 기독교 공인을 받고, 이미 이방종교의 풍습과 짝하여 바벨론화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 춘분은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고 그때부터 낮의 길이가 길어짐으로 태양신을 믿는 이들은 태양신의 부활의 날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또 보름은 와야 했는가? 바로 달은 여신을 상징했다. 그래서 부활절이라는 이름 자체에 그 여신의 이름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주 거룩하게 사순절, 부활절을 지키고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제칠일 안식일에서 첫째날인 일요일로 예배일을 바꾸기 위한 “축제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대적하는 적 그리스도의 전략일 뿐이다.
법을 변경하려 함(7:25)
이 곳의 “법”은 아람어로 “다트”(dath)인데 인간의 법이나 하나님의 법을 함께 의미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하나님과 관계된 법 즉 십계명을 비롯한 종교에 관한 법을 가리킴에 틀림없다.
안식일을 변경함(넷째 계명)
교황권에 의하여 변경된 하나님의 율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넷째 계명인 제칠일 안식일의 준수를 창조주일의 첫째 날인 일요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카톨릭 교회의 자인(自認)
카톨릭 교회는 그들의 하나님의 율법이라 할지라도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있음을 카톨릭 대백과 사전에서 다음과 같이 공언(公言)하고 있다.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들은 교훈이나 금지에 관한 율법을 부과할 수 있는 권세를 가졌음과 아울러, 이러한 율법들로부터 면제(免除)해 줄 권세도 있고, 필요하다면 폐지시킬 권세도 있다. 율법을 범한 자들을 재판할 권한도 있고, 이에 대한 형벌을 부과하거나 면제해 줄 수도 있다. 이러한 사법상의 권한은 심지어 죄까지라도 용서할 수 있는 권세를 포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 의하지 않고서 카톨릭 교회의 전통에 따라 안식일을 변경했음을 카톨릭 교회의 완전한 교리문답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오직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교리들을 믿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다, 우리는 전승(tradition·傳承)도 믿어야 한다. ······ 예로써, 만약 우리가 전승이 없이 성경만을 참고했더라면, 지금도 우리는 일요일 대신 유대인과 함께 토요일을 거룩히 지켜야 할 것이다. ······ “어느 날이 주님의 날(主日) 인가?” “예전의 율법에는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창조의 사업을 마치신 후에 그 날에 하나님이 안식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 중의 일곱째 날 즉 안식일이 주일(主日)이었다. 새 율법에서는 주일 중 첫째 날 즉 일요일이 주일(主日)이다. ”
“하나님의 계명 외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다른 계명이 있는가?” “그렇다, 교회의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 ······”
“우리가 지켜야 할 교회의 첫번째 계명은 무엇인가?”
“교회의 첫째 계명에 의해 우리가 첫번째로 지키도록 명령된 바는, 교회가 제정한 일요일과 성일들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이다. ”
“교회가 성일들을 금지시킬 수 있는가?”
“교회는 성일들을 제정할 충분한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또 다시 그것을 금지시킬 수 있는 권리도 가지고, 그것들을 옮기거나, 시간과 환경이 그것을 요구할 때, 이를 어떤 장소에 국한시킬 권리도 있다. ”」
카톨릭 신자 지도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답이 기록되어 있다.
문 : 토요일이었던 고대의 안식일보다 일요일을 지키는데 대해 어떠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답 : 우리는 이에 대해 카톨릭 교회의 권위와 사도들의 전승을 가지고 있다. ”
문 : 성경 어디에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키라고 명한 바가 있는가?
답 : 성경은 우리들에게 교회의 말을 듣도록 명하고 있다(마 18:17, 눅 10:16). 그리고 사도들의 전승을 고수(固守)하라고 명한다(살후 2:15). 그러나 성경은 이와 같은 안식일의 변경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 하고 있지 않다. ······ 그러므로, 동일한 교회의 권위에 의해 제정된 다른 축제일들은 중요시하지 않으면서 일요일을 경건하게 지키는 것처럼 하는 것은, 그들이 이성이나 신앙에 의해서가 아니라, 변덕(氣分)에 의해 행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일요일과 축제일들은 모두 같은 기초 즉 교회가 제정한 제도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그리스도인 교리 문답서에는 개신교회들이 카톨릭교회가 제정한
요일을 준수하고 있음을 빙자(憑藉)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문 : “개신교인들은 성경의 주제에 대해 모순되는 어떤 것을 가르치고 있는가?”
답 : “그렇다. 그들은 신자들에게 성경은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포함하고 있으며, 성경에 명백히 설정된 것 외에는 아무 것이라도 믿거나 실행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하려 하고 있다. 만약 성경이 그들의 유일한 (신앙)규범이라면, 그들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에 따라 일요일이 아니라 안식일을 지켜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이 계명이 바뀌지도 않았고 폐지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
문 : “교회가 계명상의 축제일을 제정할 수 있는 권세가 있음을 증명하는 무슨 방도가 있는가?”
