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固城) 이야기/ 공룡의 나라 그림 출처: 고성군 홈페이지 산(山)을 좋아했던 나는 산(山)을 찾아 경남 고성에 4번을 왔다. 고성의 거류산(巨流山)과 벽방산(碧芳山) 그리고 연화산(蓮花山) 도립공원을을 찾아서다. 거류산은 그 봉우리 모양이 스위스의 마터호른(Materhorn) 같이 웅장하다고 하여 '고성의 마터호른(Materhorn)'이라고 부를 정도로 거류산 봉우리는 기이한 절경인데 거기에는 재미난 전설이 있어 이를 시화(詩化)하여 보았다. 한 아낙네 밥 짓다가 무심히 밖을 보니 걸어가는 큰 산 보고 놀라 소리치며 부자께 휘두르는 호겁에 멈춰 섰다는 거류산(巨流山). -거류산 고성의 연화산(477m, 蓮花山)은 경남을 대표하는 도립공원(道立公園)이라 하여 기대를 갖고 천리길을 달려 작년에 찾아 갔더니, 연화산은 평범한 산이었고 그 산이 품고 있는 옥천사(玉泉寺) 때문에 유명한 산이 된 것 같다.
이 절의 이름인 '玉泉寺'(옥천사)란 이름은 대웅전 뒤에 위치한 끊임없이 솟아나는 달고 맛있는 석간수인 옥천(玉泉)에서 유래한다. 이 옥천샘은 위장병,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소문나 있어 절을 찾는 이마다 옥천각(玉泉閣)을 들러 물을 마시고 간다. 벽방산(650m, 碧芳山)은 고성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한려수도 해안 가까이 있어서 그 정상은 한려수도 제1의 조망지로 손꼽힌다. 내가 고성에 와서 제일 먼저 만난 것이 고성터미널에서 바라 보이는 신라의 왕릉 같은 커다단 고분군(古墳群)이었다. 이것이 이 고장의 역사를 일깨워 주는 송학동 고분군(古墳群)으로 총 7기가 있는데 소아야국(小伽耶國)의 왕릉이라 한다. 김수로왕(金首露王) 전설과 관계 있는 노래 구지가(龜旨歌)에 나오는 촌장 중 막둥이 김말로(金末露)가 임금이 되어 터를 잡은 곳이 지금의 고성이라는 것이다. 김말로(金末露)왕은 고성 김씨(固城金氏)의 시조였다. 우리나라에 고성이란 이름을 가진 곳에는 두 군데가 힜는데 하나는 강원도 고성(高城)이요, 또 하나는 경남의 고성(固城)인데 경남 고성은 왜 한자로 고성(固城)이라 썼을까? 그 해답을 시원하게 해결해 줄 문헌과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어서 한자 사전에게 물어 보았다. 固曰城郭溝池以爲固(고왈성곽위지고위고)/ 大韓漢辭典 여기서 '성곽(城郭)'이란 성의 외성(外城)과 내성(內城)을 말함이요, '구지(溝池)'란 성밖을 둘러싼 해자(垓字)를 말함이니 고성(固城)이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굳은[固] 성(城)을 말한 것일 께다. 고성은 남해바다에 접한 곳이라서 왜구(倭寇)의 침입이 잦았던 곳으로, 고성 읍지의 '성내리(城內里)' 유래를 보면 이를 유추케 한다.
-성내리란 성 안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소가야(小伽倻)를 세운 김말로(金末露) 왕은 지금의 고성읍 지역에 석성(石城)을 쌓았는데 그 처음 둘레가 3.524척 높이가 약 15척이었다. 성(城)에는 세 개의 출입문이 있어 그 위치에 따라 동문, 서문, 남문이라 불렀다. 여기서 비롯된 마을 이름이 지금의 동내(東내), 서내(西內), 남내(南內) 마을이다. *. 삼족암군립공원 고성(固城)에는 '삼족암(三足岩) 군립공원'이 있다. 한려수도를 바라보는 위치의 하이면 덕명리, 월흥리, 하일면 춘암리에 위치한 이 군립공원은 이곳의 바위가 밥상다리 모양을 하고 있다는 데서 상족(床足) 또는 쌍발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다. 상족암 부근에는 선녀탕, 촛대바위, 병풍바위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절경을 더해 주고 있다.. 아름다움도 동반자가 있는가. 그 상족암 부근 해안에는 6km에 걸쳐 약 2억 3천만 년 ~ 1억 6천만 년 사이 지구를 군림하며 살던 공룡의 발자국이 해안을 따라 약 41km에 걸쳐 2,000여족 이상이나 있다. 이 공룡발자국이 1982년 무리로 발견되어 천연기념물 제411호로 지정되었다. 이 삼족암 군립공원은 브라질, 캐나다지역과 더불어 세계 3대 공룡발자국 화석지로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곳이다. *. 공룡박물관(恐龍博物館) 우리는 만사제폐하고 '공룡박물관(恐龍博物館)에 왔다. 영어로는 공룡을 'dinosaur'라 한다. 'dinos'란 말은 그리스어로 '무서운'이란 뜻이고 'saur'는 도마뱀이나 용을 가르키는 말로 영국인 고생물학자 오웬(Richard Owen)이 처음 붙인 이름이다. 그래서 동양권에서는 이를 따라서 두려울 '恐'(공), 용 '龍'(용), '공룡(恐龍)'이라 하는 것이다. 출처: 서울신문) 우리가 공룡이라고 하면 그 어마어마한 크기를 생각하게 된다. 공룡박물관 내에 공룡은 2층 이상의 높이로 그 골격을 자랑하듯이 서 있던데 도대체 공룡은 얼마나 큰 동물일가. 서울신문 기사에 의하면 그 작은 뼈 하나가 성인의 키보다 큰 사진과 함께 머리로부터 꼬리까지 길이가 40m이요, 무게 77t이나 된다는 역대 최고 크기의 공룡화석이 아르헨티나의 사막에서 발견되었다는 기사다. 물론 초식공용이니까 이렇게 자랄 수 있었다는 이야기지만 공룡 중에는 육식공룡도 있다. 육식공룡은 그 이빨과 함께 날카로운 발톱을 사냥의 무기로 하여 숨어 있다가 잽싸게 달려드는 민첩성까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공룡에 상대할 천적(天敵)나 동물 중에는 없었을 터인데 언제, 왜 없어졌을까. 박물관에서 본 학자들의 연구에 의한 몇가지 설을 내 나름대로 소개한다. 지구가 생성될 무렵 6대주가 하나의 돌이었던 중생대의 세 기 중 첫째 시기라는 트라이아스키 시대((Triassic Period)가 공룡들이 지구의 지배자가된 시기인 쥐라기 시대(Jurassic Period)를 거쳐 지금의 6대주로 나뉠 무렵인, 백기 시대(白堊期, Cretaceous Period)가 끝날 무렵 공룡도 멸종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지구와 거대한 운석이 충돌하거나, 잦은 화산폭발 등으로 그 재가 태양을 가리는 바람에 공룡은 추위와 굶주림에 동사하거나 굶어죽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해수면이 낮아지는 바람에 그동안 주식으로 먹던 물고기마져 다 사라졌기 때문에 공룡이 살 수가 없어서 일시에 사라졌다는 주장이다. -다음 최종회 '거제도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