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전 날입니다. 저도 오래 전 수능을 보기 전 날이 떠오릅니다.
뭘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고,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검토해야 할지도 모르겠던 수능 전 날이었어요.
공부하려고 독서실 갔다가 친구들하고 수다떨고 집에 왔던 날들을 회상하며 후회하던 날이었습니다.
‘조금 더 공부할걸.’하면서 말이죠.
또 부모님께서는 이젠 잔소리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묵주알만 굴리던 뒷모습도 아른거립니다.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 ‘내일 내 오장육부가 뒤틀리면 어떡하지?’
어린 마음에 ‘내일 지구가 멸망했으면 좋겠다.’하는 터무니없는 생각들도 했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수능 날이 되었고 부모님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에 들어섰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긴장감으로 시험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시험이 다 끝나고 나니까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영어나 수학, 사탐은 딱 내가 답을 알겠고 뭘 틀렸는지 감이 오는데 국어는 저는 정답인 줄 알았어요.
언어영역은 이게 그거 같고, 그게 이거 같은 이상한 매력이 있는 과목입니다.
어쨌든 수능을 무사히 마치고서 한 달여 시간이 지나 성적표를 받았는데...
저는 수능을 두 번 보았습니다.
매일 아침이면 비문학 세 문항, 영어듣기평가 10문항, 영단어 하루 50개씩을 외웠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그 때는 평생 이 수능공부만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어서 절망과 괴리감이 크게 느껴졌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그 모든 것들도 이젠 추억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이 외칩니다. “예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7,13)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 한계의 상황에서 부르짖는 인간의 외침입니다.
‘예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당장 코앞에 다가온 큰 산을 마주선 우리는,
하느님의 도우심과 자비를 청하는 것밖엔 우리의 몫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여러분이 준비해 온 영겁의 시간과도 같게 느껴질 오랜 시간을 되새기며 자기 자신을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그저 평소 공부해 온 것을 펼친다는 생각으로 즐겼으면 좋겠어요.
‘Carpe diem.’ 실력이 뛰어나고 재능이 있다한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역사는 말해줍니다.
우리 학생들을 위하여 부모님들께서 정성을 다해 굴려왔던 묵주알을 성모님께서 동행하시고 하느님께서 굽어보실 것입니다.
정말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일 가져가야 할 수험표, 신분증, 손목시계, 필기구, 오답노트, 사랑이 담긴 도시락 잊지 말고 꼭 챙기시고,
하느님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마음껏 펼치고 오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님들과 더불어 중고등부 선생님들, 범계성당 신자분들과 함께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해 왔고
내일도 시험장에 있는 그 순간에 여러분을 기억하며 기도할 터이니 하느님 백을 믿고 잘 치르고 오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