답 : “교회가 이러한 권세를 가지지 못했다면, 교회는 현대의 모든 종교인들이 이에 동의하고 있는 바와 같이, 성경의 권위에 따라 변경된 것이 아닌데도, 제칠일 안식일 준수 대신에 주일(週日)의 첫째 날인 일요일을 대치시킬 수가 없었을 것이다. ”
문 : 개신교인들이 주일 중 제 칠일인 토요일에 일함으로써, 이를 모독(冒瀆)하는 경우에라도 그들은 성경을 그들의 유일한 신앙 규범으로 따르고 있는 것인가? 그들은 거룩한 책(聖經)에서 그렇게 해도 된다는, 분명히 쓰여진 허락을 발견하고 있는가?“
답 : “정반대이다. 그들은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는 전승(傳承)의 권위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토요일(安息日)을 더럽힘으로써 하나님께서 결코 분명히 폐지하지 않으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의 계명 가운데 하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
또한 안식일의 변경이 카톨릭교회에 의해 정정당당히 이루어졌음에 대해 질문함(質問函)을 통해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안식일을 주일(週日)의 제 칠일에서 첫째 날로 변경한 데 대해 성경의 어떠한 권위가 있는가?” “누가 교황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변경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했는가?”
“만약 성경이 그리스도인을 위한 유일한 지침(指針)이라면,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 교인들은 유대인들과 더불어 토요일을 지킴으로써 올바른 것이다. 그러나 카톨릭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세워진 거룩하고 오류(誤謬)가 없는 권위에 의하여, 무엇을 믿고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를 알게되는데, 카톨릭 교회는 사도 시대에 그 날에 있은 주님의 부활을 드높이고 유대인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분명히 가려내는 표가 되도록 하기 위해, 일요 일을 쉬는 날로 만들었다.”」
이러한 공언(公言)은 열거할 수 없이 많은데 마지막으로 1910년 1월 25일에 공인된 회심자의 카톨릭 교리문답서의 안식일 조항 일부를 인용함으로써 매듭하고자 한다.
「문: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답: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문: 우리는 왜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가?
답: 카톨릭교회가 라오디게아 종교회의(the Council of Laodicea. )에서 그 존엄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이다.」
개신교회들의 증언
이상은 안식일의 변경에 관한 카톨릭교회의 자인(自認)이었지만, 이 사실에 대한 개신교회들의 증언은 무엇인지 몇 가지 경우만 열거한다.
◦「그리스도의 제자 교회(Disciples of Christ) 창시자인 알렉산더 캠벨의 증언: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르기를, “안식일이 일곱 째 날에서 첫째 날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어디서? 언제? 누구에 의하여? 이와 같은 질문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 아니다, 그것은 결코 변경되지 않았으며, 창조가 다시 있지 않는 한 변경될 수도 없다. 그 준수나 이유의 동기가 변경되기 전에, 이유 그 자체가 변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식일이 일곱 째 날에서 첫째 날로 바뀌었다고 하는 주장은, 늙은 마누라의 잠꼬대에 불과하다. 그것이 변경된다면, 이를 변경한 자야말로 때와 법을 변경하는 당당한 인물일 것이다. 나는 그의 이름이 적(敵)그리스도 박사(Dr. Antichrist)라고 생각한다. ”」
◦「침례교 요람(The Baptist Manual)의 저자인 히스콕스 박사(E. T. Hiscox) 의 증언: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은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나, 일요일은 안식일이 아니다. 안식일이 주일(週日)의 일곱 째 날에서 첫째 날로 옮겨진 것을 꽤 그럴듯하게 말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 . 이런 변경을 뒷받침하는 기록을 찾을 수 있을까? 신약에는 없다. 절대로 없다. . . 물론 나는 일요일을 지키는 관습이 초대 교회사에 종교적인 날로 도입된 것을 교부들의 글과 다른 자료들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태양신의 이름을 따고, 이교(異敎)의 낙인이 찍힌 이 날이 교황권의 배교(背敎)로 말미암아 채택되고 시인되었으며, 신성한 유산(遺産)으로 개신교회에 물려진 것은 이 얼마나 가련한 일인가.”」
◦ 유명한 청교도 역사가인 윌리암 프린(William Prynne) :
「제칠일 안식일은. . .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초기의 그리스도 교회가 다 엄숙히 준수한 날인데,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부터 라오디게아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그 날의 준수를 폐하고자 하는 일이 있어 왔다. 서기 360년경의 라오디게아 공의회가 처음으로 유대인의 안식일 지키는 일을 금지하고 주의 날을 지키도록 결정하였다.⌏
◦ 교회 역사가인 네안더 (Neander):
「일요일을 축일로 삼은 것은 다른 모든 축제일의 경우처럼 단지 인간이 제정한 것이다. 안식일 계명을 일요일로 변경하는 명령을 내리고자 하는 의도가 사도들에게나 초대교회에 전혀 없었다.」
이렇게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된 것은 전혀 인위적인 것으로, 점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일요일을 최초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지키도록 명한 것은 콘스탄틴 황제였으며, 이를 성일로 확정한 것은 카톨릭교회의 주장대로 364년의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에서였다.
