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2014년 4월 16일) 저는 구직활동을 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한달전 회사를 나와 그래도 뭔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아직 자식들 3명이 모두 결혼전이었고 막내는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였습니다. 그날도 오늘은 어느 직종 그리고 어디가서 구직신청서를 제출할까 고민하면서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무심결에 핸드폰을 켰는데 뭔가 배 사고가 났다는 정도의 1보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대형배에서 사고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 배가 세월호인지도 그 배에 수많은 학생들이 타고 있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고용지원센터에 들러 구직활동과 관련해 문의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까 오전에 있었던 그 사고가 생각이 났습니다. 지하철과 도로 곳곳에서 탄식소리와 안타까워하는 시민들의 표정들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월호 사고는 발생했고 오늘 그 10주기를 맞았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의 승객이 탄 세월호가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는 중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 침몰해 304명이 숨진 사고였습니다. 사고가 나자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곧 구조할테니 잠시만 기다리는 방송을 하고 자신들은 승객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했습니다. 나라의 최고 권력자에게 제대로 보고도 되지 않았습니다. 구조는 우왕좌왕하다 골든 타임을 놓쳤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구조에 필요한 정신도 장비도 시스템도 어느 하나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어린 학생들은 기다리면 곧 구조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냥 차가운 물속에 가라 앉아버렸습니다. 2014년 4월 16일은 한국 현대사에 정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고 한국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서로 책임을 떠 넘기는 네탓이라는 그 망국병이 생겼습니다. 이런 저런 사고 조사를 위해 조직이 생겨났지만 무늬만 갖춘 모양새였습니다. 사고 원인을 둘러싸고 숱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jtbc 방송사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언론들도 시간이 흐르자 관심밖 사안으로 취급했습니다. 세월호 농성을 벌이는 유가족들에 대한 별별 요상한 짓거리도 발생했습니다. 입에 다물지 못할 말도 안되는 소리를 내뱉는 세력도 늘었습니다. 유가족들의 한맺힌 탄식의 소리가 아직 귀에 생생한데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채 진도 앞바다에 묻혀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된지 벌써 10년이 됐지만 과연 한국 사회에서는 변한 것 또는 개선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과연 국민의 안정이 최우선시 되는 사회인지 시민의 안전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식이 생겼다면 이태원 참사같은 대형 사고가 또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원인 규명도 뭐가 두려워서인지 진전이 없습니다. 원인 규명을 하는데 여야가 따로 있고 보혁이 따로 있습니까. 세상 천지에 원인 규명하자는데 왜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조사 자체를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뭘 그렇게 숨길 일이 많을까요.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원인 규명이 되지 않았는데 뭐가 이뤄졌겠습니까. 앞으로 한국에 이런 원시적이고 후진적인 사고가 또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세월호 이후 촛불혁명으로 시대가 잠시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야말로 사회전반적으로 개선된 것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사회 의식도 따라서 바뀌는 사회는 정상적이 사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진행형에서 마침형이 되지 않고서는 이 나라 한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세월호 희생자 여러분의 명복을 빕니다.
2024년 4월 16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 拜上.