◦ 대영백과 사전 “일요일” 조항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일요일을 합당하게 준수하도록 하는 법을 최초로 제정한 사람은 콘스탄틴인데, 그는 전 로마제국을 일요일을 규칙적으로 축하하라고 명령하였다.」
◦콘스탄틴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 「321년 3월 7일」
「존경할 만한 이 태양의 날에, 모든 판사들과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휴업하도록 하라. 그러나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하늘이 마련해 주는 것들을 상실하지 않기 위하여, 씨를 뿌리거나, 포도나무를 재배함에 그토록 적합한 날이 없는 때가 자주 있으므로, 적기(適期)를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날 완전히, 자유롭게 농경(農耕)에 종사하도록 하라.」
◦라오디게아 종교회의 「364년 법규 29」
「그리스도인들은 유대화하여 안식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하며, 그날에 반드시 일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 날을 특별히 존중히 여겨,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바대로 가능하면 이 날에 일하지 말라. 그런데도 만일 그들이 유대인처럼 된다면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질 것이다」
십계명의 단축 및 삭제
로마교회는 십계명의 두번째 계명을 첫째 계명에 포함된 것이라 하여, 이를 삭제하는 한편, 열째 계명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조항으로는 십계명이 되었으나, 내용상으로는 안식일 계명의 변경과 둘째 계명의 삭제로 심각한 차이를 가져 왔다. 네째 계명을 세째 계명으로 하고, 그 날짜를 일곱째에서 첫째로 옮긴 것 외에도, 그 내용을 대폭 삭제하여, “주일을 지키고”라는 한 마디로 단축함으로써, 안식일의 시간과 의미는 물론 이에 연관된 하나님의 창조주 신분(身分)을 말소해 버렸다. “어느 날에, 누구를, 왜,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의 일체의 내용이 삭제됨으로써 논리에도 맞지 않는 법 조항이 되고 말았다.
둘째 계명을 첫째 계명에 포함시킨 것은 그 내용의 중복 때문이기보다는 오히려 교황권의 역사에서 그 이유를 찾게 된다. 그것은 교회가 로마제국에 의해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은 뒤(AD 313) 급속도로 타락하여 세속화되는 과정에서 받은 이교(異敎)의 영향으로, 로마교회 자체가 이교의 의식(儀式)을 모방하거나 용납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빠져든 모순에 대한 합리화(合理化)에 불과한 것이다. 저명한 교회사가(敎會史家)인 모쉐임(J. L. Von Mosheim)의 이에 대한 진술은 정확하다.
「그리스도인 감독(司敎)들은 이전에 희랍과 로마의 다른 종교의 숭배자들이 그들의 상상적인 신들에게 존경과 신앙심을 표현하였던 종교의식들과 제도들을 조금씩만 고쳐서, 그리스도교 예배에 끼어 넣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교도(異敎徒) 대중들로 하여금 이런 의식들은 자기들의 조상들로부터 전래(傳來)된 것으로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바뀐 것이 없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하고, 그리스도와 순교자들도 이전에 자기들의 신들이 경배받았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예배되고 있는 줄로 안다면, 그들이 더욱 쉽사리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 콘스탄틴 황제가 자기 조상의 종교를 포기하자마자, 곳곳에 으리으리한 성전들이 서게 되어, 여러가지 그림들과 우상들로 단장되었는데, 이것들은 외관으로 보나, 내면으로 보나, 이교 신들의 신전과 흡사한 것이었다」
실제로 8세기에 이르러서 카톨릭교회들은 각종 성상들로 가득 차게 되었고, 이것들에 입맞추고, 기도하고, 분향하고, 절하는 일이 지나쳐, 오히려 우상을 섬기지 않는 회교도들로부터 우상숭배자라는 조롱을 받는 등 그 퇴폐함이 극에 달했다.
보다 못한 동로마 황제 레오 3세(Leo III)와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등은 종교회의를 열어 우상 숭배를 금하고 교회당에서 이를 제거할 것을 명하고 강제로 부수기까지 했다. 그러나 교황 그레고리 3세(Gregory III)는 우상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섬으로써 동서(東西)교회 간에 장기간에 걸친 논쟁과 분쟁으로 들어섰다. 심지어 로마교회의 일각에서는 “하나님은 성만찬에서와 마찬가지로 만들어 놓은 우상(偶像)에도 임재하신다. . .그려지거나 묘사되지 아니한 그리스도는, 실제의 그리스도가 아니다. ” 라고 주창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그 유명한 성상 파괴 논쟁(Iconoclastic Controversy)인데 우상에 대한 로마교회의 견해는 지금도 그 때와 변함이 없으며, 지금의 바디칸 성 베드로 성당에도 395개의 성상과, 44개의 제대(祭臺)가 차려져 있어, 불교의 사찰(寺刹)을 방불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로마교회가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5)는 둘째 계명을 달가와할 리가 없고, 첫째 계명에 포함되었다는 애매(曖昧)한 이유를 붙여 삭제(削除)해 버린 것이다.
성경은 언제나 명확하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